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근의 공부 미락]왕수인, 백성의 마음을 정복하다
양명학의 창시자 ‘양명 왕수인’은 명나라 중기의 철학자 교육자로,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잠맹’이 묘족의 반란을 일으켰다. 난을 진압했으나 ‘노소’ ‘왕수’가 다시 난을 일으켰다. 왕수인이 총독이 되어 갔을 때는 광동광서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고 토착민까지 흔들렸다.이에 ‘진압’보다는 ‘위무’를 원칙으로 하여 산중의 적장에게 화해와 타협의 초청장을 보냈다. ‘사면과 인정을 받을 기회다’ ‘끌어들여 죽이려는 계책이다’ 하며 갑론을박하였다.
왕수인은 적은 군사만 남기고 여러 곳의 군대를 해산하고 신변보장을 약속하며 사면장과 함께 초청장을 다시 보냈다. 노소와 왕수는 평소 왕수인의 인품과 행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진심과 성의를 받아들여 성안으로 들어왔다. 왕수인은 먼저 그간의 고통과 노고를 위안하고 다음으로 엄숙히 질책했다. 두 장수가 엎드려 빌자 “응당 죽을죄이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니 죽음은 면하되, 법도는 엄한 것이니 곤장 백 대를 쳐서 조정의 위엄을 보이겠노라” 하며 고통이 없게 모양새만 내며 형을 집행했다. 형벌 후 약과 술, 고기를 내려 위엄과 은혜를 분명히 했다. 조정에 글을 올려 잠맹의 아들을 판관으로, 노소와 왕수를 순검으로 임명하여 지역 일부를 관리하게 하자 모두가 만족하고 안정을 되찾았다.“걸과 주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천하를 얻는 데는 도가 있으니, 백성을 얻어야 하며, 백성을 얻는 도가 있으니, 그 마음을 얻어야 백성을 얻는 것이다.” 맹자의 구절이다. 왕수인은 백성의 마음을 얻었다. 유학의 도덕과 이상을 현실과 정치에서 실천하여 지행합일의 공부를 빛냈다.
<신홍근 HB 공부연구소장·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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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근 HB 공부연구소장·한의사>
입력 : 2011-12-25 21:04:41ㅣ수정 : 2011-12-25 21: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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