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국경없는 마을, 그 경계를 넘어
ㆍ안산시 원곡동 이주외국인들의 새해 풍경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은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린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서 내려 평일 인적이 드문 지하도를 건너 ‘국경 없는 마을’의 경계를 넘어선다.
새해 초에 어디로 길을 잡을까 고민하던 차에 떠오른 곳이 바로 안산시 원곡동이다. 원곡동을 찾아가고자 했던 속내는 무엇일까. 어쩌면 새해 벽두의 조간신문에서 몇몇 대기업들이 지난해 연말 보너스로 ‘지들만의 돈잔치’를 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연말연시를 내내 잔업에 매달려 밤샘작업을 하던 친구의 푸석푸석한 얼굴을 보고 나서였을지도. 그리고 문득 한국인이 기피하는 생산현장에서 밤을 새우며 새해를 맞이했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새해 첫날, 그들은 누군가 내미는 따스한 떡국 한 그릇으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기는 했을까? 조금은 쓸쓸했을 그들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새해의 소망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여 선뜻 ‘국경 없는 마을’을 찾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원곡동으로 향한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안산역에서 내려 북쪽 출구로 나와 지하도를 건너면 국경 없는 마을이다. 오른편 골목을 시작으로 원곡본동주민센터까지가 일명 ‘아시안 다운타운’이라 일컬어지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밀집하여 사는 다문화 골목을 중심으로 상점과 주택이 혼재되어 있다. 마을로 드는 찰나, 초입에 위치한 중국계 상점의 붉은 색 간판에 또렷이 새겨진 ‘아시안랜드’라는 상호가 유난히 눈에 띈다. ‘국경’이란 경계의 의미가 내재된 골목길. 걸음을 멈추게 한 그 경계의 선을 넘어 다문화거리로 들어선다.
이주민의 플랫폼, 그 삶의 역사
사실 안산은 본래 이주도시로 계획된 전형적인 도시다. 1970년대 후반 수도권의 공업시설과 인구 분산을 위한 분산시책의 일환으로 도시 전체가 완전히 계획되어 정책적인 이주계획으로 개발된 도시인 것. 그 과정에서 1981년 반월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공단의 배후주거지역으로 탄생한 것이 원곡동이다. 그러나 반월공단의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경기가 위축되어 내국인들이 하나둘씩 원곡동을 떠났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된 것이다. 점차 원곡동을 중심으로 집단거주지를 형성하며 자기들만의 문화 공간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특히 원곡동이 본격적으로 다문화·국제화 마을이 된 것은 대체로 조선족 동포가 안산시로 유입되기 시작한 1992년 무렵부터. 이후 원곡동은 중국계 이주민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서로 어우러지며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해간다. 원곡동은 내국인과 합법적 이주민, 비정규 체류자가 함께 모여 사는 대표적인 다문화마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지난 2009년 ‘국경 없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셈이다.
2011년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14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 중 안산에 약 62개국 4만여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원곡동에는 원주민인 내국인(한국인)을 비롯해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漢族), 베트남인, 인도네시아인, 방글라데시인, 태국인, 필리핀인, 스리랑카인, 네팔인, 우즈베키스탄인과 심지어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안산지역 공단에 소재한 1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저소득 근로자들이다.
코리안 드림의 상징, 컬러풀 다운타운
평일의 거리는 다소 한산하지만 이주민들의 역동적인 삶터 이미지가 구석구석에서 드러난다. 중국, 동남아, 중동 지역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백여개의 국제상점이 커다란 장터처럼 밀집되어 있고, 도통 읽을 수가 없는 간판과 생경한 글씨와 문양들이 거리 곳곳을 수놓고 있는데, 마치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다. 한글로 쓰여진 ‘생산직 근로자 구직’이란 구인모집 광고지와 마을의 중심이 되는 ‘국경 없는 광장’에 들어서니 이곳이 척박한 이주노동자들의 삶터이며, 그들이 온몸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다큐 그대로의 살아있는 현장임을 느낄 수 있다.
