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13시간의 항해, 느리게 가는 제주
ㆍ평택-제주간 카페리호 여행
모두가 빠른 길을 선택하는 시대다. 꽉 막힌 도로에서 벗어나 가장 멀리, 가장 오랫동안 돌아가는 길을 택해 제주로 향한다. 제주까지 무려 13시간의 항해. 평택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가을 한낮의 땡볕이 사그라질 무렵, 뱃고동을 울리고 천천히 미끄러지듯 바다로 흘러든다. 항해 시간만 무려 왕복 26시간. 제주까지 가장 느리게 가는 여행길, 마치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바쁜 일상 벗어나 ‘새로운 여행의 시작’
지난 3월부터 평택-제주간을 오가는 카페리호급 여객선(세창코델리아호, 대표전화 1577-4287) 노선이 정비되어 출항 7개월째에 접어 들었다. 봄철 행락객과 여름 바캉스 시즌까지 만선을 이룬 배는 이제 잠시 휴식 같은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출항 시간이 임박하자 승객들이 하나 둘 배에 올라선다. 가장 먼저 대형 화물차가 승선을 마치고 커다란 짐보따리를 든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왁자지껄하게 배에 오른다. 그리고 그리 급할 게 없는 여행객들은 커다란 배의 위용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야, 마도로스 복장의 승무원과 기념촬영까지 마친 후에야 비로소 배에 오른다.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란 커다란 현수막을 마주하자 여행객들은 자못 설레는 모습이다.
여객들의 승선을 돕는 여객사무장 오철수씨가 승객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고, 마지막 손님의 짐보따리를 챙기고 나서야 출항 신호를 보낸다. “안개가 조금 끼어 있지만 이 정도의 날씨면 꽤 근사한 일몰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7시 출항이니 저녁식사를 하시고 나면 서해 앞바다의 환상적인 일몰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여름 휴가를 미루어 아주 특별한 여행의 기대로 선상여행과 제주 올레길 여행을 준비했다는 젊은 연인은 서해에서 맞이하는 일몰의 기대로 한껏 설레는 표정이다.
“왕복 26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올레길 도보여행과 함께 준비했습니다. 조금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기에 좋은 듯합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망망대해, 등대처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출항 후 두 시간 남짓. 평택항을 떠난 배는 이미 넓은 바다로 유유히 나아간다. 출항의 긴장감이 조금 사라진 뒤에야 조심스레 조타실의 문을 두드린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아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무려 13시간의 여정. 이 지루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은 누굴까. 그는 왜 이리 느린 길을 택했을까. 모두가 빠른 일상을 쫓는 이 시대에 그는 왜 이리 늦은 일상을 직업으로 택한 걸까.
“저기 등대 보이시지요? 저는 바다도 좋아하지만 저기 불빛 반짝이는 등대를 참 좋아합니다. 밤새도록 홀로 망망대해에서 불을 밝히고 서 있는 것이 믿음직하지요. 어쩌면 제 35년여 동안의 바다인생에 가장 오랜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친구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자신 역시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며 웃는 최준우 선장(56·세창코델리아호)은 20대 초반에 처음 배에 올라 3등 항해사부터 시작해 세계의 바다 곳곳을 누볐다. 10여년 전부터 국내외 여객선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 봄 코델리아호 출항과 함께 제주-평택간 운항 책임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일 오전 8시 30분 제주에 입항할 때까지 고객들이 불편함 없이 행복한 여행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조타실에는 최 선장을 포함해 항해사와 조타수가 작은 불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망망한 바다를 응시한다. “배가 굉장히 천천히 가지요. 배의 무게가 무려 1만6000톤급입니다. 1만2000마력의 엔진으로 대략 2만4000마리의 말이 끄는 힘으로 배가 움직입니다. 약 20노트의 속력인데, 시속 38km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거의 진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가는데,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다보면 참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34년 동안 선상에서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느낀 점은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승객들도 바다를 오래도록 응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으시거나, 또 누구나 잊고 지내던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는 순간을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관조하다 보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요동도 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배에서 짙은 바다를 바라보니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유영과 같은 착각이 든다. 배는 바다로 흐르고 마음은 이내 고요해진다. 마치 꿈처럼.
