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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3.0 ] 우리에겐 `빅 픽처`가 없다

ngo2002 2012. 3. 19. 10:27

[디지털 3.0 ] 우리에겐 `빅 픽처`가 없다
기사입력 2012.01.17 17:18:37 | 최종수정 2012.01.17 17:26:19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2010년 국내에 출간된 이래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더글러스 케네디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빅 픽처`에는 정작 `빅 픽처`라는 단어가 한 번 등장한다. 세세한 묘사를 기술해야 하는 기자와 비교해 사진작가인 소설의 주인공이 현상 전체에 대한 관찰과 조망을 사진 한 장으로 나타내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에 사용되고 있다.

빅 픽처 용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인식은, 우리말 그대로 `큰 그림`으로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시각이다. 또 다른 보편적 인식은 `미래의 그림` 또는 `청사진`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빅 픽처에는 단순히 숲과 미래에 무게를 두는 그 이상으로 음미해야 할 중요한 의미가 있다.

표면적으로 별개로 보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을 서로 연결하는 관점, 서로 다른 상황과 이슈 간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관점, 즉 복잡한 문제를 종합하는 전체 상이자 이를 통찰하는 대국관(大局觀)이 빅 픽처가 의미하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이 투자의 성공요건 으뜸으로 대국관을 꼽았고, 떠오르는 금융 전문가 배리 리톨츠의 전망이 담긴 유명한 블로그 이름도 `빅 픽처`다.

미래학자 로런스 토브와 라파엘 신에 따르면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서양 종교는 시발에서 최후로 향해가는 신의 계획으로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이며, 이러한 빅 픽처는 19세기까지 역사를 관찰하고 논지를 전개하는 주요 개념이었다고 한다.

2012년 1월 지금, 개개인은 한 해 전체를 그려보는 신년 계획을 세우고, 위정자들은 2013년 체제를 내다보는 집권 계획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거시적인 안목과 미래 지향적 계획의 빅 픽처가 존재하는가 묻고 싶다.

금융시장 불확실성으로 서민자본은 갈 곳이 없고, 대북 정세 불안으로 국민은 무관심만이 대책이다. 청춘들은 당장 취업과 생계가 걱정되니 국가와 사회를 이끌 원대한 포부를 갖기 어렵고, 중장년들은 은퇴 후 활동과 노후가 염려되니 가시적 수익형에만 집착하고 있다. 표만 의식하는 정치와 집권 말기 정부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위기에 대해 단순히 반응할 뿐 미래에 대한 전망과 방향성 없는 상태로 움직이고 있다. 오히려 국가 미래와 성장을 담보로 잡은 선심 정책과 포퓰리즘이 난무해 개인과 특정 그룹 실리와 이권만 주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모바일 선거인단의 흥행은 젊은 층 참여 증가와 패거리 정치의 구태 방지를 기대하게 하지만, 당비를 납부하며 책임과 권한을 다하는 진성당원 중심의 전통적 정당정치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런 포스트 정당정치의 큰 그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인터넷 선거운동 허용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지만 더욱 극심해질 비방, 악플, 꼼수 지식, 카더라 통신에 대한 자정 대책을 포함한 소위 `SNS 민주주의`의 빅 픽처는 무엇인가 알고 싶다.

숨겨진 핵심은 빅 픽처는 유능한 리더에 의해 펼쳐진다는 것이다.

바둑의 수많은 포석과 행마의 연결관계를 분석해 형세를 판단하는 프로기사와 티샷 지점에서 다양한 요인의 역학관계를 종합해 코스를 공략하는 프로골퍼의 자태를 생각해 보라. 이들처럼 경험 많은 우리 리더들에게도 나무를 보되 숲도 보고, 현재를 보되 미래도 보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상호작용과 인과관계를 통찰하는 빅 픽처가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설득하고 또 인내하며 설득했으면 한다. 빅 픽처, 누군가는 그려야 하고, 우리는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1년 우리 사회의 가치는 급변했고, 2013년 우리 사회는 더욱 변할 것이다. 그 사이인 2012년 지금, 우리에겐 `빅 픽처`가 없다. 그것이 매우 아쉽다.

[임춘성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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