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실세 입김에 금융CEO 줄줄이 낙마 그치지않는 인사 파문 | |
기사입력 2010.07.19 17:41:03 | 최종수정 2010.07.20 08:43:31 |
◆ 흔들리는 한국금융 대해부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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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산업의 지배구조가 취약한 것은 주요 경영진에 대한 제대로 된 선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최고경영진 선발 과정에 금융당국이나 정권 실세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개입하면서 합리적인 경영진을 갖기 힘든 구조로 변질되는 사례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리딩뱅크로 출발했던 KB금융지주가 최근 들어 그 지위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최고경영진에 대한 인사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회사를 잘 이끌어갈 적임자를 찾는 과정이 외부 정권 실세들의 권력다툼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조직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금융권의 최고경영자 선발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없고 지배구조 개선 없이는 금융산업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선진국선 기관투자가가 컨설팅社에 의뢰해 의사결정 구조 감시 = "CEO가 업무 집행과정에서 외압에 당당할 수 있도록 선출과정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최근 일련의 금융권 인사파문을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은 이같이 주장한다. CEO가 되는 과정에서 `신세`지는 세력이 없어야 경영목적에 맞게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실제로 KB 회장 선출과정은 사외이사가 독점한 CEO 선발 시스템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1차 회장 선발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KB지주 측은 2차 회장 선발에선 외부 컨설팅사 등에 후보추천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결국 강정원 전 행장과 유착관계 문제가 제기된 사외이사가 맡았다. 공인된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까닭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주주나 소비자의 이해가 아닌 CEO의 영향력 아래 들어갈 경우 현행 이사회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낸다"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이사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위한 회사나 경영진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CEO 선출도 내부적인 견제와 균형장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의 CEO 선발과정에 임직원과 주주,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특정 CEO나 사외이사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선 국내에서 기관투자가들과 소수주주 등 주주들의 지배구조 개선 활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선진국 연기금 투자펀드나 기관투자가들의 경우 별도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컨설팅사를 통해 투자대상 기업의 의사결정구조를 감시하고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주장한다. 김우찬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처럼 비중이 높은 기관투자가들이 정부의 영향력에서 독립해 금융사 지배구조 독립의 `우군`이 될 수 있다면 각종 인사파문을 막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꼬리무는 금융권 잡음정권과 친분 내세워 인사개입 정황 황영기회장 낙마사태 금융권력 내부에서 편 갈라 세력대결 = MB 정부 출범 후 불행의 시작은 한국거래소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비롯됐다. 선진국민연대 팀의 첫 인사 실패작이자 훗날 인사권을 남용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애초 선진국민연대 등 정권 실세들은 이팔성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염두에 두고 영향력 행사에 나섰다. 그러나 2008년 3월 이사장에 꼽힌 인물은 이정환 씨였다. 전 정부에서 선임된 거래소 사외이사들이 `시그널`을 휴지통에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진 뒤 정권 핵심부의 권위적 인사 패턴은 도를 더해갔다. 거래소 이사장 사건이 권력의 심기를 강하게 건드린 셈이다. 한 금융공기업 CEO는 내부 실무직원 인사를 낸 뒤 청와대 5급 행정관에게 `경고성`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와 사전조율 없이 인사를 하면 안 된다"는 게 메시지의 골자였다. 차관급 기관장으로선 실무자급 직원의 오만한 태도에 기가 막혔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서슬은 무서웠다. `서울시 출신 사무관 하나가 금융권 인사 전체를 커버한다. L씨를 거치지 않으면 인사가 안 된다.` 이런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금융권력 교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곧바로 금융권력 내 균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 초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멤버로 활약하며 금융실세로 불렸던 황영기 회장의 몰락과 강정원 행장의 부침은 현 정권 권치의 실상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2009년 초 사외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두 인사가 정면 충돌했다. 결국 친(親)강정원으로 분류되는 변보경 이사는 연임이 결정됐고 친황영기 인사였던 정기영 이사는 퇴임했다. 사실 2008년 7월 황영기 회장이 KB금융 수장으로 입성할 때부터 금융계 안팎에선 "두 사람이 한 지붕 안에서 융화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부호가 숱하게 제기됐다. 게다가 각각 생존을 위해 저마다 정권의 힘을 끌어들이면서 추악한 파워게임으로 치닫고 말았다. 황영기 회장 퇴진 이후 금융권 스캔들은 후임 KB금융지주 회장 선거 과정에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지주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KB금융지주가 힘 좀 쓴다는 권력실세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9년 하반기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회장직 도전 과정에서 권력실세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강 행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연이 닿는 정치권 안팎의 세력과 결탁했다. 정권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국민은행 경영자문역이나 KB금융 사외이사 등으로 영입해 소위 `방패`로 삼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강 행장의 회장 집권 시도는 강 행장이 회장 내정자직에서 자진 사퇴하면서 결국 무위로 끝났다. 시장에서는 강 행장의 `거사`가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무산됐다고 분석했다. 관치와 권치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KB금융지주는 지난 4월 다시 새로운 회장 선출을 추진했다. 이미 회장직을 둘러싼 `권력 간 파워게임`을 한 차례 감상한 탓인지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후보들만 도전장을 내밀었다. KB금융지주 회장직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 정권 실세로 통하는 어윤대 회장이 맡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사외이사 모범규준 관치개입 더 불렀다 = 갖가지 금융권 인사파동을 겪은 뒤 정부도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의 KB 회장 선출과 자진사퇴의 홍역을 치른 뒤 올해 1월 마련된 은행권 사외이사 모범규준이 좋은 예다. 당초 사외이사와 CEO간 유착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새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런 시도는 금융지주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관치 개입의 여지를 더 넓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권 감사 자리를 싹쓸이하고 있는 금융당국이 사외이사 자리까지 진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새 모범규준은 사외이사 자격 요건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에서 재무 또는 회계 업무, 이에 대한 감독업무에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를 규정하고 있다. 한 은행 사외이사는 "과거에도 감독당국 인사가 금융권 사외이사에 올 수 있었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제성을 띤 모범규준으로 금융당국이 사외이사 개편을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까다롭게 하면서 오히려 전문성 있는 인사가 교체되는 부작용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사외이사 총 재임기간을 5년으로 막아 금융지주의 경영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어렵도록 한 점도 `개악`으로 꼽힌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오히려 우수한 사외이사 인력을 모셔오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지난 3월 이사회를 잇따라 개최하고 사외이사제 모범규준을 정관에 반영하고 사외이사진을 대폭 개편했다. KB금융지주는 3명의 신임 사외이사 중 한 명이 감독당국 출신이 됐다. 이경재 전 기업은행장은 한국은행을 거쳐 은행감독원에서 부원장보를 지냈다. 하나은행도 지난 2000년 하나은행 감사를 지냈던 금감원 출신 김영기 씨가 새 사외이사에 포함됐다. 신한금융지주도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새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검토 중인 `금융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역시 감사위원회 개편 등을 놓고 정부안이 확정되기도 전에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이견이 노출된 상황이다. [특별취재팀 = 김태근 기자 / 손일선 기자 / 박유연 기자 / 임성현 기자 / 전정홍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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