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이근우 기자의 경제학으로 세상읽기] 중앙은행이 머니雨를 내리면…

ngo2002 2013. 6. 28. 15:33

[이근우 기자의 경제학으로 세상읽기] 중앙은행이 머니雨를 내리면…
기사입력 2013.05.13 10:03:29

미국 서부의 별천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지금 봄이 한창입니다.

거대한 하프돔과 엘캐피탄 암벽을 배경으로 겨우내 쌓인 눈들이 녹아 폭포와 강을 이루고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지는 계곡마다 꽃 내음과 풀 향기가 절정입니다.

<미국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위치한 그림 같은 풍경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요세미티가 자리잡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 곳곳에는 산불로 까맣게 타버린 나무들의 잔해가 앙상하게 펼쳐져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계곡은 생명의 어머니입니다. 바람과 공기, 땅, 햇볕을 버무려 생명들을 일으키고 숲을 만듭니다. 그러나 넓게, 넓게 경쟁적으로 옆으로 뻗어나간 나무와 덤불들로 계곡이 가득 차면 대지의 어머니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해낼 기운을 서서히 잃어가게 됩니다. 풍요의 대지에서 불임의 땅으로 변해버린 계곡에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는커녕 물론 기존의 생명들도 점차 말라갑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바짝 말라 마치 장작처럼 변해버린 계곡 속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 내리고 번개가 치면서 산불이 생겨나고 기존의 생명들은 한줌의 재로 변하게 됩니다. 봄이 되면 시커멓게 그을린 잔해들 속으로 새싹들이 피어 오르고 생명의 어머니가 다시 소생하는 생태계의 모습은 우리에게 세상살이의 이치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를 줍니다.

생태계나 우리네 세상살이나 할 것 없이 좋을 때(up)와 나쁠 때(down)가 있습니다. up 에는 우리 모두 서로 잘나기 위해 경쟁적으로 몸집을 부풀립니다. 세상에 두려운 것 없이 쭉쭉 뻗어나갑니다. 그러다 보면 마치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자기 분수에 지나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탐욕과 광기가 계속되면서 우리 몸에는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게 되고 그 군더더기들은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함을 심어 줍니다.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요세미티의 산불처럼 down이 찾아옵니다. 미리미리 잔 가지를 떨어내고 산불이 넘보지 못하도록 키를 키우는 데 주력한 이들에게는 예상했던 위험이라 피할 수 있겠지만 내실을 다지지 못하고 옆으로만 가지를 벌려놓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산불은 치명적입니다.

원래 요세미티의 산불은 3~20년에 한번씩 자연 주기적으로 발생한다고 합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관목과 덩굴나무, 옻나무처럼 작은 나무들을 태워버리면서 성장의 자양분을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고 산불이 수백 년 이상 오래 자란 세쿼이어 나무들까지 모두 없애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잦은 산불에도 불구하고 시에라 네바다산맥은 아직 거대한 숲의 군락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은 산불이 전체적으로 보면 순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또 인근 마리포사 지역에 가면 2000년 이상 된 세쿼이어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 나무들의 등걸에는 시커멓게 얼룩이 져 있습니다. 산불을 이겨낸 훈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요세미티 국립공원내 마리포사 지역에는 여러 차례 산불을 이겨낸 훈장을 새긴 세쿼이어 거목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요세미티는 이제 새로운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요세미티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산불이 아니라 산불을 원치 않는 인간입니다.

사람들은 요세미티의 생태계를 위해서는 산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인간들의 주거지와 일자리에 위협을 주는 산불이 일어나는 것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산불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들은 생태계에서 자정능력을 빼앗았습니다. 산불을 없애기 위한 노력들이 100년 이상 지속되면서 숲의 바닥은 나무 잔해들과 마른 덤불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 덕택에 오랜 기간 쌓인 나무조각과 덤불들은 산불이 발생하기만 하면 마치 석탄연료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작은 나무들은 물론 큰 세쿼이어 나무들까지 남김없이 태웠습니다.

1987년에 발생한 산불은 14만5980 에이커에 달하는 지역을 태웠고 1990년에 발생한 산불은 장장 2주일 연속해서 타면서 2만4000 에이커에 달하는 지역을 몽땅 태웠습니다. 그 아픔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산불은 더 이상 필요악이 아니라 한번 닥치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요세미티의 위기를 인간이 초래한 것처럼 경제 위기도 인간에 의해 더 커지고 있습니다.

2007년 여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벌써 6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를 뺀다고 하더라도 역사학자 킨들버거에 따르면 17세기 이후 발생한 자본주의 10대 금융위기 가운데 7차례의 위기가 1970년대 이후에 발생했다고 합니다.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세계 금융 질서가 깨진 상황에서 자국의 경기 down을 막겠다고 성급하게 돈을 풀고 규제를 푸는 후유증이 갈수록 부메랑처럼 커져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젠 전 세계 중앙은행이 다들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마치 비처럼 뿌려대고 있습니다.

<산불이 할퀴고 간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부. 인간의 노력으로 화재 빈도는 줄었지만 한번 화마가 덮칠 때마다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방만했던 재정을 긴축하고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는 구조조정은 그야말로 말뿐이었습니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빚으로 흥청망청 살던 나라들이 빚을 갚기는 커녕 빚을 더 늘려서 위기를 모면하겠단 겁니다. 그 후유증이 이젠 우리 나라까지 밀려들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에게 등이 떠밀려 우리도 결국 돈 풀기에 나섰습니다. 중산층 체감 경기는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거리엔 외제차들이 더 늘어나고 값비싼 술집에선 돈이 넘쳐 흐릅니다. 빚쟁이들이 빚을 또 내서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 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함에 하루하루를 넘어갑니다. 펄떡펄떡 살아 있는 창조 경제를 위한 재정 균형과 구조조정의 약속은 어느 새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부실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표를 의식한 정치적 배려가 우선됩니다.

지금 말고 2차 대전 이후 미국 경제 또는 세계경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당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중동발 석유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강성 노조는 계속 임금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스러져 갔습니다. 경기 침체는 누구도 원치 않지만 찾아옵니다.

필요악이라고나 할까요. 어찌 보면 바로 그때 1970년대가 바로 애플, 인텔, 페덱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기업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Up이 있은 다음에는 down이 뒤따르면서 경쟁력을 잃고 지나치게 비대해진 국가 재정부문, 산업, 기업들을 자연스럽게 조정해 나가고 그 위로 새로운 벤처와 사업들의 싹이 움터 나오는 게 경기순환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down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떻게 내실을 다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을 쳐내야 합니다. 뽑아내야 할 것들은 과감히 뽑아내고 또 불살라 버려야 할 것에는 가차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싹들이 소생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이미 말라버린 나무들을 다시 살리려는 노력, 산불을 인위적으로 잡아보겠다는 노력들이 이젠 생태계 전체를 뒤흔드는 재앙이 될지 모릅니다.

[이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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