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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횡포 을의 눈물]“은행에 목줄 잡혔으니, 꺾기·고금리·접대든 하라는 대로 해야”
ㆍ(8) 금융권
서울 구로디지털밸리에서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ㄱ사의 박모 사장(43)은 지난 1월 거래 은행의 대출담당자가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송별식 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에서 괜찮다고 알려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백화점 상품권도 몇 장 건넸다.
ㄱ사가 은행에서 빌린 돈은 수천만원씩 몇 차례 대출받은 운영자금 등 모두 2억원 정도다. 1년에 두 차례는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데, 요즘처럼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만기를 연장할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
며칠 뒤 신임 담당자에게도 “잘 부탁한다”며 비슷한 자리를 가졌다. 인사뿐 아니라 은행의 요구는 거의 다 들어줘야 한다. 올해 재형저축이 새로 나오기 전부터 은행 측은 상품설명회를 할 테니 ㄱ사 직원을 한데 모아달라고 연락해왔다. 변액연금 상품이나 주택청약통장 등이 이슈였을 때도 그랬다. 업무시간 이후에 자리를 마련하니 직원들이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은행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박 사장은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는 언제든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미리 기름을 발라줘야 한다”며 “대출 위험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은행이 내세우는 여러 요건을 맞추기 위해 애쓰다보면 내가 왜 은행 뒤치다꺼리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 “은행이 돈줄 죄면 장사 없어…
만기 연장·추가 대출 위해
평상시 은행 뒤치다꺼리해야”
▲ 영세한 중기엔 ‘슈퍼울트라갑’
당국도 금융회사 보호막 노릇
중소기업 사이에선 “은행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사업이 잘돼야 된다”는 말이 있다. 기업 자금사정에 민감한 은행이 실적을 보고 추가 대출을 꺼리거나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제품생산 이력관리 프로그램과 관련한 특허를 받은 정모씨(43)는 이를 바탕으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아 1인 창조기업을 세웠다. 기술보증기금 보증으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고, 신용대출로 2000만원을 더 빌렸다. 사업 초기에는 특허받은 프로그램을 한 코스닥 상장기업에 납품해 제법 큰 매출을 일으켰다. 직원도 2명 뽑았다.
그러나 석 달 후 받기로 했던 프로그램 판매대금이 1년 넘게 입금되지 않아 자금 문제가 생겼다. 은행을 찾았지만 “더 이상 대출해줄 근거가 없다”며 거부당했다. 은행보다 대출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의 캐피털사를 찾아가 대출을 받았다. 매출은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데, 이자는 매달 꼬박꼬박 나가면서 이자를 갚기 위해 사채를 썼다.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올해 2월 은행은 기존 신용대출의 만기 연장을 거부했다. 기업의 재무상태가 나빠졌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정씨는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달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은행과 대출자는 금융권의 대표적인 ‘갑·을’ 관계이다.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돈줄을 쥔 은행은 그야말로 ‘슈퍼 울트라 갑’이다. 대출 후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부당한 대출금리, 대출 만기 연장 거부, 일방적인 카드 부가혜택 축소, 금융상품 판매 시 설명 미흡 등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실제로 외환은행은 2006~2009년 기업대출 가산금리를 고객과 추가약정을 체결하지 않고 올려 4309건에 약 181억원의 이자를 더 받아 금융감독원 징계와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은행은 보험사로부터 ‘뒷돈’을 받을 정도로 금융권의 막강한 갑이다. 신한생명이 씨티은행과 SC은행 등에 방카슈랑스(은행 창구를 통해 보험상품 판매) 영업을 위해 점포당 최대 1000만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해온 것이 최근 금감원 검사 결과 밝혀졌다. 은행은 보험상품을 팔아주는 대가로 상품권과 현금이나 골프 접대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험상품의 판매영역을 허물고 경쟁체제를 유도해 금융소비자들이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방카슈랑스가 은행의 힘만 더 키워준 셈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권의 불합리한 ‘갑’의 횡포를 개선하기 위해 전방위 조사에 착수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금융당국은 갑 노릇 하는 금융회사의 보호막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박재현·이주영 기자 parkjh@kyunghyang.com>
서울 구로디지털밸리에서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ㄱ사의 박모 사장(43)은 지난 1월 거래 은행의 대출담당자가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송별식 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에서 괜찮다고 알려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백화점 상품권도 몇 장 건넸다.
