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ㆍ(7) 전통주류 업계

ngo2002 2013. 6. 12. 11:19

갑의 횡포 을의 눈물]자기네 술만 팔도록 전속 계약… 밀어내기·반품거부 속수무책

ㆍ(7) 전통주류 업계

전통주 생산업체인 배상면주가 대리점주 자살 사건이 불거지면서 영세 주류업계 대리점주들도 남양유업 같은 식품업계 대리점주들처럼 제품 밀어내기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에서 주류는 주류유통 면허 소지자만 시장에 유통할 수 있다. 면허는 두 가지로 소주·맥주·와인 등을 유통할 수 있는 종합주류면허와 막걸리·전통주 등을 취급할 수 있는 특정주류면허가 있다. 이 주류면허 소지자들에 의해 대형마트 등 최종 소비처로 공급되는 체계이다.

산사춘 등 전통주 생산업체인 배상면주가는 특정주류면허 소지자들과 대리점 계약을 맺고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 종합주류 도매상이 오비, 하이트맥주 등 여러 주류업체의 술을 동시에 취급하는 것과는 다른 구조다.

배상면주가의 대리점 밀어내기도 이 같은 전속 대리점 계약형태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 지역거점제 없어져 대리점주 간 과당경쟁 불가피
급격한 시장 위축… 업체도 밀어내기 유혹 못 이겨
자살 이씨 창고엔 유통기한 넘긴 술 수천만원어치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15일 “맥주 등 주류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종합주류도매상에게 ‘우리 술을 더 받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양유업 같은 밀어내기식 공급은 전혀 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배상면주가의 대리점은 대부분 배상면주가 술만 취급하는 형태로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공급자가 절대적으로 갑의 입장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잘 팔리는 제품에 끼워 밀어내기를 하거나 반품을 해주지 않는 행위를 대리점주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전통주 생산 업체인 국순당 대리점도 이와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상면주가는 전통주 업체 국순당을 창업한 배상면 회장의 삼남인 배영호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자연스레 경영이나 제품 유통 행태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4일 자살한 이모씨는 올 초부터 4월까지 매달 평균 1200만원어치의 전통주를 배상면주가로부터 납품받아왔다. 이씨는 여기에 40%의 대리점 유통마진을 붙여 음식점이나 주점에 다시 납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무실 임대료와 경리사원 인건비, 차량유지비, 각종 공과금 등을 빼면 실제 이씨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월 200만원 정도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2004년 전통주 시장이 한창 좋았을 때 본사와 거래한 금액이 7000만여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몇년 새 매출이 20%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배상면주가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이씨가 유통기한이 지난 주류들을 반품해달라고 본사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반품을 해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씨 창고 안에 유통기한이 지난 술이 2000만~3000만원어치쯤 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국순당과 배상면주가 같은 전통주 업체 대리점의 지역거점제를 해지한 조치도 이씨 같은 영세 대리점 간 과당 경쟁을 초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역거점제가 영세 대리점주에게는 일종의 영업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 제도가 없어지면서 대리점주끼리 과당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전통주 시장의 급격한 위축도 공급자 입장에서는 밀어내기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배상면주가의 경우 전통주 시장이 정점을 찍을 때 연간 350억~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대형 주류업체들이 맥주와 일본 사케를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매출이 15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배상면주가는 2008년부터 도매상(또는 대리점)이 물품 대금을 선입금하면 생산자가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밀어내기 행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2010년의 경우는 쌀 막걸리를 출시하면서 수요 예측을 한때 잘못해 대리점 입장에서 밀어내기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은 밀어내기 관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최병태 선임기자 cbtae@kyunghyang.com>


 

입력 : 2013-05-15 22:23:03수정 : 2013-05-15 22: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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