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이근우 기자의 경제학으로 세상읽기] 서른이 넘으면 왜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어질까

ngo2002 2013. 6. 28. 15:36

[이근우 기자의 경제학으로 세상읽기] 서른이 넘으면 왜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어질까
기사입력 2013.05.28 13:51:02 | 최종수정 2013.05.28 16:08:04

"우리 다시 다 만나는 거다.

잘 나간다고 쌩 까는 년 있으면 찾아가서 응징할거고..

못산다고 주눅 든 년 있으면, 잘 살 때까지 못살게 굴 거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죽을진 모르겠는데..

죽는 그날까지!

아니, 죽어도 우리 써니 해체 안 한다." -영화 써니(2011년) 중에서

<여고 친구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 써니(2011)>
사춘기는 십대에만 오는 게 아니다. 마흔 이후에도 찾아온다.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일도 다 부질없게 느껴질 그 때. 그 칠흑같이 캄캄한 어둠과 허무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우리는 불현듯 어릴 적 친구를 찾아 나선다. 마치 영화 써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잘 살아도 좋고, 못 살아도 그만이다. "우리가 남이가. 뭉쳐야 산데이"라는 얄팍한 속셈인들 어떠랴. 어떤 핑계로던 어릴 적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술을 사고 도움을 주고 받는다. 동창 모임을 조직해서 정기적으로 모이고 떠들고 놀기 시작하는 게 나이에 4자를 달면서부터다.

그런데 말이다. 우린 삼십 대에는 뭘 했을까. 친구를 안 사귀었나. 아니다. 결코 아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한 뒤에도 다들 더 많이 새로 친구를 만들면서 살아왔다. 네트워킹, 인맥이란 거창한 명분을 배경으로 깔고. 뻔질나게 부서 회식을 하고, 직장 내 동호인 모임이다, 비서실 출신 총무과 출신 등 사내 외 네트워크를 맺어 나갔다. 형님 동생 언니 선배 후배 동기... 나이가 많고 적음이, 호칭이 뭔들 대수냐. 결국은 다들 새로운 친구들인데. 직장에서뿐만 아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녹색 어머니회 모임부터 시작해서 아이 친구 부모들과도 부지런히 관계를 맺었다. 혼자서 노는 아이 친구라도 제대로 만들어준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초대를 한다, 콘도다, 펜션이다 하며 같이 여행도 가면서 학부모 모임도 만들었다. 우리의 이 새로운 우정은 변함이 없을 것처럼, 영원히 더 깊어질 것처럼 떠들썩하고 왁자지껄하게 논다. 하지만 그때 잠시뿐이다.

안 보면 그뿐, 그냥 잊혀져 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직장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부서에 속해 있고 일이 겹칠 때에는 자주 만나지지만 헤어져서 자신의 일에 바빠지기 시작하면 그 길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서른 넘어서 사귄 그 많은 친구들 가운데 여태까지 만나고, 또 떠올리기만 해도 반가운 사람은 대개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말이다. 어릴 적 친구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반갑다. 십 년, 이십 년 만에 다시 만나도 마치 어제 헤어졌다가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돌이켜 생각해보라. 세상에 나와 사귄 그 많은 친구들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는 친구들도 대개는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 중반에 만난 경우가 많다. 신기하지 않는가. 왜 서른이 넘어가면서 친구 사귀는 게 힘들어지는 것일까. 어릴 적엔 놀이터에서 눈만 한 두 번 마주쳐도 바로 친구가 됐는데 말이다.

로라 카스텐슨 스탠포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중년의 나이로 향해갈수록 점점 더 적은 숫자의 사람과 교류하게 되며 또 기존의 친구들과 더 친밀해지려는 경향성이 발견된다. 카스텐슨 교수는 이를 서른 살에 울리는 알람시계로 설명한다. 60세를 한 평생으로 봤을 때 서른은 인생의 전환점을 도는 나이다. 인생의 절반이 지난 시점이다. 사냥, 채취, 농사, 육아, 전쟁 등 인간의 몸에 체화된 오랜 진화의 그림자에 비춰볼 때 인생의 절반을 도는 시점에선 더 이상 새로운 동맹자를 늘려 나가기 보다는 기존에 사귀어둔 우군들을 더 배려하는 게 투자 대비 효율 측면에서 더 낫다는 경험칙이 배어든 게 아니었을까.

