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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CEO] 낙타의 리더십 김기용 회장

ngo2002 2010. 3. 30. 09:55

항상 묵묵하고 겸손하게 하지만 절대 지치지않는 낙타의 리더십
세계 곡물시장 40% 점유 카길 북아시아 대표

뚜벅 뚜벅. 그는 묵묵히 걸었다. 걷는 모습만 보면 그가 서 있는 곳이 뜨거운 사막이라는 걸 아무도 알 수 없을 정도다.

지친 표정이나 힘든 기색도 없다.

그는 오로지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의 등에 탄 사람들이 혹여 자신의 혹에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그렇게 앞만 보고 걸었다.

낙타(駱駝). 김기용 카길애그리퓨리나 회장(64)의 별명이다.

김 회장은 1971년 퓨리나 코리아(현 카길애그리퓨리나)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38년간 한 회사에 몸담아왔다. 현재는 카길 북아시아지구 대표를 맡고 있다. 낙타는 김 회장이 중국 지사에 갔을 때 현지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사막의 배` 낙타처럼 묵묵하고 겸손하게, 하지만 지치거나 포기하는 일 없이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리더라는 뜻이다.

사실 카길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회사는 전 세계 곡물 시장 중 40%를 지배하는 곡물산업계 골리앗이다. 세계인의 밥상을 지배한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이며 지난해 매출은 1166억달러, 순위로는 세계 15위권에 든다. 비상장 업체인 데다 스스로도 언론에 나서길 원치 않아 베일에 싸여 있지만 세계 68개국 총 16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초거대 다국적 기업이다. 김 회장은 이 중 대만 중국 한국 인도의 3000명 직원들을 챙긴다. 중국과 본사인 미국을 바쁘게 오가다 보니 한 해에 한국에 체류하는 시간은 7개월 남짓이다.

◆회사에 승부수를 던지다

= 1971년 애그리퓨리나에 입사한 김 회장은 1988년 회사에 승부수를 던진다. 1~4대 한국 지사장이 계속 미국에서 파견되고 있어 한국인이 CEO 자리에 오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나이 43세. 또 누군가 파견된다면 자신이 40대에 CEO가 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숨에 자신의 실력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에 미국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MBA과정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조건부 입학허가서`가 날아들었다. 본사 회장의 추천서를 받으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김 회장은 본사 회장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비전이 없는 회사로 간주해 사표를 쓰겠다"며 추천서를 써줄 것인지, 사표를 받을 것인지 선택을 요구했다. 그룹 회장이 고민 끝에 추천서를 써줬다. MBA과정이 끝나고 1990년 45세 때 5대 퓨리나의 CEO로 발령받았다.

◆인수회사는 우리를 양자로 대했다

= 미국 거대 곡물회사인 카길이 2000년 애그리퓨리나를 인수했다. 한국 직원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걱정으로 동요했다. 그는 특유의 차분함을 발휘했다. "회사가 팔린 것은 모기업이 바뀐 것입니다. 종업원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의 말은 옳았다. 퓨리나를 인수한 카길은 "퓨리나 직원을 양자로 받아들인 것이다"며 퓨리나 직원들을 어떻게 대우해주면 좋겠냐고 물었다.

김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꿈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2010년 직원들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설명했다. 그의 꿈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2010년이 되면 미국 본사의 매출보다 한국과 중국을 합친 매출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그의 비전을 청취한 그룹 회장은 곧바로 김 회장을 북아시아 회장으로 발령했다.

◆비전과 가치가 사람을 춤추게 한다

= "카길 경영의 핵심은 비전과 가치입니다." 김 회장은 "사람의 최고 욕구는 자기 실현에 있다"며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직원들이 몰입해서 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즉 공통선이 직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같아야 실행능력이 생기게 된다"며 "직원들이 공통선을 향해 뛸 때 목표수익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영철학에 따라 김 회장은 1990년에 2000년 회사비전을 만들었다. 비전은 김 회장이 만드는 게 아니다. 직원들이 며칠간의 난상토론 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최고의 종합축산회사를 만들자는 비전이 세워졌다. 꿈 같던 세계 1등의 비전을 1997년 7년 만에 성취했다. 이후 난공불락의 세계 1등이 됐다.

