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자유분방한 행초서, 근무지 무단이탈 형제들과 ‘술 한 잔에 시 한 수’… 감성 풍부한 인간 다산다산은 어떤 사람일까. 경학(經學) 중심의 500책이 넘는 방대한 저술에다 인정사정없이 탐관오리를 고발하는 목민관으로서 다산은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공부밖에 모르는 차가운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다산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문예가 증언하는 다산은 자유분방하면서도 다정다감한 기질을 소유한 사람이다.
예컨대 36세 때인 1797년 여름 어느 날, 다산은 근무지를 무단이탈한다. 조정의 휴가결재 없이는 도성을 못 나간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다. 공무상 피치 못할 사정도 아니다. 알고 보니 약전·약종 형님, 친척들과 고향 소내에서 고기를 잡아 탕을 해먹고, 천진암에서 ‘술 한잔에 시 한 수를 읊으며’ 날을 보내다가 사흘이 지나서야 돌아온 것이다(<유천진암기>). 딱딱한 목민관 이미지와는 달리 이 정도면 다분히 자유분방한 기질에다 다산의 풍류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초의선사가 그린 ‘다산도’. 강진 다산을 배경으로 다산초당 동암 서암 등은 물론 연못과 송죽이 어우러진 당시 모습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역사적 그림이다.
우선 보기에는 제자들이 ‘농묵초서(濃墨草書)를 조금만 덜 했더라면 도학(道學)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라고 증언하고 있는 퇴계 이황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다산의 글씨는 걷거나(해서) 뛰거나(행초서) 흐트러짐이 없는 퇴필(退筆·퇴계 글씨)의 엄정하고 단아한 짜임새나 미감과는 딴판이다. 변화된 시대서풍을 감안하더라도 특히 다산의 행초서에는 자유분방한 기질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일필휘지로 내두른 필획은 물론 변화불측의 글자 짜임새는 다산만의 독자적인 경지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다산글씨의 맥락 한 줄기는 원교 이광사에게서 찾아진다. 원교는 신지도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면서 글씨만 쓰다 죽은 사람인데 소위 ‘동국진체’ 맥락을 거슬러 가면 그 시발점인 공재 윤두서와 옥동 이서와 맞닿아 있다. 다산은 글씨에 관한 한 원교를 통해 외증조부인 공재, 같은 성호학맥인 옥동과 삼중으로 만나는 셈이다.
한편 다정다감한 다산의 성정은 유명한 고려대 박물관 소장 ‘매조도(梅鳥圖)’에 잘 그려져 있다. 향기 만발하는 정매(庭梅)에 앉은 한 쌍의 새에게 둥지를 틀어 집을 삼기를 권하는 장면이 시집가는 딸의 행복을 비는 아버지와 오버랩되면서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하는 다산의 애틋함이 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죽음을 대신한 유배형의 현장을 ‘약천(藥泉)’ ‘정석(丁石)’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으로 설계해 다산초당을 지어내는 지점은 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문예가 증언하는 인간 다산은 그냥 음풍농월만을 일삼는 시인이나 문인서화가, 조경전문가 이상의 지점에 있다. 요컨대 초당은 다산이 꿈꾼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 낡은 조선을 새롭게 한다)’의 설계사무소인 셈인데 그곳의 솔바람 소리는 그냥 선정(禪定)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아니라 민중의 울부짖음인 것이다.
다산시의 이런 현실참여는 그림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문인의 여기로 그려진 그의 그림에서 풍자나 고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응당 다산의 그림 소재는 조선의 여느 문인처럼 매화, 새, 산수 같은 것이다. 하지만 채색과 흰색 호분으로 새의 부리와 꽃송이를 선명하게 담아내는 ‘매조도’의 사실적인 묘사기법은 물론 부인이 보내준 치마를 화폭으로 바꿔 시집가는 딸을 생각하는 구체적이기도 하고 현실적인 시각은 다산에게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이다. 여기서 다산그림은 실학적(實學的)인 사실주의 화풍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요컨대 다산의 매화는 더 이상 군자(君子)가 아니라 그냥 뜰의 나무다. 이것은 동시대 추사가 ‘불이선란도’에서 난을 자신으로 동일시하면서 유(儒)·불(佛)의 불이선(不二禪)과 성중천(性中天)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로 노래한 것과도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다 같은 경학자의 글씨, 그림, 시라도 동시대 다산과 추사는 물론 조선중기 퇴계와 후기 다산이 다른 것이다. 요컨대 문예로 보는 다산의 인간상은 이지(理智)와 감성(感性)이 하나 되는 지점에서 그려진다고 하겠다.
<이동국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