나이가 중년으로 접어들면 저녁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새로 사귀려고 허둥대기 보다 지금 있는 친구들과 가족에 더 밀착하라는 신호가 내 몸 속 어딘가에서 땡 하고 울린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베스트프렌드(베프)가 만들어지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우선 거리상으로 가까운 데 위치해야 하고, 의도되지 않았으나 반복적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경계감을 낮추고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주변 환경이 필요하다. 대학친구들과 우정을 쌓아 올리던 경험을 돌이켜 보라. 학교 캠퍼스와 주변 하숙촌 밀집 지역을 오가면서 낯선 타향 친구들과 뒹굴면서 살고, 또 강의실, 동아리방, 과방, 도서관, 술집 등에서 만나 까불고 웃고 떠들던 그 시절들 말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그럴싸하게 보이지 않는가.

반면 학창 시절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는 그러나 베프로 진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 요건이 따른다. 우선 거리상으로 가까운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다. 사람들은 계속 회사나 부서를 옮긴다. 서로 헤어지자 말자고 다짐을 해도 친한 친구가 되기 전에 안 보면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회사에서 위치가 올라가면서 자연히 경쟁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동료들 사이에서 멀어진다. 직장 동료 사이의 우정이런 것은 어쩌면 거래적 관계가 아닐까. 목적을 가진 의도된 만남이 그 목적이 끝나게 되면 자연히 만남의 이유도 사라진다. 게다가 서로 소득 수준이 달라지고 직장 내 지위가 바뀌어도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다.

아이들 친구 부모와 사귀고 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숙제가 된다.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남편은 물론 상대방 배우자의 기분까지 맞춰야 한다. 동시에 금방 상대방과의 놀이에 싫증 내는 아이들까지 친다면 최소 6명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해 나가야 확 불타 오른 우정이 계속 지속될 수 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가 베프가 쉽게 되기 힘든 까닭이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친구를 만나도 노력하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베프가 될 수 있다. 단서는 필요하다. 잘 짜여진 전략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볼 때 우정은 협력적 동맹 관계다. 협력적 동맹 관계를 설명하는 기본적인 개념은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피의자가 2명 있다고 생각해보자. 둘 중에 한 명만 자백을 하면 한 명은 무죄 방면, 다른 한 명은 무기징역이다. 둘 다 자백을 하면 징역 3년이다. 둘 다 부인을 하면 징역 3개월이다. 둘 모두의 입장에서 보면 우정을 믿고 끝까지 잡아 떼는 게 서로에겐 이득이다. 하지만 다른 피의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가 자백을 하든 부인을 하든 내 입장에선 자백을 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한마디로 배신이 이득인 셈이다. 배신이 최선의 전략인 상황에서 협력적 동맹, 다시 말해 우정은 어떻게 오랜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인류학자들의 최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존중에 바탕을 둔 이타주의가 우리 유전자에 체화된 연유를 이해한다면 모두가 다 이기적일 필요가 없는 더 나은 세상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불현듯 찾아온 대학 시절 베스트프렌드, 아니 첫사랑을 다룬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주인공 서연(한가인 분)과 승민(엄태웅)이 제주도 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나온다.

<30대 이후에 다시 만난 베스트프렌드, 첫사랑과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영화. 건축학개론(2012)>
서연 : "매운탕... 이름 이상하지 않니? 아니 알이 들어가면 알탕이고 갈비가 들어가면 갈비탕인데 얜 그냥 매운탕. 탕인데 다. 그게 끝이잖아. 안에 뭐가 들어가도 그냥 다 매운탕.. 맘에 안 들어.."

승민 : "그럼 그냥 지리로 시킬 거 그랬나?"

서연 : "그냥...나 사는 게 매운탕 같아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고 그냥 맵기만 하네"

사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매운탕처럼 그냥 맵기만 할 때 어깨를 다독거려줄 수 있는 학창 시절 옛 베프를 찾아 소주 한 잔 하는 게 어떨까.

[이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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