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23.문경새재 전설 담긴 '주흘산'

ngo2002 2011. 8. 25. 14:44

문경새재 전설 담긴 '주흘산'


입력시간 : 2007. 09.14. 00:00


머리에 가을 하늘 이고 발 아래 천하 비경두니 세상만사 '恨'이 없어라

'문경'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게 '문경새재' 다. 문경의 새재는 예로부터 영남 지방에서 서울로 통하는 고갯길로서 교통 및 군사요충지로 이름 높았다. 한양에서 충주를 거쳐 대구, 동래 방면이나 상주, 통영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 이용되던 시절, 나룻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새재를 넘으면 남한강에서 한양까지 다시 뱃길로 편하게 갈 수 있기에 그만큼 요긴하게 이용되었다.
제2관문을 지나서 말끔하게 정리된 맨발 체험로


고개를 넘나들면서 한이 서려있는 갖가지 이야기와 전설이 깃들어 있는 길목이기도하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가르는 경계로 이별과 만남, 희망과 상심, 영광과 좌절이 교차하는 길목이었다. '문경(聞慶)'이란 지명은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갔던 선비들이 급제했다는 경사스런 소식을 제일 먼저 듣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을 만큼, 이 고개는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보러 가기 위해 넘던 고개였고, 낙향하는 관리들이 허전함을 달래며 쉬어가던 고개였는가 하면, 장사치들이 대목을 노리며 봇짐 지고 넘던 고개,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두려움과 흥분에 떨며 넘던 고개였다. 그런가 하면 고개를 넘을 때 30여명이 모여서 통과해야 산적들의 습격에 대비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한 많고 사연 많은 문경새재

얼마나 넘기가 힘든 고개였으면 멀리 남쪽의 진도 아리랑 가사에까지 등장했을꼬?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난~다"

이처럼 유명했던 새재도 1920년대에 옛 새재 남서쪽으로 이화령을 넘는 신작로가 뚫리고, 이어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넘으면서 문경새재는 서서히 쇄락의 길을 맞이하게 된다.

새재는 마패봉과 조령산 사이로 넘어가는 재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과 산을 오르내리는 산 사람들만 찾아들다가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길 가는 과객(過客) 대신 관광객들의 발길에 밟히게 된 문경새재는 언제부터인가 TV 사극 '태조 왕건’ 촬영장이 만들어지면서 도시 농촌 할 것없이 놀러다니는 사람들에게 인기 1순위로 주목받게 되었다. 요즘도 KBS TV에서 방영되는 '대조영'이 촬영되고 있다.

주흘산(1천106m) 영봉을 오르기 위해 우리는 먼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어제까지 주적주적 내렸던 비가 그치고 한 여름을 살짝 비켜선 높은 가을 하늘은 듬성거린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 민다. 아흔아홉구비 높은 이화령 밑으로 시원하게 뚫린 터널을 미끄러지듯 지나 넓다란 새재 주차장에서 내려서니 새재의 영화로움이 짐작이 된다.

인기 사극 촬영장 덕에 관광객 북적

매표소 못미쳐 상가사이로 접어들어 문경 관광호텔 정문을 비켜서 산 초입을 오르려니 출입금지 푯말에 등산로는 철조망으로 단단히 막아놓았다.

아뿔사! 아니나 다를까 호루라기 소리에 이어 확성기까지 동원되다 못해 관리사무소의 차량까지 출동이 된 입산저지는 필사적인 모양이다, 40명중 재빠른 행동을 보인 24명은 산 속으로 숨어들고, 나머지 16명은 새재를 지키는 매표소 일꾼에게 이끌려 2천1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여궁폭포로 오르게 되는 웃지못할 이산가족의 진 풍경 산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사람에 따라서는 전화위복의 산행이 될 수도 있는 것이거늘….

비 내리는 1주 내내 행동반경이 좁아진 탓에 힘든 관봉 코스를 염려도 했지만 그런대로 몸은 잘 따라준듯 싶다. 후미에서 일행을 챙기니 평상복 차림의 노인 한 분이 출발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오르신다. 이야기를 건네보니 81세란다. 지금까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군림하셨던 양 회장님 보다 한발 앞서 오르심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술 담배를 하시느냐는 질문에 "젊었을 때는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동동주를 너말 야달되를 묵었어. 그 후 마흔 두살에 딱 끊었어"라고 당당하게 대답하신다. 느린 산행속도를 답답해 하던 중 마음씨 좋고 효심이 지극했을 법한 '산미남'님이 스틱도 드리고 이 노객의 산행 도우미 역할을 자처한다.

