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빛바랜 흑백풍경의 추억
ㆍ어느 늙은 사진사의 외길인생을 따라
해마다 축제가 열리는 때면 조용한 읍내가 사람으로 벅적대고 골목 골목이 주차장 꼴이 되지만, 멋쟁이 사진사 이씨 할아버지는 그때야말로 정말 신바람이 절로 난다. 흑백의 기억처럼 여전히 추억 속에 그대로 남아 평생을 살아온 멋쟁이 사진사 이씨 할아버지를 풍경 안에서 만났다.
흑백의 기억으로 남은 사진사
사진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돌배기 잔치라도 하면 으레 읍내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한방 박아야 했고, 처녀 총각 혼사 치르고 신혼여행지에 도착하면 가는 곳곳마다 베레모 삐딱하게 비껴 쓴 잘 생긴 사진사들이 농을 걸 듯 ‘오늘 지대로 (사진)함 박을라요?’라며 신혼부부들 꽁무니를 줄창 쫓아다녔다.
그러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시간을 까마득히 잊어버릴 때쯤이면, 단칸 신혼집에 곱게 싸인 소포 뭉치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봉투 안에는 다름 아닌 신랑 각시가 수줍게 웃고 있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백년가약(百年佳約)이란 멋드러진 글귀가 새겨진 그 사진은 한 가족의 성스러운 출발을 알리는 징표이기도 했고, 또 가난한 신혼집의 귀한 살림살이로 문갑 맨 앞자리를 차지하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잘 생기고 신랑 각시에게 농도 잘 걸던 사진사 총각 이씨도 어느덧 반백년의 세월 속에서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직도 무거운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의용 할아버지(72·충북 단양군 매포읍)가 도담삼봉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씨 할아버지는 어언 칠십 준령의 세월을 넘었다. “열여덟 살 적에 처음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찍기 시작한 것이 이제 반백년의 세월도 훌쩍 지나가버렸구먼. 그때야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아니여. 반딱반딱한 일제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가면 아가씨들한테 인기가 참말로 좋았구먼. 기막히게 좋은 시절이었는데.”
이씨 할아버지가 고향인 경북 영주를 무작정 떠나 단양에 홀로 자리를 잡은 시절이 어림잡아 55년 전쯤인 1950년 후반. 당시는 모두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한창 혈기가 넘치는 청년이었던 이씨 할아버지는 ‘기왕이면 폼도 나고 수입도 짭짤한 사진사’의 길을 택함에 망설임이 없었다. “내 고향이 경북 영주인데, 바로 옆구리잖어. 보아하니 사진사들이 아주 멋지드라고. 벌이도 솔찬헌 거 같고, 좀 재미있겠다 싶었지. 그 길로 여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제. 그러다 산 좋고, 물 맑고, 인심이 좋은 단양이 너무 좋아 평생 살고 있는 것이제.”
추억을 담는 사진사, 이씨 할아버지
젊은 시절 사진사의 폼에 반하고, 빼어난 단양팔경의 풍치에 반해 아예 고향을 떠나 단양에 눌러 앉아버린 셈이다. “그렇게 한 십년 펄럭펄럭 뛰어다니면서 안 가본 데가 없어. 옛날에는 경치 좋은 데를 명승지라고 혔잖어. 전국의 어지간한 명승지는 다 다녔지. 그러다가 스물 여덟에 장개를 들고 ‘단양사진관’이라고 매포읍에 간판을 걸고, 사진관을 본격적으로 혔어. 돌 사진도 찍고 환갑이랑 잔치때문에 출장도 나가고, 직원을 따로 두고 있었으니 장사가 잘된 편이었제. 안사람한테 가게 맡겨 놓고 나는 주로 출장을 다녔으니까. 또 단양팔경을 쫓아다니면서 관광객들 사진도 찍고. 재미났어.”
그 사이 관광객을 가득 태운 관광버스 두어 대가 주차장에 들어서고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이씨 할아버지가 부리나케 그들 사이로 달려가 흥정을 시작한다.
