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10) 외국계 기업도 ‘밀어내기’

ngo2002 2013. 6. 12. 11:22

[갑의 횡포 을의 눈물]본사서 계약 임박 통보, 제품 선주문… 계약 불발 땐 ‘악성 재고’

ㆍ(10) 외국계 기업도 ‘밀어내기’

소규모 소프트웨어 판매 대리점을 운영하던 김모씨(47)는 2008년 유명 외국계 대기업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다국적 산업용 소프트웨어 제조회사인 ‘지멘스 인더스트리소프트웨어’가 자사가 개발한 설계 전문 프로그램의 독점 판매권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프로그램 판매가격이 개당 2000만원을 넘는 제품도 있어 다른 프로그램을 파는 것보다도 수익성이 높아보였다. 지멘스는 그에게 20~25%의 마진율을 약속했다. 대기업 한 곳과 판매계약을 맺기만 하면 향후 유지·보수 수익까지 얻을 수 있어 지속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금싸라기’ 사업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씨의 기대는 이듬해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고객과의 영업권한이 그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기업 판매 영업은 지멘스 측 영업사원들이 도맡았다. 지멘스 영업사원이 기업과의 판매계약을 성사시키면 김씨는 지멘스로부터 계약된 만큼의 프로그램 물량을 사와 그 기업에 되파는 것이다. 영업은 지멘스가 하고, 김씨는 대리 판매를 하는 식이다. 대신에 김씨 회사 소속 기술·영업인력을 지멘스로 파견보냈다.

국내 대리점들을 상대로 ‘밀어내기’ 영업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다국적 산업용 소프트웨어 제조회사인 지멘스 인더스트리소프트웨어의 서울 강남구 본사 빌딩.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지멘스 요구대로 다 샀는데 물량 부담 대리점에 떠넘겨
본사에 인력지원비 ‘2중고’… 이건 밀어내기 넘어 사기”


그러던 중 2009년 지멘스 영업사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큰 건입니다. ㄱ사와 3억원짜리 계약이 성사될 것 같습니다.” 김씨는 뛸 듯이 기뻤다. 그는 “3억원 상당의 계약이라면 내게 최소 6000만원 정도의 마진이 떨어지는 ‘대박’ 계약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지멘스로부터 프로그램 3억원어치를 사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계약이 성사됐다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결국 계약 체결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김씨는 허탈했지만 “이번만 기회겠느냐 싶었다”고 회상했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2010년 ㄴ사 계약 건이 나왔다. 영업사원이 또다시 “준비하라”고 지침을 줬다. 자그마치 500억원어치 계약 건이라고 했다. 김씨는 떨렸다. 그는 아예 ㄴ사가 있는 경기 수원시로 사무실까지 옮겼다. 기술지원을 담당할 인력도 기존 10명에서 19명을 더 채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였다. 대리점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10억원대가 넘는 재고가 남았다. 다른 고객 기업을 찾아 되팔고 싶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다른 제품과 달리 라이선스권(특정 고객에게 대한 공급 허가권)이 있는 제품이라 한번 공급된 제품은 다른 곳에 팔 수 없다는 것이 지멘스 측의 규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결국 지멘스는 나에게 팔았지만, 정작 나는 어디에도 팔지 못하는 악성재고만 떠안게 됐음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지멘스 영업사원들은 영업 권한을 독점했지만 고객 기업을 접대할 때는 김씨 측이 동행할 것을 원했다. 김씨 대리점 소속 영업사원들은 그때마다 지멘스 영업사원들의 ‘지갑’이 됐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밥값, 술값 지불을 담당한 것이다. 김씨는 “고객 기업의 세미나 행사에 쓴다면서 항공권 비용까지 대준 적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이 같은 지멘스의 ‘밀어내기’가 영업사원들이 본사에서 내려오는 실적 목표를 채우기 위해 총판대리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계약 체결에 성공했을 때는 “다음번 계약에서 더 잘 챙겨드릴 테니, 이번 마진은 그냥 10% 정도만 챙기시죠”라는 제안도 했다. 김씨는 “대리점 마진을 깎아 자신들의 실적 인센티브로 바꾸려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본사의 밀어내기로 악성재고가 쌓이면서 수억원대의 은행 빚을 쓰게 돼 지난해 대리점 재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멘스가 언젠가 재고를 처리해주겠지’라는 믿음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김씨는 지난해 4월부터 강하게 항의를 했지만 지멘스 측은 “큰 거 한 건이면 다 만회되니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해 6월 김씨는 파견 보낸 기술인력들을 불러들였다. 그는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다. 재고도 문제지만, 파견 보낸 영업·기술 인력들의 월급도 내가 다 지불하고 있었는데 월급 줄 돈도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멘스 측은 10월에 독점 판매권을 풀어 다른 대리점들도 해당 프로그램을 모두 팔 수 있게 했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협의도 없었다”고 했다.

