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일반적상식

[디지털3.0] 세종대왕에게서 스티브 잡스를 엿보다

ngo2002 2012. 3. 19. 10:24

[디지털3.0] 세종대왕에게서 스티브 잡스를 엿보다
기사입력 2011.11.22 17:32:10 | 최종수정 2011.11.22 17:34:1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스티브 잡스 전기가 화제더니, 요즘은 세종대왕이 인기다. 바빠서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는데, 최근 방영 중인 `뿌리 깊은 나무`는 가끔 보고 있다. 꼬박 챙겨 보지는 못한 탓에 줄거리를 따라 잡기 힘들 때도 있지만 세종 이도(한석규)가 궁궐 나인들, 집현전 젊은 학자들과 더불어 한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역사를 소재로 한다고 해도, 드라마인 이상 많은 부분이 허구일 수밖에는 없겠지만, 한글 창제 과정이 흡사 이 순간에도 회사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온갖 프로젝트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눈을 떼기 어려웠다.

이를테면 필자가 보기에 세종은 `한글 창제`라는 프로젝트의 상위 기획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 같다. 그 프로젝트의 목표가 명확했고 제품(서비스) 소비자 또한 분명했다. 제대로 만들면 그야말로 대히트가 예감되는 제품인 것이다.

세종의 깐깐한 완벽주의는 그야말로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듯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한글 프로젝트 론칭 전에 심사숙고를 거듭하는 부분이었다. 글자들이 만들어지고 나서 집현전 학자를 비롯한 프로젝트 멤버들이 `이만하면 됐다`라고 할 때도 세종은 망설였고, 급기야 시체 해부에 참여해 직접 사람 발음 기관을 살펴 보기도 한다. 그 같은 무리수에 대해 내부 인원들에게서 비판이 쏟아졌지만 세종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수천 년 역사 동안 수만 명이 읽고 써 온 중국 한자와는 달리 고작 프로젝트 참가 인원 몇 명 말고는 써 본 사람이 없는 신생 문자가 사용성에 취약한 점이 많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간곡하게 설명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세종은 일반 백성에게 가구 조사까지 해 본 연후에 한글을 `출시`하려고 한다. 명목상으로는 세법 관련 조사지만 이는 사실상 한글 오픈 베타 서비스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떤 제품, 어떤 서비스든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쟁력이다. 쓰면 쓸수록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비 패턴은 그 자체로 제품과 서비스 개선 방향을 이끈다. 거기에 더불어 변화를 빠르고 민감하게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최만리를 비롯한 당대 관료들이 많은 대의명분을 들어가며 집요하게 한글 창제를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대세가 되고 오늘날 당당한 우리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은 한글이라는 제품의 품질이 우수하고 사용성이 뛰어났으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수한 품질보다도 놀라운 것은 무엇보다도 한글이란 근본적으로 정보 접근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를 획기적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뛰어난 혁신은 언제나 당대 관습과 지배적인 이론에 균열을 일으켰다. 세종의 모험에는 거대한 고정 관념을 상대로 한 도전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소수 엘리트만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던 시절에 세종은 단단한 신념으로 막강한 정보 인프라스트럭처를 전국에 그리고 후대 역사에 깔았던 것이다.

정보에 조금이라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신념을 갖고, 무수한 반대와 비난을 감수하는 용기를 잃지 않고, 한글 사용성과 완성도에 끝끝내 집착했던 세종의 마음은, 검색 포털 서비스 회사를 운영하는 처지에서 새삼 깊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모름지기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념과 용기, 그리고 정성과 완벽주의가 필요한 것 아닐까? 이런 질문을, 과거의 세종과 현대의 스티브 잡스가 지금 여기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만 같다.

[김상헌 NHN 대표이사 사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