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횡포 을의 눈물]편의점 출혈경쟁에 점포 바꾸자 ‘보복 출점’… 10여개 난립
ㆍ(4) 편의점 과잉 출점
지난 1일 자신의 편의점이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 모텔촌을 지나던 주성태씨(41)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온몸의 힘이 빠졌다. 자신의 편의점과 40~50m 정도 떨어진 상가에 ‘이마트 에브리데이 입점 확정’이라고 적힌 임시 간판이 달렸기 때문이다. 상가 옆 전봇대에는 ‘이마트 에브리데이 5월 중 오픈 함께할 직원을 모집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도 휘날렸다. 신세계 계열의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들어올 자리는 356㎡(약 108평) 규모로 주씨 편의점보다 몇 배 더 크다. 편의점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배달도 할 예정이었다. 주씨의 편의점 반경 250m 내에는 이미 편의점과 일반 슈퍼 등이 10개 이상 밀집돼 있다.
주씨는 다음날 구청에 항의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들어올 상가에서 인근 재래시장인 까치산시장까지의 거리는 300m가 되지 않는다. 주씨는 구청이 골목상권에 기업형 슈퍼마켓을 허가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대기업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허가를 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주씨는 “사업자등록증상 개인사업자일 뿐 실제로는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주씨가 항의한 지 몇 시간 뒤에 이마트 에브리데이 입점을 알리는 플래카드에 개인사업자 상호가 작게 추가됐다. 주씨는 “17년째 편의점을 하며 근접출점과 본사와의 갈등 등 갖은 어려움을 견뎌왔는데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면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GS25, 상권 보호하기는커녕 자사 브랜드 줄줄이 개점
본사선 “보복 출점 아닌 기존 고객에 대한 배려” 해명
간판 바꿔 새출발했지만 대기업마트 진출 소식에 한숨
주씨는 편의점과 반평생을 함께했다. 1994년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일본계 편의점 로손 본사가 그를 채용한 것이 시작이다. 주씨는 로손 본사에서 직영점 운영과 가맹점 관리를 하다 1997년 외환위기 후 퇴사했다. 그간 쌓은 경험과 자금으로 수원에 패밀리마트(현 CU) 편의점을 창업했다. 주씨 편의점은 버스터미널 근처여서 손님이 많았다.
2001년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주씨 편의점 매출은 급격하게 줄었다. 주씨는 서울 화곡동에 GS25 편의점을 다시 냈다. 근처에 모텔이 많아 장사는 잘됐다. 본사와의 관계도 좋았다.
편의점이 주씨를 힘들게 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4월부터다. 본사가 주씨 편의점 아래쪽 50~60m 정도 거리에 편의점을 열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주씨는 반발했지만 본사는 “다른 편의점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같은 브랜드가 낫다”며 강행했다.
며칠 뒤 주씨는 인근 부동산에서 GS25가 또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본사의 사전통보도 없었다. 주씨의 편의점으로부터 6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본사에 “또다시 주변에 열면 내 가게를 폐점하겠다”고 말했지만 본사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해 11월 예정대로 GS25가 또 들어섰다. 본사가 권리금 등을 감당하기 때문에 출혈 경쟁에도 점주가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보는 위탁가맹점이었다. 주씨는 “폐점을 하면 권리금과 계약해지금 등 2억원이 날아가기 때문에 본사는 내가 계약해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강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본사를 제소했다. 8개월간 본사와의 긴 싸움을 한 뒤 지난해 7월 주씨가 공정위에서 들은 답변은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라”였다. 본사와 공정위 모두에 분노를 느낀 주씨는 평생을 모아온 재산인 2억3000여만원을 손해보며 GS와 계약해지하고 다른 편의점 CU와 신규계약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GS25 본사가 주씨의 편의점 바로 앞 건물 5m 거리에 편의점을 출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주씨가 입주한 건물의 건물주가 해당 건물까지 소유하고 있어 그의 도움으로 출점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주씨 편의점에서 25m 떨어진 다른 건물에 GS25가 또 들어섰다. 주씨는 “인근 부동산 등에서 ‘GS 본사가 33㎡(약 10평)의 점포를 시세보다 훨씬 높은 2억원 이상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다”며 “GS의 ‘보복 출점’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3개의 GS25가 주씨의 편의점을 둘러쌌다. 주씨는 물건을 다양하게 갖추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담배 매출만 40% 이상 떨어졌다.
지금 이런 주씨를 기다리는 것이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이다.
