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24.포항 내연산 이 길이 명리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일까

ngo2002 2011. 8. 25. 14:52

포항 내연산 이 길이 명리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일까


입력시간 : 2007. 09.07. 00:00


종남첩경(終南捷經)이란 고사가 있다. 명리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란 뜻이다. 옛날 중국 종남산에는 글 줄 께나 읽으면서 속세의 부귀영화를 등지고 숨어살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 이를 안 당나라의 노장용이란 사람은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길이 열리지 않자 일부러 종남산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출세길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교묘한 처세의 술책으로 자기를 파는 마케팅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산으로 가는 우직한 우리네 산 사람들에게는 입신양명의 지름길 보다는 복잡하고 답답한 일상을 뛰어넘어 자신을 위안하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신라 때 내연산의 이름도 종남산이었으니 오늘 함께하신 모든이에게도 명리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라때 이름은 종남산

하옥리에서 향로봉을 오르고 내연산 주능선을 차례로 밟아 내려가기로 한다. 길이 멀어 드나들기 어려운 산이기에 찾아드는 내내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짧지 않은 산길이 끝날 때 쯤이면 내연산은 우리에게 과연 삶의 어떤 지름길을 열어 줄 것인가를 기대하면서….

광주를 출발한지 5시간만에 비포장 도로를 잠시 향로교를 지나 산 초입을 들어서니가쁜 숨은 구불대며 오르는 산길과 비례한다. 몸을 뒤틀며 헉헉대며 오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인생사가 그리 쉬운게 있던가? 가끔씩 급한 마음에 고개를 올려보지만 향로봉은 꼭꼭 숨어 보이지 않는다. 오르다가 발길을 멈추고 뒤 돌아보면 지나온 자국들이 저만치 아스라하다. 인생의 절정을 넘어설 즈음 부부는 남녀의 호르몬이 변화하면서 서로를 더 많이 닮아간다고 한다. 첨예한 남자들의 산이 유순해질 즈음, 여자는 새롭게 먼 길을 나설 요량으로 매무새를 고친다. 도드라지던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둥글둥글 무뎌질 무렵 서로의 체력도 비슷해져 길동무가 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중년 이후가 아닐성 싶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능선 삼거리를 지나 한 숨을 토해낼 무렵 향로봉이 저만치 코 앞이다. 올라서니 있어야 할 향로는 없고 대신 커다란 정상석이 우리일행을 맞는다. 모두 해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이 뒤범벅이돼 시끌벅적이다. 무리지어 늦은 산상오찬이 끝나고 가던 발길을 재촉해야 한다. 모두가 자신에게 길을 다시 묻는다. 계곡을 따라 유유자적 내릴 것인가, 능선 등산로를 따라 갈 것인가. 물길을 따르려면 폭포로 내려야하고 내연산의 좌우를 살피면서 가슴시원함을 맛보려면 능선길이다.

산으로 가는 길은 분명 고요 속으로 드는 것(入寂)과는 다른 형국이다. 무수한 사람들 발길에 뿌리를 드러낸 나무등걸과 발끝에 걸리는 잦은 돌뿌리들은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말해주는 것 같다.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게 중요하다는데
내연산 폭포


보경사로 내리는 길은 오를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편한 능선 길이다. 산도 인생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들 말하지 않던가. 하산 길 걸음이 풀릴 무렵,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뒷모습을 지켜봐주는 모습들이 정겹다. 인생의 절정에서 아름다운 내리막길을 준비하는 이들은 산에서 분명 남다른 지름길을 보았을 것이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내리는 모습에서 발자국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명산이라던가? 새소리는 간간이지만 졸졸거려야 할 물소리는 계곡 저 아래로 가늠하기 어렵다. 길고 긴 평탄한 오솔길에 여유가 있음인지 누군가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뻐근해지는 다리를 위로한다. 발 밑만 내려다 보고 걷는 사람들에겐 저 멀리 시공을 초월한 기이한 풍경이 보일 리 없다. 계곡 위로 좁은 비탈길을 따라 조금씩 고도가 낮아지면서 산비탈을 돌아가는 오솔길에는 나무들이 울창해 발 아래 계곡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간간이 숲이 열리며 하늘도 열어준다.

한 시간만에 삼지봉에 도착하나 정상석 말고는 조망이 없다. 다시 내림짓을 계속하다 조금 치고 오르면 60분만에 문수봉을 밟지만 이 곳 역시 사방이 숲으로 막혀 조망이 안된다.

