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이끈 경제거목 남덕우 前국무총리 별세
| |
기사입력 2013.05.19 17:43:57 | 최종수정 2013.05.20 08:59:41 |
|
||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2003년 산학협동재단 이사장 재직 시절 사무실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다. <매경DB> | ||
수년간 전립샘암을 앓아온 남 전 총리는 최근 노환에다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지난 6일부터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192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5년 국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1974년에는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며 박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을 진두지휘했다. 전두환 대통령 때인 1980~1982년에는 제14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1983~1991년에는 한국무역협회장을 역임했다. 이때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를 준공하고 무역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는 경제계 원로이자 정책 자문그룹으로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2002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의 후원회장을 맡은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권 주자였던 박 대통령의 경제자문단 좌장직을 맡아 대를 이은 인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장례는 이홍구 전 총리, 한덕수 무역협회 회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아 사회장으로 진행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혜숙 여사와 장남 남기선 (주)EVAN 사장, 차남 남기명 동양증권 전무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22일 영결식이 거행된 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제림 기자]
• "70~80년대 고도성장 이끈 경제수장" 애도 물결 |
• "공직 후배들에 귀감" 각계인사 조문 줄이어 |
• 고 남덕우 전 총리 1월 3일 매경과 마지막 인터뷰 |
• `성장경제` 이론 만든 서강학파 대부 고 남덕우 전 총리 |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70~80년대 고도성장 이끈 경제수장" 애도 물결
서강대 교수때 소신발언…박정희 대통령 1969년 재무부장관 전격 발탁 수출 100억달러…14년간 압축성장 주도 2007년 박근혜캠프 합류 `근혜노믹스` 밑그림 | |
기사입력 2013.05.19 18:48:31 | 최종수정 2013.05.19 20:34:17 |
|
||
|
||
45세의 나이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전격 발탁돼 재무부 장관을 시작으로 14년 동안 관료생활을 한 그는 5공화국에서는 국무총리 자리에도 올랐다. 고 박 전 대통령의 고속성장과 뒤를 이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안정성장을 두루 도맡아 이끈 셈이다.
경제성장을 지휘하고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었기에 그에 대한 평가 역시 당시 독재정권과 경제정책에 대한 공과(功過)와 맥을 같이 한다. 그는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으로 압축성장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이었지만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암묵적인 저임금 정책과 소외된 분배정책이 있었다. 중화학공업과 수출산업에 대한 중시는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농업 등 다른 산업에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한국은행과 미국 유학을 거쳐 서강대학교에서 5년간 교수 생활을 하고 있던 1969년 고 남 전 총리는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라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말과 함께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된다.
학자 출신으로 실무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였지만 5년 가까운 재무부 장관 시절 동안 그는 여느 테크노크라트도 하기 힘든 굵직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를 `경제대통령`으로 칭하며 신임한 고 박 전 대통령의 의지가 그대로 담긴 경제 정책이었다.
사채를 동결한 8ㆍ3 긴급조치, 기업 공개를 추진한 5ㆍ29 특별조치, 부가가치세 도입, 1973년의 중화학공업 선언 등 그가 추진한 정책들은 한국 경제에 거대한 바람을 몰고왔다. 수출 100억달러 및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와 같이 우리 경제에 전환점이 된 성과들은 그가 아니고서는 이루기 힘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
||
무역협회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뒤에도 IBC포럼 이사장,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을 맡아 우리나라가 선진화되려면 어떠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를 줄기차게 논의하는 등 `영원한 현역`으로서의 활동은 계속됐다. 그는 고 박 전 대통령에 이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를 이은 인연으로 현 정부에서도 줄곧 `원로 자문그룹`으로 분류됐다. 올해 3월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원로단을 초청했을 때도 바로 옆자리에 남 전 총리를 배정하며 그에 대한 신임과 존경을 표시한 바 있다.
