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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김옥의 新 남도기행 - 보성 강골마을

ngo2002 2011. 8. 25. 15:31

김옥의 新 남도기행 - 보성 강골마을


입력시간 : 2009. 03.03. 00:00


고요함 속에 묻어나오는 깊은 정

품격과 함께 아련한 옛 향수 오롯

가장 한국적인 정서 서려있는 곳

우리나라 곳곳에 전통문화 마을과 민속마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옛 선현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문화를 되찾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인 듯 하다.

보성에도 득량면 오봉리에 가면 아련한 옛 향수를 떠올려주는 강골마을이 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부정하지 않지만 세월의 변화에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오고 있다.

마을 풍경과 산세 그리고 흙, 바람 등이 그렇다. 선현들이 거주했던 주택 구조나 입지 조건에서 버릴게 없는 자연 친화적 환경에 터 잡아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살아왔던 지혜와 비결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마을 주변을 수려한 오봉산 등 낮게 엎드린 산들이 감싸고 마을 앞으로 작은 동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마을 연못과 정원에 식재된 나무들이 주변 숲과 어울려 우리나라 전통의 조경의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솟을 대문과 커다란 행랑채, 품위 있는 사랑채와 사랑마당, 우아한 안채와 안마당 등을 볼 때 한때 당당했을 위세와 위풍을 알 수 있다.

마을의 배치와 공간구성 어느 것 하나 자연과의 일체되지않음이 없을 정도다.

마을 중심부에는 아름다운 정자(열화정)가 그 자태를 뽐낸다. 연못과 잘 어우러진 풍류각이다. 바라만 보아도 포근하다.

나눔과 개방의 몫은 정자다. 마루에 오르면 그득함이 한껏 멋스러워 시심(詩心)을 느끼게할 만큼 한편의 그림이다.

열화정은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62호로 지정됐다. 1845년(헌종 11년) 이제(怡齊) 이진만(李鎭晩)이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앞마당에 연못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동백나무 벚나무·목련나무·석류나무·대나무 등이 어울려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별다른 정원을 따로 만들지 않았어도, 주변 숲과 잘 어울려 전통적인 한국조경의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자 맞은편 안산에 전원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만휴정(晩休亭)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열화정은 이진만의 손자인 이방회(李訪會)가 당대의 석학으로 추앙받던 이건창(李建昌:1852~1898) 등과 학문을 논했으며 한말 의병으로 유명한 이관회(李貫會)·이양래(李陽來)·이웅래(李雄來) 등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열화정은 가장 한국적인 멋과 생활양식,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기상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마을 한가운데 전통가옥인 이용욱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59호)은 1835년(조선헌종1년)에 이진만이 지었다고 한다. 집 앞 연못 가운데 조그만 섬과 버드나무가 있었지만 지금은 연못이 메워져 밭이 되고 버드나무만 남아 있다. 그 뒤에 솟을 대문이 서남향해 있으며 뒤로 사랑채가 사랑마당을 사이하고 배치돼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간 채는 사랑채보다 약간 앞으로 나오면서 사랑채 서쪽에 같은 향으로 앉아있다. 대문이 담장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사랑마당과 안마당이 외부로 노출 되지 않은 구조며 안마당과 사랑 마당도 따로 구획되어 중문을 통하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집 주위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 초가인 이식래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 160호로 지정됐다. 문간채 상량문 기록으로 보아 1891년에 건축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마을의 모든 집들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집 들 못지않게 그 가치와 보존성이 대단하다.

강골마을은 집들뿐 아니라 길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걷는 곳마다 이끼 낀 담장에 담쟁이 넝쿨이 뒤덮여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950년 전 양천 허 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최초의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전주 이씨·광주 이 씨들이 입촌해 집성촌을 이룬 씨족 마을이다.

한국 전통기와 가옥 30여 채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공동체의 터전으로 삼고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쉬운 것은 노령층만 남아 이 마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은 죄다 도시로만 빠져 나가는 추세이니 얼마 뒤엔 마을이 더욱 퇴락할 것이라는 암울함과 함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시대의 문명의 바퀴에 깔리고 만다면 어찌 되겠는가. 젊은이들의 온기가 사라진 이 마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주려면 군 당국이 하루 속히 테마가 있는 풍물마당과 전통놀이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골마을에서 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정다운 농촌 체험을 마치고 비봉 쪽으로 나오다보면 득량만이 시작되는 초입에 조양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입구 좌우에는 전남도 문화재 자료 제55호로 지정된 해평 석장승이 있다.

