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햇살과 바람, 소금꽃의 고장
ㆍ영광 법성포의 굴비와 천일염 이야기
영광은 햇빛과 바람, 그리고 짭쪼롬한 소금기가 배어 있는 땅이다. 갯벌을 바라보고 돌아앉은 갯마을 새악시의 붉은 댕기가 칠산도 앞바다의 붉은 노을과 잘도 어울린다. 이 땅에는 기다림의 애환이 여전하고 삶에 부대끼며 살아온 이들의 땀과 눈물이 진하게 배어 있다. 월령대 위로 달이 차오르니 법성포 다랑가지(多浪佳地)에 파도가 일렁인다. 밤새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붉은 햇발에 소금꽃이 피어나겠지. 소금꽃 피고 지는 천일염의 고장, 영광으로의 길이다.
법성포의 짭쪼롬한 옛이야기
비릿한 갯내음을 따라 법성포로 길을 잡는다. 영광의 역사에서 굴비를 빼놓을 수 없고, 법성포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굴비(屈非)는 한자 그대로 ‘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고려 인종 때 왕위를 찬탈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이자겸이 이곳으로 유배를 온 후,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좋아 임금에게 진상하기로 합니다. 허나 혹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염려하여,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비록 ‘귀양살이 신세이긴 하나, 처음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았던 것입니다.”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인 서환주씨를 따라 법성포 입구에 들어서자 반질반질한 굴비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추석대목을 지난 포구는 한산하다. 옛 포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갯가를 따라 굴비 가게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법성포는 조선시대 말까지 곡식과 특산물을 거둬들여 한양으로 보내는 조창이 있었습니다. 호남 제일의 포구로 해상물류기지 역할도 했었는데, 조기 말리는 덕석 수백개가 포구를 가득 메우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영광은 조선시대에는 ‘옥당골’이라 했었다. ‘아들을 낳아 원님으로 보내려면 옥당골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광은 물산과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그 중심에 법성포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가 침략하고 내륙운송이 점차 발달하면서 그 명성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법성포의 영화는 사라지고 포구는 쇠락한 어촌으로 기우는 듯했다.
“옛날부터 영광사람들은 칠산 앞바다 일곱 섬을 일산(一山)부터 칠산(七山)까지 이름을 붙이고 섬(島)이라 안 허고 산(山)이라 했습니다. 아직도 칠산 앞바다라 부르며 단오절이면 칠산도 풍어제를 지냅니다. 벌써 400년이 넘은 풍습인데, 백성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용왕님께 치성을 드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칠산 앞바다와 법성포는 영광사람들에게는 신성한 영역이자 삶의 터이기도 했습니다.”
법성포에는 아직도 굴비가게가 400여곳 남짓 밀집해 있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전통 굴비가게를 하는 강대중씨(60·양선굴비·061-356-3084)가 굴비 염장하는 것을 보여준다며 가게로 손을 이끈다.
“옛날만큼은 몬혀도 아직까지 영광굴비는 알아준다 안혀요. 옛날에는 봄이면 칠산 앞바다에서 북상하는 조기 떼를 쫓을라고 배들이 엄청 들왔다고 헙디다. 뱃사람들이 식구미도 채우고 그물 손보던 곳이 바로 여그지라. 식구미요? 어부들이 바다에서 먹고 쓰는 식량이랑 생필품을 모다 식구미라 안혀요. 우리 코흘리개적만 해도 ‘돈 실로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선원들 꽁무니를 쫓아댕겼응께요.”
굴비는 섭장이 제대로 돼야 제 맛
회유성 어류인 조기는 흑산도 근해에서 겨울을 보내고 곡우(양력 4월 20일께) 때면 칠산 앞바다를 지나 서해 북쪽 연평도까지 북상한다. 그 무렵에 잡은 알이 꽉 찬 참조기를 3년 묵은 봄 소금에 말린 것을 ‘곡우살 굴비’ 또는 ‘오가재비 굴비’라 하여 최고로 쳤는데, 알이 꽉 차고 반지르르하게 황금빛 윤기가 나는 것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영광굴비는 참조기로만 맹급니다. 머리 속에 단단한 뼈가 들어 있어 석수어(石首魚)라고도 하는디, 이마에 다이아몬드 모냥으로 쬐만한 돌이 이쁘게 박혀 있지라. 그란디 요즘은 칠산 앞바다의 수온이 따뜻해져 조기가 안 납니다. 저 아래 추자도 앞바다에서 잡힌 봄조기를 섭장한 참굴비가 그 중 제일로 칩니다. 근디 그것도 귀허고 값도 겁나게 비싸불지요.”
