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에게 미국 시애틀은 영화 속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1993년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출연한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이나 최근 상영한 한국과 중화권의 톱스타인 현빈과 탕웨이 주연의 `만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아마존닷컴 등 세계적 기업의 본사나 1호점이 몰려 있다. 이 중 `최고의 고객 서비스`로 유명한 노드스트롬(Nordstrom) 백화점도 그중 하나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매일경제 MBA는 연세대 EMBA 과정 학생 42명과 함께 시애틀 다운타운에 위치한 노드스트롬 본점을 찾았다. `연세대-워싱턴대학교 글로벌 현장실습`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방문은 노드스트롬의 블레이크 노드스트롬 CEO를 포함해 에릭 노드스트롬 부사장, 댄 리틀 최고관리책임자(CAO)까지 3명의 최고 경영진이 한꺼번에 등장해 방문객들을 놀라게 했다. 블레이크 노드스트롬 CEO는 "한국 언론이 회사를 방문한 것이 처음인 데다 나와 댄이 워싱턴대 동문이라 환영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약 한 시간 반에 걸쳐 고객만족 경영에 대해 솔직하고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최근 들어 신성장 전략으로 추진 중인 온라인ㆍ모바일 쇼핑채널을 주제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110년 역사를 짊어지고 미래에 도전하는 기업의 고민과 책임감을 생생하게 전해줬다. 다음은 블레이크 CEO를 비롯한 3명의 경영진과 나눈 일문일답.
◆ 110년 문화 속에 배어버린 `겸손한 머슴 마인드`
-모든 유통업체들이 고객만족, 고객서비스를 외친다. 노드스트롬만의 특별한 점은 뭔가.
▶댄 CAO=서비스 측면에서는 다른 백화점보다 더 깨끗하고 넓게, 쇼핑하기 쉽게, 상품도 더 잘 보이게 하고 도우미 역할을 해 줄 점원도 더 많이 배치하려고 한다. 제품 면에서는 기본적인 제품보다는 패셔너블한 고급 제품에 주력한다.
▶에릭 부사장=두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다른 어떤 업체보다 오랫동안 고객 서비스에 집중해왔다는 것, 또 하나는 직원에 대한 권한부여(Empowerment)가 공식적인 회사 정책이라는 것이다. 노드스트롬에서 고객은 가장 위에 있고 그다음은 고객과 만나는 직원이다. 나 같은 경영진은 가장 아래에 있고 그저 지원부서다.
▶블레이크 CEO=맞다. 우리의 고객 서비스는 말 그대로 기업의 `문화`다. 5만5000명의 직원이 집에 가서 거울을 볼 때 노드스트롬 직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직원들에게 `당신 자신에게 하듯이 고객을 대하라`고 부탁한다. 지금 우리의 일은 뭔가를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돕고 지원하는 것이다.
-기업의 역사를 돌아볼 때, 고객 서비스에 사활을 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블레이크=특별한 계기라기보다 100년 전에 신발가게로 시작한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노드스트롬은 초반 63년 동안 구두만 팔았다. 나나 동생이나 어렸을 때부터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발 치수를 재면서 구두를 팔았다. 신발이란 아주 특별한 아이템이다. 양쪽 발 사이즈가 미묘하게 다른데 둘 다 맞아야 하고, 착용감도 중요하다. 손으로 직접 고객들에게 구두를 신겨주면서 고객을 섬기는 자세가 배었다고 할까.
▶에릭=지금도 구두가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한다. 시애틀 관광책자에도 `구두를 사려면 노드스트롬으로 가라`고 돼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요즘은 온라인 신발 쇼핑몰 `자포스(zappos)`가 대세 아닌가. 자포스도 고객 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한데 경쟁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에릭=자포스는 여러 카테고리에서 신발 종류가 매우 많고 고객도 정말 광범위하다. 반면 우리 고객들은 어떤 기준 아래 엄선된 신발들을 대상으로 쇼핑을 한다. `콜한(Cole Haan, 미국의 대표적인 가죽브랜드)` 구두만 해도 자포스는 250가지 종류를 팔지만 우리는 40종류밖에 없다. 하지만 고객 중에서는 250가지 신발 종류에 압도당해서 선택의 폭이 좀 더 압축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이 많기 때문에 직접 신어보고 살 수 있는 등 유리한 점도 있다. 물론 자포스는 대단하다. 특히 스피드와 편리함은 꼭 배워야 할 점이다. 오만을 버리고 매사에 겸손하게 배우려고 한다.
-80년 넘게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로 인한 부작용은 없나.
▶블레이크=현재 노드스트롬가에는 42명의 자녀들이 있지만 그중 단 4명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1971년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한 뒤 상장사로서 투명하게 경영하고 회계를 관리해 왔다. 물론 이사회도 철저히 독립돼 있다. 우리가 쓰는 돈은 단돈 1페니라도 이사회의 지침과 결정에 따라야 한다. 직위도 계약에 따라 이어지는 것이다. 노드스트롬 성을 가졌기에 더욱 책임감이 막중하고 기업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바라보기에 유리한 점도 있다.