본사에서 한국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다른 나라에서 한국 경영진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김 회장은 한국 경영진들을 중국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 태국, 미국 등지에 20여 명이나 수출했다. 능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직원들은 더 창의적으로 일을 했다.

◆`섬김의 리더십`으로 직원들 포용

= 그의 뛰어난 리더십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직원들이 그에게 붙여준 낙타라는 별명처럼 김 회장은 위에서 끌어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아래에서 직원들을 끌어올려주는 리더다. 김 회장은 이를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모든 기업이 연구개발비와 인건비를 줄였다. 김 회장은 역발상을 했다. 이럴 때일수록 인재에 투자하자는 결정을 내려 고려대학교와 함께 사내 MBA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김 회장은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사내 MBA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원들도 직원들이지만 가족들이 실직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 결단은 직원과 직원의 가족들에게 `내치기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회사`라는 확신을 심어 줬다. 사내 인재 양성과 사기진작에 큰 도움을 줬다. 이 같은 투자는 1997년 불황 속에서 퓨리나 코리아에 당해 최고 실적을 안겨줬다.

직원들을 보듬는 김 회장의 리더십은 사장 취임 직후에도 발휘됐다. 당시 마흔넷 젊은 나이에 사장의 자리에 앉게 됐을 때 그는 사표를 던지려는 선배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퇴직 권유를 각오하고 기다리던 이들에게 그는 "제 역할은 이제 선배님들 일 잘하시도록 섬겨드리는 일이니 절대 회사 떠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이야기했다.

김 회장의 설득으로 이들은 회사에서 정년을 채우고 퇴임 후에도 고문역을 자청하며 회사를 위해 헌신했다.

이 같은 김 회장의 직원 사랑은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에서 드러나고 있다. 전문 컨설팅 회사 휴잇이 측정한 카길애그리퓨리나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는 91%로 카길 전 직원의 몰입도 81%를 크게 웃돈다. 한국 내 기업 평균의 41%와 비교되는 수치다.

◆기업이 해야 할 가치를 먼저 생각하다

= 기업은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특히 곡물회사는 사회에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것은 김 회장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다. 이른바 기업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1997년 대만에 구제역이 발생한 사실에 주목했다. 당시 대만은 구제역 예방실패로 축산업 붕괴사태를 맞는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일을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한국 축산농가에도 발생할지 모를 리스크로 간주했다.

"전국 100개 대리점에 고압분무식 소독기를 배치해 구제역 발생 시 조기진압 훈련을 시작하세요." 3년 뒤 2000년, 한국 전역에 구제역이 발발했다. 카길 직원들은 분무기를 짊어지고 전국 축산농가 방역을 실시했다. 정부의 방역대처가 나오기 1주일 전에 카길 직원들이 구제역의 확산을 원천봉쇄했던 것이다.

◆회사ㆍ직원 간 상생모델을 만들다

= 카길애그리퓨리나 노측과 사측은 1년에 두 번 만남을 가진다. 봄에는 임금협상을, 가을에는 회사 생산성 향상을 위한 토론을 가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노조가 없다. 그들의 만남은 사측의 강요나 노측의 억지 주장을 위한 만남이 아니다. 이들의 만남엔 대화만 있을 뿐이다.

이런 `평화로운` 노사 대화의 시작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운동이 봇물처럼 터지던 당시 김 회장은 대전 유성호텔에서 노동자 대표와 `끝장토론`을 열었다.

노측과 사측의 이해관계를 두고 싸우기보다는 함께 키워나갈 나무를 만들자는 게 김 회장의 제안이었다. 회사와 직원이 윈윈할 수 있는 상생모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김 회장의 제안을 노측이 받아들여 회사는 1억7500만원을 출원해 사내 새마을금고를 조성했다. 회사의 부가적인 수익산업과 리스산업의 운용 권한도 함께 넘겼다. 직원들도 제2 퇴직금으로 생각하며 자유롭게 적금을 부을 수 있게 했다. 이 금고는 전액 직원들의 복리후생 용도로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이 금고 규모는 100억원이 넘는다. 주로 직원 자녀들의 학자금 지원 등 복리후생에 쓰이며 사측은 줄어든 부분을 지속적으로 채워 넣는다. 이사 등으로 급히 거금이 필요할 때는 장기 저리 대출도 가능하다. 이런 금고가 생기자 직원들도 `사측과 싸우자`라는 생각보다는 `회사를 함께 지키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꿨다.