ㄱ사가 은행에서 빌린 돈은 수천만원씩 몇 차례 대출받은 운영자금 등 모두 2억원 정도다. 1년에 두 차례는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데, 요즘처럼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만기를 연장할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
며칠 뒤 신임 담당자에게도 “잘 부탁한다”며 비슷한 자리를 가졌다. 인사뿐 아니라 은행의 요구는 거의 다 들어줘야 한다. 올해 재형저축이 새로 나오기 전부터 은행 측은 상품설명회를 할 테니 ㄱ사 직원을 한데 모아달라고 연락해왔다. 변액연금 상품이나 주택청약통장 등이 이슈였을 때도 그랬다. 업무시간 이후에 자리를 마련하니 직원들이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은행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박 사장은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는 언제든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미리 기름을 발라줘야 한다”며 “대출 위험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은행이 내세우는 여러 요건을 맞추기 위해 애쓰다보면 내가 왜 은행 뒤치다꺼리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은 ‘슈퍼 갑’이다. 자금이 필요할 때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대출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에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은행이 돈줄 죄면 장사 없어…
만기 연장·추가 대출 위해
평상시 은행 뒤치다꺼리해야”
▲ 영세한 중기엔 ‘슈퍼울트라갑’
당국도 금융회사 보호막 노릇
중소기업 사이에선 “은행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사업이 잘돼야 된다”는 말이 있다. 기업 자금사정에 민감한 은행이 실적을 보고 추가 대출을 꺼리거나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제품생산 이력관리 프로그램과 관련한 특허를 받은 정모씨(43)는 이를 바탕으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아 1인 창조기업을 세웠다. 기술보증기금 보증으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고, 신용대출로 2000만원을 더 빌렸다. 사업 초기에는 특허받은 프로그램을 한 코스닥 상장기업에 납품해 제법 큰 매출을 일으켰다. 직원도 2명 뽑았다.
그러나 석 달 후 받기로 했던 프로그램 판매대금이 1년 넘게 입금되지 않아 자금 문제가 생겼다. 은행을 찾았지만 “더 이상 대출해줄 근거가 없다”며 거부당했다. 은행보다 대출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의 캐피털사를 찾아가 대출을 받았다. 매출은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데, 이자는 매달 꼬박꼬박 나가면서 이자를 갚기 위해 사채를 썼다.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올해 2월 은행은 기존 신용대출의 만기 연장을 거부했다. 기업의 재무상태가 나빠졌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정씨는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달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은행과 대출자는 금융권의 대표적인 ‘갑·을’ 관계이다.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돈줄을 쥔 은행은 그야말로 ‘슈퍼 울트라 갑’이다. 대출 후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부당한 대출금리, 대출 만기 연장 거부, 일방적인 카드 부가혜택 축소, 금융상품 판매 시 설명 미흡 등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실제로 외환은행은 2006~2009년 기업대출 가산금리를 고객과 추가약정을 체결하지 않고 올려 4309건에 약 181억원의 이자를 더 받아 금융감독원 징계와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은행은 보험사로부터 ‘뒷돈’을 받을 정도로 금융권의 막강한 갑이다. 신한생명이 씨티은행과 SC은행 등에 방카슈랑스(은행 창구를 통해 보험상품 판매) 영업을 위해 점포당 최대 1000만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해온 것이 최근 금감원 검사 결과 밝혀졌다. 은행은 보험상품을 팔아주는 대가로 상품권과 현금이나 골프 접대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험상품의 판매영역을 허물고 경쟁체제를 유도해 금융소비자들이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방카슈랑스가 은행의 힘만 더 키워준 셈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권의 불합리한 ‘갑’의 횡포를 개선하기 위해 전방위 조사에 착수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금융당국은 갑 노릇 하는 금융회사의 보호막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박재현·이주영 기자 parkjh@kyunghyang.com>
입력 : 2013-05-19 22:10:27ㅣ수정 : 2013-05-19 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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