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 백화점백화점은 입점하려는 제조업체들에 ‘갑’이다. 백화점에 들어가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판매 창구를 잃게 될 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는다. 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백화점의 횡포에 대한 다양한 증언이 이어졌다. 입점업체 판매직원들에 대한 인사압력, 매출압박 등에서부터 입점업체에 경품을 강매하고, 수시로 인테리어를 바꾸도록 하는 등에 이르기까지 형태도 다양했다.
▲ 황당 환불요청에 “우리가 부담”… 환불 비용은 판매원에 떠넘겨
백화점 직원들 반말·폭언 예사… 상품권 사주고, 옷 상납 관행도
서울의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 옷들이 진열돼 있다. 백화점 매장의 입점업체 판매직원들은 “백화점 측의 매출 압박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부 고객 때문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백화점, 판매직원 블랙리스트 관리백모씨(44)는 백화점 입점업체 판매직원으로 일했던 지인 ㄱ씨로부터 ‘백화점 판매직원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해들었다. ㄱ씨는 2010년 대구의 ㄴ백화점에 입점한 의류판매점에서 판매직원으로 일했다. ㄱ씨 점포가 있는 층 백화점 직원과 ㄱ씨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고, ㄱ씨는 해당 점포를 그만뒀다. 이후 ㄱ씨는 경기 분당의 ㄴ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의류판매점 본사의 면접에 합격했다. 백화점 면접이 남아 있었지만, 백화점 면접은 일반적으로 몇 가지 당부와 목표 매출 등에 대해 상의하는 자리다. 판매직원은 의류판매점 본사에 소속된 직원이므로 백화점에 인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ㄱ씨는 백화점 면접에서 ‘탈락’ 통보를 들었다. 백화점 면접관은 ㄱ씨에게 “당신은 ㄴ백화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판매직원을 할 수 없다”며 “그냥 가시면 된다”고 말했다. ㄱ씨는 면접관에게 다툼이 있었던 ㄴ백화점 직원과 화해하겠다고 말했지만 면접관은 “회사방침”이라는 말만 했다. ㄱ씨가 계속해서 사정을 하자 면접관은 “블랙리스트에서 빠질 수 있게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ㄱ씨는 이후 백화점이 아닌 의류판매점 직영매장에 일자리를 얻어야 했다.
■ 손님 환불요청 판매직원에 덤터기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ㄷ씨(38)는 2011년 한 손님으로부터 황당한 환불요청을 받았다. 세트로 구성된 상품에서 일부만 가져와 전액을 환불해달라는 것이었다. 무리한 요구와 잦은 불만 접수로 판매직원들 사이에 유명한 손님이었다. 환불해주면 모든 손해를 뒤집어써야 하는 ㄷ씨는 거절했다. 그러자 손님은 백화점 고객상담팀에 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환불을 요구했다. 결국 백화점 본사 직원이 손님에게 “백화점이 부담하겠다”며 환불처리해줬다.
이후 백화점 직원이 ㄷ씨에게 와 “조용히 넘어가자”며 백화점이 환불해준 물건에 대해 다시 환불해줄 것을 요구했다. ㄷ씨는 이 요구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ㄷ씨는 “백화점의 요구를 거절하면 행사 지원을 해주지 않거나 본사에 판매직원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간다”며 “백화점은 사실상 판매직원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백화점 경품 벤츠, 입점업체가 준비백화점 남성복 매장에서 15년째 일해온 ㄹ씨(41)는 “2년에 한 번씩 백화점 내 점포 위치가 바뀌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장사에 큰 타격이 있다”며 “이 때문에 입점업체들은 백화점 직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ㄹ씨는 “한 입점업체 사장이 백화점에서 경품으로 내놓을 벤츠 승용차를 강제로 2대나 산 적이 있다”며 “의류매장 판매직원이 백화점 직원에게 옷을 해주는 정도는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ㄹ씨는 백화점 상품권 구매도 협력업체 몫이라고 했다. 그는 “상품권 판매는 백화점 직원의 실적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걸 입점업체에서 사주는 것이 관행”이라며 “백화점은 정말 건물 하나 지어놓고 모든 걸 떠넘겨 팔고 있다”고 말했다.
■ 인테리어 변경 입점업체에 강요백화점 화장품 판매직원 ㅁ씨는 2010년 당시 일하던 백화점에서 “일본의 한 백화점을 벤치마킹하겠다”며 모든 매장 규격을 바꾸라는 지시를 들었다. 2m 이상이던 매대와 집기 높이를 170㎝ 이하로 낮추라는 것이었다. ㅁ씨가 일하던 매장은 실내장식을 바꾼 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입점업체들은 손님들이 많이 오도록 때가 되면 실내장식 등을 스스로 판단해 바꾼다. 매장은 입점업체의 영역임에도 백화점의 지시를 피할 순 없다. ㅁ씨는 “이후 내가 일했던 백화점 본점부터 차례로 다른 지점까지 모두 인테리어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ㅁ씨는 백화점이 한 층에 있는 점포 수를 더 늘리며 기존 점포의 공간을 줄일 때 발생하는 시설 공사비도 입점업체가 부담토록 한다고 했다. 그는 “모 백화점의 한 지점은 과거에는 각 층에 15개 정도의 점포가 있었다면 이제는 30개 정도가 있다”며 “매장 규모도 줄이면서 공사비까지 내야 하는 입점업체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순봉·김한솔 기자 gabg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