“지금도 도담삼봉은 우리나라에서 빼어난 경치를 알아준다니. 작년에 단양이 전국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이 왔다고 하던데. 한 팔백만 들었다나. 그 관광객이 제일 먼저 오는 디가 바로 여기고만. 옛날부터 알아주는 명승지여. 조선 들어설 때 공을 세웠던 정도전이 여기 경치에 반해 자기 호를 삼봉이라 한 디가 여기 아녀. 저 삼봉 위로 아침이면 해가 오르고 물안개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달빛이 기울고 참말로 대단하다니. 내가 생각키로는 단양팔경 중 으뜸이고. 전국에서도 아마 손꼽힐 껴.”
그렇게 단양의 절경에 감동한 이씨 할아버지는 관광객이 몰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단양팔경 여기저기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카메라 파인더에 행복한 사람들의 미소와 즐거움을 오래도록 담아 왔다.
“옛날에야 어디 제대로 여행들을 다녔나? 그저 농사일이나 끝나거나 하면 관광버스에 사람들 가득 싣고 와서 한때로 춤추고 노래 부르며 놀고 그랬지.” 이씨 할아버지의 말대로 남한강의 푸른 물결을 비단 삼아 두르고 우뚝 서 있는 도담삼봉의 모습이 가히 한국화 한 폭을 그려놓은 듯 아름답다.
“삼봉을 잘 보면 사람처럼 생겼어. 저 세 봉우리가 가운데는 남편이고 양쪽 봉우리는 본처와 애첩이여. 아들을 얻기 위해 ‘조강지처’를 외면하고 새로 들인 어여쁜 ‘첩’을 바라보는데, 그 남편한테 심통이 난 본처가 골이 나서 새침하게 돌아앉은 것이여. 단양에는 재미나고 우스운 이야기도 많고 특별한 사연들도 참 많어. 온달과 평강공주도 그렇고. 그래서 옛 어른들 중 문장 좀 하는 어른들이 단양팔경이라 이름을 짓고 시문을 읊조리던 곳으로 유명혔어. 찬찬히 둘러보면 좋은 게 많을 거여.”
단양에는 팔경이 이름 높다
단양은 예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이름이 높았다. 그래서 당대에 문장 좀 한다는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퇴계 이황도 제1경인 도담삼봉에 잠시 머물며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라는 시 한 수에 그 아름다움을 적어 노래했다고 전해온다.
도담삼봉을 나와 단양팔경을 찬찬히 둘러볼 작정을 한다. 그 중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제2경 ‘석문(石門)’과 깎아지른 절벽과 그 절벽에 뿌리 내린 소나무들의 기묘한 어울림으로 이름난 5경 사인암(舍人巖)을 먼저 둘러본다. 또 장회나루에서 충주호 유람선을 타야 볼 수 있다는 제 3경 구담봉(龜潭峰)과 4경 옥순봉(玉筍峯)을 만날 요량으로 청풍나루까지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오른다. 그리고 퇴계 이황이 ‘삼선구곡(三仙九曲)’으로 이름 붙인 선암계곡을 따라 6경 하선암(下仙岩), 7경 중선암을 둘러보고 59번 국도를 따라 단양팔경의 대미인 제8경 상선암(上仙岩)까지의 걸음을 서두른다.
이씨 할아버지의 말대로 단양의 풍경은 아름답고 참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온달과 평강이 사랑의 대서사를 이룬 곳도 바로 이곳이다. 사람들은 그 장대한 사랑의 흔적을 보물찾기라도 하듯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온달산성까지 오른다. 산성에 오르니 단양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러자 마치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이씨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내내 외길인생을 살아온 이씨 할아버지는 어쩌면 단양을 대표하는 제9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세월의 이름으로.