법성포에서 나고 자라서 20년 넘게 굴비가게를 하고 있는 강씨는 영광굴비 맛의 비결이 ‘섭장’과 천일염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적당히 부는 차가운 바람과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천일염과 조기를 켜켜이 재는 섭장의 손맛이 명품 굴비를 만드는 비법이라는 것이다.
“해가 쨍하니 좋고 바람이 션하고 소금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요. 굴비랑, 젓갈이랑 영광 음식이 다 그래서 맛나는 것잉께요. 여서 백수해안도로를 쭉 타고 가면 젓갈로 유명한 설도항이랑 염산 염전이 있어라. 소금밭이 허벌나게 크고 장관이니께 게 한 번 휘둘러보쇼 잉.”
백수해안도로 따라 설도항까지
강씨에게 재차 길 물음을 하고 국도 77호선을 연결하는 군도 14호선을 따라 백수해안도로를 탄다. 백수해안도로는 백수읍 길용리 원불교 영산성지에서 구수리, 대신리를 지나 백암리 동백마을까지 모두 18㎞의 해안도로를 일컫는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에 접해 있는데, 짙은 황해바다와 끝없이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어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특히 백수해안도로의 백미는 바로 일몰의 장관. 해안선을 따라 거북바위, 모자바위, 고두섬 등 기묘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붉은 노을이 장관을 이루는데, 칠산 앞바다의 일곱 형제 섬 사이로 붉은 해가 내려앉는다. 특히 환상적인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전시관(061-350-5600)의 일몰 포인트는 사진작가들뿐 아니라 젊은 연인들의 프로포즈 장소로 인기가 높다.
먼저 백수해안도로를 벗어나 염산 설도항으로 접어든다. 염산면의 끝자락에 위치한 설도항은 1934년쯤 섬에서 육지로 탈바꿈한 작고 소박한 포구다. 부둣가에는 갯어미들이 황석어젓, 멸치젓, 짜랭이젓(병치새끼젓), 갈치속젓, 까나리액젓 등 다양한 젓갈을 내어놓고 손님을 불러 세운다. “여기가 옛날에는 설도, ‘누운 섬(臥島)’이라고 혔는디, 혀가 짧은 사람들 땜시 ‘눈섬(雪島)’이 돼버렸당께요. 보리새우, 낙지, 꽃게랑 백합, 물메기, 서대, 쫄쫄이 미역이 젤로 많이 나는디, 특히 새우젓은 6월쯤에 잡아서 3년 이상 묵힌 천일염으로 절여 맹근당께요. 색깔이 히여불고 통통해서 씹는 맛이 참말로 고소혀불지라.”
설도항을 돌아나오니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이 펼쳐지고 이내 바둑판 같은 염전들이 나타난다. 영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천일염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천일염은 연 4만2000여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14%를 차지한다. 염산면과 백수읍 바닷가 일대 124곳(580헥타르)에 염전이 둥지를 틀고 있는데, 여전히 재래식 염전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최근 친환경 염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중 가장 그 규모가 크고 친환경 염전을 대표하는 영백염전에 들어선다. 때마침 가을 오후의 볕이 한창이어서 염부 이민철씨(53)가 염판에서 춤사위를 한 판 펼치듯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태양 아래 은빛으로 빛나는 새하얀 소금꽃 무리가 이씨의 몸짓에 따라 구름처럼 일렁이고 다시 솜털구름처럼 흩어지기를 여러 차례. 구릿빛 얼굴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서야 염판에 한 무더기의 소금이 쌓인다. 영백염전의 오주섭 이사는 “천일염이 그동안 광물로 취급돼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법적으로 식품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 고유의 천일염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부터는 전통의 제조방식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환경친화적인 염전을 조성하였습니다. 갯벌이 살아 숨쉴 수 있는 도자기판 결정지를 기반으로 재래식 슬레이트 지붕 등 낡은 시설을 과감히 걷어냈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영백염전의 오가닉 갯벌소금은 지난해 2월 국내 천일염으로는 처음으로 ‘코리아 천국소금’이란 브랜드로 미국에 수출되었다. 아마존 닷컴의 세계 소금 쇼핑몰인 SALTS OF THE 7 SEAS사에서 시중가보다 2~3배의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며, 최고의 친환경 소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소금으로 알려진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 나트륨 함량이 적으면서도 마그네슘·칼륨·칼슘 등 미네랄 성분이 훨씬 많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광굴비와 이곳 설도항의 젓갈 등의 명성은 바로 천혜의 자연 풍광을 이용한 질 좋은 천일염 때문입니다. 영광을 예전에는 쌀과 소금, 목화가 많이 나 삼백의 고장으로 불렀습니다. 서해 바람과 햇볕, 그리고 눈빛 시린 천일염.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영광의 명성을 이어온 것이지요. 어쩌면 저 소금꽃은 햇볕과 바람, 그리고 오래도록 이어내려 온 우리 조상들의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일지도 모릅니다.”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
