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매경 MBA] 니시다 도시바 회장의 `창조적 혁신`

ngo2002 2012. 9. 1. 15:45

[매경 MBA] 니시다 도시바 회장의 `창조적 혁신`
기사입력 2011.11.11 17:35:03 | 최종수정 2011.11.11 18:07:30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그는 1985년 도시바가 세계 최초로 노트북컴퓨터를 개발하던 중심에 서 있었다.

1992년 실적이 부진했던 미국 PC사업을 1년 만에 재건했고 2003년에는 적자를 기록하던 도시바 PC사업부문을 맡아 1년 뒤 흑자로 전환시켰다.

`기술개발과 안정적 품질관리`에만 중점을 두던 일본 기업에 `혁신의 숨결`을 불어넣은 이단아이면서 탁월한 경영자인 니시다 아쓰토시 도시바 회장 얘기다. 그는 좀처럼 변화와 혁신에 익숙해지지 않던 일본 기업문화를 뒤바꿔놓은 덕에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과 그의 경영 스타일을 분석한 논문이 나왔을 정도로 한ㆍ일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제12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그는 매일경제 MBA팀과 인터뷰하면서 "글로벌화와 함께 디지털화, 글로벌 네트워크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리스크도 커졌다"며 "항상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다영 기자 / 고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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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깨우는 도시바 회장
기사입력 2011.11.11 14:47:49 | 최종수정 2011.11.11 18:15:5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기술개발과 안정적인 품질관리"가 중시되던 일본 기업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은 니시다 아쓰토시 회장. 그와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교한 논문이 나올 정도로 그는 경영학계와 일본 산업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지난달 제12회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니시다 회장이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혁신경영 철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조차 어색하지 않게 된 일본 경제. 1980년대 전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 첨단 제조업체들은 삼성ㆍLG 등 한국 기업에 프리미엄 전자기업이라는 지위까지 일부 내준 채 거품이 붕괴된 일본 경제 속에서 지난 20년간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던 자동차 기업 도요타마저도 최근 대량 리콜 사태로 위기를 겪었고, 소니를 비롯한 최고 기업들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일본 기업들 저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잠들어 있던 일본 최고 기업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2005년 도시바 총괄사장으로 임명돼 5년 가까이 혁신을 진두지휘한 뒤 2009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고문 역할을 하고 있는 니시다 아쓰토시 회장이 있다.

이란 여성과 결혼해 1973년 이란 지사로 입사했고, 2년 뒤 본사에 재입사하는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니시다 회장은 도시바가 한때 실패를 맛봤던 미국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 재진출하기 위해 입사 10년 만에 미국 LA로 떠난 도시바 3인방 중 한 명이다.

그는 천부적인 미래 예측 감각으로 1992년에 이미 노트북컴퓨터 판매량이 십 수년 안에 데스크톱 판매량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의 예측은 2005년에 현실로 나타났다.

그는 2003년 전무로 재직하던 시절 142억엔(약 2040억원) 적자를 기록하던 도시바 PC사업부를 1년 만에 84억엔(약 1200억원) 흑자로 돌려 놓는 경영수완을 발휘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그가 2005년 총괄사장에 취임한 후 보여준 혁신 행보는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바는 물론 다른 일본 기업들과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 `이단아적 기질`이 모범생 일본 기업에 던진 충격

니시다 회장은 일본 사회에서나 기업에서나 `이단아`로 통한다.

최고 엘리트였지만 일본의 전형적인 `모범 인생`을 살지 않았다.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법학ㆍ정치학 석사를 받는 등 당시 특급 엘리트 코스를 밟던 그는 일본에 유학와 있던 이란 여성과 결혼해 1973년 이란으로 건너갔다.

일본 산업 전문가인 이철규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엘리트가 선택하기 아주 어려운 길을 간 것"이라며 "니시다 회장이 이후 도시바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주 보여준 혁신적인 사고와 과감한 결단에는 그가 보유한 이런 `이단아` 혹은 `혁신가` DNA가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07년 긴자 거리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바 본사 건물을 팔아치우는 과감함, 수백억 엔 이상을 쏟아 부은 제품 개발마저도 향후 기업에 부담이 될 것 같으면 곧바로 접어버리는 결단, 이런 모든 측면이 `신중함`과 `전통과 관행`을 중시하던 일본 기업 경영자들과 산업계에는 큰 충격을 몰고왔다.

