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힘겨루기에서 유통업체가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소비재 브랜드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얀베네딕트 스테인캄프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는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PL(Private Labelㆍ유통업체 자체 브랜드) 바람의 미래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향후 이류ㆍ삼류 브랜드들은 유통업체의 PL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제조업체 입장에서 `무시무시한 예언`을 했다. 결국 일류 제조업체 브랜드 제품과 유통업체들의 자체 브랜드(PL) 제품만이 시장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게 스테인캄프 교수의 주장이다. 매경 MBA팀은 최근 방한한 스테인캄프 교수를 이장혁 고려대 교수와 함께 만나 PL 상품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스테인캄프 교수는 소비재 브랜드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베스트셀러 `PL전략(Private Label Strategy)`을 저술하기도 했다. 스테인캄프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장혁 교수가 묻고, 스테인캄프 교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이메일을 통해 보완했다.
-유통업체가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자체 브랜드제품(PL) 바람이 거세다. 왜 PL 제품이 대세인가.
"1970년대에 등장한 PL은 불황이 있을 때마다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진 소비자들이 비싼 브랜드 제품 대신 저렴한 PL을 구매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PL 제품을 써보니 품질이 기대 이상이었다. 가구회사인 이케아, 의류회사인 H&M, 자라가 대표적이다. 상당수의 소비자들은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후에도 계속해서 PL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PL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영리한 소비자(smart consumer)`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데 PL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실제로 영리한 소비라고 할 수 있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유럽의 경우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물품 중 70%가 PL 제품이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PL 제품 구매자의 양극화다. PL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첫째 가난한 사람들이다. 돈이 없으니까 더 저렴한 PL 제품을 쓰는 것이다. 살기 빡빡한 사람들은 품질을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소비자들을 영리한 소비자라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PL 제품 구입군의 또 다른 한 그룹은 바로 교수, 정치인, 의사, 변호사 등 사회지도층이다. 이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물건 구입으로 무언가 `잘 보이려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독일의 알디 매장 주차장을 가면 그 어떤 백화점보다 벤츠, BMW, 렉서스 등 고급 승용차가 많다. 영리한 소비자란 바로 이런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PL은 내구재를 포함해 모든 물품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 어떤 특성을 가진 물품에서 유통업체의 PL 전략이 효과적인가.
"PL은 거의 모든 물품에 적용될 수 있지만 모든 물품들 사이에서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화장지와 샴푸를 생각해 보자. 사실 화장실에서 쓰는 롤 화장지라면 오히려 PL제품이 더 매력 있는 물품이 될 것이다. 가격은 싸면서 품질 면에서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샴푸는 어떤가. 샴푸는 저렴한 것을 쓰고 싶지 않다. 머릿결도 신경 쓰이고 향도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샴푸 같은 카테고리에서는 더 많은 돈을 지출하더라도 PL보다는 기존 제조업체 브랜드를 사게 되는 것이다."
-PL은 제조업체보다 힘의 우위에 서게 된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에 대한 협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왜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보다 힘의 우위에 서게 됐는가.
"테스코나 월마트와 같은 대형 체인은 브랜드를 만들 만한 자신감과 스케일을 갖고 있다. 반면 동네 슈퍼는 PL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시도해봤자 망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동네 슈퍼는 브랜드가 큰 제조업체가 `주는 대로 받아야` 할 판이지 협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형 마트들은 어떤가. 전국적으로 유통망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수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의 물건을 구입할 때는 절대적 우위의 협상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아니 협상보다는 대부분 브랜드들이 대형 마트에 가서 세일즈를 해야 할 판이다. 유통업이 더 많은 파워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학구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이런 흐름이 계속되다 보면 작은 규모의 유통업체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가 개입한다면 시장의 상황과 상관없이 구멍가게들이 살아남을 수는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소규모 가족경영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들을 만들어서 작은 구멍가게들이 살아남아 있다. 그러나 이는 경영학이나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조치다."