우측 높은 곳의 돌담사이로 서 있는 것이 여상(女像)인 '상원주장군', 길 건너 낮은 쪽 상석 위에 낮게 선 것이 '하원주장군'으로 남상(男像)이다. 이 장승은 옛날부터 있어왔던 해창(海倉)과 연관해 주민들이 바다에서의 안전, 마을의 액막이 등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원래는 '절골'의 개흥사 입구에 있던 것을 옮겨 왔다. 이 장승은 불역(佛域)을 수호하는 기능에서 해창과 연관한 관변장승 또는 공공장승의 역할을 하다가 해창의 기능이 다하고 간척지가 생긴 이후 순박한 주민들의 평안과 액막이의 역할까지도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해창마을은 예전에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국사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 밥을 얻어먹는 마을신은 위의 벅수들 이었다

옆에는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당산나무가 있다. 이 마을은 득량만 방조제(得糧灣 防潮提)로 만들어진 간척 평야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이다. 윗마을은 정자골, 아랫마을이 벅싯골이다.

강골 마을 앞에 펼쳐진 득량벌이 끝나는 곳에 득량만이 있다. 득량만은 예전부터 우리나라 해산물이 나던 풍요로운 바다다.

비봉리 선소의 공룡알 화석

득량면 간척지 평야의 배수관문인 해평 수문에서 호젓한 도로를 2㎞쯤 가면 공룡알 화석지와 조선시대 전함을 만들었다는 조그마한 어촌인 득량면 비봉리 선소마을이 다. 득량(得粮)의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비봉리 선소마을 앞섬(지금 득량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대치 하던 중 아군의 식량이 떨어져 비봉리 선소에서 최대성 장군의 도움으로 식량을 조달하여 왜군을 퇴치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득량면 바닷가는 급경사로 조류에 관계없이 배가 드나들 수 있다. 조선조 명종때 관방의 선소를 두어 배를 만들고 200여명이 넘는 병력이 지켰다. 병선 1척 등 3척의 전함과 대변양(비상미) 233석, 향유미(군량) 100석등을 비치한 채 군사를 훈련시켰다.

당시 조선소로 사용했던 앞쪽은 현재 방파제로 이 방파제 밑에 긴 소나무 조각이 몇 개 보이는데, 일부는 원목이 박혀 있는듯하다. 병선을 만들었던 목재 조각들로 추정되나 적의 침투를 막기위한 수중 목책으로 사용했는지 그 출처에 대한 기록은 알 수 없다.

유서 깊은 이곳 선소마을 해안 3㎞일대에서 또 하나의 귀한 보물이 묻혀있음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바로 공룡알 화석지대(천연기념물 제 418호)다.

이 곳 공룡알 화석은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200여개의 공룡 알과 수천 개의 공룡알 파편들.

공룡알 화석은 종류에 따라 대부분 23겹의 껍질들로 중첩돼 있고 그 가운데는 8겹이나 중첩되어있는 것도 있다. 알의 크기는 11cm에서 22cm까지 다양하며 원반형, 타원형과 구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알의 형태나 크기의 특성으로 판단할 때, 이들 알 화석은 대부분 조각류와 용각류에 속하는 초식성공룡인 것으로 여겨진다.

학자들은 이 지대의 공룡 알 화석 층의 발달특성으로 미루어볼 때 충적선상지의 하단 부로 여겨지며 중생대 백악기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공룡 알지대 주변 청암 마을의 퇴적층에서도 공룡 뼈가 발견돼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발견된 공룡 뼈는 아기공룡의 뼈로 추정되며 팔, 다리뼈들이 암석덩어리에서 발견됐다. 이전에 발견된 공룡 알은 모두 식물성 공룡으로 추정됐은 이번에 발견된 공룡뼈는 육식공룡의 뼈로 추정돼 흥미롭다.

교통안내(승용차 편)

호남고속도로↔동광주↔국도 29번↔화순 보성 방면↔보성읍↔18번국도↔봇재↔율포해수욕장↔845번 지방도↔벌교 방향↔득량



사진/ 1.강골마을 안길.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이끼 낀 담쟁이 넝쿨이 정겹다.

2.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열화정. 가장 한국적인 멋과 기상이 서려있는 그림같은 장소다.

3.강골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마을 풍경과 산세 그리고 흙, 바람 등 모두가 세월의 변화에 흔들림없이 지켜온 꼿꼿함이 묻어난다.

4.조양마을 입구에 서있는 석장승. 수령 400여년의 당산나무와 함께 마을의 액을 막아주고 안녕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수호신이다.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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