특히 오직 최첨단 기술 개발에만 집착하던 일본 기업 전통에서 벗어나고 과거와 단절하는 모습이 일본사회와 산업계에 많은 시사점을 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 장기 비전과 단기 수익, 두 마리 토끼 잡는 수완

니시다 회장은 `극도의 이윤추구형` 기업가로 분류된다.

이철규 교수는 "모든 CEO가 이윤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기업문화 유지ㆍ형성에 큰 비중을 두는 CEO도 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그 어느 곳보다 강조하는 기업가도 있는데, 니시다 회장은 거의 모든 기업 역량을 `수익 창출`에 쏟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니시다 회장은 수익을 위해서는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는 리더십을 보였다"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남이면서도 회사를 이어받아 기존 조직문화를 존중하면서 변화를 시도한 것과는 대조적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니시다 회장은 단기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장기 비전을 놓치지 않는다. 에너지산업에 대한 미래 성장성을 내다보고 과감하게 원전 사업 등에 뛰어든 게 대표적인 사례다.

황래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웨스팅하우스 인수전에서 향후 50년을 내다보고 예상가 20억달러에 비해 두 배가 넘는 50억달러를 투자한 것이 니시다 회장 특유의 공격적이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니시다, 도시바 그리고 일본

니시다 회장이 도시바 총괄사장으로 5년간 일하며 보여준 공격적인 경영은 도시바뿐 아니라 일본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안정적인 경영을 추구하며 경쟁력을 상실한 일본 기업에 도시바의 공격적인 경영은 새로운 변화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 전문가인 이형오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때 세계를 석권한 일본 기업들은 목표를 잃고 안정적 경영만을 해오다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크게 힘을 잃었다"며 "니시다 회장이 도시바를 혁신하며 진행했던 공격적인 경영과 외국 진출 노력 등이 일본 기업들에 주는 메시지가 큰 의미를 가지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혁신보다는 일상에서 작은 혁신이 변화 이끌죠
투자 많이 했어도,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버린다
도시바는어떤 회사?…1985년 노트북 세계 첫 개발
[강다영 기자 / 고승연 기자 / 조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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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혁신보다 작은 혁신이 변화 이끈다"
과거의 성공담으로만 살면 조직은 후퇴
조직 속 개개인이 평소에 이노베이션해야
기사입력 2011.11.11 14:43:46 | 최종수정 2011.11.11 18:04:1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도시바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제품이 많다. 초ㆍ중ㆍ고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노트북은 사실 도시바가 1985년 세계에서 최초로 내놓은 발명품이다. 도시바는 또 1894년 일본 최초의 수차발전기와 선풍기를 개발했고, 1930년에 이미 전기세탁기와 전기냉장고를 일본에서 처음으로 내놨다. `최초` 기록을 세운 제품은 손에 꼽을 수 없이 많다.

그런 도시바가 올해 또 한번 세계 최초에 도전한다. 세계에서 가장 얇고 가벼운 태블릿PC `레그자(REGZA)`와 노트북 `울트라북`이 11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잃어버린 20년`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 그 속에서 활기를 잃어가는 일본 기업이 많다. 하지만 도시바는 이 같은 분위기를 마다하고 전진하고 있다. 도시바는 다른 일본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강렬한 활력을 느킬 수 있는 곳이다. 도시바 중흥의 중심에는 니시다 아쓰토시 회장이 있다. 니시다 회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도시바가 활력 있어 보이는 것은 혁신 때문일 것"이라며 "거대한 혁신에만 집착하지 말고 직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혁신을 하나씩 일으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태블릿PC 사업을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도시바는 사업 분야만 34개다. 전체 매출도 90억달러 수준에 이른다. 태블릿PC는 일부에 불과하다. 도시바가 그동안 축적한 여러 가지 기술에 새로운 기술을 하나 더 보태 태블릿PC를 시작하는 것이다. 다만 태블릿PC를 주요 사업으로 삼은 것은 앞으로 PC가 나아갈 방향을 틀림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블릿PC는 새로운 장르며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다.