◆ 인간적 서비스에 첨단 기술을 접목
-고객 서비스 이외에 노드스트롬의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블레이크=가장 대표적인 것인 `IT 프로젝트`다. 이건 내부적으로도 아주 큰 프로젝트다. 아마존닷컴이나 자포스 등 온라인 기업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해서 고객에게 가장 빠르고 편리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 모바일 쇼핑채널을 만드는 것이다. 8~9개월 전부터 온라인 사이트를 재론칭하고 모바일 쇼핑 환경도 도입했다. 몇 주 전에는 쇼핑이 제대로 되나 시험해 보기 위해 6000개의 아이팟터치를 사오기도 했다.
-노드스트롬의 최대 경쟁력은 친절한 직원이 고객에게 직접 물건을 골라 감동을 주는 것인데 온라인상에서 고객정보 데이터베이스(DB)가 물건을 선택해 준다면 기존의 특장점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닌가.
▶블레이크=맞다. 지금 우리의 도전 과제가 바로 `어느 곳에 직원의 재량권을 주고, 어느 부분을 자동화할지`결정하는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고객만족도 설문조사 1위는 아마존닷컴이다. 요즘 고객들은 예전보다 `사람 대 사람`의 서비스를 만족의 중요한 판단근거로 삼지 않는다.
▶에릭=요즘 고객들은 서비스를 다른 방법으로 정의 내리는 것 같다. 우리는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relationship)를 중요시하고 고객들이 우리 직원들을 `멋진 사람들(Nice people)`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아마존닷컴이나 자포스가 고객만족 설문조사에서 톱을 차지하는 것은 `나이스 피플` 때문이 아니지 않나. 우리도 변해야 하고 IT기술을 이용한 유통 추세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블레이크=그렇다 해도 고객만족 경영에 바뀌는 것은 없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쇼핑에서도 고객 서비스 최고기업이 되면 된다. 결국 노드스트롬의 서비스와 아마존의 기술적 편리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고객이 될 거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 매출은 전체의 몇 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나. 그동안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영업을 해 왔는데 관리상에 애로점은 없나.
▶댄=아직은 전체 매출의 8%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고객들은 쓰러질 정도로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웃음). 사실 문제점도 있다. 우선 온라인에서 산 물건과 오프라인에 있는 물건이 다를 경우가 있는데 바꾸러 오는 고객들을 위해 제품을 같게 맞추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고객이 한 달 전에 산 물건을 가져와도 환불을 해 줘야 하니까 회계상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문제는 계속 생겨날 테니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비즈니스다.
◆ "고객감동 신화는 계속된다…우수한 직원과 잘하는 분야 집중할 것"
-한국에서는 통상 온라인에서 물건을 싸게 파는데 노드스트롬도 그러한가.
▶댄=아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동일한 제품을 같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배송료는 어느 가격 이상 사면 공짜다. 다만 온라인에는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구비해 놓으려고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전략을 떠나서 노드스트롬의 약점은 과거 전통을 기반으로 국내에서만 영업하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외부에서 고용도 많이 못한다. 하지만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아주 주인의식이 있고 생산성이 높으며 인격까지 좋은 사람들이라는 데 큰 강점이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해외로 진출하거나 다른 사업에 뛰어들 계획은 없나.
▶에릭=오프라인 백화점의 경우 지리적으로 가까운 캐나다 정도로는 진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 등 미국 내에서의 사업 기회가 아직 많다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한국에도 아직은 진출할 계획이 없다.
▶댄=유통ㆍ소매 말고 다른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백화점 운영 모델이 너무 달라서 진출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신이 없다.
-다들 세계화를 부르짖는데 너무 보수적인 것 아닌가.
▶댄=음… 그 점이 내가 약점이라고 하지 않았나(웃음). 에릭이 말한 대로 미국 안에서 기회가 많기도 하고 우리는 미국의 문화와 전통을 기반으로 고객과 관계를 맺는다. 그런 고유한 특성이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고객들에게 통할지 상당히 조심스럽다.
■ 노드스트롬 사장은…
블레이크 W 노드스트롬(50)은 미국 최대 패션 전문 백화점 노드스트롬의 CEO다. 창업자인 존 노드스트롬의 증손자로서 어릴 때부터 매장에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고등학교와 워싱턴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여성구두 판매에 열정을 쏟았다.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업무에 뛰어들었고 시애틀 매장 부사장(1990), 알래스카ㆍ워싱턴 지역 총지배인(1991)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친 뒤 2002년에 사장 겸 CEO에 임명됐다.노드스트롬의 기업 정신을 재정비하고 상품라인과 비용 관리체제를 새롭게 정비해 모든 영업 채널에서 판매 성장률을 증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 사이에서 `겸손한 블레이크 (Humble Blake)`로 불린다.
[시애틀 기업경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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