세계인의 광장이라는 국경 없는 광장 한편에는 하루벌이 일감을 찾지 못한 근로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서성대고 있다. 새해 첫 서설이 그들의 빈 마음을 채우듯 다소 굵어지며 공간의 여백을 채운다. 그러자 하얀 눈송이들이 다소 색감이 넘치는 거리와 대비를 이루어 아주 특별한 풍경을 그려낸다. 장사를 시작한 중국식 호떡가게에서 피어오르는 훈훈한 증기와 어우러진 눈 내리는 겨울 거리의 풍경이 따스하게 연출된다.
천천히 거리 구석구석을 기웃거린다. 낯선 이국의 문자로 쓰여진 간판, 처음 보는 이상한 과일을 파는 식료품 가게, 도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을 파는 잡화상과 그곳을 빈번하게 출입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일상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거리 곳곳에는 유난히 음식점과 식료품점이 많다. 그 중 거리에서 가장 손님이 많다는 과일가게 ‘월드슈퍼’를 들여다본다. 인천에서 일부러 과일을 사러 왔다는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인 엔티만씨(27·인천 작전동)와 웬티렙씨(33·부천시 오정동)가 오랜만에 고향의 과일을 보고 기뻐한다. 과일의 왕자라 불린다는 ‘두리안’, 용이 여의주를 문 모습과 닮아 ‘용과’로도 부르는 ‘피타야’ 등 형형색색의 과일을 살펴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손님의 주류를 이루는 이 가게는 다양한 과일과 야채 등의 구색을 갖추어 놓은 대표적인 상점으로 가게의 주인은 한국인의 친절함과 함께 일하는 이주 외국인 종업원의 수완 좋은 말솜씨로 일찌감치 이 거리의 명물이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다문화 1번지
또 거리에는 중국계 이주민들의 점포가 주류를 이루는데, 유난히 붉은 색 간판과 글씨가 많다. 이는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70% 이상이 한족과 조선족 등 중국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에는 꼬치구이 식당과 연길냉면집 등 조선족 동포와 한족을 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중 가장 손님이 많은 음식점들을 기웃거려본다. 중국식 반점인 ‘득일소흘’(得一小吃)’에서 조선족 동포인 찐링씨(29·한국이름 김령)가 오후 손님맞이 음식 준비에 한창이다. 찐링씨는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해 이곳 원곡동에 정착한 지 벌써 9년째로, 스무 살 때 한국에 들어와 대학에서 관광영어 통역을 전공하고 이를 살려 한국에서 직장생활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 경영에 뛰어들어 벌써 3년째 식당의 경영을 도맡고 있는 포부가 큰 당찬 처녀다.
찐링씨는 “부모님이 중국에서는 작은 식당을 운영했었는데, 한국에서 그것을 밑천으로 식당을 시작했어요. 엄마의 음식솜씨가 좋아 고향인 심양에서도 알아주었는데, 고국의 시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해서 장사가 잘 되는 편입니다. 장사가 잘 되어서 조금 어려운 동포들이 있으면 도우면서 함께 한국에서 잘 살고 싶습니다”라며 새해 소망을 수줍게 밝힌다.
이제 원곡동은 ‘국경 없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외국인 특구로 지정된 이후 주말이면 대략 5만여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찾는다. 특히 공휴일이나 명절 때면 서울, 수원, 인천, 화성 등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 살고 있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은 친구나 친지를 만나러, 혹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또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 거리를 애써 찾아온다. 그리고 서로 교류하며 다양한 커뮤니티와 삶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그리고 서로의 피부색과 문화는 다르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마음을 열어가며 소통하고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국경 없는 마을의 경계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그들이 늘 바라는 새해의 소망이기도 하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
![]() |
| 전철 4호선 안산역에서 내려 북쪽 출구로 나와 지하도를 건너면 국경 없는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원곡본동주민센터까지를 ‘아시안 다운타운’이라고 부른다.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은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린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서 내려 평일 인적이 드문 지하도를 건너 ‘국경 없는 마을’의 경계를 넘어선다.