◆화학적 결합을 중시하다

= 2001년 카길과 퓨리나가 합병하자 김 회장은 두 회사의 화학적 결합을 중시했다. 당시 필리핀 법인이 본사 발표 즉시 두 법인을 합쳐 호평을 얻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곧 경영실패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김 회장은 두 회사의 결합을 서두르지 않았다. 무려 7년에 걸쳐 문화를 결합시킨 뒤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냈다.

문화가 다른 두 회사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캠페인과 융합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여러해에 걸친 꾸준한 문화캠페인으로 두 회사의 분위기가 비슷해졌다는 판단이 서고 나서야 그는 합병을 선언했다. 법인 중 가장 늦은 합병이었지만, 가장 성공적이었다.

◆회사이익을 사회에 돌려주다

= "결국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민주주의와 시장주의 아닙니까? 기업이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면 기업이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반대 세력이 나타나게 마련이지요."

글로벌 축산업계의 공룡이자 한국 축산업계에서도 절대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카길은 `독점기업`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김 회장은 카길이 무엇보다도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시장주의의 수혜를 입는 기업인 만큼 사회에 나눠줘야 할 부분도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으로 김 회장은 1997년 8월 재단법인 카길애그리퓨리나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한국 축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한국법인만의 재단이다.

이 재단에서는 축산ㆍ사료분야 학술적 연구활동과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매년 축산 및 사료분야 기술 및 연구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한 축산, 수의, 사료업계 인사 및 관련 단체를 선정하여 `카길 애그리퓨리나 축산사료 연구기술대상`을 시상한다.

국내외 축산 관련 분야에 재학하고 있는 고등학생 및 대학생 중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장래 축산관련 분야에 종사할 인재를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현재 카길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중국 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골든 키 플랜`의 책임자도 맡고 있다.

카길은 중국 농촌에 사료공장과 훈련센터를 2015년까지 50여 개 만들 예정이다. 카길 측에는 중국의 젊은 인재들을 키우고 선별할 기회가 돼 좋고 중국 측에는 낙후 산업 발전을 선진 기업이 도와 좋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퇴직 날짜를 본사에 미리 통보하다

= 김 회장은 20년간 CEO 활동을 통해 미국 본사 매출보다 더 큰 매출을 창출해준 주역이다. 이 때문에 본사에서는 그가 오랫동안 회사 경영을 맡아주길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합니다. 후계를 잘 선임해 회사가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는 만 65세 되는 2010년 10월 10일 은퇴하겠다고 그룹에 통보를 했다. 그만큼 본인 진퇴에 대해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를 자기 차에 태운 김 회장은 늘 앉던 뒷자리 대신 앞쪽 조수석에 앉았다. 뒷자리 공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조수석 의자를 앞으로 최대한 당긴 김 회장 자세는 다소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래야 마음이 편하다며 굳이 불편한 자리를 고수했다. 이제 김 회장이 카길에 몸담을 시간은 6개월여.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은퇴 후 계획을 물었다.

"내가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어떻게 사회에 돌려주며 살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고요." 카길 밖으로 나온 김 회장이 신중한 결단력으로 또 어떤 `일`을 낼까. 베일을 벗을 그의 새로운 활약이 기다려진다.

■ 김기용 회장은…

△1945년 개성 출생 △1968년 서울대 농과대학 축산학과 졸업 △1971년 퓨리나코리아 입사 △1990년 퓨리나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1990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국제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1995년 랠스턴 퓨리나 인터내셔널 북아시아 지구 사장 △1998년 애그리브랜드 인터내셔널 북아시아 지구 회장 겸 애그리브랜드 퓨리나코리아 대표이사 회장 △2000년 헬싱키 경제경영대학 Executive MBA 경영학 석사 △2002년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상 수상 △2009년 글로벌 사회공헌부문 올해의 CEO상 수상 △2001년~현재 카길 동물사료 북아시아 지구 회장 겸 카길 애그리 퓨리나 대표이사 회장

[최은수 기자 / 이새봄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2010.03.26 14:19:15 입력, 최종수정 2010.03.26 16:4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