고 남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향후 한국 정치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부총재를 역임할 당시엔 후원회장을 맡으며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2009년 펴낸 회고록 `경제 개발의 길목에서`라는 저서에서 그는 1969년부터 2007년까지 재무부 장관 등을 거치며 겪은 한국사의 중요 순간들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고 남 전 총리가 대통령경제특보로 있던 1979년, 고 박 전 대통령이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 방법은 엉터리야.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날거야"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그의 저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89세로 영면하기 전까지 성실히 건강관리를 하며 원로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그는 지난 1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에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등 건강관리에 대한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칭과 유산소운동, 근육운동 등을 하루 1시간씩 하면서 서예 등 취미생활도 즐겼다.
[김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공직 후배들에 귀감" 각계인사 조문 줄이어
故남덕우 前총리 빈소 차려진 삼성서울병원 | |
기사입력 2013.05.19 18:48:06 | 최종수정 2013.05.19 21:55:47 |
|
||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 빈소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
지난 18일 타계한 남덕우 전 국무총리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19일에도 고인을 기억하는 많은 정ㆍ관ㆍ재계 인사들이 찾았다. 조문객들은 고도 경제성장기 경제정책을 총괄하면서 굵직한 업적을 남긴 고인을 회상하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한덕수 무역협회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이 전 총리는 "고인은 경제학을 공부했고, 나는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둘 다 대학에서 행정부로 가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고인은 공직에 입문한 후배들에게 무슨 일에서든 모범을 보이신 훌륭한 선배였다"고 추모했다. 이 전 총리는 10년 선배인 고인과 약 40년간 가깝게 지내왔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고인은 제2차 오일쇼크와 만성적 인플레이션 등 한국 경제에서 가장 어렵던 시기를 극복한 경제 발전 모델의 입안자였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이어 "고인께서는 4년 넘게 재무장관과 4년간의 부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국제수지가 나쁜 상황이라서 국내 경기를 살려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소규모 주택 공급 정책을 강조하셨다"며 "주말마다 허허벌판이었던 잠실 건설현장에 나가시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밤 빈소를 찾아 "고인은 개발연대 우리 경제정책의 밑거름을 완성시킨 분으로 국제화ㆍ개방화와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에 충실하셨으며 공직을 떠난 뒤에도 우리 경제의 갈 길을 제시해주는 방향타 역할을 해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현 부총리는 고인과의 개인적인 인연도 소개했다. 자신이 1976년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던 당시 고인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었는데 경제학자와 장관으로서 항상 존경하고 따랐다고 말했다.
현 부총리는 "당시 나는 고 김재익 국장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들고 있었는데 고인이 계획 입안 작업을 하던 KAIST 영빈관까지 찾아오셔서 격려해주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고인은 우리 개발 경제의 반석을 다진 주역으로 평생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이한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고인은 제가 행정고시를 치러 공직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모신 장관이셨다"며 "온화하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고집스럽게 이루려고 했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선진화포럼과 한일협력위원회 등을 통해 한국 경제와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다. 연세가 있어도 마음을 젊게 가지고 앞날을 바라보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고 전했다. 이날 빈소 곳곳에서는 각계 원로들이 삼삼오오 모여 경제개발 시기 고인과의 추억담을 나누었다.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은 "경제개발 정책을 펼 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국무회의에 가서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데, 우리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오후에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 등이 빈소을 찾았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도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뜻을 기렸다.