-PL의 모방(copycat) 전략이 기존 브랜드 제품의 특허를 침해할 우려는 없는가. 유통업체의 모방을 막기 위해 제조업체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를 보자. 브랜드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들을 특허법 위반으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고소에 대한 복수로 대형 마트가 그 제조업체의 물건을 구입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가 해야 하는 것은 건수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평판`을 쌓는 것이다. 코카콜라는 조금만 비슷하다 싶으면 아무나 고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P&G도 마찬가지다. 이런 제조업체들은 그 어떤 유통업체들도 잘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유니레버를 생각해보자.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대형 마트인 알버트하인은 자신의 거의 모든 PL 제품을 유니레버와 흡사한 패키지로 포장했다. 이 때문에 유니레버는 수십 건에 걸쳐 알버트하인을 고소했지만 유니레버가 실제로 승소한 경우는 단 두 건뿐이다. 그러나 그 후 알버트하인은 다시는 유니레버의 디자인이나 포장을 모방하지 않았다.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기업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평판이 쌓이면 유통업체가 선뜻 모방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럼 제조업체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더 쉬워진다."
-유통업체에 PL 제품을 공급하면 유통업체에 제조업체가 종속되기 쉬운데, 그렇다면 무조건 유통업체의 PL전략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가?
"베스트 시나리오는 한 가지다. 아주 강한 브랜드들을 보유하고 유통업체의 PL전략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시장의 힘을 쥐고 있는 것은 유통망이다. 사람들은 보통 대형 마트의 이름을 보고 그곳에서 쇼핑을 하는 편이지 개별 브랜드를 보고 쇼핑을 하러 가지 않는다. 그러나 제조업체의 브랜드가 강하다면 유통업체들도 찾아올 수밖에 없다. 유통망도 확보되지 않고 제품력도 약한 제조업체인 경우에만 PL 제품을 만들어 유통업체에 공급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제조업체는 유통업체에 종속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 이외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한국의 한 소프트렌즈업체는 유럽 유통업체에 소프트렌즈를 수출해 3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유통업체의 PL 확대가 중국 등 개발도상국 제조업체에는 오히려 기회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없고 유통망도 확보되지 않은 작은 제조기업이라면 PL전략이 효율적일 것이다. 제조업체는 기술을 쌓아가는 시점이 될 수도 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물론 돈도 벌어가면서 말이다. 지금 제시한 사례는 PL로 유럽에 진출하는 것이 매우 적절한 경우다.
하지만 만약 브랜드가 제대로 구축된 기업이라면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자신의 브랜드를 좀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삼성이나 LG는 절대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시장에서는 일류 제조업체 브랜드와 PL 제품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근거는.
"사람들은 일류 브랜드가 아닌 샴푸를 살 바에야 PL 제품을 살 것이다. 사람들은 이류, 삼류 브랜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류 브랜드의 물건보다야 차라리 이름이 알려진 대형 마트의 PL 제품이 더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대체로 유통업계 종사자의 보수 수준은 제조업계에 비해 높지 않다. 유통업체의 힘이 세지면 유통업계 종사자의 보수 수준이 올라가게 되는지.
"맞는 말이다. 현재 유통업계의 보수는 제조업계에 못 미친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가 그러하듯 유통업계의 힘이 세지면 당연히 보수 수준이 역전될 것이다. 즉, 유통업계는 앞으로 벌어들일 게 많아지고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물론 이는 임금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미래의 기회는 확실히 유통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황미리 연구원ㆍ용환진 기자
▶He is…
얀베네딕트 스테인캄프 노스캐롤라이나대 케넌플래글러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글로벌 마케팅의 대표적 학자다. 그의 연구 분야는 브랜딩, PL과 신제품, 조직 간 관계, 마케팅 연구기술 등이다.
네덜란드의 와게닝겐대학(Wageningen University)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마친 스테인캄프 교수는 미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강의를 해 왔다. 프록터&갬블, 크래프트, 레키트 벤키저, 취리히파이낸셜서비스그룹, KPMG를 비롯한 수많은 글로벌 업체의 컨설팅을 담당했다. 또한 2007년에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니르말야 쿠마르 교수와 공동 집필한 저서 `자사 브랜드 전략(Private Label Strategy : How to Meet the Store Brand Challenge)`을 내기도 했다. 국제마케팅연구저널(The International Journal of Research in Marketing)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스테인캄프 교수는 네덜란드왕립과학원으로부터 행동ㆍ사회과학 분야에서의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아 `뮐러평생상`을 받았다. 스테인캄프 교수는 경영학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황미리 연구원 / 용환진 기자 / 사진 = 이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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