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6) 유통·식품업계주방 용품을 생산하고 있는 중소기업 ㄱ사는 최근 한 홈쇼핑업체를 통해 1회 방송을 하면서 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짧은 시간에 적잖은 매출을 올렸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순간이었다. 공식 계약 판매수수료와 추가 유통 비용으로 홈쇼핑에 지불해야 할 금액이 7000만원이나 됐다.
지출 항목을 따져보니 홈쇼핑업체와 공식 계약하면서 내야 할 판매수수료가 4340만원으로 매출액의 48% 정도였다. 계약 당시 판매수수료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홈쇼핑 채널을 통해야 짧은 시간에 많은 물건을 팔 수 있고 인지도도 올릴 수 있다는 다른 중소업체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것도 사실이다.
비싼 판매수수료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추가로 들어간 비용이 너무 많았다.
새누리당 전·현 의원들로 구성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마련한 ‘대기업-영업점 불공정거래 근절 정책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불공정거래 근절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판매값까지 “비싸다” 통제… 모델료 납품업체서 부담도
커피점, 비싼 원두 강매에 판촉용품까지 밀어내기고객들이 이용하는 전화자동응답(ARS) 비용, 세트제작비, 영상제작비, 배송비 등까지 모두 부담해야 했다. ARS 비용으로 735만원, 무이자할부수수료 90만원, 세트제작비 70만원, 영상제작비 1500만원, 배송비 270만원 등으로 2665만원을 더 내야 했다. 결국 ㄱ사가 홈쇼핑을 통해 9000만원어치를 팔고 남긴 돈은 2000만원도 채 안됐다. 납품 업체가 100원어치를 팔고 손에 쥔 돈은 20원 남짓한 셈이다.
홈쇼핑에 남성 의류를 납품하고 있는 ㄴ사는 방송 직전에 황당한 일을 당했다. 방송 제작 실권을 갖고 있는 프로듀서가 물품 가격에 제동을 건 것이다.
PD의 “이 물건 1만원으로는 판매가 안된다. 값을 더 낮추지 않으면 방송 못한다”는 한마디에 ㄴ사는 즉석에서 20%나 가격을 할인해야 했다. ㄴ사 관계자는 “납품하는 입장에서 보면 홈쇼핑업체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홈쇼핑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모델료나 게스트 초청비와 같은 항목은 홈쇼핑 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납품 업체가 해당 에이전트회사와 거래토록 함으로써 겉으로 드러난 거래 명세에는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대량의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홈쇼핑 영업 비밀은 제조업체 ‘쥐어짜기’에 있었던 셈이다.
식품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알려진 밀어내기(물품 강매)는 커피전문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ㅂ씨는 롯데 계열사인 앤젤리너스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5년간 해오던 개인 카페를 접고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문을 두드린 것이다. 대기업 특유의 영업노하우와 안정된 물류체계 등의 지원을 받으면 어렵잖게 경영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문을 연 지 몇 달 뒤 본사로부터 판촉물품이라는 명목으로 화장품 100상자가 내려왔다. 밀어내기였다. 물품 대금은 다음달 곧바로 자신의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적어도 2개월에 한 번씩, 성수기 때는 1개월에 한 번씩 밀어내기 물품이 내려왔다. 물품도 선크림, 립스틱 등 화장품 외에 비누, 치약, 필기구를 담는 파우치 등으로 다양했다. ㅂ씨는 “카페에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팔다 팔다 다 못 팔면 손님들이나 친지들한테 줘 버리고 만다”고 말했다. 그가 가게 문을 연 뒤 지금까지 밀어내기 물품 대금으로 빠져나간 돈만 해도 1000만원에 이른다.
ㅂ씨는 “절대 안 받겠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주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그 때문에 재계약이 안될까 싶어 어쩔 수 없이 받는다”면서 “그 때문에 사실상 강제 할당이나 다름없다”고 털어놨다.
본사의 횡포는 이것만이 아니다. 각종 판촉행사나 이벤트를 실시하면서도 영업점의 의견과 상관없이 본사가 일방적으로 정한다. 포털사이트 등에 ‘아메리카노 한 달간 1000원’이라는 식으로 본사가 광고는 하지만 정작 그 부담은 개별 영업점이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점주의 고민은 이뿐이 아니다. 영업한 지 5년이 되면 당사자가 원하지 않아도 강제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매달 5%의 로열티를 거둬가는데도 냉장고, 커피머신 등 각종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처리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 것도 불만 사항이다. 이 밖에 본사로부터 공급받는 원두 등 모든 원·부자재 가격이 시중가보다 비싸도 본사에 불평 한마디 할 수 없다. 역시 재계약 때문이다.
ㅂ씨는 “본사가 가맹점의 이익을 생각해주기는커녕 점주들로부터 돈 뜯어갈 궁리만 하는 것 같다”면서 “점주 입장에서는 그저 본사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병태 선임기자 cbta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