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외국며느리들 ‘한국의 멋’에 흠뻑
푸른 하늘 아래 앞뜰은 이미 황금빛으로 물들고, 돌담 너머 감나무에도 붉은 단감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완연한 가을. 우리네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경주 양동마을에 가을색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넘친다.
윗마을 아랫마을 노랑 병아리 같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리고, 수학여행을 나온 학생들이 골목골목을 가득 메운다. 양동마을은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오늘은 먼 이국땅에서 이웃 울진으로 시집을 온 새색시와 며느리들이 가을나들이를 나섰다.
삶이 그대로 배어있는 우리 옛마을
경주의 양동마을(慶州 良洞)은 우리 옛 마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특히 전통이나 풍속이란 거창한 말로 포장할 것도 없이 그저 있는 살림살이 그대로, 현재까지도 주민들이 대부분 거주하며 살고 있다.
해설사 심명희씨(47·경주 신라문화원)는 “저는 고향이 합천인데, 경주가 고향인 사람들은 참 복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선조들의 전통유산을 물려받아 현재의 삶과 참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동마을은 천년 신라의 문화 안에서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를 오래도록 지켜온 마을”이라고 말했다.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지난해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집안이 500년 가까이 한 마을에 어울려 마을을 형성한 양반마을인데, 현재도 400여 세대의 자손들이 실제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자리한 양동마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가와 이를 에워싸는 고즈넉한 110여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은 안계(安溪)라는 시내를 경계로 동서와 남북으로 나누어집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줄기인 안계는 밖에서 물이 돌아들어 마을 안에서 드는데, 드는 물길은 보이나 물이 나는 것이 보이지 않아 이를 부(富)의 기운이 밖으로 새진 않는 형세라 전해집니다. 또 마을은 안계를 경계로 하촌(下村)과 상촌(上村), 남북으로는 남촌과 북촌의 4개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는 초가가 기와집을 에워싸고 있는 형세입니다. 특히 양반과 상민이 가까이에 살았는데, 이는 중국의 종족마을이나 일본의 전통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입니다. 초가집 중 일부는 과거에 상민이나 노비가 살던 집입니다.”
한국의 사계와 어우러진 전통 풍경
토담길 사이를 걸으니 긴 역사의 향기와 현재의 삶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마을을 에둘러 보면 옛 마을의 풍모와 살림살이가 한눈에 보이는데, 수백년 된 기와집은 하늘 아래 큰기침을 하는 형세이고, 마을 앞 들판을 중심으로 나지막한 초가들이 빙 둘러 들녘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품새에서 삶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거의 마을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와 관습 등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봄, 가을이면 유치원 아이들부터 학생들 수학여행, 우리 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 아름다운 우리의 사계와 어우러진 한국적 풍경에 반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한 가을 풍경.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초가들, 그리고 작은 토담들 사이로 가을색이 곱게 물들어간다. “마을의 규모와 보존상태, 보유 문화재와 전통성 등이 빼어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색 등으로 가히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합니다. 특히 그 어느 곳보다 볼거리가 많아 1992년에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양동마을은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국보 1점과 보물 4점을 비롯해 총 24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먼저 마을 들머리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관가정(觀稼亭·보물 제442호)과 향단을 둘러본다. 향단은 많은 건축가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건축물 중 하나. 관가정과 더불어 마을 초입에 자리해 양동마을의 첫 풍모를 가늠케 한다. 관가정이 월성 손씨의 상징물이라면 향단은 여강 이씨의 상징물. 향단은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없는 이채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이어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 중 하나인 서백당과 이탁원 가옥을 둘러보고, 여강 이씨의 종가인 무첨당(보물 제411호)까지 에돌아 볼 수 있다.