영광은 햇빛과 바람, 그리고 짭쪼롬한 소금기가 배어 있는 땅이다. 갯벌을 바라보고 돌아앉은 갯마을 새악시의 붉은 댕기가 칠산도 앞바다의 붉은 노을과 잘도 어울린다. 이 땅에는 기다림의 애환이 여전하고 삶에 부대끼며 살아온 이들의 땀과 눈물이 진하게 배어 있다. 월령대 위로 달이 차오르니 법성포 다랑가지(多浪佳地)에 파도가 일렁인다. 밤새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붉은 햇발에 소금꽃이 피어나겠지. 소금꽃 피고 지는 천일염의 고장, 영광으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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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전시관의 일몰 포인트는 사진작가들의 유명 출사지이자, 젊은 연인들에겐 프로포즈 장소로 인기가 높다. |
법성포의 짭쪼롬한 옛이야기
비릿한 갯내음을 따라 법성포로 길을 잡는다. 영광의 역사에서 굴비를 빼놓을 수 없고, 법성포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굴비(屈非)는 한자 그대로 ‘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고려 인종 때 왕위를 찬탈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이자겸이 이곳으로 유배를 온 후,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좋아 임금에게 진상하기로 합니다. 허나 혹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염려하여,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비록 ‘귀양살이 신세이긴 하나, 처음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았던 것입니다.”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인 서환주씨를 따라 법성포 입구에 들어서자 반질반질한 굴비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추석대목을 지난 포구는 한산하다. 옛 포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갯가를 따라 굴비 가게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법성포는 조선시대 말까지 곡식과 특산물을 거둬들여 한양으로 보내는 조창이 있었습니다. 호남 제일의 포구로 해상물류기지 역할도 했었는데, 조기 말리는 덕석 수백개가 포구를 가득 메우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영광은 조선시대에는 ‘옥당골’이라 했었다. ‘아들을 낳아 원님으로 보내려면 옥당골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광은 물산과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그 중심에 법성포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가 침략하고 내륙운송이 점차 발달하면서 그 명성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법성포의 영화는 사라지고 포구는 쇠락한 어촌으로 기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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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백 염전 |
“옛날부터 영광사람들은 칠산 앞바다 일곱 섬을 일산(一山)부터 칠산(七山)까지 이름을 붙이고 섬(島)이라 안 허고 산(山)이라 했습니다. 아직도 칠산 앞바다라 부르며 단오절이면 칠산도 풍어제를 지냅니다. 벌써 400년이 넘은 풍습인데, 백성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용왕님께 치성을 드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칠산 앞바다와 법성포는 영광사람들에게는 신성한 영역이자 삶의 터이기도 했습니다.”
법성포에는 아직도 굴비가게가 400여곳 남짓 밀집해 있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전통 굴비가게를 하는 강대중씨(60·양선굴비·061-356-3084)가 굴비 염장하는 것을 보여준다며 가게로 손을 이끈다.
“옛날만큼은 몬혀도 아직까지 영광굴비는 알아준다 안혀요. 옛날에는 봄이면 칠산 앞바다에서 북상하는 조기 떼를 쫓을라고 배들이 엄청 들왔다고 헙디다. 뱃사람들이 식구미도 채우고 그물 손보던 곳이 바로 여그지라. 식구미요? 어부들이 바다에서 먹고 쓰는 식량이랑 생필품을 모다 식구미라 안혀요. 우리 코흘리개적만 해도 ‘돈 실로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선원들 꽁무니를 쫓아댕겼응께요.”
굴비는 섭장이 제대로 돼야 제 맛
회유성 어류인 조기는 흑산도 근해에서 겨울을 보내고 곡우(양력 4월 20일께) 때면 칠산 앞바다를 지나 서해 북쪽 연평도까지 북상한다. 그 무렵에 잡은 알이 꽉 찬 참조기를 3년 묵은 봄 소금에 말린 것을 ‘곡우살 굴비’ 또는 ‘오가재비 굴비’라 하여 최고로 쳤는데, 알이 꽉 차고 반지르르하게 황금빛 윤기가 나는 것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영광굴비는 참조기로만 맹급니다. 머리 속에 단단한 뼈가 들어 있어 석수어(石首魚)라고도 하는디, 이마에 다이아몬드 모냥으로 쬐만한 돌이 이쁘게 박혀 있지라. 그란디 요즘은 칠산 앞바다의 수온이 따뜻해져 조기가 안 납니다. 저 아래 추자도 앞바다에서 잡힌 봄조기를 섭장한 참굴비가 그 중 제일로 칩니다. 근디 그것도 귀허고 값도 겁나게 비싸불지요.”