새해 초에 어디로 길을 잡을까 고민하던 차에 떠오른 곳이 바로 안산시 원곡동이다. 원곡동을 찾아가고자 했던 속내는 무엇일까. 어쩌면 새해 벽두의 조간신문에서 몇몇 대기업들이 지난해 연말 보너스로 ‘지들만의 돈잔치’를 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연말연시를 내내 잔업에 매달려 밤샘작업을 하던 친구의 푸석푸석한 얼굴을 보고 나서였을지도. 그리고 문득 한국인이 기피하는 생산현장에서 밤을 새우며 새해를 맞이했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새해 첫날, 그들은 누군가 내미는 따스한 떡국 한 그릇으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기는 했을까? 조금은 쓸쓸했을 그들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새해의 소망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여 선뜻 ‘국경 없는 마을’을 찾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원곡동으로 향한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안산역에서 내려 북쪽 출구로 나와 지하도를 건너면 국경 없는 마을이다. 오른편 골목을 시작으로 원곡본동주민센터까지가 일명 ‘아시안 다운타운’이라 일컬어지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밀집하여 사는 다문화 골목을 중심으로 상점과 주택이 혼재되어 있다. 마을로 드는 찰나, 초입에 위치한 중국계 상점의 붉은 색 간판에 또렷이 새겨진 ‘아시안랜드’라는 상호가 유난히 눈에 띈다. ‘국경’이란 경계의 의미가 내재된 골목길. 걸음을 멈추게 한 그 경계의 선을 넘어 다문화거리로 들어선다.
이주민의 플랫폼, 그 삶의 역사
사실 안산은 본래 이주도시로 계획된 전형적인 도시다. 1970년대 후반 수도권의 공업시설과 인구 분산을 위한 분산시책의 일환으로 도시 전체가 완전히 계획되어 정책적인 이주계획으로 개발된 도시인 것. 그 과정에서 1981년 반월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공단의 배후주거지역으로 탄생한 것이 원곡동이다. 그러나 반월공단의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경기가 위축되어 내국인들이 하나둘씩 원곡동을 떠났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된 것이다. 점차 원곡동을 중심으로 집단거주지를 형성하며 자기들만의 문화 공간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특히 원곡동이 본격적으로 다문화·국제화 마을이 된 것은 대체로 조선족 동포가 안산시로 유입되기 시작한 1992년 무렵부터. 이후 원곡동은 중국계 이주민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서로 어우러지며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해간다. 원곡동은 내국인과 합법적 이주민, 비정규 체류자가 함께 모여 사는 대표적인 다문화마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지난 2009년 ‘국경 없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셈이다.
2011년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14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 중 안산에 약 62개국 4만여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원곡동에는 원주민인 내국인(한국인)을 비롯해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漢族), 베트남인, 인도네시아인, 방글라데시인, 태국인, 필리핀인, 스리랑카인, 네팔인, 우즈베키스탄인과 심지어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안산지역 공단에 소재한 1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저소득 근로자들이다.
코리안 드림의 상징, 컬러풀 다운타운
![]() |
| (왼쪽) 부모님과 함께 중국식 반점 ‘득일소흘’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 찐링씨는 원곡동에 정착 한 지 벌써 9년째다. (오른쪽) 인천에 사는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인 엔티만씨(왼쪽)와 웬티렙씨(오른쪽)가 고향의 과일을 사기 위해 일부러 국경 없는 마을에 들렀다. |
평일의 거리는 다소 한산하지만 이주민들의 역동적인 삶터 이미지가 구석구석에서 드러난다. 중국, 동남아, 중동 지역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백여개의 국제상점이 커다란 장터처럼 밀집되어 있고, 도통 읽을 수가 없는 간판과 생경한 글씨와 문양들이 거리 곳곳을 수놓고 있는데, 마치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다. 한글로 쓰여진 ‘생산직 근로자 구직’이란 구인모집 광고지와 마을의 중심이 되는 ‘국경 없는 광장’에 들어서니 이곳이 척박한 이주노동자들의 삶터이며, 그들이 온몸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다큐 그대로의 살아있는 현장임을 느낄 수 있다.
세계인의 광장이라는 국경 없는 광장 한편에는 하루벌이 일감을 찾지 못한 근로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서성대고 있다. 새해 첫 서설이 그들의 빈 마음을 채우듯 다소 굵어지며 공간의 여백을 채운다. 그러자 하얀 눈송이들이 다소 색감이 넘치는 거리와 대비를 이루어 아주 특별한 풍경을 그려낸다. 장사를 시작한 중국식 호떡가게에서 피어오르는 훈훈한 증기와 어우러진 눈 내리는 겨울 거리의 풍경이 따스하게 연출된다.