지멘스 측은 김씨가 내지 못한 다른 소프트웨어 판매 미수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금액만 20억여원이었다. 악성 재고로 재정난을 겪다 보니 갚지 못한 금액이다. 수차례 협상을 했지만 결렬됐다.

김씨가 돈이 없어 미수금을 제때 내지 못하자 지멘스 측은 지난 2월 미수금 반환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김씨의 대리점 계좌는 가압류를 당하게 됐다.

김씨는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없게 됐다. 그는 이제 홀로 남아 법원에 맞소송을 하겠다며 준비 중이다. 다른 총판대리점주들에게 남아있던 직원 10여명의 취업을 부탁했다.

김씨는 2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밀어내기를 넘어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사가 요구한 대로 물량을 샀지만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고, 인력지원비까지 이중고에 시달린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대리점들의 고혈을 뽑는 이런 체계는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지멘스 관계자는 김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 문제제기가 있어 확인한 결과 한두 건 빼고는 모두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파악돼 악성재고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된 한두 건의 계약은 현재까지는 체결상의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정확한 것은 더 확인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멘스는 영업을 본사가 주도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영업 때 대리점 측에서 술자리 비용을 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갑의 횡포 을의 눈물]지멘스 등 외국계 대기업도 ‘밀어내기’… 대리점주 ‘고통’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일부 외국계 대기업들도 산하 대리점들을 상대로 ‘밀어내기’ 등 ‘갑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국적 산업용 소프트웨어 제조회사인 지멘스 인더스트리소프트웨어 총판대리점을 운영하는 김모씨(47)는 27일 “지멘스 측이 총판대리점들을 상대로 ‘밀어내기’식 영업을 해 수억원대의 악성 재고가 쌓였다”고 말했다.

지멘스는 제품별로 특정 총판대리점에 독점 판매권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판매단가가 높은 대기업에 대한 영업은 지멘스 본사만 할 수 있다. 대리점은 지멘스로부터 소프트웨어를 사간 뒤 지멘스가 영업을 통해 확보한 고객(기업)과 계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멘스가 고객과의 계약이 성사되기 전에 대리점에 “제품을 먼저 사두라”고 하는 점과 구입 후 반품이 안된다는 점이다. 영업이 불발되면 대리점주로선 미리 사뒀던 제품이 재고로 남게 된다. 지멘스는 고객 기업에 대한 접대비 등 영업비용도 대리점이 일부 내게 했다.

김씨는 지멘스의 이러한 영업방식 때문에 재고만 6억7000만원, 금융이자 비용까지 하면 8억여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고 했다. 다른 총판대리점을 운영하는 ㄱ씨도 “재고만 20억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김씨는 “지멘스의 잘못으로 재고를 떠안았는데도 지멘스는 다른 제품의 미수금을 내지 않는다고 미수금 반환소송을 내, 회사 계좌까지 차압했다”고 말했다.

