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일반적상식

[디지털 3.0] 소프트웨어, 버려야 산다

ngo2002 2012. 3. 19. 10:23

[디지털 3.0] 소프트웨어, 버려야 산다
기사입력 2011.11.01 17:22:47 | 최종수정 2011.11.01 17:23:1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요즘 소프트웨어에 대한 화두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폰으로 촉발돼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한 소프트웨어 회사 소유주의 정치적 행보에 이어 스티브 잡스 죽음까지. 모두 소프트웨어를 얘기하고,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급변하고 증폭되고 있는데, 그 해법의 논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왜일까.

정부는 생태계 발전 10대 신성장동력 프로젝트에 소프트웨어를 포함시켜 기반기술을 개발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한다고 한다. 나아가 국내 기업집단 소속 IT서비스 기업에 대해 공공 정보화 사업 참여를 봉쇄하는 과감한 정책을 발표했다.

물론 중소 소프트웨어기업에 기회를 주고, 그간 일부 대형 IT서비스 기업의 협력업체에 대한 횡포를 반추해 보면 납득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걱정스럽다. 글로벌 IT서비스 기업이 반사이익을 보는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차치하더라도 지식사회의 핵심 국가 인프라스트럭처인 공공정보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시장논리를 배제하여 만일 부실이 뒤따른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건강한 기업 생태계는 획기적이고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다. 플로리다대학 연구팀은 아카시아를 초식동물들에게서 보호하고자 나무 둘레에 전기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러자 초식동물들에게서 안전하게 된 아카시아는 가시 수를 줄이고 제 몸집 불리기에만 열중한 결과 해충들이 들끓어 말라죽게 됐다는 실험 내용이 알려져 있다. 지나친 시장 간섭은 버려야 한다.

정책적으로 꼭 버려야 할 것은 공공사업 낙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최저가격 우대 기준이다. 지금까지 공공정보화사업에서 소프트웨어 생태계 사슬의 맏형은 IT서비스 대기업이 아니라 발주처인 공공기관이며, 발주처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생태계 약자를 보육하는 첫 단추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보육하고 싶은 소프트웨어 기업은 고유한 솔루션, 플랫폼, 운영체제 또는 원천기술을 확보한 기업이다. 증권, 의료 같은 세부 업종이나 뱅킹, 교통과 같은 세부 기능에 특화한 경쟁력 있는 제품과 안정적인 서비스로 무장한 기업을 우리는 원하고 있다. 진정 자신의 차별된 역량을 제외하고는 버릴 줄 아는 강소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을 바라고 있다.

기존 인력 양성 패러다임 또한 버려야 한다.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은 소프트웨어 개발인력만을 의미하는 걸까? 주어진 요구사항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코딩 인력도 필요하지만, 인문과 사회와 소통하고 산업과 시장이 요구하는 것을 설계하는 창의적 인재가 절실하다. 우리가 지향하는 소프트웨어 강국의 전형은 인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폰 등장의 진정한 가치는 사용자와 시장 중심이 아닌 기업의 전략이나 정부 정책은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실증한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무선인터넷 제한, 데이터통신 과금체계, 콘텐츠와 앱의 종속화, 위치정보 규제 등을 아이폰이 보여준 새로운 세상으로 사용자는 알게 됐고, 시장은 바뀌었다. 온 국민이 매일 체감하는 소프트웨어야말로 정책은 시장 친화적이어야 하고, 기업은 실력으로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시장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인력 양성에 무게를 둬야 한다.

정보화 기치를 높이고, IT강국을 자부한 지 벌써 십 수년이 흘렀다. 그간에 견지한 방법과 방식, 법칙과 원칙, 그리고 그로 인한 성공의 기억과 추억, 버릴 때가 됐다. 프랑스 종교가이자 소설가인 페늘롱이 말한 것처럼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은 자존심`뿐이다. IT와 소프트웨어의 오랜 자기방어적 자존심, 버려야 산다.

[임춘성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