천천히 거리 구석구석을 기웃거린다. 낯선 이국의 문자로 쓰여진 간판, 처음 보는 이상한 과일을 파는 식료품 가게, 도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을 파는 잡화상과 그곳을 빈번하게 출입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일상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거리 곳곳에는 유난히 음식점과 식료품점이 많다. 그 중 거리에서 가장 손님이 많다는 과일가게 ‘월드슈퍼’를 들여다본다. 인천에서 일부러 과일을 사러 왔다는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인 엔티만씨(27·인천 작전동)와 웬티렙씨(33·부천시 오정동)가 오랜만에 고향의 과일을 보고 기뻐한다. 과일의 왕자라 불린다는 ‘두리안’, 용이 여의주를 문 모습과 닮아 ‘용과’로도 부르는 ‘피타야’ 등 형형색색의 과일을 살펴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손님의 주류를 이루는 이 가게는 다양한 과일과 야채 등의 구색을 갖추어 놓은 대표적인 상점으로 가게의 주인은 한국인의 친절함과 함께 일하는 이주 외국인 종업원의 수완 좋은 말솜씨로 일찌감치 이 거리의 명물이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다문화 1번지
![]() |
| 원곡동은 외국인 특구로 지정된 이후 주말이면 5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찾는 곳이다. |
또 거리에는 중국계 이주민들의 점포가 주류를 이루는데, 유난히 붉은 색 간판과 글씨가 많다. 이는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70% 이상이 한족과 조선족 등 중국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에는 꼬치구이 식당과 연길냉면집 등 조선족 동포와 한족을 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중 가장 손님이 많은 음식점들을 기웃거려본다. 중국식 반점인 ‘득일소흘’(得一小吃)’에서 조선족 동포인 찐링씨(29·한국이름 김령)가 오후 손님맞이 음식 준비에 한창이다. 찐링씨는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해 이곳 원곡동에 정착한 지 벌써 9년째로, 스무 살 때 한국에 들어와 대학에서 관광영어 통역을 전공하고 이를 살려 한국에서 직장생활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 경영에 뛰어들어 벌써 3년째 식당의 경영을 도맡고 있는 포부가 큰 당찬 처녀다.
찐링씨는 “부모님이 중국에서는 작은 식당을 운영했었는데, 한국에서 그것을 밑천으로 식당을 시작했어요. 엄마의 음식솜씨가 좋아 고향인 심양에서도 알아주었는데, 고국의 시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해서 장사가 잘 되는 편입니다. 장사가 잘 되어서 조금 어려운 동포들이 있으면 도우면서 함께 한국에서 잘 살고 싶습니다”라며 새해 소망을 수줍게 밝힌다.
이제 원곡동은 ‘국경 없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외국인 특구로 지정된 이후 주말이면 대략 5만여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찾는다. 특히 공휴일이나 명절 때면 서울, 수원, 인천, 화성 등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 살고 있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은 친구나 친지를 만나러, 혹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또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 거리를 애써 찾아온다. 그리고 서로 교류하며 다양한 커뮤니티와 삶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그리고 서로의 피부색과 문화는 다르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마음을 열어가며 소통하고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국경 없는 마을의 경계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그들이 늘 바라는 새해의 소망이기도 하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
- Copyright ⓒ 2003 - 2012 . ⓒ 위클리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의 여행(산행,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길에서 만난 사람]창녕 우포늪 지키는 환경파수꾼 (0) | 2012.06.22 |
|---|---|
| [길에서 만난 사람]온양온천 전통시장 ‘넉넉한 인심 (0) | 2012.06.22 |
| [길에서 만난 사람]서울 남산서 임진년 해맞이 (0) | 2012.06.22 |
| [길에서 만난 사람]본래 순하디 순한 땅, 순천 (0) | 2012.06.22 |
| [길에서 만난 사람]석탄의 추억 태백, 새 희망찾기 (0) | 2012.06.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