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철학카페]여러 세계 가로지르기 ‘진리의 장소’ 만들기
정치적 집회의 장소들, 철거민들의 장소들…생명, 주체, 노동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진리의 장소’다
철학에서는 흔히 ‘공간’과 ‘시간’을 핵심적인 존재론적 원리들 중 하나로 본다. 하지만 공간에 대한 논의가 삶에 보다 밀착된 형태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장소’를 사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간론을 장소론으로 변화시켜 사유하고자 할 때, 의미를 추상적 또는 의식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신체와 장소의 장으로까지 끌고 내려올 필요가 있다. 그때 우리는 의미에 주체성,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엮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서 ‘사건’이라는 개념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며, 사건과 장소를 함께 사유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다른 문제들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반복 개념이 논의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역사/시간 속에서 사건들이 반복되듯이, 장소/공간 속에서도 사건들이 반복된다. 하나의 교실에서는 무수한 수업-사건들이 반복된다. 하나의 극장에서는 무수한 연극-사건들이 반복된다. 광화문에서는 무수한 문화적·정치적 사건들이 반복된다. 사건들은 반복되지만 장소들은 지속하며, 장소의 터는 반복되는 사건들의 조건이 된다. 사건들은 갈마듦을 통해, 실존과 존속의 갈마듦을 통해 성립하지만, 장소는 물질성으로서 지속하며 모든 사건들의 갈마듦의 터가 된다.
장소라고 하면 우선 어떤 물질적 터가 떠오른다. 하지만 장소의 의미는 그 즉물적 물질성에서가 아니라 그 터 위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의 갈마듦과 더불어 성립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더 정확히 말해, 사건들 사이사이에 도래하는 차이들에서 드러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 장소의 의미는 ‘비-물체적’ 사건들의 의미와는 달리 장소의 물질성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 벌판에서의 전투, 산속에서의 전투, 강·바다 위에서의 해전, 하늘에서의 공중전 등은 모두 같은 전투-사건들이지만, 그 의미는 장소의 물질성을 떠나 홀로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사건 자체와 마찬가지로 장소 역시 강도를 머금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강도를 ‘장소-강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각 장소의 장소-강도는 상이하며, 그곳에서 어떤 사건들이 출몰하는가에 따라 강도 역시 변해 간다. 그리고 하나의 장소 자체가 계속적인 강도 변화를 겪는다. 하나의 교실은 강의가 진행될 때와 진행되지 않을 때, 흥미진진한 강의가 진행될 때와 그렇지 못할 때 다른 강도를 갖게 된다.
그러나 단순한 사건 출몰의 빈도가 장소의 강도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의 장소가 시끌벅적하다 해서 장소-강도가 큰 것은 아니다. 상투적인 사건들의 충일이 아니라 한 사건의 의미가 장소의 의미를 크게 또 작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서는 일정한 사건들이 반복된다.(강의실에서의 강의, 야구장에서의 야구경기, 광화문에서의 시위 등등). 물론 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하고(예컨대 광화문), 하나의 사건이 여러 장소에서 발생하기도 한다(예컨대 가수의 순회공연). 장소의 의미는 이 반복되는 사건들의 강도에 상관적이다. 그래서 장소의 의미란 그 물질성과 반복되는 사건들의 강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장소-강도는 장소에서의 사건이 ‘역사적’ 성격을 띠는 만큼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사건-계열들의 교차로에서 성립할 때, 보다 큰 의미를 부여받을 때, 그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 된다. 바로 그때 그 사건의 장소 또한 역사적 장소가 된다. 이 장소는 그 역사적 사건의 날짜와 더불어 시공간적 강도를 형성한다. 그래서 유명한 장소들일수록 거기에는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의 날짜가 붙어 있기 마련이다.
장소의 의미와 역사와의 관련성, 그리고 ‘진리의 장소’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장소에 부여되는 강도는 물리적 강도가 아니라 기-의미 이중체로서의 장(사건-장)의 강도에 있다. 다시 말해, 장소의 강도는 그것이 가지는 물질적 측면인 기와 인문적 측면인 의미가 복합되어 형성된다. 2) 역사적 장소는 역사적 사건의 장소이며, 가장 강도 높은 역사적 장소는 역사의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진리의 장소이다. 3) 진리는 역사에서의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이 장소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운명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진리의 장소는 이런 인간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소이다.
역사적 장소 나아가 진리의 장소는 대개 정치적(넓은 의미) 장소이기 마련이다. ‘정치적 장소’란 어떤 장소일까? 사실 모든 것이 관리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장소가 정치적 장소이다. 모든 장소가 자본과 기술에 의해 식민화되고 기호체제에 의해 통제되는 오늘날 사실상 모든 장소가 정치적 장소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장소가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그것이 정치적 장소가 되지는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한 장소가 관리된다는 것은 바로 그 장소가 ‘탈-정치화’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장소가 정치적 장소가 되는 것은 그것이 정치적 진리의 장소가 될 때이다. 그리고 이 정치적 진리의 장소는 곧 역사에서의 강렬한 드라마와 진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기존 권력은 모든 장소들을 정치적 장소, 역사적 장소가 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경향을 띤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기술과 자본은 모든 장소들을 획일화하고 계량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이를 ‘장소의 식민화’라 부를 수 있다. 예컨대 과거에 볼 수 있었던 제국주의적 식민화는 장소 식민화의 가장 즉물적인 형태라 할 것이다. 땅의 정복이 예전과 같은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오늘날 장소의 식민화는 여러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식민화는 오늘날 “글로벌”한 지평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의 행태는 그 전형적인 예이다. 아울러 여기에 ‘탈-물질적’ 장소들의 식민화 즉 사이버공간에서의 식민화가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진리의 장소는 도처에서 생성하고 있다. 정치적 집회의 장소들, 철거민들의 장소들, 신체 훈육에 저항하는 장소들, 주체성 박탈에 저항하는 장소들…. 이러한 장소들은 곧 생명, 주체, 노동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새롭게 문제가 되고 논의되어야 할 장소들일 것이다.