한참만에야 갈림길에서 급한 경사를 갈지자로 내리니 문수암의 일주문을 대신한 헐거운 문 앞을 비켜돌아 내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차분하게 내려와, 계곡을 따라 오르니 열 두 폭포의 수문장격인 상생폭포가 반긴다. 계곡을 휘돌아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몇차례 거듭되는가 싶더니 웅장한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계곡을 따라 오르니 웅장한 물소리

깎아지른 바위절벽의 비하대와 학소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학소대 쪽에서 비하대로 몸을 떨구며 기괴한 바위 동굴 위로 하얗게 포말을 만들며 쏟아지는 것이 관음폭포다. 관음폭포 위로 구름다리를 건너야 비하대 뒤에 숨은 연산폭포를 만날 수 있다. 이 산의 으뜸 폭포답게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출렁이는 구름다리를 건너야 연산폭포의 부서지는 소리에 땀이 식고 마음은 무아지경에 이른다. 으뜸 폭포가 쏟아내는 물줄기를 담은 그릇도 크고 깊어서 학소대가 발을 담근 못은 검푸른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뜨거워진 온몸 위로 연산폭의 물보라가 시원하게 튄다. 정신이 맑아지는것 같다.

어느 산에나 산행 목적에 따라 분위기를 가르는 분기점이 있게 마련이다. 내연산을 찾는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연산폭포 앞에서 발을 담그고 사진 속에 추억을 담아 곧장 내려가는 폭포맨이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비하대 바위에 매달린 줄에 인생을 걸고 벼랑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 벼랑을 넘어 능선을 계속하는 이들이 있다. 전자에겐 발길을 돌려 내려가야 할 산행 종점이지만, 암벽등반을 하는 이들에게는 비로소 오름짓이 시작되는 출발점인 곳이다.

폭포수는 바쁜 나그네 발목을 붙잡고

폭포를 만들며 흐르는 물은 바쁜 나그네의 발목을 붙잡는다. "여보게 발과 어깨도 쉴수 있게 배낭 내려놓고 신발 끈도 풀고 좀 쉬어 가게나. 탁족하며 무사함에 감사하면서 시를 읊지 않으면 절경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네" 하며 향로봉 산신령께서 꾸짖는 것도 같다.

그러나 물의 유혹을 지그시 누르고 무풍폭, 잠룡폭, 삼보폭, 보현폭을 차례로 내려선다. 계곡 위쪽 비탈을 따라 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숲에 가려 모두 놓치고 마는 풍경들이지만. 폭포를 보면서 즐길 요량이면 몰라도 여기까지 올라내린 지친 마음이 바쁜 종주객들에겐 폭포마다 숨은 사연을 음미하고 노닐기엔 심신이 너무 피곤할 것이다. 폭포를 만들며 요동치며 내리는 물소리 말고는 세상이 적막하다.

내연산 계곡 맞은 편 천령산이 병풍을 두른 듯 가로 막은 병풍암을 지나면 물줄기 두 개가 몸을 섞어 쏟아지는 상생폭포다. 하나가 되어 서로를 살린다는 이 좋은 말이 정치인들이 상용하면서부터 그렇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없다. 상생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못은 고관대작과 음주가무를 즐기던 기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기화담이라니, 공연히 내딛는 발끝에 힘이 모아진다.

기녀가 죽었다는 기화담에선 발끝에 힘

앞서 걷고있는 회원님은 지쳤음인지 얼마 안되는 보경사 길이 그리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길을 잘 아는 사람들은 빙그레 웃으며 연신 "조금만 가면 된다" 라고 답 해준다. 산길에서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익히 알고 있지 않는가. 소나무 숲 개울 건너로는 입적(入寂)을 기다리는 노 스님들이 기거 한다는 서운암이라니 시간이 되는 적당한 시기에 한번들려 인생의 회한이 무엇이였느냐고 묻고싶다.


이 산을 지키는 수문장은 말 많은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보경사의 식솔이 아니다. 일주문을 나서면서 만나는 아름드리 회화나무에 먼저 인사를 해야 한다. 노송들 사이에서 외로이 홀로 몸을 뒤틀며 가지를 내뻗은 모양새는 그 가 분명 이 곳의 주인임을 알 수 있다.

과거 급제때 심은 회화나무 1천년 이어오네

천년을 살아 남는다는 이 나무가 보경사 들머리에 뿌리 내린 사연이 사뭇 궁금하다. 중국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과거에 급제하면 회화나무를 심었고, 관리가 관직에서 퇴직할 때면 기념으로 심는 것도 회화나무였다고 하니,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들어왔을까. 종남산이 내연산으로 바뀐 세월 만큼이나 장고한 회화나무 한 그루가 마음을 붙잡지만 그의 그늘을 벗어나 보경사를 뒤로하고 오늘 6시간의 산행에 점을 찍는다.

산행코스

A코스:하옥리-(110)-향로봉-(90)-내연산-(100)-뿔당골, 은폭-폭포群-(50)-보경사(6시간)

B코스:하옥리-(110)-향로봉-(50)-시명리-(90)-시명폭부터 폭포群과 비하대-(50)-보경사(5시간)

C 코스:보경사에서 폭포군이 있는 연산폭까지 왕복 하시면 놀면서 다녀도 4시간, 서두르면 3시간

글·사진=박길만 광주토요산악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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