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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온양온천 전통시장 ‘넉넉한 인심

ngo2002 2012. 6. 22. 13:44

[길에서 만난 사람]온양온천 전통시장 ‘넉넉한 인심’

까치설날은 내 어머니가 가르쳐준 명절의 의미였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있는 것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명절의 본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설날을 며칠 앞두고서 어머니는 으레 장에 가자며 앞장서 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장터를 한 바퀴 빙 돌아 고깃집에서 쇠고기를 넉넉히 끊고, 어물전에서도 물 좋은 생선을, 그리고 떡집이며 포목점까지 에돌아 보고 설 차례상 준비를 했다. 맨 마지막 차례에 잡화가게에 들러 어른용 양말 몇 켤레나 두툼한 털신을 장바구니에 담은 후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 양말 몇 켤레와 털신은 어머니가 이웃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작은 선물이었다.

온양온천역에서 걸어서 5분 남짓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온양온천 전통시장. 변화된 전통시장을 만들기 위해 ‘휴양형 마켓’이라는 콘셉트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까치설날
“엄마 그 양말은 뉘 꺼여? 우 덜 것은 아닌디, 왜 그렇게 많이 산 거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물어도 답을 안 하시던 어머니는 명절 전날, 즉 음력 섣달 그믐 까치설날이 되어서야 양말 켤레들을 곱게 포장해 동생과 나를 불렀다. “아야, 심부름 좀 허야 것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꼭꼭 허고.” 그래서 나는 동생과 함께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새해 복을 담은 양말 몇 켤레 심부름을 부지런히 다녔다. 그렇게 장가도 못간 동네 삼촌, 우체부 아저씨, 청소부 아저씨, 학교 수위 아저씨, 판잣집에 살던 칼갈이 아저씨, 쓰레기를 줍던 넝마주이 꼬부랑 할머니까지 다 돌았다. 어머니의 선물을 돌리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지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직까지 우리 설날보다도 까치설날을 더 좋아한다. 까치설날은 내 어머니가 가르쳐준 명절의 의미였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있는 것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명절의 본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겨울이 들어서 감나무 빈 가지에 붉게 매달린 까치밥처럼 까치설날은 어머니에겐 이웃을 먼저 챙기던 나눔의 따스한 의미였다.

이제 설날. 본래 명절은 집안을 챙기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과 더불어 마음을 나누는 대동(大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동은 다 함께 크게 어울려 화합한다는 뜻이다. 이 대동의 의미는 바로 나눔과 더불어 살아감의 의미에 있다. 오래도록 길을 달려 고향을 찾아가는 까치설날, 그래서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떠오른다. 이번 까치설날에는 많이 늙으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꺼운 마음으로 전통시장을 한 바퀴 돌아볼 작정이다. 어쩌면 척박하게 살아온 삶 속에서 이웃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서 세상살이에 지친 고단함이 훈훈하게 씻겨질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장에서 배운 것들
어린 시절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바라본 장터의 삶은 참 훈훈했다. 늘상 장터의 늙은 장꾼 어미들은 매일 본 듯한 미소로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따스하게 말을 건넸고, 후한 인심으로 다소 헛헛한 세상살이의 근심을 덤과 정으로 채워주는 듯했다. 장터는 그래서 늘 어머니의 미소처럼 따스하게 기억된다. 그래서 아직도 장에 나서면 어머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본래 장터는 그런 곳이다. 내 것을 내어놓고 남의 것을 흥정하면서도, 살림살이를 나누고 정을 나누는 삶의 방편에서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그래서 장에 나서면 후한 인심과 함께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그래 한두 평 남짓의 가게에 장을 꾸리고 들어앉은 장사꾼이나 사람들의 발 아래 길모퉁이 좌판을 깔고 앉은 노점상이나 위아래 가릴 것도 없이 서로 정을 나누고 몇십년쯤을 가족처럼 친구처럼 그렇게 한 장터에서 가족보다도 더 진하고 끈끈한 정으로 뭉쳐 살아왔다.

온양온천 전통시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

“내가 여기서 장사한 지가 40년이 되었고, 이이가 여기서 시어머니한테 가게 이어받아서 장사한 지가 한 20년쯤이나 족히 되었구만. 새색시가 시집와서 시어머니 공경하면서 가게 드나들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인제는 딸같이 친구처럼 지내지. 간혹 가다가 안 보이면 보고 싶고, 뭔 일이 있나 싶어 걱정도 되고. 매일매일 하루 온종일 얼굴 맞대고 서로 속도 다 알고 가족보다 더 좋지 뭐.”