철학에서는 흔히 ‘공간’과 ‘시간’을 핵심적인 존재론적 원리들 중 하나로 본다. 하지만 공간에 대한 논의가 삶에 보다 밀착된 형태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장소’를 사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간론을 장소론으로 변화시켜 사유하고자 할 때, 의미를 추상적 또는 의식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신체와 장소의 장으로까지 끌고 내려올 필요가 있다. 그때 우리는 의미에 주체성,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엮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서 ‘사건’이라는 개념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며, 사건과 장소를 함께 사유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다른 문제들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반복 개념이 논의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역사/시간 속에서 사건들이 반복되듯이, 장소/공간 속에서도 사건들이 반복된다. 하나의 교실에서는 무수한 수업-사건들이 반복된다. 하나의 극장에서는 무수한 연극-사건들이 반복된다. 광화문에서는 무수한 문화적·정치적 사건들이 반복된다. 사건들은 반복되지만 장소들은 지속하며, 장소의 터는 반복되는 사건들의 조건이 된다. 사건들은 갈마듦을 통해, 실존과 존속의 갈마듦을 통해 성립하지만, 장소는 물질성으로서 지속하며 모든 사건들의 갈마듦의 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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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순한 사건 출몰의 빈도가 장소의 강도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의 장소가 시끌벅적하다 해서 장소-강도가 큰 것은 아니다. 상투적인 사건들의 충일이 아니라 한 사건의 의미가 장소의 의미를 크게 또 작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서는 일정한 사건들이 반복된다.(강의실에서의 강의, 야구장에서의 야구경기, 광화문에서의 시위 등등). 물론 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하고(예컨대 광화문), 하나의 사건이 여러 장소에서 발생하기도 한다(예컨대 가수의 순회공연). 장소의 의미는 이 반복되는 사건들의 강도에 상관적이다. 그래서 장소의 의미란 그 물질성과 반복되는 사건들의 강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장소-강도는 장소에서의 사건이 ‘역사적’ 성격을 띠는 만큼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사건-계열들의 교차로에서 성립할 때, 보다 큰 의미를 부여받을 때, 그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 된다. 바로 그때 그 사건의 장소 또한 역사적 장소가 된다. 이 장소는 그 역사적 사건의 날짜와 더불어 시공간적 강도를 형성한다. 그래서 유명한 장소들일수록 거기에는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의 날짜가 붙어 있기 마련이다.
장소의 의미와 역사와의 관련성, 그리고 ‘진리의 장소’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장소에 부여되는 강도는 물리적 강도가 아니라 기-의미 이중체로서의 장(사건-장)의 강도에 있다. 다시 말해, 장소의 강도는 그것이 가지는 물질적 측면인 기와 인문적 측면인 의미가 복합되어 형성된다. 2) 역사적 장소는 역사적 사건의 장소이며, 가장 강도 높은 역사적 장소는 역사의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진리의 장소이다. 3) 진리는 역사에서의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이 장소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운명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진리의 장소는 이런 인간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소이다.
역사적 장소 나아가 진리의 장소는 대개 정치적(넓은 의미) 장소이기 마련이다. ‘정치적 장소’란 어떤 장소일까? 사실 모든 것이 관리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장소가 정치적 장소이다. 모든 장소가 자본과 기술에 의해 식민화되고 기호체제에 의해 통제되는 오늘날 사실상 모든 장소가 정치적 장소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장소가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그것이 정치적 장소가 되지는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한 장소가 관리된다는 것은 바로 그 장소가 ‘탈-정치화’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장소가 정치적 장소가 되는 것은 그것이 정치적 진리의 장소가 될 때이다. 그리고 이 정치적 진리의 장소는 곧 역사에서의 강렬한 드라마와 진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기존 권력은 모든 장소들을 정치적 장소, 역사적 장소가 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경향을 띤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기술과 자본은 모든 장소들을 획일화하고 계량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이를 ‘장소의 식민화’라 부를 수 있다. 예컨대 과거에 볼 수 있었던 제국주의적 식민화는 장소 식민화의 가장 즉물적인 형태라 할 것이다. 땅의 정복이 예전과 같은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오늘날 장소의 식민화는 여러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식민화는 오늘날 “글로벌”한 지평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의 행태는 그 전형적인 예이다. 아울러 여기에 ‘탈-물질적’ 장소들의 식민화 즉 사이버공간에서의 식민화가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진리의 장소는 도처에서 생성하고 있다. 정치적 집회의 장소들, 철거민들의 장소들, 신체 훈육에 저항하는 장소들, 주체성 박탈에 저항하는 장소들…. 이러한 장소들은 곧 생명, 주체, 노동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새롭게 문제가 되고 논의되어야 할 장소들일 것이다.
입력 : 2011-12-25 21:18:47ㅣ수정 : 2011-12-25 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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