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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김옥의 新 남도기행- 고경명의 얼이 깃든 포충사

ngo2002 2011. 8. 25. 15:40

김옥의 新 남도기행- 고경명의 얼이 깃든 포충사


입력시간 : 2010. 02.16. 00:00


호국정신 빛나는 광주 8경 으뜸

忠義의 정신 깃든 열사 탯자리

박광옥·김세근·김극추 등 배출

옛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주인을 따라 장렬한 죽음을 택했던 노비, 봉이와 귀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자연석에 이들의 이름이 음각된 묘지가 보인다.

햇살 머금은 아름다운 대촌들녘은 호국의 얼이 깃든 포충사와 함께 광주 8경중 하나로 지정돼 있다.

모진 세월을 안고 왔던 옛 사당에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마당을 밟는다. 동재, 서재, 외삼문, 내삼문이 있다. 이곳에는 1601년(선조 14) 호남의 유생들이 충절인물들을 모실 사우를 건립해 중앙에 고경명, 동쪽에 고종후, 유팽로, 서쪽에 고인후, 안영을 모셨다. 선조가 '포충사’라고 사액하고 예관을 보내어 제사 지내도록 해주었다.

1978년 호국선열 유적지로 새로 정화되면서 유적과 유물을 보관하고 있으며 정기관(유물전시관)에는 제봉집 목판 481매, 교지와 고문서 등이 전시돼 있다.

충의와 절개의 거인으로 숭앙받는, 충렬(忠烈) 고경명(1533-1592)은 영암군수, 승정원판교, 동래부사를 역임한 후 1591년 벼슬을 떠나 고향에 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60세 고령에도 분연히 일어나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 의병청을 설치해 유팽로, 안영, 양대복, 최상중, 양사형, 양희적 등과 뜻을 모아 7천 의병과 봉기해 왜군과 싸우다 금산 와평들 전장에서 둘째 아들 고인후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장남 효열(孝烈) 고종후는 의병들을 재차 규합하여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용전분투하다 김천일, 최경회 등과 같이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고 이때 노비 봉이, 귀인도 순절했다.

운명의 1592년 7월 10일. "너희들은 빨리 후퇴하라. 나는 불행히 전패하였으니 오직 일사가 있을 따름이라" 라고 마지막 절규를 토해냈던 장군의 소리와 "우리들이 어찌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리오" 라고 독전 하다 최후를 마친 유팽로(1554-1592), 안영(1564-1592) 선생, 삽봉 김세근(1550∼1592), 진주성 2차 싸움에서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뛰어들어 순절한 양산숙(광산구 어룡동 박메마을 출생). 이들의 충절과 기개의 넋은 우리들 마음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을 빛으로 살아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서구 지역 출신 충의열사들도 적지않다.

서창면 매월동 회산마을에서 출생한 박광옥(1526∼1592)은 조선 명종, 선조 때의 공신으로 내시교관, 이조전랑, 전라도사, 충청도사, 영광군수, 나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나주목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행주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던 권율 장군에게 수천 명의 의병과 수백석의 군량미를 보내 대승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김천일, 고경명, 의병장이 이끄는 창의대에 자제들을 가담시키고 군량도 많이 보냈다. 그의 충의에 감복한 선조는 호남의 충의신이라 극찬을 했다. 서창동 불암마을에 가면 팔학산 기슭에 학산사가 있다. 율곡 이이와 함께 외침에 대비한 양병론을 주장했던 김세근 장군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종부시주부(종6품의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경남 함안군 마륜동을 떠나 서창 세동마을에 터를 잡게 되었다. 외침을 예견했던 장군은 임란이 일어나기 4년 전 백마산 골짜기에 연병장을 만들어 장정들을 연마시켰다. 장군의 애국충정 소문이 널리 알려지자 나주, 화순, 담양등지에서 수많은 장정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임란이 일어나자 서창, 관내 세동 백마산 수련곡(속칭 수원골)에서 자신이 훈련시킨 장정 3백여명을 이끌고 유팽노, 김덕홍, 안영 등과 고경명 장군의 의병대열에 합세하여 왜군과 접전을 벌이다 순절했다.

서창면 절골 마을에서 태어난 절봉 김극추(1552년-1610년)는 임란 당시 권율장군 막하에 들어가 정충신, 이충립, 고성후, 이완근 등과 맹활약을 해 광주 팔장사(八壯士)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역시 같은 마을 출신 박대수는 赤梁萬戶(적량만호) 재임 시 임란을 당해 권율 장군의 참모관으로 금산 이치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박희수는 형조좌랑, 함열현령을 지냈으며 의주 행재소를 왕래하면서 큰 공을 세워 원종공신으로 녹훈됐다.