우리 땅으로 시집온 며느리들의 나들이
오늘은 가까운 울진군에서 반가운 손님이 오는 날이다. 먼 이국에서 이웃한 울진군으로 시집을 와 이제는 한국 며느리가 된 결혼이주여성들이 경주문화엑스포 축제 기간을 맞아 경주 나들이를 온 것이다. 울진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장소라씨는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 3~4년차의 새댁들인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관광도 하고, 우리 문화와 풍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마을을 둘러보면 좋을 듯하여 양동마을을 찾았다”며 “낯설고 물선 이국땅으로 시집온 며느리들에게 우리 고유 풍습을 보여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함께 어울려 빨리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오늘 양동마을을 찾은 결혼이주여성은 모두 40여명. 모두 울진군으로 시집을 와 한국인 남편과 결혼, 가정을 꾸민 새댁들이다. “결혼과 함께 농촌으로 이주를 해온 다문화가정의 주부들입니다. 아시아 각국에서 시집을 왔으니, 옛 어른들 표현을 빌리면 중국댁, 베트남댁, 캄보디아댁, 필리핀댁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하하.”
이들에게 타국인 한국에서의 시집살이는 어떨까? 예전처럼 ‘고추당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는 없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대한민국으로 시집와 겪는 문화적 소외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양동마을은 시집인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마을과 풍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니, 나름 의미가 깊다. 지난 2007년 결혼해 남편과의 슬하에 네 살, 세살배기 남매를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베트남댁 쯔엉티우옌 씨(23·울진군 후포면 후포1리)는 오늘 아들 정민수(3)와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함께 다시 오고 싶습니다.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 고향집 어머니가 생각납니다”라며, 아직 서툰 한국말로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고는 활짝 웃는다. 잠시나마 고국에 대한 향수와 근심을 털어내고 함께 걸어가는 모두의 발걸음이 사뭇 가볍고 행복해 보인다.
이 땅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새 식구들. 결혼이주여성들은 이제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세대를 이어가는 우리시대의 또다른 가족이며 뿌리일 것이다. 낯선 타국땅의 옛 전통마을을 둘러보는 그들의 첫 발걸음이 참 씩씩해 보인다. 대한민국으로 시집온 새 며느리들이 아이들을 앞세워 지금 그 길을 걸어간다. 어느 첫 길인들 낯설지 않으랴. 우리시대에 또하나의 새 길이 열리고 새 식구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기꺼운 마음으로 마중을 채비할 때다.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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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양동마을. |
윗마을 아랫마을 노랑 병아리 같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리고, 수학여행을 나온 학생들이 골목골목을 가득 메운다. 양동마을은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오늘은 먼 이국땅에서 이웃 울진으로 시집을 온 새색시와 며느리들이 가을나들이를 나섰다.
삶이 그대로 배어있는 우리 옛마을
경주의 양동마을(慶州 良洞)은 우리 옛 마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특히 전통이나 풍속이란 거창한 말로 포장할 것도 없이 그저 있는 살림살이 그대로, 현재까지도 주민들이 대부분 거주하며 살고 있다.
해설사 심명희씨(47·경주 신라문화원)는 “저는 고향이 합천인데, 경주가 고향인 사람들은 참 복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선조들의 전통유산을 물려받아 현재의 삶과 참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동마을은 천년 신라의 문화 안에서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를 오래도록 지켜온 마을”이라고 말했다.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지난해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집안이 500년 가까이 한 마을에 어울려 마을을 형성한 양반마을인데, 현재도 400여 세대의 자손들이 실제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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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이국에서 울진군으로 시집을 와 한국 며느리가 된 결혼이주여성들이 경주문화엑스포 축제 기간을 맞아 양동마을을 찾았다.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자리한 양동마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가와 이를 에워싸는 고즈넉한 110여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은 안계(安溪)라는 시내를 경계로 동서와 남북으로 나누어집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줄기인 안계는 밖에서 물이 돌아들어 마을 안에서 드는데, 드는 물길은 보이나 물이 나는 것이 보이지 않아 이를 부(富)의 기운이 밖으로 새진 않는 형세라 전해집니다. 또 마을은 안계를 경계로 하촌(下村)과 상촌(上村), 남북으로는 남촌과 북촌의 4개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는 초가가 기와집을 에워싸고 있는 형세입니다. 특히 양반과 상민이 가까이에 살았는데, 이는 중국의 종족마을이나 일본의 전통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입니다. 초가집 중 일부는 과거에 상민이나 노비가 살던 집입니다.”
