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갑의 횡포 을의 눈물]입점업체 직원 인사까지 좌우… 매장 쥐어짜 만든 고객감동(1) 백화점

ngo2002 2013. 6. 12. 11:08

[갑의 횡포 을의 눈물]입점업체 직원 인사까지 좌우… 매장 쥐어짜 만든 고객감동

ㆍ(1) 백화점

백화점은 입점하려는 제조업체들에 ‘갑’이다. 백화점에 들어가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판매 창구를 잃게 될 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는다. 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백화점의 횡포에 대한 다양한 증언이 이어졌다. 입점업체 판매직원들에 대한 인사압력, 매출압박 등에서부터 입점업체에 경품을 강매하고, 수시로 인테리어를 바꾸도록 하는 등에 이르기까지 형태도 다양했다.

▲ 황당 환불요청에 “우리가 부담”… 환불 비용은 판매원에 떠넘겨
백화점 직원들 반말·폭언 예사… 상품권 사주고, 옷 상납 관행도


서울의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 옷들이 진열돼 있다. 백화점 매장의 입점업체 판매직원들은 “백화점 측의 매출 압박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부 고객 때문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백화점, 판매직원 블랙리스트 관리

백모씨(44)는 백화점 입점업체 판매직원으로 일했던 지인 ㄱ씨로부터 ‘백화점 판매직원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해들었다. ㄱ씨는 2010년 대구의 ㄴ백화점에 입점한 의류판매점에서 판매직원으로 일했다. ㄱ씨 점포가 있는 층 백화점 직원과 ㄱ씨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고, ㄱ씨는 해당 점포를 그만뒀다. 이후 ㄱ씨는 경기 분당의 ㄴ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의류판매점 본사의 면접에 합격했다. 백화점 면접이 남아 있었지만, 백화점 면접은 일반적으로 몇 가지 당부와 목표 매출 등에 대해 상의하는 자리다. 판매직원은 의류판매점 본사에 소속된 직원이므로 백화점에 인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ㄱ씨는 백화점 면접에서 ‘탈락’ 통보를 들었다. 백화점 면접관은 ㄱ씨에게 “당신은 ㄴ백화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판매직원을 할 수 없다”며 “그냥 가시면 된다”고 말했다. ㄱ씨는 면접관에게 다툼이 있었던 ㄴ백화점 직원과 화해하겠다고 말했지만 면접관은 “회사방침”이라는 말만 했다. ㄱ씨가 계속해서 사정을 하자 면접관은 “블랙리스트에서 빠질 수 있게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ㄱ씨는 이후 백화점이 아닌 의류판매점 직영매장에 일자리를 얻어야 했다.

■ 손님 환불요청 판매직원에 덤터기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ㄷ씨(38)는 2011년 한 손님으로부터 황당한 환불요청을 받았다. 세트로 구성된 상품에서 일부만 가져와 전액을 환불해달라는 것이었다. 무리한 요구와 잦은 불만 접수로 판매직원들 사이에 유명한 손님이었다. 환불해주면 모든 손해를 뒤집어써야 하는 ㄷ씨는 거절했다. 그러자 손님은 백화점 고객상담팀에 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환불을 요구했다. 결국 백화점 본사 직원이 손님에게 “백화점이 부담하겠다”며 환불처리해줬다.

이후 백화점 직원이 ㄷ씨에게 와 “조용히 넘어가자”며 백화점이 환불해준 물건에 대해 다시 환불해줄 것을 요구했다. ㄷ씨는 이 요구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ㄷ씨는 “백화점의 요구를 거절하면 행사 지원을 해주지 않거나 본사에 판매직원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간다”며 “백화점은 사실상 판매직원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백화점 경품 벤츠, 입점업체가 준비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서 15년째 일해온 ㄹ씨(41)는 “2년에 한 번씩 백화점 내 점포 위치가 바뀌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장사에 큰 타격이 있다”며 “이 때문에 입점업체들은 백화점 직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ㄹ씨는 “한 입점업체 사장이 백화점에서 경품으로 내놓을 벤츠 승용차를 강제로 2대나 산 적이 있다”며 “의류매장 판매직원이 백화점 직원에게 옷을 해주는 정도는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ㄹ씨는 백화점 상품권 구매도 협력업체 몫이라고 했다. 그는 “상품권 판매는 백화점 직원의 실적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걸 입점업체에서 사주는 것이 관행”이라며 “백화점은 정말 건물 하나 지어놓고 모든 걸 떠넘겨 팔고 있다”고 말했다.

■ 인테리어 변경 입점업체에 강요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원 ㅁ씨는 2010년 당시 일하던 백화점에서 “일본의 한 백화점을 벤치마킹하겠다”며 모든 매장 규격을 바꾸라는 지시를 들었다. 2m 이상이던 매대와 집기 높이를 170㎝ 이하로 낮추라는 것이었다. ㅁ씨가 일하던 매장은 실내장식을 바꾼 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입점업체들은 손님들이 많이 오도록 때가 되면 실내장식 등을 스스로 판단해 바꾼다. 매장은 입점업체의 영역임에도 백화점의 지시를 피할 순 없다. ㅁ씨는 “이후 내가 일했던 백화점 본점부터 차례로 다른 지점까지 모두 인테리어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ㅁ씨는 백화점이 한 층에 있는 점포 수를 더 늘리며 기존 점포의 공간을 줄일 때 발생하는 시설 공사비도 입점업체가 부담토록 한다고 했다. 그는 “모 백화점의 한 지점은 과거에는 각 층에 15개 정도의 점포가 있었다면 이제는 30개 정도가 있다”며 “매장 규모도 줄이면서 공사비까지 내야 하는 입점업체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순봉·김한솔 기자 gabgu@kyunghyang.com>

입력 : 2013-05-06 22:27:00수정 : 2013-05-07 06:37:36


CopyrightⓒThe Kyunghyang Shinmun, All rights reserved.

