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옛 광부들의 사택촌, 상장마을에서 만난 아버지들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겨울만 되면 태백이 떠올랐다. 그리고 태백을 떠올리면 내내 그리운 건 언제나 아버지였다. 유난히 칼바람이 부는 겨울밤이면 아버지는 찐빵을 식구 수대로 사서 외투 안쪽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눈이 내린 강원도 태백의 상장마을은 광부 아버지들의 마을이다. 눈이 내리던 날. 태백에서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았다.
태백은 본래 솟구치고 뻗는 자리다. 태백의 산이 남성적인 기백이 넘치는 아버지의 기운을 가졌다면, 태백의 물줄기는 생명을 잉태하고 대지를 감싸안고 흐르는 어머니의 한없는 베풂으로 남으로 남으로 흘러 온 국토를 적신다. 백두대간과 한강, 낙동강이 모두 태백에서 솟구쳐 아래로 아래로 그 기운을 뻗쳐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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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태백의 설경. |
솟구치는 기운이 넘치는 땅, 태백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1567m의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추로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 힘찬 기운을 뻗어내린다. 본래 태백은 이름처럼 크게 밝다는 의미.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하는데, 태백산 정상에는 천제단이 자리를 하고 있다. 지금도 하늘이 열리는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천제를 지낸다. 특히 연말연시면 태백산 천제단에서 해를 맞이하려고 많은 등산객들이 새벽의 해오름과 같이 눈 쌓인 태백산을 올라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 그 큰 빛을 맞이하며 한 해 새 기운을 소원한다.
또 태백에는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가 있다. 용이 거슬러 오르는 모습과 같이 솟구친다는 검룡소의 물줄기는 정선과 영월 동강, 단양, 충주, 여주까지 흘러들어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 역시 하루 5000톤의 물을 뿜어내어 1300리를 흘러내려간다. 하늘의 못이라 불리던 황지에서 솟구친 물줄기는 구문소를 지나 경상도를 지나 남해바다까지 흘러내린다.
지워지지 않던 검투성이 흔적
눈이 많이 내린 태백.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태백은 하얗게 눈이 덮여 있다. 태백은 일제 때부터 석탄을 채굴하던 탄광도시다. 눈이 덮인 산자락 아래에 지난 시절의 역사가 검투성이 그대로 묻혀 있다. 또 1960~70년대 우리 산업역군이었던 아버지들의 흔적이 탄광의 역사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먼저 태백산 입구 당골에 위치한 태백석탄박물관을 둘러본다. 한국석탄산업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국내 최대 광산촌이었던 태백의 옛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또 최근 폐광된 광업소 자리에 따로 조성한 태백체험공원을 찾으니 실제 광부들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전시공간에는 주름진 얼굴에 온통 탄가루가 묻은 광부의 얼굴과 함께 전등이 달린 헬멧을 쓰고 갱도 안에서 일하는 광부들을 직접 만나는 듯 생생하고 강렬하다. 또 예전에 탄을 캐내던 광산에서 석탄과 돌을 선별하는 일을 하는 선탄부(選炭婦) 등 작업장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아직도 검투성이 얼굴을 한 광부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렇듯 아직도 태백에는 한국석탄산업의 흔적들이 구석구석 남아 있다. 특히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철암역두 선탄시설을 비롯, 국내 유일의 민영탄광 태백광업, 독일인 광부사택촌 등은 마지막 남은 국내 탄광촌의 유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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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체험공원에서 볼 수 있는 광부들의 일상과 광부들의 사택이 있던 상장마을에서 만난 장우상씨(오른쪽). |
국내 최대의 탄광도시 태백에는 철암마을 등 광부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몇몇 마을을 찾아가면 지워지지 않은 검투성이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태백은 한때 “지나가는 개들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들어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수많은 탄광이 문을 닫았다.