“인저 조금 있으면 단양읍내하고 온달산성 주변으로 축제가 열리누만. 시월 초이레부터 3일 동안 열리는데. 사람들이 제일 먼저 오는 곳이 바로 여기 도담삼봉이여. 삼봉 할아버지 덕택에 내가 평생 먹고 사는 셈이제. 그러니 단양이 나한테 제대로 명당이여. 여서 기운 있을 때까지 오래도록 사진 찍다가 조용히 가문 되는 것이제.”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해마다 축제가 열리는 때면 조용한 읍내가 사람으로 벅적대고 골목 골목이 주차장 꼴이 되지만, 멋쟁이 사진사 이씨 할아버지는 그때야말로 정말 신바람이 절로 난다. 흑백의 기억처럼 여전히 추억 속에 그대로 남아 평생을 살아온 멋쟁이 사진사 이씨 할아버지를 풍경 안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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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8경 중 1경으로 꼽히는 도담삼봉. |
흑백의 기억으로 남은 사진사
사진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돌배기 잔치라도 하면 으레 읍내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한방 박아야 했고, 처녀 총각 혼사 치르고 신혼여행지에 도착하면 가는 곳곳마다 베레모 삐딱하게 비껴 쓴 잘 생긴 사진사들이 농을 걸 듯 ‘오늘 지대로 (사진)함 박을라요?’라며 신혼부부들 꽁무니를 줄창 쫓아다녔다.
그러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시간을 까마득히 잊어버릴 때쯤이면, 단칸 신혼집에 곱게 싸인 소포 뭉치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봉투 안에는 다름 아닌 신랑 각시가 수줍게 웃고 있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백년가약(百年佳約)이란 멋드러진 글귀가 새겨진 그 사진은 한 가족의 성스러운 출발을 알리는 징표이기도 했고, 또 가난한 신혼집의 귀한 살림살이로 문갑 맨 앞자리를 차지하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잘 생기고 신랑 각시에게 농도 잘 걸던 사진사 총각 이씨도 어느덧 반백년의 세월 속에서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직도 무거운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의용 할아버지(72·충북 단양군 매포읍)가 도담삼봉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씨 할아버지는 어언 칠십 준령의 세월을 넘었다. “열여덟 살 적에 처음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찍기 시작한 것이 이제 반백년의 세월도 훌쩍 지나가버렸구먼. 그때야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아니여. 반딱반딱한 일제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가면 아가씨들한테 인기가 참말로 좋았구먼. 기막히게 좋은 시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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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8경 중 5경에 꼽히는 사인암. |
이씨 할아버지가 고향인 경북 영주를 무작정 떠나 단양에 홀로 자리를 잡은 시절이 어림잡아 55년 전쯤인 1950년 후반. 당시는 모두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한창 혈기가 넘치는 청년이었던 이씨 할아버지는 ‘기왕이면 폼도 나고 수입도 짭짤한 사진사’의 길을 택함에 망설임이 없었다. “내 고향이 경북 영주인데, 바로 옆구리잖어. 보아하니 사진사들이 아주 멋지드라고. 벌이도 솔찬헌 거 같고, 좀 재미있겠다 싶었지. 그 길로 여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제. 그러다 산 좋고, 물 맑고, 인심이 좋은 단양이 너무 좋아 평생 살고 있는 것이제.”
추억을 담는 사진사, 이씨 할아버지
젊은 시절 사진사의 폼에 반하고, 빼어난 단양팔경의 풍치에 반해 아예 고향을 떠나 단양에 눌러 앉아버린 셈이다. “그렇게 한 십년 펄럭펄럭 뛰어다니면서 안 가본 데가 없어. 옛날에는 경치 좋은 데를 명승지라고 혔잖어. 전국의 어지간한 명승지는 다 다녔지. 그러다가 스물 여덟에 장개를 들고 ‘단양사진관’이라고 매포읍에 간판을 걸고, 사진관을 본격적으로 혔어. 돌 사진도 찍고 환갑이랑 잔치때문에 출장도 나가고, 직원을 따로 두고 있었으니 장사가 잘된 편이었제. 안사람한테 가게 맡겨 놓고 나는 주로 출장을 다녔으니까. 또 단양팔경을 쫓아다니면서 관광객들 사진도 찍고. 재미났어.”