법성포에서 나고 자라서 20년 넘게 굴비가게를 하고 있는 강씨는 영광굴비 맛의 비결이 ‘섭장’과 천일염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적당히 부는 차가운 바람과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천일염과 조기를 켜켜이 재는 섭장의 손맛이 명품 굴비를 만드는 비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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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부 이민철씨 |
백수해안도로 따라 설도항까지
강씨에게 재차 길 물음을 하고 국도 77호선을 연결하는 군도 14호선을 따라 백수해안도로를 탄다. 백수해안도로는 백수읍 길용리 원불교 영산성지에서 구수리, 대신리를 지나 백암리 동백마을까지 모두 18㎞의 해안도로를 일컫는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에 접해 있는데, 짙은 황해바다와 끝없이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어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특히 백수해안도로의 백미는 바로 일몰의 장관. 해안선을 따라 거북바위, 모자바위, 고두섬 등 기묘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붉은 노을이 장관을 이루는데, 칠산 앞바다의 일곱 형제 섬 사이로 붉은 해가 내려앉는다. 특히 환상적인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전시관(061-350-5600)의 일몰 포인트는 사진작가들뿐 아니라 젊은 연인들의 프로포즈 장소로 인기가 높다.
먼저 백수해안도로를 벗어나 염산 설도항으로 접어든다. 염산면의 끝자락에 위치한 설도항은 1934년쯤 섬에서 육지로 탈바꿈한 작고 소박한 포구다. 부둣가에는 갯어미들이 황석어젓, 멸치젓, 짜랭이젓(병치새끼젓), 갈치속젓, 까나리액젓 등 다양한 젓갈을 내어놓고 손님을 불러 세운다. “여기가 옛날에는 설도, ‘누운 섬(臥島)’이라고 혔는디, 혀가 짧은 사람들 땜시 ‘눈섬(雪島)’이 돼버렸당께요. 보리새우, 낙지, 꽃게랑 백합, 물메기, 서대, 쫄쫄이 미역이 젤로 많이 나는디, 특히 새우젓은 6월쯤에 잡아서 3년 이상 묵힌 천일염으로 절여 맹근당께요. 색깔이 히여불고 통통해서 씹는 맛이 참말로 고소혀불지라.”
설도항을 돌아나오니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이 펼쳐지고 이내 바둑판 같은 염전들이 나타난다. 영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천일염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천일염은 연 4만2000여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14%를 차지한다. 염산면과 백수읍 바닷가 일대 124곳(580헥타르)에 염전이 둥지를 틀고 있는데, 여전히 재래식 염전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최근 친환경 염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중 가장 그 규모가 크고 친환경 염전을 대표하는 영백염전에 들어선다. 때마침 가을 오후의 볕이 한창이어서 염부 이민철씨(53)가 염판에서 춤사위를 한 판 펼치듯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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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비로 유명한 영광 법성포. |
태양 아래 은빛으로 빛나는 새하얀 소금꽃 무리가 이씨의 몸짓에 따라 구름처럼 일렁이고 다시 솜털구름처럼 흩어지기를 여러 차례. 구릿빛 얼굴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서야 염판에 한 무더기의 소금이 쌓인다. 영백염전의 오주섭 이사는 “천일염이 그동안 광물로 취급돼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법적으로 식품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 고유의 천일염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부터는 전통의 제조방식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환경친화적인 염전을 조성하였습니다. 갯벌이 살아 숨쉴 수 있는 도자기판 결정지를 기반으로 재래식 슬레이트 지붕 등 낡은 시설을 과감히 걷어냈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영백염전의 오가닉 갯벌소금은 지난해 2월 국내 천일염으로는 처음으로 ‘코리아 천국소금’이란 브랜드로 미국에 수출되었다. 아마존 닷컴의 세계 소금 쇼핑몰인 SALTS OF THE 7 SEAS사에서 시중가보다 2~3배의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며, 최고의 친환경 소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소금으로 알려진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 나트륨 함량이 적으면서도 마그네슘·칼륨·칼슘 등 미네랄 성분이 훨씬 많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광굴비와 이곳 설도항의 젓갈 등의 명성은 바로 천혜의 자연 풍광을 이용한 질 좋은 천일염 때문입니다. 영광을 예전에는 쌀과 소금, 목화가 많이 나 삼백의 고장으로 불렀습니다. 서해 바람과 햇볕, 그리고 눈빛 시린 천일염.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영광의 명성을 이어온 것이지요. 어쩌면 저 소금꽃은 햇볕과 바람, 그리고 오래도록 이어내려 온 우리 조상들의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일지도 모릅니다.”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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