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CJ대한통운 택배[갑의 횡포 을의 눈물]원인불명 배달사고도 무조건 택배기사에게 책임전가

[갑의 횡포 을의 눈물]원인불명 배달사고도 무조건 택배기사에게 책임전가

ㆍ(3) CJ대한통운 택배

인천 지역 택배기사 정모씨(35)는 9년 동안 대한통운과 계약을 맺고 일했다. 20대 중반에 일을 시작한 그는 택배 일을 해 번 돈으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지난해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운송업계 1위가 됐을 때는 주변에서 “1등 기업이니까 물량도 많아지고 더 편해질 것”이란 이야기가 오갔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수수료는 건당 825원에서 750원으로 떨어졌고, 제대로 공지받은 적 없는 페널티제도가 생겨나 이것저것 수당에서 삭감됐다. 그는 “말도 안되는 페널티제로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며 “이제 택배는 지긋지긋하다.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들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도 없던 택배기사들이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지난 4일 인천에서 처음 시작된 운송 거부는 닷새째 이어져 동참한 택배기사가 1000명을 넘었다. 비대위는 8일 경기 안산호수공원에서 600여명이 모인 집회를 열고 ‘배송수수료 950원으로 인상’ ‘페널티제도 폐지’ 등을 요구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600여명이 8일 경기 안산호수공원에서 CJ대한통운의 일방적 수수료 인하와 불공정한 페널티제 강요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 건당 수수료 10% 일방적 삭감
페널티제 강요, 설명도 안 해
내용도 모두 택배기사에 불리

택배기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에는 ‘갑(CJ대한통운)의 횡포’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얘기가 얽혀 있다. CJ가 지난해 대한통운을 인수해 지난 4월 통합 작업을 마치면서 일방적으로 택배기사들에게 지급하는 운송수수료를 삭감하고 불공정한 페널티제도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택배 1건당 평균 880~890원인 운송수수료는 통합 후 810~820원으로 깎였다. 그나마 CJ대한통운과 직접 위수탁계약을 맺은 택배기사들은 이 수수료를 적용받지만 중간에 대리점을 끼고 ‘다단계 계약’을 맺은 택배기사들은 중간수수료를 더 떼인다.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정씨는 750원을 손에 쥔다고 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에게 벌칙금을 물리는 페널티제도를 적용하면서 어떤 설명이나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14개 항목의 페널티제도에는 택배기사에게 불리한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됐다. 택배기사 책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물품 분실의 책임을 기사에게 물리고, 오후 6시까지 이뤄지지 않은 편의점 택배 수거를 회사가 퀵서비스로 수거한 뒤 1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택배기사가 부담토록 했다. 또 배송을 시작하거나 완료할 때 전산등록을 누락하면 건당 300원을 삭감했다.

정씨는 “얼마 전 물류창고에서 물품이 누락됐을 때 내 책임이 아닌데도 물건값의 절반을 배상금으로 물었다”며 “대한통운은 택배기사의 과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CJ는 무조건 배상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의 일방적 수수료 인하와 페널티제도 도입은 노사가 교섭을 통해 정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기사들은 택배사에 종속돼 일하더라도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해 근로기준이 지켜지지 않고, 노조를 인정받지 못해 하소연할 방법도 없다. 정씨는 “수수료 인하 동의서를 쓰도록 강요했으며 쓰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월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정을 권고하면서 “근로자와 유사한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형식적으로 ‘사업자’가 돼 근로계약이 아닌 구두계약이나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주가 임의로 계약을 해지하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고용불안정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소장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 ‘슈퍼 갑’인 대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공정한 계약관계를 강요하고 있다”며 “250만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은 “표준운임제 등으로 수수료율을 현실화하고 제조업체에 비해 미흡한 제도적 지원을 개선해야 택배기사 처우도 향상될 수 있다”며 “수수료 조정 전인 지난해와 비교해 적게 받으면 보전해주고 페널티도 귀책사유가 애매한 부분은 묻지 않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영경 기자·최병태 선임기자 samemind@kyunghyang.com>