 

[갑의 횡포 을의 눈물]백화점 입점업체 직원 “나는 하녀와 다를 바 없었다”

ㆍ“화난 손님이 무릎 꿇으라면 꿇고, 때리면 맞아”
ㆍ“가매출 강요 다반사, 백화점 청소까지 떠넘겨”

1993년 이하연씨(38·여·가명)는 꿈 많은 고교 3학년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꿨고,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그는 생계를 위해 학교에서 취업반으로 옮겨야 했다. 아버지가 심장병을 앓으면서 집안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오빠는 군대를 갔고, 남동생은 어렸다. 아버지 병간호를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이씨는 남들보다 일찍 가장이 됐다. 친구들이 입시 공부에 매달릴 때 그는 한 화장품 회사의 판매직원으로 취업했고, 20년 동안 14개 백화점을 옮겨다니며 화장품을 팔았다.

이씨는 판매직원으로 살아온 자신의 20여년 삶을 “조선시대 하녀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화점 입점업체 판매직원들은 본사로부터 압박받고 고객과 백화점으로부터 욕을 먹으며 일한다”면서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압박하면 매출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백화점 직원들과 무조건 대우받으려는 일부 손님들이 우리를 하녀로 만든다”고 말했다.

‘남들 앞에 서는 것도, 말하는 것도 좋아하니 판매 일이라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씨는 처음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백화점 판매직원은 판매만 하지 않았다. 판매직원을 무시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을 대하는 것이 먼저 고역으로 다가왔다. 화장품을 절반이나 쓰고도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 샘플이 떨어져 못 준다고 하면 백화점에 항의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이씨는 고객의 황당한 요구를 처음에는 거절하고 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백화점에 이씨 편은 없었다. 이씨는 “일을 하며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아봤지만 백화점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고객 불만이 접수됐다’면서 화장품 본사에 판매직원을 자르라는 요청을 한다”며 “이제는 화가 난 손님이 무릎을 꿇으라면 꿇고, 때리면 맞는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백화점은 이씨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청소다. 백화점 각 층에 1명씩 있었던 청소인력이 외환위기 이후 2~3개 층에 1명으로 줄었다. 백화점 측은 부족한 청소인력을 판매직원들로 대체했다.

판매직원들은 입점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백화점의 업무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는데도 휴지통 비우기, 매장 간판, 바닥 닦기 등을 해야 했다. 키가 큰 편이었던 이씨에게는 추가로 에스컬레이터 옆 거울 청소를 시켰다.

정기적으로 환기구 청소도 시켰다. 환기구 청소는 판매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업무 중 하나다. 영업시간 이후 진행되지만 초과근무수당도 받을 수 없는 데다 위험했다. 이씨는 “의자를 놓고 환기구를 닦다가 넘어져 이가 깨지는 등 다친 동료들을 많이 봐왔다”고 말했다.

매출 압박은 이씨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목표한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판매직원에게는 온갖 인격적인 모독이 가해졌다. 이씨는 “아침 조회 때 욕설로 공개 망신을 주거나 카카오톡 방에 판매직원들을 초대해 시간마다 매출 순위를 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한다”며 “백화점 직원들은 자신의 인사고과를 위해 압박하지만, 판매직원들은 매출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백화점의 매출 압박은 이씨 남편을 신용불량자로 만들기도 했다. 2010년 백화점 직원이 이씨 등 판매직원들을 휴게실로 불러 “매출 2000만원만 채우면 화장품 코너가 이번달 1등을 할 수 있다”며 매출 할당을 했다. 이씨에게는 300만원이 할당됐지만, 그달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이씨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카드로 300만원의 가매출을 냈다. 그리고 매출이 좋은 달이 오면 환불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카드사는 이씨 남편의 한도를 줄이다 카드를 정지시켰다. 이씨는 “이 일로 남편과 심하게 싸웠지만 환불을 하면 그래도 다행”이라며 “가매출의 상당 부분은 환불도 못해 판매직원이 고스란히 물어줘야 했다”고 말했다.

도난사건이 일어나도 판매직원이 책임을 져야 했다. 이씨는 “손님이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아도 백화점 보안요원들은 잡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매장 물건이 없어져도 물어줘야 하는 판매직원만 불쌍할 뿐 백화점은 손해가 없다”며 “백화점은 소란스러워지면 손님들이 불안해할까봐 경찰이 오는 것도 꺼린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항공기내에서 벌어진 한 대기업 임원의 폭행사건을 보면서, 항공사가 ‘폭행을 당하면 미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승무원들을 보호해줘 부러웠다”며 “판매직원에 대한 백화점이나 본사의 가이드라인은 ‘무조건 친절하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몇 번이나 직업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제는 다른 일을 새롭게 배우기가 쉽지 않아 떠날 수 없다”며 “일반적인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손님들과 자신들을 위해 무리한 매출 목표를 잡는 백화점 때문에 우리는 백화점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입력 : 2013-05-06 22:27:13수정 : 2013-05-06 23:07:46


CopyrightⓒThe Kyunghyang Shinmu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