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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철학카페]조직의 이미지와 리좀 만들기

ngo2002 2012. 2. 13. 10:48

[이정우의 철학카페]조직의 이미지와 리좀 만들기

인간이란 누구나 크고 작은 조직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 학교, 지역사회, 기업, 군대, 병원, 동호회, 사이버상의 커뮤니티, 정치조직 등등 무수한 형태의 조직들이 분화되어 복잡한 현대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하나의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그것의 이미지이다. 하나의 조직이 그 활동 중에 일정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특정한 이미지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20세기에 현대적 형태의 조직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거니와, 하나의 조직이 형성될 때 그 과정이 어떤 일정한 이미지에 의해 성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계적 이미지는 하나의 조직을 어떤 거대한 기계로 보는 경우이다. 사물들을 나아가 자연 전체를 일종의 기계로 보는 관점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에 의해 주창되었다. 이런 기계론적 조직은 두 가지 중요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은 사람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동적인 네트워킹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도 관계생성을 통해 이뤄진다” 일러스트 | 김상민


윤리적으로 이런 조직은 조직 성원들을 기계의 부품처럼 다룰 수밖에 없으며, 개인의 창의나 인격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테일러 시스템’을 냉혹한 체계로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계로서의 조직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조직은 매우 유연해야 한다. 하지만 기계를 본뜬 조직은 오로지 기계처럼 돌아갈 뿐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가 없다.

기계론적 조직화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유기체론적 조직화이다. 사실 ‘조직화(organization)’라는 말 자체가 애초에 생물학의 용어였다. 하나의 조직을 유기체처럼 만든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다양하다. 인간의 신체를 모델로 하는 경우, 뇌를 모델로 하는 경우, 생태계를 모델로 하는 경우 등등. 유기체론적 조직은 많은 효과를 보았지만, 윤리적인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기체는 하나의 전체이고 그 부분들은 전체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 때문에 한 조직을 유기체로 보는 관점은 자연히 전체주의적 뉘앙스를 띠기가 쉽다. 실제 역사에서 우리는 유기체 은유를 사용했던 정치체제가 이내 독재와 폭력으로 흘러가버리곤 했던 경우들을 여럿 볼 수 있다. 나치즘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유기체론은 이런 전체주의적 뉘앙스를 벗어나 부분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줄 때 보다 건강한 조직을 이룰 수 있다.

유기체 은유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교적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것은 조직을 ‘문화적 코드’로 보는 관점이다. 이전의 관점들은 자연과학을 모델로 해서 성립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조직은 인간과 문화, 그리고 구체적인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고 있다. 과학적이고 이론적이 접근만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역사적이며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조직을 구체적인 개개인의 인간, 그들이 행하는 대화, 그 언어학적 맥락, 문화적 코드 등등에 입각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구조주의 사상은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구조’를 읽어냄으로써 인간 사회의 다양한 조직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눈을 제공했다. 구조주의자들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지배하는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었다. 이런 방법론은 한 기업의 문화적 코드를 읽어낸다거나, 여러 기업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읽어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사유는 여전히 근대 과학의 그림자를 너무 많이 담고 있다. 코드나 구조는 결국 한 조직의 구체적인 생성을 어떤 큰 틀 속으로 환원시켜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적으로 볼 때 이는 조직의 개개 성원들의 주체성을 무시한 채 조직 전체의 추상적 틀만을 다루고 있다는 한계를 띤다. 한 조직에는 분명 그 평균적인 코드/구조가 존재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 조직을 이해하는 첩경이다. 그러나 구조란 자연과학적 법칙처럼 고착적인 것이 아니며, 또 각 조직의 사람들을 초월해 존재하는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킹을 통해서 변해 가는 것이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이 점을 감안해서 ‘리좀(rhizome)’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리좀이란 동적인 네트워킹으로서 딱딱한 이항 대립적 구조 즉 수목적 구조와 대비된다. 수목적 구조란 하나가 둘이 되고, 그 둘이 다시 각각 둘이 되는 과정이 되풀이되는 구조이다. 기업을 비롯한 많은 조직들이 여전히 이런 수목적 구조를 하고 있다. 리좀이란 이 수목적 구조를 깨면서 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링크들을 이룸으로써 진행해 가는 역동적 과정이다.

인간이란 관계 속에서 자신이 된다. 즉, 자신이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완성되어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스스로의 정체성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조직에서 리좀적 생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성원들이 동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개선해 나갈 기회를 그만큼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볼 때, 이는 각 성원의 정체성이 단지 기존의 틀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 성원이 리좀적 관계생성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해 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럴 때 그 조직도 죽어 있는 구조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리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리좀의 터 위에서 한편으로는 조직에 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고유한 개별성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우 철학자>



입력 : 2012-02-12 21:27:33수정 : 2012-02-12 21:3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