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

ngo2002 2013. 5. 20. 09:31

[‘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2) 금융사 위주 법·약관… 담보대출 채무자도 파탄 때까지 ‘무한책임’

시장경제의 근간은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하는 것이다. 국내외 사회·경제적 역학 관계에서는 힘의 균형추가 소비자로 옮겨가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금융분야의 금융사와 금융소비자 간의 관계는 아직도 불합리한 갑·을 구조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금융권의 갑·을 관계는 법적 측면의 미비나 약관 등 불공정한 제도 탓에 유지돼 왔다고 볼 수 있다. 법도 사회적 변화나 약자의 보호를 고려하기보다 금융사 중심의 편향적 판단을 해왔다. 금융사는 정보의 독점과 우월적 힘을 당연시하며 갑·을 위치를 유지해온 것이다.

대출은 어떤가. 통상 은행들은 분명 담보를 보고 담보대출을 한다. 담보대출은 제공한 담보물로 한정하여 대출을 판단하고 회수해야 함에도 광범위하게 채권을 확보하려는 은행의 행태가 여전하다. 대출 후 연체가 되면 관행적으로 손해를 줄이기 위해 대출자의 다른 재산이나 급여를 압류하기도 하는 등 대출자를 압박한다. “담보가치의 감소 등의 사유로 은행의 채권보전상 필요하다고 인정된 때에는 채무자는 은행의 청구에 의하여 은행이 인정하는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기한의 이익이 상실한다”는 여신거래 기본약관으로 대출자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대출자를 파탄에 이르게 한 명백히 불공정한 약관이다. 은행들은 이러한 약관이라는 우산 아래 ‘갑’ 행세를 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부동산 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는 국내외의 외부적인 어떠한 경제 쇼크에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사가 분명 대출 시에 충분한 담보라는 판단하에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했지만 담보에만 책임을 한정하지 않고 모든 위험을 대출자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이다.

은행은 기업자유예금에 대해 지난 10년간 ‘7일간 무이자’ 방식을 적용해 1600억원 정도의 이자를 편취했다. 당장 조사해야 할 상황인데도 은행의 이자 편취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상품인 특정금전신탁을 높은 금리를 주는 정기예금처럼 판매해놓고 손실이 나면 모든 책임을 금융소비자에게 돌린다. 저축은행의 후순위채를 서민·노년층에게 집중 판매하고도 구매 책임만 지운다. 정기예금보다 400배나 이익이 많다며 판매한 키코 사기, 수수료 폭리 등 은행의 갑 행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당국은 별다른 조치가 없다. 결국 금융권의 ‘갑’의 위치는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비호 덕분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의 비호가 없다면 이 시점까지 어떻게 유지해 왔겠는가. 금융권의 갑·을 문제를 모범규준의 제시나 지침 개정 정도로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금융권의 갑·을 문화가 지속되는 것은 금융의 모든 영역을 은행이 잠식해 금융생태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융권역 간에도 갑의 횡포가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중견기업이던 증권, 보험, 자산운용, 카드사업도 점점 중소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핵심고객’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핵심고객에 집중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보인다. 그러나 핵심고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금융소비자가 핵심이다. 금융소비자를 우선 생각하는 핵심원칙이 금융영역에 자리 잡을 때 한국의 금융회사는 세계적인 금융기업이 될 것이다. 금융사는 금융상품 판매가 아닌, 만족한 고객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남희 | 금융소비자원 대표>

입력 : 2013-05-19 22:10:41수정 : 2013-05-19 22: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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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횡포 을의 눈물]“은행에 목줄 잡혔으니, 꺾기·고금리·접대든 하라는 대로 해야”

ㆍ(8) 금융권

서울 구로디지털밸리에서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ㄱ사의 박모 사장(43)은 지난 1월 거래 은행의 대출담당자가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송별식 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에서 괜찮다고 알려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백화점 상품권도 몇 장 건넸다.