다만 태블릿PC에도 분명 한계는 있다. 개인들이 평상시에 사용하기에는 편리하지만 회사에서 업무 용도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똑같은 태블릿PC라고 하더라도 국가별, 연령별, 직업별로 사용 양태가 다를 수 있다. 각 나라와 상황에 맞는 기능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드웨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올 4월에 PC와 AV사업부를 통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두 사업부는 B2C 사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 PC는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PC의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TV를 함께 판매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판매 채널이 둘 다 양판점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공급망 구축도 가능하다. PC 부문이 TV보다 더 앞선 만큼 그 강점을 TV에 융합시키면 TV 사업을 강화할 수 있다. 지금은 TV와 컴퓨터가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대다. 앞으로도 시대 요구에 따라 통합할 수 있는 것은 통합해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LG전자, 필립스, 샤프가 스마트TV 플랫폼 연합군을 결성하기로 했고 도시바와 파나소닉도 참여하기로 했는데.

"기본적으로 공통의 플랫폼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TV만 스마트화돼서는 큰 효과가 없고, 다른 가전들도 함께 스마트화돼야 한다. 여러 가지 전자제품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스마트 홈`이 구축돼야 한다.

플랫폼을 개발할 때는 세계 표준화를 추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각국이 개별적으로 움직이거나 업체마다 따로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가전제품의 스마트화를 통한 홈 에너지 매니지먼트 시스템, 나아가서는 빌딩 에너지 매니지먼트 시스템으로 확대해 스마트그리드, 스마트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미래를 내다보고 각 제품의 표준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런 추세라면 TV(하드웨어) 자체의 품질보다 플랫폼이나 콘텐츠(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해질 것 같다.

"하드웨어도 진화의 여지가 충분하다. 예를 들어 TV는 화소 수를 늘려 화질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3차원(3D) TV도 진화의 한 방향이다. 도시바는 별도의 안경 없이도 3D 화면을 즐길 수 있는 55인치 TV를 출시했다.

도시바는 하드웨어 제조업체이기도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 사업도 다방면으로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진화도 계속 이뤄나갈 것이다. 예를 들어 도시바는 양자역학 분야의 불확정성 원리를 이용한 암호송신 기술을 개발했다. 도시바는 이 분야에서 세계 톱 클래스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암호송신 기술이 적용되면 타인이 내 개인정보에 접근했을 때 곧바로 탐지할 수 있다. 이 기술은 현재 일본에서 실증실험을 하는 중이다. 곧 상용화될 수 있다."

-도시바, 소니, 히타치가 중소형 디스플레이 사업을 통합해 `재팬디스플레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기대되는 효과는.

"3개의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기업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인 만큼 처음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 회사 모두 일본 회사라는 점에서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재팬디스플레이 설립이라는 큰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단지 더 빨리 추진됐어야 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시장 규모가 `애매하게` 크다. 한국은 자국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 자명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반면 일본은 국내시장에서만 잘해도 버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규모다. 한국은 그런 착각을 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사업 재편이 빨리 일어났다. 하지만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 재팬디스플레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여기에 참여한 회사들과 새 회사의 CEO가 어떻게 사업을 이끌어갈지에 달려 있다. 3개 회사가 각각 사업을 꾸린다면 망하는 건 시간문제였을 수 있다."

-재팬디스플레이의 주력 제품이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가 될 것이라는데, 삼성전자에 맞설 수 있다고 보나.

"어떤 제품도 처음에는 시장을 100% 장악할 수 있지만 차츰 점유율이 25%까지 떨어지는 것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2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계속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점유율은 장기적으로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회사가 독점할 수 있는 간단한 시장이 아니다."