250마일, 꿈처럼 서해를 흐르다
저녁 식사를 마친 승객들은 커다란 배의 외형을 둘러볼 셈으로 2·3층 객실과 선상까지 돌아본다. 선폭 150여m의 코델리아호는 카페리호급 여객선으로 승객 900명과 차량 193대를 선적할 수 있는 규모. 일주일에 평택-제주를 3회 왕복 운항하는데, 254마일 13시간으로 국내 여객선 중 가장 멀리 운항한다. 선내에는 호프바, 편의점, 해수목욕탕, 노래방, 오락실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객실은 VIP실로얄실, 로얄가족실, 가족실 등의 호텔급 객실과 여러 명이 함께 숙박하는 2등실, 3등실로 구분되어 있다. 코델리아호의 본부장인 김종찬씨는 “고객들의 여흥을 위해 저녁마다 노래대회 등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또 고객들이 직접 배를 운항하는 조타실을 둘러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자녀를 둔 가족여행객들에게 우리 선장님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일부 예약 고객에 한하여 조타실을 개방하고 선장님과 함께하는 마도로스 기념촬영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며 앞으로의 운항 프로그램을 귀띔한다.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모두가 빠른 길을 선택하는 시대다. 꽉 막힌 도로에서 벗어나 가장 멀리, 가장 오랫동안 돌아가는 길을 택해 제주로 향한다. 제주까지 무려 13시간의 항해. 평택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가을 한낮의 땡볕이 사그라질 무렵, 뱃고동을 울리고 천천히 미끄러지듯 바다로 흘러든다. 항해 시간만 무려 왕복 26시간. 제주까지 가장 느리게 가는 여행길, 마치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 |
| 평택-제주간을 오가는 여객선 세창코델리아호에 승선하는 사람들. |
바쁜 일상 벗어나 ‘새로운 여행의 시작’
지난 3월부터 평택-제주간을 오가는 카페리호급 여객선(세창코델리아호, 대표전화 1577-4287) 노선이 정비되어 출항 7개월째에 접어 들었다. 봄철 행락객과 여름 바캉스 시즌까지 만선을 이룬 배는 이제 잠시 휴식 같은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출항 시간이 임박하자 승객들이 하나 둘 배에 올라선다. 가장 먼저 대형 화물차가 승선을 마치고 커다란 짐보따리를 든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왁자지껄하게 배에 오른다. 그리고 그리 급할 게 없는 여행객들은 커다란 배의 위용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야, 마도로스 복장의 승무원과 기념촬영까지 마친 후에야 비로소 배에 오른다.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란 커다란 현수막을 마주하자 여행객들은 자못 설레는 모습이다.
여객들의 승선을 돕는 여객사무장 오철수씨가 승객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고, 마지막 손님의 짐보따리를 챙기고 나서야 출항 신호를 보낸다. “안개가 조금 끼어 있지만 이 정도의 날씨면 꽤 근사한 일몰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7시 출항이니 저녁식사를 하시고 나면 서해 앞바다의 환상적인 일몰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여름 휴가를 미루어 아주 특별한 여행의 기대로 선상여행과 제주 올레길 여행을 준비했다는 젊은 연인은 서해에서 맞이하는 일몰의 기대로 한껏 설레는 표정이다.
“왕복 26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올레길 도보여행과 함께 준비했습니다. 조금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기에 좋은 듯합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망망대해, 등대처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 |
| 세창코델리아호 최준우 선장 |
“저기 등대 보이시지요? 저는 바다도 좋아하지만 저기 불빛 반짝이는 등대를 참 좋아합니다. 밤새도록 홀로 망망대해에서 불을 밝히고 서 있는 것이 믿음직하지요. 어쩌면 제 35년여 동안의 바다인생에 가장 오랜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친구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자신 역시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며 웃는 최준우 선장(56·세창코델리아호)은 20대 초반에 처음 배에 올라 3등 항해사부터 시작해 세계의 바다 곳곳을 누볐다. 10여년 전부터 국내외 여객선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 봄 코델리아호 출항과 함께 제주-평택간 운항 책임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일 오전 8시 30분 제주에 입항할 때까지 고객들이 불편함 없이 행복한 여행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조타실에는 최 선장을 포함해 항해사와 조타수가 작은 불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망망한 바다를 응시한다. “배가 굉장히 천천히 가지요. 배의 무게가 무려 1만6000톤급입니다. 1만2000마력의 엔진으로 대략 2만4000마리의 말이 끄는 힘으로 배가 움직입니다. 약 20노트의 속력인데, 시속 38km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거의 진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가는데,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다보면 참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34년 동안 선상에서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느낀 점은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승객들도 바다를 오래도록 응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으시거나, 또 누구나 잊고 지내던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는 순간을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관조하다 보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요동도 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배에서 짙은 바다를 바라보니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유영과 같은 착각이 든다. 배는 바다로 흐르고 마음은 이내 고요해진다. 마치 꿈처럼.
![]() |
| 선상의 일몰 |
250마일, 꿈처럼 서해를 흐르다
저녁 식사를 마친 승객들은 커다란 배의 외형을 둘러볼 셈으로 2·3층 객실과 선상까지 돌아본다. 선폭 150여m의 코델리아호는 카페리호급 여객선으로 승객 900명과 차량 193대를 선적할 수 있는 규모. 일주일에 평택-제주를 3회 왕복 운항하는데, 254마일 13시간으로 국내 여객선 중 가장 멀리 운항한다. 선내에는 호프바, 편의점, 해수목욕탕, 노래방, 오락실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객실은 VIP실로얄실, 로얄가족실, 가족실 등의 호텔급 객실과 여러 명이 함께 숙박하는 2등실, 3등실로 구분되어 있다. 코델리아호의 본부장인 김종찬씨는 “고객들의 여흥을 위해 저녁마다 노래대회 등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또 고객들이 직접 배를 운항하는 조타실을 둘러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자녀를 둔 가족여행객들에게 우리 선장님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일부 예약 고객에 한하여 조타실을 개방하고 선장님과 함께하는 마도로스 기념촬영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며 앞으로의 운항 프로그램을 귀띔한다.
글·사진|이강<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 Copyright ⓒ 2003 - 2012 . ⓒ 위클리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의 여행(산행,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길에서 만난 사람]빛바랜 흑백풍경의 추억 (0) | 2012.06.22 |
|---|---|
| [길에서 만난 사람]햇살과 바람, 소금꽃의 고장 (0) | 2012.06.22 |
| [길에서 만난 사람]보름달 차오른 고향의 풍성한 인심 (0) | 2012.06.22 |
| 동해 해변 알고 찾으면 ‘피서 즐거움 2배’ (0) | 2012.06.05 |
| [신정일의 길]황진이의 파격적인 답사 (0) | 2012.05.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