온양온천시장 뒷골목 장터에서 40년 넘게 포목점을 하고 있는 변상운씨(76·미광상회)와 바로 이웃해서 옷가게를 하는 오두환씨(57·대흥패션)가 한 이불로 발을 감싸고 아랫목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여기가 예전에 제일로 유명했던 관광지 아녀요. 그때는 장사가 참 잘 되었고 손님도 많았지. 그런데 이제는 한동한 뜸하다가 요즘 다시 손님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번 명절에는 손님이 많이 늘어나 대목 좀 봐야 하는데.”

물 좋고 인심 좋은 온양온천장
한때 물 좋기로 유명했던 온양온천의 전통시장도 바로 우리가 기억하는 따스한 장터 중 하나다.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온양온천은 손꼽히는 수학여행지로, 또는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신혼여행지로 이름이 높았다. 그만큼 온양온천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백제 때는 온정(溫井), 고려시대에는 온수(溫水), 조선시대 이후에는 온양(溫陽)이라 불리며 13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온천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눈병을 치료하고자 온양에 들렀고 이후 세조, 현종, 숙종 등 여러 임금이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이곳에 머물렀다.

왼쪽 _ 온양온천시장 뒷골목 장터에서 40년 넘게 포목점을 하고 있는 변상운씨(왼쪽)와 이웃에서 옷가게를 하는 오두환씨가 이불로 발을 감싸고 아랫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_ 온양온천 전통시장에서 물 좋은 생선으로 손님을 불러 모으고 있는 오상수씨 부부.


하지만 국내에 다양한 관광지구가 생겨나고 1989년 해외여행 전면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온양온천은 점차 사람들의 기호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다가 몇 해 전 온양온천 전철역이 개통되면서 다시 하루 5000명의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 덕에 다시 살아난 곳이 온천지구와 온양온천시장이다. 옛 온천궁의 추억을 잊지 않은 어르신들이 그 시절을 되새기며 온천장을 들르고, 젊은이들은 옛 장터의 풍경과 인심이 온전히 남아 있는 전통장을 둘러보려 하나둘씩 이곳을 찾는다.

그 장터에서 물 좋은 생선으로 손님을 불러 모으는 오상수씨 부부(65·왕수산·아산시 온천동)가 큰소리로 지나가는 길손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요사이 외지 손님들이 많이 오는 편입니다. 평일에는 전철 타고 온천 겸 놀러 오신 어르신들이 많은데, 주말에는 아들, 딸, 손자, 며느리와 함께 온천도 하고 재미삼아 시장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온양온천역 바로 앞으로 걸어서 5분 남짓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온양온천 전통시장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 남짓까지 장이 선다. 아산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5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선 대형시장으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특히 요즘 주목받고 있는 것은 시장상인들이 좀 더 변화된 전통시장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휴양형 마켓’이란 콘셉트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특히 문화휴식공간으로 조성된 ‘유유자적’ 카페는 시장 명물로 떠올랐다. 별도의 공간이 마련된 카페는 갖가지 테마로 전통시장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가능케 하고 있다. 그 중 시장상인으로 구성된 라디오 DJ가 직접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온궁 라디오’는 장터의 상인과 손님들 모두에게 인기를 끌며 손님몰이에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잘 놀고 잘 쉬다 가시라는 의미입니다. 온천도 따뜻하게 하시고 우리 시장에 놀러 오시면 맛있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저렴합니다. 추억을 다시 쌓으시는 재미가 쏠쏠하니 설날 장도 보러 오시고, 구경하러 많이 오세요.” ‘유유자적’ 카페의 총괄 매니저인 박명종씨의 말대로 이번 까치설날에는 복작복작 사람냄새 나는 시장에서 사랑 한 바구니를 정성 가득 담아오는 것은 어떨까. 서민들의 희로애락과 함께해온 우리네 전통시장,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옛 어른들의 넉넉한 마음처럼, 이번 설날 명절에는 가까운 전통시장을 찾아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보자. 이웃과 함께 서로 복을 나누는 참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마음이 넉넉해질 듯하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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