그 중 철암마을은 그 시절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마을. 193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석탄의 역사를 품고 있는데, 둘러보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생활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을은 과거와 현재의 석탄산업 기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태백을 찾아 반드시 둘러보아야 할 여행지를 대표한다. 그래서 철암은 연중 사진작가와 건축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생생한 탄광촌의 리얼리티를 남길 수 있는 필수코스이기 때문이다.
탄광촌의 지난 이야기 ‘철암’
특히 철암역두 선탄시설(원탄에서 이물질을 걸러내는 곳)은 지난 2002년 5월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근대산업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적 기록물이다.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지하채탄장에서 채굴된 원탄을 철암역에 설치된 선탄장에서 선별작업을 거쳐 가정용 연탄으로 만들어내는 곳이다. 광업소에 협조를 구한다면 아직도 검게 그을린 철암역두 선탄시설에 근접해 컨베이어벨트에서 쏟아지는 요란한 기계음과 생산현장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철암역은 또 무연탄 수송기지의 옛 명성을 찾을 수 없지만, 지금도 장성광업소에서 생산된 석탄을 선별해 전국 각지로 실어 나르고 있어 검은 빛깔의 풍경을 여전히 품고 있다.
광부 아버지 마을의 희망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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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표적인 광산 사택촌이었던 상장마을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네 곳곳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통해 광부였던 아버지들의 삶과 애환, 당시의 생활상 등을 느낄 수 있다. |
탄광도시였던 태백 광부들의 사택이 있던 상장마을. 이 마을은 1970년대 광부만 4000여명이 거주했던 국내 대표적인 광산 사택촌으로 광부들이 빼곡하게 모여 살던 곳이다. 마을의 벽화에는 광부였던 아버지들의 삶과 애환, 생활상이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지난 시절의 흔적을 찾아 둘러보고, 벽화를 통해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벽화에는 광부들의 생생한 모습이 화면에 담겨져 있다. 또 광부들이 살았던 사택, 골목길, 텃밭에는 그 시절의 때 묻은 서정이 물씬 풍긴다.
상장마을의 장우상씨(강원도 태백시 상장동)는 “탄광이 전부인 태백은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와 물로, 산이 검고 물이 검고 사람의 얼굴이 검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산과 물 그리고 사람의 얼굴이 검었어도 행복했습니다. 시절이 좋을 때에는 동네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했으니까요”라며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연탄 대신 기름과 가스보일러가 전국적으로 깔리기 시작하면서 탄광산업은 쇠락했다. 광부들은 하나둘씩 태백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탄광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아지고, 태백은 생기를 잃어갔다. 현재 마을주민은 호황기 시절의 10분의 1에 불과한 200여 가구 400여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전직 광부 출신인 마을주민은 ‘남은 자들의 슬픔’을 겪으며 우울한 시절을 묵묵히 보내왔다.
“사택촌이던 우리 마을도 그 중 한 곳이지요. 올해 새 마음으로 마을을 단장하기 시작했어요.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걸으면 이야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집집이 담장에 탄광의 일상과 추억, 광부들의 애환, 그 시절 아이들의 동심까지 그려놓았습니다.”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다보면 탄광촌의 서늘한 리얼리티를 통해 따뜻한 시선을 경험하고 차분한 서정을 만날 수 있다. 그 시절 탄광촌은 희망의 정거장이자, 희망의 종점이었다. 그래서 상장마을의 벽화에는 절망적 삶을 딛고 희망을 일궈낸 소망의 철학이 그려져 있다.
“그 시절 탄광촌은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막장 같은 절망을 겪은 사람들이 태백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태백산에 올라 힘찬 기운을 얻고. 우리 마을을 찾는다면 다소 힘에 부친 일상을 털어내기에 좋을 듯합니다.”
빵모자를 눌러쓴 상장동 마을 어르신들이 삽을 챙겨 너나할 것 없이 제설작업을 하며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늙은 아버지들이 다시 희망으로 기운차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