지멘스 관계자는 “한두 건 빼고는 모두 계약이 성사돼 악성 재고가 있을 수 없다”며 “일부 대리점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계약과정상 문제가 있었는지는 확인해 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업비용을 대리점에 부담시켰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일부 외국계 기업의 횡포는 지난해에도 불거졌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당시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인 IBM의 소프트웨어 국내 판매를 대행하던 중소기업 케이에스테크는 IBM의 밀어내기 행위로 47억원어치의 재고를 안게 됐다. 금융 이자까지 더하면 모두 63억원의 비용을 떠안고 도산 위기에까지 처한 사실이 알려졌다. 다국적 프린터 업체인 한국엡손은 1998년부터 한 중소기업과 맺어왔던 총판 계약을 해당 업체와의 합의 없이 지난해 다른 대리점에 넘겨 문제가 됐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갑의 횡포 을의 눈물]편의점·대리점 불공정 거래도 여전히 계속

김모씨는 2011년 보증금 5000만원을 내고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 1층에 카페를 열었다. 김씨는 계약 당시 마트를 찾는 소비자뿐 아니라 대로변에 위치한 입점 특성상 마트 밖에서 카페를 찾는 손님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형마트 측도 건물 밖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만들어 고객을 확보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개점한 지 한 달이 넘도록 회사 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자체의 허가를 받기 어렵고 인테리어 비용도 예상보다 많이 들어간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회사 측의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장사를 접겠다고 얘기했지만 회사 측은 계약기간 2년을 지켜야 한다며 권리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후 새 점주를 찾은 회사 측은 지난해 8월 김씨에게 보증금 5000만원 중 위약금 3000만원을 제외한 2000만원을 돌려주며 카페 운영에서 손을 떼라고 통보했다.

김씨는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은 대형마트 측인데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수천만원의 손해를 봤다”며 “회사 측은 매달 입점주로부터 임대료만 받으면 그만이며 입점주가 죽어나가는 것은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게에서 쫓겨난 김씨는 현재 마트 측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중소 자영업자들이 9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국민대회 전국 을들의 만민공동회’에 참석해 손팻말을 든 채 연단에 선 발제자의 연설을 듣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남양유업의 대리점 밀어내기로 불거진 ‘갑을’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표적인 불공정거래 행위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손톱 밑 가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다 되도록 뚜렷한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편의점이나 가맹점주가 겪고 있는 피해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13일 개소한 진보정의당 불공정거래센터에는 하루 평균 4건 이상의 피해신고가 들어와 한 달 만에 총 78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됐다.

충남 지역에서 2010년부터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1년 만에 반경 200m도 안되는 지역에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이 들어섰다”며 “본사에 항의했으나 ‘자사 브랜드가 들어서지 않으면 어차피 다른 편의점이 개점할 것’이라는 황당한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운영이 어려워져 편의점을 정리하려고 해도 일정 기간 운영해야 한다는 계약 내용과 이를 어겼을 때 내야 하는 위약금 때문에 폐점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베이트를 주지 않자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한 가맹점도 있다. 2004년부터 부산에서 우유대리점을 운영하는 류모씨는 2011년 본사로부터 인근 대학교 매점과의 신규 거래 유치금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를 안 지역담당자가 류씨에게 일정액의 리베이트를 요구했고 이에 불응한 지 몇 달 만에 본사로부터 대리점 해약 통보를 받았다. 류씨는 “이익을 챙기지 못한 지역담당자가 본사에 좋지 않은 얘기를 해 계약 해지를 당하게 한 것 같다”며 “이후 지역담당자를 찾아가 사과하고 리베이트도 시행한다고 말하자 문제가 해결됐다”며 씁쓸해했다.

최현 진보정의당 중소상인자영업자위원회 국장은 “현재 대리점주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없다”며 “일명 ‘남양유업 방지법’이라 불리는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대리점주의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3-06-10 22:03:03수정 : 2013-06-11 00:01:12


 

 

입력 : 2013-05-28 06:00:09수정 : 2013-05-28 06:31:38



 

입력 : 2013-05-28 05:37:24수정 : 2013-05-28 05: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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