-일본은 과거 `가전입국(家電立國)`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 세계에 가전제품을 많이 수출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과 중국에 추월당하는 신세가 됐는데,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오늘날 일본 기업들이 한국이나 대만 업체에 밀리는 것은 그 나라들이 경제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자유경쟁 체제의 생리로 볼 때 (일본이 추월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과거 일본 경제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한국이나 중국은 아직 일본만큼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과 경쟁할 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강했다. 이제는 한국과 중국이 경제 발전을 통해 일본을 따라잡았다.

지금 일본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이나 중국 업체들이 일본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세계 최초의 제품으로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일본 기업이 위기라고는 해도 아직은 한국이나 중국 업체가 내놓은 제품을 뒤쫓아 물건을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역전돼 일본이 한국과 중국 제품을 모방하는 날이 올 수 있다.

일본식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도요타 생산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도요타 생산 방식은 세계 자동차업체가 모두 배워간 시스템이다. 오늘날 해외 업체들이 도요타를 앞지를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해외 업체들에 그 시스템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일본식 시스템에 대해 비판하지만 그것을 대신할 만한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1992년 실적이 부진했던 미국 PC 사업을 1년 만에 재건했고, 2003년에는 적자를 기록한 일본 PC 사업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그동안 보여준 뛰어난 경영 수완의 비결은.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조직 속 개개인의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힘을 어떻게 키워나가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한 사람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 조직이 돼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없어도 다른 사람이 리더로 성장하고, 조직도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화와 함께 디지털화, 글로벌 네트워크화가 동시에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불확실한 리스크도 많아졌다. 항상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그 상황을 극복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만으로 살아가면 조직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외부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상황만 쫓아서는 안 된다. 자기 변혁(變革)을 통한 이노베이션을 평소에 해야 한다. 이노베이션이 꼭 큰 것일 필요는 없다. 작은 것이어도 좋으니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조직의 면역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같은 일을 해온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새로운 변화가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조직을 다양화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 습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강다영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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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많이 했어도,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버린다
500억엔 쏟아부은 DVD사업 소니에 밀리자 완전히 철수
원전 회사 웨스팅하우스는 50억달러 통큰베팅으로 인수
기사입력 2011.11.11 14:42:37 | 최종수정 2011.11.15 10:26:02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도시바 리딩 이노베이션(TOSHIBA Leading Innovation).`

2005년 2월 총괄사장으로 취임하던 날 니시다 아쓰토시 현 회장은 `성장과 수익 창출`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더 이상 안정적으로 현상 유지나 하려는 생각으로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이러한 니시다 회장의 메시지는 약 1년 뒤 `도시바가 이끄는 혁신`이라는 슬로건으로 구체화됐다. 이 슬로건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일함으로써 자원이 가진 부의 창출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뜻이다. 안정적인 현상 유지에서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 같은 도시바의 혁신 전략은 니시다 회장이 총괄사장 취임 이전부터 구상해온 `i-cube`라는 경영 개혁 화두로도 설명된다. 이노베이션(i)의 세제곱(cube)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개발, 생산ㆍ조달, 영업의 세 과정에서 다양한 이노베이션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황래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니시다 당시 총괄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이노베이션, 즉 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수익 창출에 몰두하는 공격 경영을 펼쳤다"며 "특히 위기의식(sense of urgency)을 강조하는 경영으로 도시바와 일본 산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황래국 수석연구원은 "그가 취임 이후 줄곧 주장해온 위기의식은 하버드대학의 존 코터 교수의 조직론에서 나온 사고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노베이션 순회`와 소통

`기술개발과 안정적 생산ㆍ품질관리`에 중점을 둬왔던 일본 기업에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기업문화 특성상 쉽게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니시다 회장이 총괄사장이 되면서 도시바 역시 `i-cube`라는 혁신전략을 추구했지만 CEO가 제시했다고 곧바로 순조롭게 이뤄질 리는 없었다.

고민 끝에 니시다 회장은 직원의 일상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거대한 혁신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혁신을 막는다고 보고 직원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혁신을 하나씩 일으켜 혁신이 확산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노베이션 순회`라는 이름으로 모든 현장을 돌아다니며 젊은 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구한 것도 `작은 혁신의 확산`을 위해서였다. 150회 가까이 진행된 혁신 간담회는 젊은 사원들을 7~8명씩 그룹을 지어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회사 내 소통이 활발해졌고 작은 혁신도 쉽게 확산되는 문화가 정착됐다.