고인의 영정 밑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ㆍ노태우ㆍ전두환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이 전 대통령은 20일 오후 2시께 직접 조문을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은 받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논평을 내고 "고인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우리나라 경제 현대화의 산증인"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널리 알리려고 노력한 `영원한 현역`이자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제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분"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대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번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한덕수 무역협회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이 전 총리는 "고인은 경제학을 공부했고, 나는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둘 다 대학에서 행정부로 가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고인은 공직에 입문한 후배들에게 무슨 일에서든 모범을 보이신 훌륭한 선배였다"고 추모했다. 이 전 총리는 10년 선배인 고인과 약 40년간 가깝게 지내왔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고인은 제2차 오일쇼크와 만성적 인플레이션 등 한국 경제에서 가장 어렵던 시기를 극복한 경제 발전 모델의 입안자였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이어 "고인께서는 4년 넘게 재무장관과 4년간의 부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국제수지가 나쁜 상황이라서 국내 경기를 살려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소규모 주택 공급 정책을 강조하셨다"며 "주말마다 허허벌판이었던 잠실 건설현장에 나가시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밤 빈소를 찾아 "고인은 개발연대 우리 경제정책의 밑거름을 완성시킨 분으로 국제화ㆍ개방화와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에 충실하셨으며 공직을 떠난 뒤에도 우리 경제의 갈 길을 제시해주는 방향타 역할을 해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현 부총리는 고인과의 개인적인 인연도 소개했다. 자신이 1976년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던 당시 고인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었는데 경제학자와 장관으로서 항상 존경하고 따랐다고 말했다.
현 부총리는 "당시 나는 고 김재익 국장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들고 있었는데 고인이 계획 입안 작업을 하던 KAIST 영빈관까지 찾아오셔서 격려해주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고인은 우리 개발 경제의 반석을 다진 주역으로 평생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이한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고인은 제가 행정고시를 치러 공직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모신 장관이셨다"며 "온화하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고집스럽게 이루려고 했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선진화포럼과 한일협력위원회 등을 통해 한국 경제와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다. 연세가 있어도 마음을 젊게 가지고 앞날을 바라보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고 전했다. 이날 빈소 곳곳에서는 각계 원로들이 삼삼오오 모여 경제개발 시기 고인과의 추억담을 나누었다.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은 "경제개발 정책을 펼 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국무회의에 가서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데, 우리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오후에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 등이 빈소을 찾았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도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뜻을 기렸다.
고인의 영정 밑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ㆍ노태우ㆍ전두환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이 전 대통령은 20일 오후 2시께 직접 조문을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은 받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논평을 내고 "고인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우리나라 경제 현대화의 산증인"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널리 알리려고 노력한 `영원한 현역`이자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제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분"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대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 남덕우 전 총리 1월 3일 매경과 마지막 인터뷰
中企도 기술력 키워 해외시장 눈 돌려야 | |
기사입력 2013.05.19 18:48:23 | 최종수정 2013.05.19 20:36:21 |
◆ 남덕우 前총리 별세 ◆
고 남덕우 전 총리가 지난 1월 3일 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는 그의 마지막 인터뷰가 됐다. 그 당시만 해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던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 경제와 박근혜정부에 많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과거 대기업 위주 성장 정책을 폈던 그는 이제 중소기업 성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고 남 전 총리는 "지금 수출 실적은 올라가고 있지만 모두 반도체ㆍ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수출이라 그 과실이 중소기업에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도 이제 충분히 기술력을 키워 국내 대기업 말고 해외로 직접 진출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재벌이 한 짓을 보면 일감몰아주기나 불공정거래, 시장지배력을 악용해서 중소기업을 못살게 하는 행태가 많고 이것이 반기업정서의 원인이 됐다"고 대기업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화학공업, IT산업 등 대기업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분야가 있다. 대기업이 성장의 중추로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점은 인정하되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 민간소비를 증가시키고 민간투자를 늘리려면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야 하다고 주장했다. 