한국의 사계와 어우러진 전통 풍경
토담길 사이를 걸으니 긴 역사의 향기와 현재의 삶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마을을 에둘러 보면 옛 마을의 풍모와 살림살이가 한눈에 보이는데, 수백년 된 기와집은 하늘 아래 큰기침을 하는 형세이고, 마을 앞 들판을 중심으로 나지막한 초가들이 빙 둘러 들녘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품새에서 삶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거의 마을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와 관습 등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봄, 가을이면 유치원 아이들부터 학생들 수학여행, 우리 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 아름다운 우리의 사계와 어우러진 한국적 풍경에 반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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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보문단지에 서 있는 경주타워는 서라벌의 상징이었던 황룡사 9층탑을 본떠 세운 구조물이다. |
현재 양동마을은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국보 1점과 보물 4점을 비롯해 총 24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먼저 마을 들머리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관가정(觀稼亭·보물 제442호)과 향단을 둘러본다. 향단은 많은 건축가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건축물 중 하나. 관가정과 더불어 마을 초입에 자리해 양동마을의 첫 풍모를 가늠케 한다. 관가정이 월성 손씨의 상징물이라면 향단은 여강 이씨의 상징물. 향단은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없는 이채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이어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 중 하나인 서백당과 이탁원 가옥을 둘러보고, 여강 이씨의 종가인 무첨당(보물 제411호)까지 에돌아 볼 수 있다.
우리 땅으로 시집온 며느리들의 나들이
오늘은 가까운 울진군에서 반가운 손님이 오는 날이다. 먼 이국에서 이웃한 울진군으로 시집을 와 이제는 한국 며느리가 된 결혼이주여성들이 경주문화엑스포 축제 기간을 맞아 경주 나들이를 온 것이다. 울진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장소라씨는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 3~4년차의 새댁들인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관광도 하고, 우리 문화와 풍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마을을 둘러보면 좋을 듯하여 양동마을을 찾았다”며 “낯설고 물선 이국땅으로 시집온 며느리들에게 우리 고유 풍습을 보여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함께 어울려 빨리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오늘 양동마을을 찾은 결혼이주여성은 모두 40여명. 모두 울진군으로 시집을 와 한국인 남편과 결혼, 가정을 꾸민 새댁들이다. “결혼과 함께 농촌으로 이주를 해온 다문화가정의 주부들입니다. 아시아 각국에서 시집을 왔으니, 옛 어른들 표현을 빌리면 중국댁, 베트남댁, 캄보디아댁, 필리핀댁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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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신라문화원의 문화해설사 심명희씨. |
이들에게 타국인 한국에서의 시집살이는 어떨까? 예전처럼 ‘고추당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는 없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대한민국으로 시집와 겪는 문화적 소외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양동마을은 시집인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마을과 풍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니, 나름 의미가 깊다. 지난 2007년 결혼해 남편과의 슬하에 네 살, 세살배기 남매를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베트남댁 쯔엉티우옌 씨(23·울진군 후포면 후포1리)는 오늘 아들 정민수(3)와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함께 다시 오고 싶습니다.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 고향집 어머니가 생각납니다”라며, 아직 서툰 한국말로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고는 활짝 웃는다. 잠시나마 고국에 대한 향수와 근심을 털어내고 함께 걸어가는 모두의 발걸음이 사뭇 가볍고 행복해 보인다.
이 땅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새 식구들. 결혼이주여성들은 이제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세대를 이어가는 우리시대의 또다른 가족이며 뿌리일 것이다. 낯선 타국땅의 옛 전통마을을 둘러보는 그들의 첫 발걸음이 참 씩씩해 보인다. 대한민국으로 시집온 새 며느리들이 아이들을 앞세워 지금 그 길을 걸어간다. 어느 첫 길인들 낯설지 않으랴. 우리시대에 또하나의 새 길이 열리고 새 식구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기꺼운 마음으로 마중을 채비할 때다.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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