이철규 건국대 교수는 "`이노베이션 순회`는 1995년부터 9년 동안 매년 1.3%밖에 성장을 못하는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였다"며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회사에 울려퍼지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체질이 혁신에 익숙한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황래국 수석연구원은 "니시다 회장은 총괄사장 취임 이후 혁신 활성화를 한 축으로 하면서 동시에 공격 경영을 펼쳤고, 이러한 경영 변화를 현장에 전파하고 또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장을 매우 중시했다"며 "현장과의 소통 속에서 위기의식을 자연스럽게 강조해 회사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고 분석했다.

선택과 집중

니시다 회장이 총괄사장으로 일하던 5년간 도시바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이형오 숙명여대 교수는 "일본 기업들은 `돈이 될 것 같은 모든 분야`에 뛰어드는 습성이 있었다"며 "하지만 니시다 회장은 안 될 사업은 과감하게 버리고 유사한 사업은 통폐합하면서 미래 먹을거리 산업에는 거액도 결단력 있게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시바는 2008년 소니의 블루레이 방식에 밀려 승산이 없어보이던 DVD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2년 넘게 500억엔 이상을 쏟아부었던 사업이었다. 일본 산업계가 깜짝 놀랐다. 이철규 교수는 "일각에서는 1000억엔까지 쏟아부었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로 도시바가 투자했던 규모가 엄청났다"며 "만약 기존의 일본 경영자였다면 회사 내외부 비판을 의식해서라도 그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니시다 회장은 유서 깊은 건물도 팔아치우고 도시바 EMI도 매각하는 등 많은 영역에서 철수했지만 50년 후를 내다본 원전사업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투자를 했다. 도시바는 원전 회사 웨스팅하우스를 예상가 20억달러의 2배가 넘는 50억달러에 인수했다. 도시바의 다른 차세대 에너지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인프라스트럭처 사업에서 선두 기업 위치에 서도록 만든 대표적인 `선택과 집중` 사례다.

탈일본의 경영학

니시다 회장은 "일본의 시장 규모는 `내수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겠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애매모호한 규모"라며 "이런 착각 때문에 일본에 머무르려는 습성이 일본 기업에 생겼고 이것이 위기를 불렀다"고 자주 강조했다. `탈일본`과 `신흥시장 개척`을 부르짖던 니시다 회장의 전략은 도시바의 체질을 조금씩 바꿔나갔고 2007년부터는 해외 매출(3조5000억엔)이 일본 내 매출(3조3000억엔)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총괄사장에서 물러난 뒤인 2010년에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8000억엔이나 앞질렀다.

이형오 교수는 "니시다 회장 말처럼 일본의 애매모호한 시장 규모가 일본 기업들을 국내에 안주시키는 효과가 있었다"며 "선진국 외에는 해외 진출에 큰 관심이 없던 일본 기업들에 신흥시장 등 어디든 가리지 않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산업 전반에 자극을 줬다"고 설명했다.

최근 도시바가 기업문화가 다른 소니, 히타치 등과 연합해 `재팬디스플레이`라는 회사를 설립하는 등 각종 `연합`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니시다 회장의 `탈일본 경영`은 전통적인 일본의 경영 스타일 자체를 탈피하려는 시도로도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기업은 대부분 막강한 오너가 없이 종업원 중심으로 꾸려져 왔고 내부 성과보상 차원에서 사장이 임명되곤 했으나 니시다 회장은 이 같은 경영 스타일을 따르지 않았다.

[고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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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는…1985년 노트북 세계 첫 개발
일본 전기산업의 시조
기사입력 2011.11.11 14:35:36 | 최종수정 2011.11.11 21:46:09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도시바는 기존 히트 상품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식으로 소비자의 구미를 당기며 성장했다. 1985년에 노트북컴퓨터의 시초인 `랩톱`을 내놓은 이후 2004년에는 LCD TV 수준의 고화질과 AV 기능을 강화한 AV노트북컴퓨터 `코스미오(Qosmio)` 시리즈를 발표했다.

