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1) 제도 바꿔도 사라지지 않아… 서로 빚진 상생관계로 만들어가야

ngo2002 2013. 5. 20. 09:32

[‘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1) 제도 바꿔도 사라지지 않아… 서로 빚진 상생관계로 만들어가야

최근 한 대기업 임원과 베이커리 사장의 횡포, 우유업체 영업사원의 제품 ‘밀어내기’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마련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갑을관계’가 사회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 사건은 다분히 감정적인 문제가 개입돼 있지만 사건의 핵심에는 불공정성과 불합리성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 갑을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식품유통 업계의 ‘갑을갈등’의 대표적인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형은 남양유업 사태와 같은 대리점-제조업체 간 물량 떠넘기기 등 공급업체 내부의 갈등이다. 강자인 제조업체가 약자인 대리점에 힘을 행사하는 경우다. 둘째 유형은 식품유통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이다. 납품관계에 놓여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납품 조건과 가격 등을 놓고 늘 갈등 국면에 놓여 있다. 셋째 유형은 대형 유통업체와 식품 제조업체 간 갈등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들보다 강력한 갑의 지위에 있으며, 유통망이 없는 중소업체들은 늘 약자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같은 갑을관계가 상호 협력과 상생의 방향으로 가지 않고 늘 힘의 논리에 의해 강자에 좌지우지당하는,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우는 데에 있다.

사실 갑을관계는 비즈니스 생태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생산적인 시스템이기도 하다.

예컨대 갑에게 선택받기 위해 을은 매우 치열한 경쟁을 뚫어내야 하는데, 이러한 경쟁이 때때로 대단한 혁신을 가져오기도 한다. 또 갑은 비즈니스 가치사슬상의 핵심적인 사업 부분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기획과 관리에 치중함으로써 큰 숲을 보면서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갑과 을 모두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긍정적 시스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려할 것은 이러한 긍정적 측면이 아닌 부정적 측면이 더 강하게 작동할 때 갑을관계는 갑을 모두의 공멸을 가져오는 ‘문제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갑을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갑을관계에 놓인 당사자들의 능력과 태도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이 갑을관계의 결과물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갑을관계를 공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이미 국내에는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 등이 존재하며 최근 정치권에서 더 강한 규제를 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를 아무리 강화해도 결국은 당사자인 갑과 을이 제도를 뛰어넘는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법은 피하라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강력하고 엄격한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피할 길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갑을 간에 진정성 있는 관계, 상호 신뢰와 존경이 존재하는 관계가 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면 이는 가장 강력한 제도로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따져보면 갑을관계는 매우 상대적인 것이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갑의 입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떤 관계에서는 을의 지위에 놓이기도 한다. 또 영원한 갑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하며, 오늘의 실적에 자만해 우쭐하거나 협력업체 등 약자를 무시해선 안된다.

성경에 ‘빚진 자가 되라’는 잠언이 나온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빚을 갚아야 할 상대로 바라본다면 많은 문제들을 달리 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 실제 갑을관계에서 갑은 을이 없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을은 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한다면 갑을관계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될 수 있다. 나홀로 기업은 있을 수 없다. 언제나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공동체에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부정적인 의미의 갑을관계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연승 | 단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입력 : 2013-05-14 22:20:51수정 : 2013-05-14 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