주씨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와 배달을 시작하면 나뿐 아니라 인근 소규모 상가들이 모두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CU 본사에 도움을 청해봤지만 ‘공정위에 얘기해 수습하라’는 답변만 들었다”며 “공정위의 처분을 기다리기 전에 내가 망할 것이고, 결과도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GS 본사 관계자는 “앞서 출점한 2개의 점포에 대해서는 이미 공정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주씨 점포와 새로 출점한 GS25 사이에는 미니스톱 등 다른 편의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주씨 점포 주변에 문을 연 점포는 기존 GS25 고객들의 이용을 위한 배려”라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지난 1일 자신의 편의점이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 모텔촌을 지나던 주성태씨(41)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온몸의 힘이 빠졌다. 자신의 편의점과 40~50m 정도 떨어진 상가에 ‘이마트 에브리데이 입점 확정’이라고 적힌 임시 간판이 달렸기 때문이다. 상가 옆 전봇대에는 ‘이마트 에브리데이 5월 중 오픈 함께할 직원을 모집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도 휘날렸다. 신세계 계열의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들어올 자리는 356㎡(약 108평) 규모로 주씨 편의점보다 몇 배 더 크다. 편의점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배달도 할 예정이었다. 주씨의 편의점 반경 250m 내에는 이미 편의점과 일반 슈퍼 등이 10개 이상 밀집돼 있다.
주씨는 다음날 구청에 항의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들어올 상가에서 인근 재래시장인 까치산시장까지의 거리는 300m가 되지 않는다. 주씨는 구청이 골목상권에 기업형 슈퍼마켓을 허가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대기업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허가를 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주씨는 “사업자등록증상 개인사업자일 뿐 실제로는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주씨가 항의한 지 몇 시간 뒤에 이마트 에브리데이 입점을 알리는 플래카드에 개인사업자 상호가 작게 추가됐다. 주씨는 “17년째 편의점을 하며 근접출점과 본사와의 갈등 등 갖은 어려움을 견뎌왔는데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면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집 건너 마트·편의점 근접 출점한 편의점들이 다닥다닥 몰려 과열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화곡동의 한 모텔촌에 9일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의 입점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GS25, 상권 보호하기는커녕 자사 브랜드 줄줄이 개점
본사선 “보복 출점 아닌 기존 고객에 대한 배려” 해명
간판 바꿔 새출발했지만 대기업마트 진출 소식에 한숨
주씨는 편의점과 반평생을 함께했다. 1994년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일본계 편의점 로손 본사가 그를 채용한 것이 시작이다. 주씨는 로손 본사에서 직영점 운영과 가맹점 관리를 하다 1997년 외환위기 후 퇴사했다. 그간 쌓은 경험과 자금으로 수원에 패밀리마트(현 CU) 편의점을 창업했다. 주씨 편의점은 버스터미널 근처여서 손님이 많았다.
2001년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주씨 편의점 매출은 급격하게 줄었다. 주씨는 서울 화곡동에 GS25 편의점을 다시 냈다. 근처에 모텔이 많아 장사는 잘됐다. 본사와의 관계도 좋았다.
편의점이 주씨를 힘들게 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4월부터다. 본사가 주씨 편의점 아래쪽 50~60m 정도 거리에 편의점을 열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주씨는 반발했지만 본사는 “다른 편의점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같은 브랜드가 낫다”며 강행했다.
며칠 뒤 주씨는 인근 부동산에서 GS25가 또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본사의 사전통보도 없었다. 주씨의 편의점으로부터 6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본사에 “또다시 주변에 열면 내 가게를 폐점하겠다”고 말했지만 본사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해 11월 예정대로 GS25가 또 들어섰다. 본사가 권리금 등을 감당하기 때문에 출혈 경쟁에도 점주가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보는 위탁가맹점이었다. 주씨는 “폐점을 하면 권리금과 계약해지금 등 2억원이 날아가기 때문에 본사는 내가 계약해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강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본사를 제소했다. 8개월간 본사와의 긴 싸움을 한 뒤 지난해 7월 주씨가 공정위에서 들은 답변은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라”였다. 본사와 공정위 모두에 분노를 느낀 주씨는 평생을 모아온 재산인 2억3000여만원을 손해보며 GS와 계약해지하고 다른 편의점 CU와 신규계약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GS25 본사가 주씨의 편의점 바로 앞 건물 5m 거리에 편의점을 출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주씨가 입주한 건물의 건물주가 해당 건물까지 소유하고 있어 그의 도움으로 출점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주씨 편의점에서 25m 떨어진 다른 건물에 GS25가 또 들어섰다. 주씨는 “인근 부동산 등에서 ‘GS 본사가 33㎡(약 10평)의 점포를 시세보다 훨씬 높은 2억원 이상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다”며 “GS의 ‘보복 출점’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3개의 GS25가 주씨의 편의점을 둘러쌌다. 주씨는 물건을 다양하게 갖추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담배 매출만 40% 이상 떨어졌다.
지금 이런 주씨를 기다리는 것이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이다.
주씨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와 배달을 시작하면 나뿐 아니라 인근 소규모 상가들이 모두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CU 본사에 도움을 청해봤지만 ‘공정위에 얘기해 수습하라’는 답변만 들었다”며 “공정위의 처분을 기다리기 전에 내가 망할 것이고, 결과도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GS 본사 관계자는 “앞서 출점한 2개의 점포에 대해서는 이미 공정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주씨 점포와 새로 출점한 GS25 사이에는 미니스톱 등 다른 편의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주씨 점포 주변에 문을 연 점포는 기존 GS25 고객들의 이용을 위한 배려”라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입력 : 2013-05-09 22:31:33ㅣ수정 : 2013-05-14 1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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