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이근우 기자의 경제학으로 세상읽기] 대처 전 총리는 왜 말론 브란도를 흉내냈을까

ngo2002 2013. 6. 28. 15:34

[이근우 기자의 경제학으로 세상읽기] 대처 전 총리는 왜 말론 브란도를 흉내냈을까
기사입력 2013.05.20 11:04:56

"앞으로 모자는 절대 안 쓰는 게 좋겠습니다. 위엄 있고 강해 보이게 머리를 손봐야 해요. 그리고 목소리가 톤이 너무 높고 권위가 없어요. 앵앵거린다고 할까. 여자가 하이톤으로 말을 쏟아내거나 떽떽거리는 거 사람들은 질색해요."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2011년)`를 보면 최초의 영국 여성 총리를 꿈꾸는 대처에게 핵심 참모들이 비디오 분석을 통해 여성 취향의 외모와 목소리를 바꿀 것을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단 여성 취향이 이쁜 모자를 쓰는 외양은 무조건 버려라. 그리고 뱃 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내는 발성법을 익혀라.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2012)">
"사람은 의미 있게 살아야 해요. 요리, 청소하고 애 키우는 일 외에 더 의미 있는 뭔가를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정말 사랑하지만 딴 여자들처럼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 그늘에서 조용히 화초처럼 살아갈 순 없어요. 주방에 틀어박혀 설거지나 하며 살 순 없다고요."

야채가게의 딸로 태어났으나 성공한 사업가와 정략 결혼하고 또 교원, 청소부 등 강성 노조를 지지하는 반대 세력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철칙을 밀어붙이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였던 대처는 영국 보수당을 대변하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하원에 진출하고 차관, 노동부 장관, 교육부 장관까지 승승장구했지만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영국 정치의 우두머리인 총리가 되기엔.

그러던 어느 날 대처는 방향을 선회한다. 거듭된 발성 연습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바꾸어낸다. 앵앵거리고, 위엄 없고, 듣기 거북했던 목소리를 낮게 깔리는 저음의 베이스 톤으로. 하지만 강하고 단호하게. 파워풀한 목소리로. 마가렛 대처는 동료 정치인들을 제압하고 그들이 명령에 따르도록 하며 또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낸다. 결국 `철의 여인`이란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행사하면서 1979년 보수당 당수와 총리직에 차례로 오르면서 십여 년 동안 세계 정치 무대의 주역으로 화려한 활약을 펼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세련된 잡지 편집장으로 열연했던 메릴 스트립은 영화 철의 여인에서 마가렛 대처 전 총리의 이같은 목소리 변신 과정을 완벽하게 재연하면서 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따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리더의 본연의 실력, 됨됨이와는 상관없이 단지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무시에서 복종의 자세로 돌변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의 핏줄 속에 목소리로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경계하도록 하는 진화의 코드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집단생활을 하는 영장류들의 세계에선 우두머리 침팬지를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두목 침팬지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 다른 침팬지들은 복종의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두목이 몸을 쭉 뻗고 털을 곧추세워 몸집을 커 보이게 하는 동안 나머지 수컷들은 두목을 올려다 보는 자세로 몸을 낮추고 헐떡이며 짧게 꿀꿀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복종의 의사 표시를 한다.

<침팬지들은 우두머리 침팬지의 등을 긁어주는 등 여러 가지 행위 표현을 통해 우두머리에 대한 복종 의사를 표한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 내에서도 지배 서열과 계급의 존재는 피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우리 모두 부인하고 싶지만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 3명씩으로 이뤄진 59개의 집단을 만들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전체 집단 가운데 50%는 1분 안에, 또 나머지 50%는 5분 안에 분명한 서열이 나타났다. 더 놀라운 것은 침팬지 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집단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을 그저 보기만 하고 말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아도 새로운 집단 내에서 자신의 장래 지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페킹 오더(pecking order: 먹이를 쪼는 순서)는 암탉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 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철칙이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했던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일부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리더를 인정해야 살아남는다. 우두머리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치고 올라갈 절호의 기회를 노리는 게 아니라 무턱대고 힘만 믿고 리더에 덤비는 자들은 살아 남지 못한다. 현실을 인정해야 다음 수가 나오는 법이다. 그렇다면 동물이나 인간이나 할 것 없이 누가 리더인지 알아채는 능력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핏줄을 타고 체화되고 전해 내려져온 것일 수도 있다.

텍사스오스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버스는 그의 저서 `진화심리학`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지배적인 개인들의 신체적 특성을 뚜렷하게 구분해 냈다. `저음의 큰 목소리로 말한다; 미소를 많이 짓지 않는다; 말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주는 등 많은 곳을 본다 ;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청중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양 손은 허리춤에 갖다 대고 가슴을 앞으로 쑥 내민다 ; 다른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는 제스처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남자가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배성을 추론한다고. 다시 말해 옥타브 낮은 남성적인 목소리로 리더가 강하게 얘기할 때 다른 무리들은 더 복종하도록 하는 쪽으로 인간의 진화가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마피아 영화 대부(1972)>
영화 대부에서 돈 꼴레오네 역을 맡은 말론 브란도가 둔탁한 저음으로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 하지(I will make an offer he can`t refuse.)"라고 내뱉는 장면을 연상해봐라. 소름이 오싹 돋지 않는가.

반면 지위가 낮거나 복종적인 개인의 행동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몸을 꼿꼿이 세우는 대신에 구부정한 경우가 많고; 미소를 많이 짓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손하게 고개를 자주 끄덕이고 ; 지위가 높은 사람보다 말을 적게 하고 ;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할 때 끊지 않고 ; 집단 전체보다는 집단 내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들먹인다.`고...

이처럼 능력, 교육수준, 노력 등을 감안한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 목소리, 키, 피부색깔, 성별 등 비합리적인 요인에 의해 오히려 사회적으로 주요한 자원 배분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이른바 바이오경제학(biological economics)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듀크대학교 경영학과 윌리엄 메이유(William J. Mayew) 교수는 올해 발표한 "남자 CEO(최고경영자)의 목소리와 노동시장에서의 성공`이란 논문에서 미국 상장기업 CEO 792명의 남성 목소리의 깊이와 연봉과의 관계를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뱃속에서 나오는 깊은 목소리를 가진 CEO일수록 큰 기업을 운용하고 그래서 더 돈을 많이 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목소리 톤이 22.1헤르쯔 낮아질 때마다 운용하는 기업의 매출액 규모가 4억4000만 달러씩 커지며, 그에 따라 연봉 규모도 18만700달러씩 증가한다. 또 최고경영자로서의 재직기간도 151일 더 길어진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키도 사회적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키가 큰 남자가 취업, 승진, 연봉 등에서 더 유리하다. 20세기에 벌어진 미국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두 후보자 가운데 키가 더 큰 사람이 승리한 비율은 83%에 달했다.

이만하면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인기 상종가의 비정규직 미스 김 역할을 열연하고 있는 김혜수가 어떻게 위계질서 속의 남성들을 제압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좀 가지 않는가. "엣지있게"를 연발하면서 드라마 `스타일`에서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미를 한껏 풍겼던 그였다. 그런 그가 남자처럼 큰 키의 바지 정장에 흰 셔츠를 갖춰 입고 절도 있는 중성적인 목소리를 내뱉을 때마다 직장 동료와 상사들은 연신 절절 매는 그 풍경들 말이다.

[이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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