2007년에는 세계 최소의 두께, 무게, 배터리 구동시간을 자랑하는 `Dynabook SS RX` 시리즈를 발표했고, 올해에는 애플의 태블릿PC인 `아이패드`에 맞서 보다 얇고 가벼운 태블릿PC인 `레그자(REGZA)`를 출시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도시바가 원천 기술 없이 응용 기술만 가지고 성장해온 것은 아니다. 도시바의 전신은 일본 내 통신산업의 시초인 다나카제작소와 `전기의 아버지`로 불리던 후지오카 이치스케가 이끌던 도쿄전기다. 다나카제작소는 1873년 일본 메이지 정부 요청에 따라 통신 사업을 시작한 다나카 히사시게의 사업을 이어받은 제자 다나카 다이키치가 1892년에 세웠다. 그의 스승인 다나카 히사시게는 생전에 전신기 제조에 착수해 통신기를 만들었으며, 전화기와 전보기 등을 연이어 만들었다.

한편 도쿄전기 전신인 하쿠네쓰샤는 일본인 손으로 만든 전구로 일본을 밝힌 첫 번째 기업이다. 창립자인 후지오카는 1884년 미국 에디슨 연구소를 방문하면서 전기산업에 눈을 떴다. 이때 토머스 에디슨은 후지오카에게 "전력 제품을 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제조부터 시작해 일본을 자급자족하는 나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 후지오카는 귀국 후 본격적으로 전구 제조에 착수했고, 1905년 미국 GE와 제휴해 1911년 텅스텐 전구인 `마쓰다램프` 개발에 성공했다.

다나카제작소를 개명한 시바우라제작소와 도쿄전기가 1939년 합병해 탄생한 도쿄시바우라전기는 수력발전기, 차량용 모터, 전기세탁기 등을 만들어내며 일본 전력 시장에 새로운 막을 열었다. 도쿄시바우라전기는 1984년부터 도시바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도시바는 20세기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세계 최초의 노트북 컴퓨터인 `랩톱(Laptop)`을 내놓으며 디지털 제품 시장을 주름잡던 소니를 놀라게 했고, 전자제품 부문에서는 1987년에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사회 인프라스트럭처 부문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도시바는 주로 일본 내 전력ㆍ교통 사업을 추진했다.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지자 도시바는 두 달 후 배전시스템, 전력, 철도 등 인프라스트럭처 사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늘린다고 발표했다. 2013년까지 인프라스트럭처 부문을 활성화시키고자 인수ㆍ합병과 연구개발에 약 3조엔(약 4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현재 도시바 상품군은 △TV, 태블릿PC, 노트북컴퓨터가 포함된 디지털 제품 부문 △원자력발전기기, 화력발전기기가 포함된 사회 인프라스트럭처 부문 △낸드플래시, 하드디스크가 포함된 전자제품 부문 △전구, 냉장고, 에어컨이 포함된 가전제품 부문 등 크게 4가지다. 매출액 비중은 디지털 제품ㆍ사회 인프라스트럭처 등이 각 33%, 전자제품 20%, 가전제품 9% 순이다. 최근에는 낸드플래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 니시다 회장은…
1992년 美 PC사업 1년만에 재건
2003년 日 PC사업 1년만에 흑자


1943년 일본 미에현 출생. 와세다대 제1정치경제학부 졸업 후 도쿄대 대학원에서 법학정치학으로 석사를 취득했다. 일본 정치사 연구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 온 이란 여성과 결혼한 뒤 1973년 이란으로 건너가 도시바 이란법인에 입사했다.

1975년 도시바 일본 본사에 다시 입사했고, 1984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PC 사업을 담당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미국 PC 사업을 1년 만에 재건하는 데 성공하면서 1995년 PC사업부장으로 발탁됐고, 1998년 상무를 거쳐 2003년 전무로 승진했다.

2003년 3분기에 적자를 기록한 도시바를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키는 탁월한 경영 수완도 발휘했다. 그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2005년 6월 사장에 취임했다. 사장 취임 후 미국 원자로 제조업체인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는 등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2009년부터는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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