기획시리즈

쌀전쟁

ngo2002 2013. 7. 10. 11:47

식량안보 총성없는 전쟁…中 폭발적 수요에 세계쌀시장 `출렁`
중국 쌀수입시장 큰손 베트남 저가쌀에 밀려서 태국 수출 3위 추락 위기
中 싼샤지역 잇단 댐건설 메콩강주변 물길 끊어져 국제쌀가격 요동칠 우려
기사입력 2013.07.09 17:17:23 | 최종수정 2013.07.09 21:35:41

◆ one Asia 쌀전쟁 ◆

세계 쌀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아시아 국가들 중 쌀 수출 3대 강국인 태국이 최근 베트남과 치열한 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2013 세계 쌀 컨벤션에 참석한 쌀 무역업자들이 태국산 쌀 입자를 고르고 있다. [서유진 기자]
쌀 수출 3대 강국인 태국과 베트남이 총성 없는 `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이 쌀 품질에서는 과거 세계 1위였던 태국을 빠르게 쫓아온 반면 가격은 베트남이 t당 100달러 이상 싸지면서다. 여기에 중국이 최근 세계 2위 쌀 수입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아시아 쌀 시장이 `큰손` 중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2013 세계 쌀 컨벤션`에서 분숭 테리야피롬 태국 전 상무장관은 "태국 경제에서 볼 때 쌀 수출 가치는 2000억바트에 달한다"며 "쌀은 370만명의 태국 농민 생계는 물론이고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물자"라고 강조했다.

세계 쌀 생산 중 90%를 차지하는 아시아는 쌀 시장의 주요 공급자로서 수해 등 자연재해가 닥칠 때마다 긴급 구호용 쌀을 비축하는 기구를 만들어 협력하고 있다.

2007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태국 5개국이 모여 만든 식량안보협력기구가 대표적이다. 식량안보 협력은 2015년 아시안 경제 공동체 출범과 맞물려 중요성이 더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아시아 쌀 시장은 협력도 하지만 물밑에선 자국 쌀을 많이 팔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올해 세계 쌀 수출 시장에서 베트남과 태국이 각각 2~3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신경전이 치열하다.

원래 전통적인 세계 쌀 수출 1위였던 태국이 최근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t당 535달러)은 베트남(t당 370달러)보다 100달러 이상 비싼 값에 쌀을 팔아야 하는 처지다.

태국 쌀이 비싸진 이유는 농민에게서 고가로 쌀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태국 정부는 필리핀의 쌀 수입 입찰에 참여했지만 입찰가가 경쟁국인 베트남보다 훨씬 높아 낙찰에 실패했다. 필리핀 쌀 중 85%는 수입이다. 필리핀 정부가 쌀 18만7000t을 수입하기로 한 이 입찰에서 태국은 t당 568달러를 제시했지만, 베트남이 t당 459달러를 제시하면서 베트남에 승리가 돌아갔다.

저가를 내세운 베트남 쌀 수출은 2010~2013년 30% 늘었지만 태국은 3% 감소했다. 가격차가 벌어지면서 태국의 쌀 수출량도 자연히 줄고 있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는 태국의 2013년 예상수출량을 770만t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1년 1060만t에 비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 정부는 2011년 총선 공약 사항인 고가의 쌀 수매를 위해 2013년 5000억바트의 재정을 쏟아야 한다.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 것이지만 정부 재정 손실을 피할 수 없어 태국 정부에는 최대 골칫거리다.

태국 정부는 2011~2012년도 쌀 수매 프로그램 시행 결과 1369억바트(약 5조원)의 재정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인정했다.

그나마 베트남 쌀의 질이 아직 태국에 미치지 못해 주로 소주 등 주정의 원료인 쇄미(부서진 쌀)로만 팔리는 점은 태국 정부에 위안이 된다. 태국은 이제 저가 쌀 대신 t당 1000달러가 넘는 홈말리 품종의 고급 쌀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탕즈민 차이나ㆍ아시아센터 센터장은 "향후 중국 1인당 쌀 소비가 줄더라도 입자가 짧은 쇼트 라이스(short rice)는 고급 품종이기 때문에 소득이 증가할수록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며 중국인들이 고급 쌀을 많이 먹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계 쌀 2위 수입국이 된 중국에도 아시아 국가들 관심이 모인다. 중국은 정부 가격 통제로 비싼 자국 쌀(중국 후베이쌀 t당 625달러)과 베트남 등에서 생산된 쌀 간에 벌어지는 가격 차이를 이용해 최근 재미를 봤다. 실제 중국은 2012년 베트남(67%)과 파키스탄(25%)에서 쌀을 대거 수입했다.

제레미 징거 라이스 트레이더 CEO는 "태국과 베트남의 쌀 가격 차가 역사적으로 가장 큰 시기"라며 "베트남 쌀 수출이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농업부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은 2011년보다 쌀 수입량을 4배 늘렸다. 현재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은 나이지리아지만 중국은 조만간 나이지리아를 추월할 전망이다.

여기에 최근 중국에서는 발암물질인 카드뮴에 오염된 쌀이 대량 유통되면서 자국 쌀을 거부하고 수입산 쌀을 사 먹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최대 쌀 소비국이 되면 장기적으로 쌀 가격은 오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2008년 쌀 가격이 한때 t당 1000달러를 호가하면서 옥수수와 밀 가격도 같이 올랐던 세계 식량 전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데이비드 다위 FAO 아시아ㆍ태평양 대표는 "중국과 아프리카 수요가 향후 1~2년간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세계적으로 쌀 재고가 많고 인도 동부에서 지난 6년간 과잉생산(생산량 50% 증가)됐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올라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시아 쌀 시장에는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싼샤 지역에 댐이 대거 건설되면서 물길이 끊기는 탓에 중국 강을 젖줄로 하는 메콩강 지대가 물 부족으로 논농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홍수나 가뭄 등 기후변화에 민감한 쌀은 언제든 값이 출렁일 수 있다. 최근 중국과 메콩지대 국가들 간에 물을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진 것도 사실은 `아시아 쌀 전쟁`의 연장선인 셈이다.

[치앙마이(태국) = 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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