산세보니 명산의 면모 유감없이 발휘#그림1오른쪽

로프에 매달려 발 아래로 펼쳐진 문경 시가지와 들녘을 번갈아 내려다보며 주흘산군의 숲속에 마음을 깊이 묻고 있기를 두시간여, 아찔한 벼랑에 우뚝솟은 곳에 관봉을 알리는 정상석이 후미를 맞이한다. 맑은 가을 하늘아래 펼쳐진 주위의 경관과 함께 어우러진 산세는 과연 명산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끼리끼리의 산상 오찬이 끝나고 가던길을 계속하니 주봉으로 오르는 삼거리다. 무전기에서는 여궁폭포로 올랐던 16명이 내려온단다. 정겨운 이산가족의 회동이다.

꽃밭서들을 지나고 부터는 넓은 길이다. 수량이 많아진 계곡을 서너차례 건너 내리니 고즈넉한 맨발 체험로상의 제2관문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3㎞면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 제2관문인 조곡관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辛忠元)이 왜병의 진군을 차단하기 위해 쌓았고, 이를 계기로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되자 숙종34년(1708)에 이르러서 조곡관을 중건하고 주흘관과 조령관을 축조해 3중의 관문을 완성했다. 2·3관문의 현재 모습은 190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각각 1975년과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계류에 숨은 비경, 피곤도 잊게 해주고

2관문에서 1관문까지의 거리는 3㎞의 평탄한 내리막길이다. 일반인들의 차는 통제돼 옛사람들이 그랬듯이 다리품 팔며 걸어야한다. 그래도 주위에 둘러선 수려한 산세(山勢)와 길 따라 계류 곳곳에 숨은 비경과 유적들을 찾아 구경하며 걷는 걸음걸이가 힘들지만은 않다.

명소도 많다. 7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여인의 하체와 흡사한 모습이라는 여궁폭포는 제1관문에서 주흘산쪽으로 30여분을 올라 가야하고 거기서 또 20여분이면 공민왕의 피신처였던 혜국사가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지만, 이 곳도 만만치 않은 절승의 연속이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팔왕(八王 : 하늘과 땅의 모든 신)과 선녀들이 어울려 놀았다는 팔왕폭포, 길섶으로 흐르는 폭포의 물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물길에 쉼없이 돌고있는 물레방아, 전임 관찰사가 새로 부임한 관찰사에게 직인을 전해주는 장소였던 교귀정(交龜亭), 옛날 출장중의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던 조령원터,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백수영천(白壽靈泉)이라는 조령 약수 등등.

소원 빌면 한 가지는 들어준다는 '꾸구리바위'

뿐이겠는가? 재미있는 전설을 지닌 '꾸구리 바위'라는 것도 있다. 계곡 건너편에 있는데, 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큰 꾸구리가 살고 있어 지나가는 아가씨나 젊은 새댁들을 희롱했다고 한다. 꾸구리는 잉어과에 속하는 한국 특산어류. 지금도 이 바위에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지만 이몸에 소원이 뭐 있을수 있겠는가?

조선후기 세운 한글로 된 '산불됴심비'

꾸구리 바위 근처에 있는 '산불됴심비'도 눈여겨 볼만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높이 183㎝, 폭 75㎝ 정도의 자연석에 고어체로 음각된 이 비석은 오가는 길손들에게 산불조심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보호의 시금석이고 '조심'을 고어인 '됴심'으로 기록한 유일한 한글비석으로 가치가 있어 문경의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드라마 '대조영' 촬영이 한창이다. 건너편 숲속에서 함성이 들는 것으로 미뤄 전투장면을 찍는 모양이다. 요령을 피우는 거란군사 몇명은 길가에 휴식을 취하면서 산행객이나 관광객의 눈맛을 느끼게 한다. 조령주막, 조령산에서 내리는 삼거리 길목이다. 큰 길에서 비켜서 계곡으로 숨어들어 알탕을 하는것으로 오늘의 6시간 산행을 접는다.

산행코스

A코스=호텔-(70)-관봉-(40)-주봉-(40)-영봉-(30)-꽃밭서들-(50)-제2관문-(80)-제1관문(5시간)

B코스=호텔-(70)-관봉-(40)-주봉-(40)-꽃밭서들-(50)-제2관문-(80)-제1관문(4.5시간)

C코스=호텔-(70)-관봉-(40)-주봉-(30)-해국사-(10)-여궁폭포-(30)-제1관문(3시간)









글=박길만 광주토요산악회 회장·사진=김영
이 기사는 무등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honam.co.k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