ㄱ사가 은행에서 빌린 돈은 수천만원씩 몇 차례 대출받은 운영자금 등 모두 2억원 정도다. 1년에 두 차례는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데, 요즘처럼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만기를 연장할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

며칠 뒤 신임 담당자에게도 “잘 부탁한다”며 비슷한 자리를 가졌다. 인사뿐 아니라 은행의 요구는 거의 다 들어줘야 한다. 올해 재형저축이 새로 나오기 전부터 은행 측은 상품설명회를 할 테니 ㄱ사 직원을 한데 모아달라고 연락해왔다. 변액연금 상품이나 주택청약통장 등이 이슈였을 때도 그랬다. 업무시간 이후에 자리를 마련하니 직원들이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은행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박 사장은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는 언제든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미리 기름을 발라줘야 한다”며 “대출 위험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은행이 내세우는 여러 요건을 맞추기 위해 애쓰다보면 내가 왜 은행 뒤치다꺼리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은 ‘슈퍼 갑’이다. 자금이 필요할 때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대출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에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은행이 돈줄 죄면 장사 없어…
만기 연장·추가 대출 위해
평상시 은행 뒤치다꺼리해야”


▲ 영세한 중기엔 ‘슈퍼울트라갑’
당국도 금융회사 보호막 노릇


중소기업 사이에선 “은행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사업이 잘돼야 된다”는 말이 있다. 기업 자금사정에 민감한 은행이 실적을 보고 추가 대출을 꺼리거나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제품생산 이력관리 프로그램과 관련한 특허를 받은 정모씨(43)는 이를 바탕으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아 1인 창조기업을 세웠다. 기술보증기금 보증으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고, 신용대출로 2000만원을 더 빌렸다. 사업 초기에는 특허받은 프로그램을 한 코스닥 상장기업에 납품해 제법 큰 매출을 일으켰다. 직원도 2명 뽑았다.

그러나 석 달 후 받기로 했던 프로그램 판매대금이 1년 넘게 입금되지 않아 자금 문제가 생겼다. 은행을 찾았지만 “더 이상 대출해줄 근거가 없다”며 거부당했다. 은행보다 대출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의 캐피털사를 찾아가 대출을 받았다. 매출은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데, 이자는 매달 꼬박꼬박 나가면서 이자를 갚기 위해 사채를 썼다.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올해 2월 은행은 기존 신용대출의 만기 연장을 거부했다. 기업의 재무상태가 나빠졌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정씨는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달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은행과 대출자는 금융권의 대표적인 ‘갑·을’ 관계이다.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돈줄을 쥔 은행은 그야말로 ‘슈퍼 울트라 갑’이다. 대출 후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부당한 대출금리, 대출 만기 연장 거부, 일방적인 카드 부가혜택 축소, 금융상품 판매 시 설명 미흡 등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실제로 외환은행은 2006~2009년 기업대출 가산금리를 고객과 추가약정을 체결하지 않고 올려 4309건에 약 181억원의 이자를 더 받아 금융감독원 징계와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은행은 보험사로부터 ‘뒷돈’을 받을 정도로 금융권의 막강한 갑이다. 신한생명이 씨티은행과 SC은행 등에 방카슈랑스(은행 창구를 통해 보험상품 판매) 영업을 위해 점포당 최대 1000만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해온 것이 최근 금감원 검사 결과 밝혀졌다. 은행은 보험상품을 팔아주는 대가로 상품권과 현금이나 골프 접대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험상품의 판매영역을 허물고 경쟁체제를 유도해 금융소비자들이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방카슈랑스가 은행의 힘만 더 키워준 셈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권의 불합리한 ‘갑’의 횡포를 개선하기 위해 전방위 조사에 착수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금융당국은 갑 노릇 하는 금융회사의 보호막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박재현·이주영 기자 parkjh@kyunghyang.com>


 

입력 : 2013-05-19 22:10:27수정 : 2013-05-19 22: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