 

입력 : 2013-05-08 22:37:22ㅣ수정 : 2013-05-08 22:37:22

 

 

 

[갑의 횡포 을의 눈물]아파도 못 쉬며 배달일… 15시간 뛰며 물량 채워 손에 쥐는건 건당 680원

ㆍ47세 택배기사 강동규씨

택배일을 시작한 후로 강동규씨(47)는 아파서 쉬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전 직장에 다닐 때는 감기나 몸살을 종종 앓았던 그다. 몸이 건강해진 것이 아니다. 택배일을 하면서 하루 한 끼를 겨우 챙겨 먹는 것이 일상이 됐고, 몸무게는 10㎏ 넘게 빠졌다.

강씨는 “내가 아파서 쉬면 동료들의 일부담이 커지거나 내가 받는 수수료의 두 배가량을 주고 퀵서비스를 불러야 한다”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아니면 일을 한다”고 말했다. 올해 초 강씨는 아파트에서 배달을 하다 다리를 접질렸다. 발이 퉁퉁 부었지만 남은 배달물량이 많아 뛰어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도 다리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강씨는 아파트를 뛰어서 오르내렸다.

그가 대한통운 인천시 부평사무소에서 택배일을 시작한 것은 2009년 9월이다. “한 달에 400만~500만원은 벌 수 있다”는 말에 2200만원을 들여 배달용 탑차와 차량번호를 샀다. 일을 시작한 첫 달에 추석연휴가 있었다. 평소 하루 평균 200건에 달하는 배달 물량이 추석 즈음에는 300건 가까이 급증했다. 아침 7시부터 밥도 못 먹고 일만 했으나 물량을 소화하지 못해 밤 11시 이후에도 배달을 했다. 강씨는 아내까지 동원, 겨우 물량을 소화했다.

그렇게 물건 하나를 배송하면 강씨는 수수료 명목으로 760원을 손에 쥐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 쉬면서 일했다. 한 달에 4300건의 물량을 소화하면 28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기름값은 20만~30만원 정도 들어갔다. 고객들에게 전화하는 경우가 많아 한 달에 11만원 정도가 통신비로 나갔다. 제대로 된 밥은 먹지 못하고 배가 고프면 급하게 삼각김밥, 컵라면 등을 사먹었다. 차량 유지비와 자동차 보험료 등을 빼면 손에 쥐는 것이 별로 없었다.

배달일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컸다. 고객들은 자주 전화를 받지 않거나 집을 비웠다.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맡기고 가면 물건이 사라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 책임은 다 강씨의 몫이다. 전화를 받지 않던 고객에게 겨우 연락이 닿으면 손님은 대뜸 배달이 늦다고 욕부터 했다.

강씨는 대부분의 동료 택배기사들처럼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개인 사업자다. 하지만 늘 회사에 매어 있었다.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벌써 5년째 휴가 없이 일하고 있다. 강씨는 아침마다 사업장에서 자신이 배달해야 할 물건을 분류해야 한다. 다른 회사에서는 택배기사의 업무가 아니다. 하지만 강씨의 회사는 택배기사에게 그 업무를 시켰고, 대가를 지불한 적이 없다.

지난달 1일 강씨가 소속된 대한통운이 CJ에 인수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CJ대한통운은 건당 수수료를 11% 낮추고 배달 시 고객과 기사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씨의 건당 수수료는 680원으로 삭감됐다. 고객과 싸우거나 배달이 지연되면 기사는 3만~1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은 우수 기사에게 주는 상금으로 돌아간다. 파손이나 분실 등의 배달사고가 일어나면 최종 배달자인 택배기사들이 손해의 대부분을 배상해야 한다.

강씨는 “CJ대한통운은 두 회사의 합병으로 물량은 늘고 각 기사들의 이동거리는 짧아지니 수수료를 내려도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물량마저 줄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입력 : 2013-05-08 22:37:35ㅣ수정 : 2013-05-08 23: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