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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바람의 언덕에서 띄우는 희망연가

ngo2002 2012. 6. 22. 13:21

길에서 만난 사람]바람의 언덕에서 띄우는 희망연가

ㆍ파주 평화누리에서 연 날리는 부부

내내 그리운 건 언제나 바람이다. 그래 종일 바람이 한 자락도 불지 않는 가을날이면 지루하고 권태롭기만 하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에 온전히 몸을 맡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저 언덕에 바람이 분다. 팔랑팔랑 바람개비 돌아가고 바람의 언덕에 가을 하늘 높이곰 희망의 연이 떠올랐다.

임진각 평화누리의 바람개비

모진 바람이 불던 그 언덕에
바람 부는 날이면 으레 그 언덕에 오르고 싶다. 그 땅의 바람은 모질고도 지독했고 바람 잦을 날이 없던 땅이기도 했다. 북녘땅을 마주한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다. 천둥소리만 같던 새벽의 폭음이 지축을 울리던 곳도 바로 저 언덕 너머였다. 남북분단의 그 폭풍만 같던 모진 바람은 60여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오래도록 아물지 못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저 너머에 그리움을 두고 온 이들은 해마다 언덕에 올라 통곡으로 사무친 울음을 참아내고, 내내 짝사랑만 같은 고백을 되뇌며 살아왔더랬다. 그렇게 바람이 꽃처럼 피고 져도 그리움은 좀처럼 가시지 못했었다.

“이 땅이 우리 민족의 한이 맺힌 땅 아닌가. 저 쪽으로 휴전선이 보이는 망배단 자리에는 아직도 피붙이를 두고 온 이들의 눈물이 얼룩져 있잖어, 임진각이 분단의 상징이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바람이 불어 추워지기 시작하면 저기 망배단에 사람들이 많이 올랐었는데. 그런데 세월이 하 좋아지니, 사람들이 평화롭게 가족과 나들이를 하는 장소가 되었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

이 땅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땅이다. 그래 바람 부는 날이면 누구든 그리움에 밀려오는 가슴을 안고 그 언덕에 올라 먼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바람에게 외로운 이의 사연을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저 언덕 저 편에 실어 보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가만히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부부가 함께 띄우는 희망연가
그 바람의 언덕에 다시 박하향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 언덕에 올라 꽃처럼 바람을 매만지고 코 끝에 퍼지는 바람의 향내를 음미한다. 또 그저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키 작은 팔랑개비를 바라보며 살짝이 손 내밀어 사랑을 고백하고, 천지사방에서 일렁이는 빨강 노랑 파랑의 바람꽃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그 언덕에서 한 부부가 연을 띄우며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움처럼 멀어져간 한 쌍의 연은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부부는 바람이 좋다고 했다. 부부는 바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좇아다닌다고 했다. 봄이면 꽃바람에 연을 싣고, 여름이면 태풍이 부는 언덕에 오르기도 했다. 또 가을이면 더 높아진 푸른 창공에 닿을 듯이 더 높이 연을 띄웠다. “젊은 시절 술을 좋아한 덕에 환갑쯤이 되니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체중이 많이 불고 허리도 도통 좋지 못했지. 그러다가 중국 여행을 한 번 갔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연을 날리는 것을 보고 건강에 좋을 듯하여 취미로 시작을 한 것이지.”

함께 연을 날리고 있는 부부 강연중·문영애씨. 강연중씨가 날리는 스포츠연은 연 길이만 해도 50~60m가 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강연중씨(66·인천시 간석동)가 연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환갑이 된 지난 2005년부터. 소규모 상업을 하던 강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니 급격히 건강이 좋지를 않았다. 이후 그는 봄·여름·가을·겨울 없이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디든 연을 좇아다녔다. 그렇게 다니던 것이 벌써 6년째. 이제 그는 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모임(대한민국예술연협회 인천지회)을 결성해 지회장을 맡아보며 전국 곳곳의 바람을 좇아다니며 연을 띄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인천 송도와 서울 하늘공원에서 자주 연을 날리는 편이지.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아내랑 무조건 연을 싸들고 집을 나서니까. 작년부터는 집사람도 함께 다니는데, 부부가 함께 하기에 연날리기처럼 좋은 취미가 없어. 건강에도 좋은 운동이에요.”

강씨와 부인 문영애씨(61)는 바람사이 좋은 곳을 두루 찾아다니고, 해마다 부산 해운대 등지에서 열리는 연날리기 대회에도 참가하며 연을 날린다. 마침 오늘은 파주 평화누리에서 연날리기 대회가 있는 날. 오늘도 부부는 바람의 언덕에서 연을 날린다. “바람이 들쭉날쭉 변덕이 없어야 연 날리기가 좋지. 오늘은 연을 땅바닥에 처박게 만드는 모팅이 바람 같어. 돌돌 도는 돌풍도 연을 날리기에는 안 좋아. 사람이건 바람이건 깨끗하고 날씬하게 곧게 부는 바람이 좋지.”

강씨는 바람이 애를 먹이면, 바람과 전쟁을 하듯이 온몸으로 싸움을 치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날리는 연은 크기와 힘이 상당하여 어지간한 젊은 사람도 바람의 장력을 견디어내기가 힘들다. 특히 그가 날리는 연은 방패연과 가오리연 등 우리의 전통연이 아닌 스포츠연. “우리 전통연은 작은 데 비해 날리는 이의 기교가 필요하고, 스포츠연은 좀 더 크고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데, 말 그대로 운동효과가 그만이지.” 강씨가 날리는 스포츠연은 연 길이만 해도 50~60m가 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바람의 장력을 이겨내야 하니, 체력이 많이 소모되고 운동효과가 큰 것이다.

임진각 평화누리

평화가 온누리에
부부는 연날리기가 참 자유로운 운동이라고 말한다. “여기가 임진각이잖아. 이제는 평화누리라고들 많이 하고. 이 언덕에서 자유와 평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지.” 그만큼 파주 평화누리공원은 바람이 많이 불어 연날리기에 좋은 장소. 29만㎢의 드넓게 펼쳐진 광장은 탁 트인 전경으로 언덕 위에 서면 누구든 연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평화누리 공원은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평화누리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역시 바람의 언덕.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소리치는 그 언덕에는 꽃바람이 부는 봄날이나 가을이면 어른아이 없이 자유롭게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일부르기 조각상

“바람이 부는 들판의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뭔지 모를 뿌듯함과 자신감이 느껴져서 참 좋아요. 그렇게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연을 날리면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고, 세상의 중심에 선 듯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누구나 조금만 익히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거침없이 부는 바람의 한가운데에서 영하 20도의 체감온도를 느끼며 겨울에도 연을 날린다는 강씨는 하늘과 맞닿은 바람의 언덕 위로 더 높이 연을 띄운다. 그는 마치 바람의 언덕 바로 옆에서 묵묵히 북녘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통일부르기’라는 거대한 대나무 조각상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제 사람들은 바람의 언덕에서 그리운 사연을 띄우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을 기도하는 모습이다.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바람의 언덕을 거니는 젊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실루엣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평화누리라는 이름처럼 광활한 대지 위에는 이제 자유와 사랑, 평화로운 모습들이 하나의 희망으로 어우러진다. 이내 바람이 불면 또 어떤가. 빨간 하이힐을 신은 처녀가 바람의 언덕에 올라 머릿결을 너풀거리고, 까만 눈동자의 아이들은 노랑·빨강·파랑색의 바람개비 둘레를 돌고 도는데.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여행작가>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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