박지효는 고봉 기대승 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그의 나이 40세때 임란이 일어나자 고경명 막하에 들어가 활약하였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 75세의 백발 노구를 이끌고 군량과 병사모집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서창면 풍암동 운리 마을에서 태어난 남제 황호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병사(兵使) 이복남 막하에 들어가 싸우다가 남원에서 순절했다. 김장생이 이 삼남호초사로 광주에 내려와 公(공)에게 募兵有司(모병유사)의 책임을 맡기자 75세의 노구를 끌고 전주에 피난중인 세자를 부내로 맞아들여 여산(礖山)까지 무사히 호송했다. 인조가 이를 이 공로를 치하하려고 장례원시간(掌禮院司諫), 사헌부임제(司憲府臨製)를 제수했지만 끝까지 사양했던 청렴의 선비다.

고경명, 김천일 막하에서 군량 수송 부장으로 활약했던 박광조. 서창동 회산마을 출신으로 임란공신인 회재 박광옥선생 등.

서구지역은 충과 의의 정신의 혼이 깃든 열사의 탯자리임에 틀림없다.



주변 볼거리

부용정(芙蓉亭)과 고싸움 전시관

부용정은 광주시 남구 대촌 칠석동 칠석마을(속칭 옻돌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중앙부에 터를 잡은 정자는 이미 옛 문인들의 흥취와 멋 서린 기운을 벗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학풍의 기상도 세월타고 날아가니 귀찮아 조는 듯 메말라 가는 초췌한 모습이 안쓰럽다. 옛날에는 부용정을 중심으로 온통 연못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연못의 자취는 사라진지 오래이며 대신 주택지로 바뀌었다.

정내에는 현판과 함께 당시의 학자로 명성을 날렸던 양응정의 시문을 비롯하여 의병장 고경명, 대학자 이안눌, 박제형 등 후대 명유들의 누정제영을 새긴 편액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아침에 실낱같이 가는 비 내리더니

저녁 되니 맑은 빛이 푸른 못에 넘실거리네.

아름다운 모임 어찌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

사군(使君)의 행색 저절로 응당 더리리.

<양응정 의 ‘부용정 운’>중에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정자의 정호를 ‘부용(芙蓉)’이라 불린 것은 김문발 선생이 연(蓮)을 예찬한 중국 성리학 개창자인 북송의 주돈이(1017~1073)의 애련설(愛蓮設)에서 따왔다고 한다.

정자 앞쪽에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있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 나무는 아닌 듯싶다. 칠석동 마을은 풍수지리상 소가 엎드려 있는 형국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가 매우 사나워 고삐를 매어두기 위하여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설과 김문발 선생이 심었다는 설도 있다. 은행나무는 높이가 26m 가량되며 수령은 800여년으로 추정된다.

지면으로부터 7m 정도 되는 부분에 이르러 가지가 갈라지는 것이 특이하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정령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어 마을에서는 서낭나무(신목)로 모시며 정월 대보름 밤에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정자 근방에는 고싸움 전수관이 있다. 은행나무의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16일부터는 상촌과 하촌 으로 나누어 고싸움놀이가 절정에 이른다. 먼저 '고'가 이 나무 둘레를 돈다. 20여 일을 계속하면서 승리할 때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신명나는 축제형식으로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가는 민속 문화유산(중요무형문화재 제 33호)중 하나이다. 고싸움놀이의 <고>는 옷고름·고맺음 등에서 온 말로 한 가닥을 길게 빼어 둥근 모양을 맺은 것을 뜻하며 정월에 짚을 거두어 고를 만들어 줄의 머리 부분에 단다. 동쪽은 <수줄>, 서쪽은 <암줄>이라 하는데 암줄이 이겨야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하는 일종의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경의식으로 전승되어온 세시풍속이다.



사진/ 1.눈 덮인 포충사 정경. 그 옛날 호국 정신으로 빛나던 고경명 장군의 의연한 기개가 서려있다. 주변을 둘러싸듯 울울 창창히 서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들.

2.임진왜란 당시 주인을 따라 장렬한 죽음을 택했던 노비, 봉이와 귀인의 충절을 기리고자 이들의 이름을 음각해 놓은 자연석 묘지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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