그 사이 관광객을 가득 태운 관광버스 두어 대가 주차장에 들어서고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이씨 할아버지가 부리나케 그들 사이로 달려가 흥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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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담삼봉을 배경으로 관광객의 사진을 찍고 있는 이의용 할아버지. |
“지금도 도담삼봉은 우리나라에서 빼어난 경치를 알아준다니. 작년에 단양이 전국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이 왔다고 하던데. 한 팔백만 들었다나. 그 관광객이 제일 먼저 오는 디가 바로 여기고만. 옛날부터 알아주는 명승지여. 조선 들어설 때 공을 세웠던 정도전이 여기 경치에 반해 자기 호를 삼봉이라 한 디가 여기 아녀. 저 삼봉 위로 아침이면 해가 오르고 물안개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달빛이 기울고 참말로 대단하다니. 내가 생각키로는 단양팔경 중 으뜸이고. 전국에서도 아마 손꼽힐 껴.”
그렇게 단양의 절경에 감동한 이씨 할아버지는 관광객이 몰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단양팔경 여기저기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카메라 파인더에 행복한 사람들의 미소와 즐거움을 오래도록 담아 왔다.
“옛날에야 어디 제대로 여행들을 다녔나? 그저 농사일이나 끝나거나 하면 관광버스에 사람들 가득 싣고 와서 한때로 춤추고 노래 부르며 놀고 그랬지.” 이씨 할아버지의 말대로 남한강의 푸른 물결을 비단 삼아 두르고 우뚝 서 있는 도담삼봉의 모습이 가히 한국화 한 폭을 그려놓은 듯 아름답다.
“삼봉을 잘 보면 사람처럼 생겼어. 저 세 봉우리가 가운데는 남편이고 양쪽 봉우리는 본처와 애첩이여. 아들을 얻기 위해 ‘조강지처’를 외면하고 새로 들인 어여쁜 ‘첩’을 바라보는데, 그 남편한테 심통이 난 본처가 골이 나서 새침하게 돌아앉은 것이여. 단양에는 재미나고 우스운 이야기도 많고 특별한 사연들도 참 많어. 온달과 평강공주도 그렇고. 그래서 옛 어른들 중 문장 좀 하는 어른들이 단양팔경이라 이름을 짓고 시문을 읊조리던 곳으로 유명혔어. 찬찬히 둘러보면 좋은 게 많을 거여.”
단양에는 팔경이 이름 높다
단양은 예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이름이 높았다. 그래서 당대에 문장 좀 한다는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퇴계 이황도 제1경인 도담삼봉에 잠시 머물며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라는 시 한 수에 그 아름다움을 적어 노래했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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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연을 담고 있는 온달산성. |
도담삼봉을 나와 단양팔경을 찬찬히 둘러볼 작정을 한다. 그 중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제2경 ‘석문(石門)’과 깎아지른 절벽과 그 절벽에 뿌리 내린 소나무들의 기묘한 어울림으로 이름난 5경 사인암(舍人巖)을 먼저 둘러본다. 또 장회나루에서 충주호 유람선을 타야 볼 수 있다는 제 3경 구담봉(龜潭峰)과 4경 옥순봉(玉筍峯)을 만날 요량으로 청풍나루까지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오른다. 그리고 퇴계 이황이 ‘삼선구곡(三仙九曲)’으로 이름 붙인 선암계곡을 따라 6경 하선암(下仙岩), 7경 중선암을 둘러보고 59번 국도를 따라 단양팔경의 대미인 제8경 상선암(上仙岩)까지의 걸음을 서두른다.
이씨 할아버지의 말대로 단양의 풍경은 아름답고 참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온달과 평강이 사랑의 대서사를 이룬 곳도 바로 이곳이다. 사람들은 그 장대한 사랑의 흔적을 보물찾기라도 하듯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온달산성까지 오른다. 산성에 오르니 단양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러자 마치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이씨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내내 외길인생을 살아온 이씨 할아버지는 어쩌면 단양을 대표하는 제9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세월의 이름으로.
“인저 조금 있으면 단양읍내하고 온달산성 주변으로 축제가 열리누만. 시월 초이레부터 3일 동안 열리는데. 사람들이 제일 먼저 오는 곳이 바로 여기 도담삼봉이여. 삼봉 할아버지 덕택에 내가 평생 먹고 사는 셈이제. 그러니 단양이 나한테 제대로 명당이여. 여서 기운 있을 때까지 오래도록 사진 찍다가 조용히 가문 되는 것이제.”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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