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삼성 신경영 20년 / 이와쿠니의 비밀노트(상) ◆

ngo2002 2013. 6. 6. 10:34

이와쿠니 전 시장이 증언한 35년전 삼성의 담대한 포부
1등을 꿈꾼 삼성…그래서 父子는 월가 한복판으로 갔다
"세계 일등기업 되려면 日서 배우고 美서 승부를"
아들에게 큰 사명 전달하던 모습…매우 드라마틱
1시간 일찍 출근하는 `삼성 타임`도 경쟁력키워
기사입력 2013.06.04 17:43:43 | 최종수정 2013.06.05 08:39:49

◆ 삼성 신경영 20년 / 이와쿠니의 비밀노트(상) ◆

"이건희 부회장은 1987년 삼성의 새 회장이 돼 아버지의 뜻을 계승했다. 장황하게 35년 전 일을 얘기했지만 삼성이 세계 기업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도, 삼성이 보여준 경이적 발전의 근원도, 모두 그때 그 장소 아버지와 아들이 의기투합한 장면 속에 존재했다."

1978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자리 잡은 모건스탠리 본사 회장실에서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당시 부회장을 접견했던 이와쿠니 데쓴도 이즈모시 전 시장(당시 모건스탠리 아시아담당 부장ㆍ사진)은 그날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삼성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매일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이 회장 부자가 35년 전 모건스탠리 본사를 방문했을 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당시 이병철 선대회장은 "모건스탠리가 세계 정부와 여러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기 제 아들이 삼성 회장이 될 때쯤에는 삼성이 세계 1위 기업이 될 것이다. 그때 삼성 경영에 도움이 될 여러 가지 조언을 부탁드린다"며 프랭크 페티토 모건스탠리 회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페티토 회장과 시드니 블락실 국제담당 상무는 솔직히 삼성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이병철 선대회장의 겸손함과 세계 최고 기업이 되겠다는 분명하고 높은 목표에 배석자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세계 최고가 되려면 세계 최대 시장이 있는 미국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미국의 톱 기업인 GM, GE, IBM, 코닥, 존슨&존슨, 엑손 등을 고객으로 하는 모건스탠리를 먼저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직접 실행하는 대담함을 보였다는 것.

이병철 선대회장은 세계시장에서 성장하기 위해 일본을 잘 배우고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을 모건스탠리 회장과의 면담 내내 드러냈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이건희 회장도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해 아버지의 생각과 일치하는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부자간 일체감이 있었기에 삼성의 발전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철 선대회장에게 놀랐던 또 한 가지는 월스트리트 한복판의 투자은행 회장실이라는 곳에서 삼남을 후계자라고 소개하고, 아들이 삼성 회장이 될 때쯤 세계 1위 기업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점이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미국인과 일본인을 산증인으로 해 자신의 아들에게 큰 사명을 전달하고자 한 드라마틱함이 인상 깊었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정말 훌륭한 발상을 지닌 분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후계자에 대한 최고의 유언 아닌가"라고 경탄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왼쪽 셋째)이 1982년 미국 보스턴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후 열린 리셉션에서 외국인들과 환담하고 있다. 오른쪽 둘째가 삼성 후계자인 이건희 당시 부회장. <매경DB>
이병철 선대회장이 삼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낙점한 정황은 1979년 이전에도 몇 차례 나타난다.

삼성과 재계에 따르면 이병철 선대회장은 1976년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가족회의를 열어 "앞으로 삼성은 삼남 건희가 이끌어가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1977년 8월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신문ㆍ방송 부문 이사를 맡고 있는 삼남 건희가 열의가 있어 후계자로 정했다. 삼성 정도의 규모면 역시 경영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장남 맹희는 기업에 맞지 않아 스스로 떠났고, 차남 창희는 중소기업이라도 혼자 해보겠다며 독립해 나갔다"고 밝혔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공식 자서전인 호암자전의 원본(原本)에도 경영권 승계에 대해 나와 있다. 이 선대회장은 "건희가 통합경영에 뜻을 두고 성의껏 노력하고 있으므로 삼성의 경영을 삼남에게 계승시키기로 했다"고 적시했다.

1970년대 초에 모든 법적ㆍ제도적 절차를 끝내고 그런 방향으로 체제를 굳혀왔다고 적어 승계 작업을 오랫동안 준비해왔음을 시사했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삼성타임`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주요국 중 서머타임을 연중 채택하는 특이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도쿄 시간대보다 30분 늦는 서쪽에 위치하지만 1961년부터 도쿄 표준시(동경 135도)를 따르고 있어 매일 30분씩 빠르게 일과를 시작하는 서머타임을 사실상 연중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거기다 삼성 등 한국 대기업의 출근시간이 일본 경쟁 업체보다 1시간가량 빠른 점을 들어 "일본 등 어느 글로벌 기업보다 두뇌(머리)를 아침 일찍 활용하는 게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졌다"며 `삼성타임`의 위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1987년 삼성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 임원들과 함께 일본 이즈모시를 전격 방문했다. 일본의 보수적이고 작은 도시가 이와쿠니 시장의 행정 개혁으로 `환골탈태`한 현장을 눈으로 보고 신경영 개혁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일본의 많은 대기업과 지자체가 이즈모시에 관심을 보였지만 외국의 재벌 총수가 수많은 임원을 거느리고 내방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이 회장과 15년 만에 만나게 돼 기뻤고 돌아가신 선대 회장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건희 회장과 이와쿠니 씨의 35년 전 월스트리트 인연이 일본에서 이어진 것이다.