사회복지를 통해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도 총수요를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슈퍼갑(甲)` 지위를 노리는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노조에 대해서는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노조 요구를 다 수용해 노동비용이 올라가면 제대로 경쟁을 할 수 없다. 노ㆍ사ㆍ정이 대타협을 하고 상생의 조건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조언을 했다. 지금 진행 중인 국민행복기금(부채탕감 정책)에 대해서도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담보나 조건 없이 빚을 탕감해줄 때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 남덕우 전 총리가 지난 1월 3일 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는 그의 마지막 인터뷰가 됐다. 그 당시만 해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던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 경제와 박근혜정부에 많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과거 대기업 위주 성장 정책을 폈던 그는 이제 중소기업 성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고 남 전 총리는 "지금 수출 실적은 올라가고 있지만 모두 반도체ㆍ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수출이라 그 과실이 중소기업에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도 이제 충분히 기술력을 키워 국내 대기업 말고 해외로 직접 진출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재벌이 한 짓을 보면 일감몰아주기나 불공정거래, 시장지배력을 악용해서 중소기업을 못살게 하는 행태가 많고 이것이 반기업정서의 원인이 됐다"고 대기업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화학공업, IT산업 등 대기업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분야가 있다. 대기업이 성장의 중추로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점은 인정하되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 민간소비를 증가시키고 민간투자를 늘리려면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야 하다고 주장했다. 사회복지를 통해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도 총수요를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슈퍼갑(甲)` 지위를 노리는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노조에 대해서는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노조 요구를 다 수용해 노동비용이 올라가면 제대로 경쟁을 할 수 없다. 노ㆍ사ㆍ정이 대타협을 하고 상생의 조건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조언을 했다. 지금 진행 중인 국민행복기금(부채탕감 정책)에 대해서도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담보나 조건 없이 빚을 탕감해줄 때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성장경제` 이론 만든 서강학파 대부 고 남덕우 전 총리
| |
기사입력 2013.05.19 18:48:15 | 최종수정 2013.05.19 20:35:05 |
|
||
고 남덕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강학파는 개발경제시대를 이끈 관료집단이자 성장 중심의 경제에 학문적 이론을 제공한 대표적 학자집단이다.
고 남 전 총리에서부터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까지 서강학파는 정권마다 중책을 맡았다.
그가 김광두 미래연구원 원장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소개해준 것처럼 서강학파의 인맥은 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분배정책을 중요시하고 균형성장을 강조한 변형윤 교수를 중심으로 한 학현학파에 주도권을 잃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다시 정치계와 학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3ㆍ4공화국 시절 등용된 서강학파 1세대는 고 남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다. 이들은 박정희 정부의 수출 주도, 중화학공업 중심의 정책을 진두지휘하며 서강학파의 대명사가 됐다.
서강학파의 관직 등용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2세대 서강학파로는 김종인 가천대 석좌교수,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을 꼽을 수 있다.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단장을 역임한 김종인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언급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다.
박근혜정부의 등장과 함께 부각된 3세대 서강학파는 김광두 원장, 홍기택 회장, 김인기 중앙대 교수, 김경환 서강대 교수, 전준수 서강대 교수 등이 있다.
[김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 남 전 총리에서부터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까지 서강학파는 정권마다 중책을 맡았다.
그가 김광두 미래연구원 원장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소개해준 것처럼 서강학파의 인맥은 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분배정책을 중요시하고 균형성장을 강조한 변형윤 교수를 중심으로 한 학현학파에 주도권을 잃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다시 정치계와 학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3ㆍ4공화국 시절 등용된 서강학파 1세대는 고 남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다. 이들은 박정희 정부의 수출 주도, 중화학공업 중심의 정책을 진두지휘하며 서강학파의 대명사가 됐다.
서강학파의 관직 등용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2세대 서강학파로는 김종인 가천대 석좌교수,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을 꼽을 수 있다.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단장을 역임한 김종인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언급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다.
박근혜정부의 등장과 함께 부각된 3세대 서강학파는 김광두 원장, 홍기택 회장, 김인기 중앙대 교수, 김경환 서강대 교수, 전준수 서강대 교수 등이 있다.
[김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획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저금리시대 위기의 은행 (0) | 2013.05.20 |
---|---|
흔들리는 농협금융 (상)(하) (0) | 2013.05.20 |
[‘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1) 제도 바꿔도 사라지지 않아… 서로 빚진 상생관계로 만들어가야 (0) | 2013.05.20 |
[‘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 (0) | 2013.05.20 |
<더워지는 한반도>①,2,3,4,5.대기중 CO2 농도 첫 400ppm 상회…세계최고 (0) | 2013.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