[황인혁 기자 / 이경진 기자]

이와쿠니 전 시장은…

`미국 월가 투자은행을 두루 거친 국제금융 전문가, 일본 이즈모시장, 중의원 4선 의원, 대학교수, 신문 칼럼니스트….` 이와쿠니 데쓴도 이즈모시 전 시장(77)을 따라다니는 명함은 이처럼 화려하다.

그는 1936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9년 닛코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모건스탠리로 자리를 옮겨 런던지점, 뉴욕 본사, 도쿄지점 등에서 근무했다. 1984년 메릴린치 일본법인 사장ㆍ회장을 역임했고 1987년에는 메릴린치 본사 수석부사장을 맡았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1989년 민간기업 활동을 접고 인구 10만명인 이즈모시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6년간 이즈모시장으로 일하며 `공공 행정 분야는 최대 서비스 산업`이라는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덕분에 행정 능률은 두 배 높아졌다.

그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 중의원 4선 의원(민주당)을 지내며 정치 개혁에 앞장섰다.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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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선언후 이와쿠니 찾아간 이건희…악천후 뚫고 헬기 이동 강행
기사입력 2013.06.04 17:43:54 | 최종수정 2013.06.05 08:35:03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경영진은 1993년 여름 일본 규슈의 도요타자동차 사업장을 둘러본 뒤 시마네현 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이즈모시로 향했다. 먹구름이 끼어 있는 궂은 날씨였지만 우리는 헬리콥터에 몸을 실었다. 구름을 뚫고 날아가는데 발 아래 고압선이 보이는 등 무척 불안했다. 그래도 이와쿠니 이즈모시 시장을 반드시 만나려는 이 회장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20년 전 `신경영 선언` 당시 삼성비서실 임원으로서 동행했던 이창렬 전 일본삼성 사장이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와쿠니 데쓴도 이즈모시 전 시장의 만남을 이같이 풀어놨다.

이창렬 전 사장은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이와쿠니 전 시장은 지방행정을 개혁한 주인공으로 매우 주목받는 인물이었다"며 "이 회장과 삼성 경영진은 이와쿠니 시장과 면담한 후 여관에 돌아와 새벽 3시까지 토론을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아침에 바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이 전 사장은 "이즈모시에서 오사카로 이동할 때는 날씨가 더욱 나빠져 버스를 대절했다"며 "이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이 다 같이 한 버스에 타고 5시간 정도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고질적인 `문제`는 버스에서 터졌다. 피곤한 이 회장이 버스에서 눈을 붙이자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르지 않고 계속 버스를 이동시킨 것. 나중에 이 회장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면 중간에 휴게소에서 머리를 식히고 화장실도 가고 해야 하는데, 내가(회장이) 자고 있다고 해서 휴게소에 들르지 않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행태를 고치지 않으면 절대 일류가 될 수 없다."

이 회장의 불호령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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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쿠니 전 시장은…
금융 전문가 활동후 日 지방개혁 이끌어
기사입력 2013.06.04 17:44:36 | 최종수정 2013.06.04 20:13:34

◆ 삼성 신경영 20년 / 이와쿠니의 비밀노트(상) ◆

`미국 월가 투자은행을 두루 거친 국제금융 전문가, 일본 이즈모시장, 중의원 4선 의원, 대학교수, 신문 칼럼니스트….` 이와쿠니 데쓴도 이즈모시 전 시장(77)을 따라다니는 명함은 이처럼 화려하다.

그는 1936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9년 닛코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모건스탠리로 자리를 옮겨 런던지점, 뉴욕 본사, 도쿄지점 등에서 근무했다. 1984년 메릴린치 일본법인 사장ㆍ회장을 역임했고 1987년에는 메릴린치 본사 수석부사장을 맡았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1989년 민간기업 활동을 접고 인구 10만명인 이즈모시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6년간 이즈모시장으로 일하며 `공공 행정 분야는 최대 서비스 산업`이라는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덕분에 행정 능률은 두 배 높아졌다.

그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 중의원 4선 의원(민주당)을 지내며 정치 개혁에 앞장섰다.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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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병철 35년전`월街 선언`
"3남 이건희가 후계자…세계 1등 이끌것"…삼성 신경영 2부
기사입력 2013.06.04 17:47:28 | 최종수정 2013.06.04 22:27:36

◆ 삼성 신경영 20년 / 이와쿠니의 비밀노트(상) ◆

"여기 제 삼남(三男)이 삼성의 회장이 될 때쯤 삼성은 세계 톱 기업이 될 것입니다. 그때 삼성 경영에 도움이 될 여러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35년 전인 1978년 어느 날,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모건스탠리 회장실.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회장이 옆에 앉은 삼남 이건희 부회장을 가리키며 이런 인사말을 건네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이 자리에는 프랭크 페티토 모건스탠리 회장과 시드니 블락실 국제부문 담당 상무, 이와쿠니 데쓴도 아시아담당 부장이 배석했다. 모건스탠리ㆍ메릴린치 등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일본 이즈모시 시장, 중의원 4선 의원 등을 지낸 이와쿠니 전 시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20주년을 기념해 매일경제와 단독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 한복판의 투자은행 회장실에서 삼성의 후계자가 삼남 이건희라는 사실을 언급한 점, 그것도 미국인과 일본인을 산증인으로 삼아 자신의 후계자에게 `세계 1등 기업을 만들라`는 큰 사명을 전달한 이병철 창업자의 발상이 무척 드라마틱했다"고 회상했다.

이와쿠니 전 시장은 그로부터 15년 후인 1993년 일본 이즈모시에서 이건희 회장과 두 번째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황인혁 기자]

이와쿠니 전 시장이 증언한 35년전 삼성의 담대한 포부
신경영 선언후 이와쿠니 찾아간 이건희…악천후 뚫고 헬기 이동 강행
이와쿠니 전 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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