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봉화 청량산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르는거지' 입력시간 : 2007. 12.07. 00:00
이 질문에 우리는 정복문화에 익숙한 서양식 답을 즐겨 말한다. 존 리 맬러리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은 뭐라 답했을까. 조선 후기의 선비 이옥은 북한산에 올랐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아름다우니까 왔지 아름답지 않으면 오지 않았으리라"라는 지극히 쉬운 말로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 한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산수 간에서 노닌다고 해서 유산(遊山)이라 했으나, 필자는 술과 음료를 가지고 계곡 언저리에서 떠들고 노는 사람을 말해왔다, 진정한 산행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고있는 모든 것과의 하나가 돼 함께 노니는 공간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퇴계 이황, '나의 산'이라 아꼈던 곳 조선시대 유산기는 대략 1천500여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중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가야산, 북한산, 청량산은 선인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6대산으로 꼽힌다. 청량산이 규모가 작았음에도 포함된 이유는 퇴계 이황이 이 산을 매우 아꼈고 글도 많이 남겨 '조선 유교의 성지'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15세때 부터 청량산에 들어와 학문을 닦았다. 그 뒤 스스로 '청량산인'이란 호를 썼을 정도다. 훗날 그가 공부하던 자리에 제자들이 세운 청량정사를 '오산당'(吾山堂)이라 부르는 것도 퇴계가 "나의 산"(吾山)이라 부르며 사랑한 탓이다. 사통팔달 잘 뚫린 포장도로가 전국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요즘 '오지'라는 단어가 어색하지만, 경북 봉화는 개발의 광풍을 살짝 비켜간 탓에 오히려 전통마을의 미덕과 청정한 자연을 오롯이 간직한 땅이다. 여기 청량산(淸 山·870m)이 바로 그런 곳이다. 경북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와 명호면 북곡리, 안동시 도산면, 예안면에 걸쳐있는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청량산 육육봉'이라 불리는 12개의 빼어난 바위 봉우리들 때문에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악으로도 불린다. 특히 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바위 절벽에 어우러진 단풍빛이 고와 가을철이면 돈 많고 여유있는 놀이꾼을 비릇한 산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산이다. 아담한 산세와 독특한 12개 봉우리 비록 규모와 높이만으로 따진다면 별로 내세울 게 없지만, 아담한 산세와 천길 단애를 이루는 독특한 모양으로 12개의 봉우리와 전망 좋은 대(臺)가 있을뿐 아니라, 산자락에는 8개의 굴과 4개의 맑은 샘이 있다. 한때 3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지만 현재 청량사와 청량정사만 남아있고 거기에는 두가지 보물이있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인 '유리보전'과 종이 부처인 지불이 그것이다. 산행 들머리는 청량폭포, 선학정, 입석 세군데로 길은 대체로 편안한 편이며, 갈림길마다 안내판과 먼저 오른 사람들의 리본이 많아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다. 퇴계의 산 이라고 하지만 고려 공민왕의 산이기도하다. 공민왕은 안동으로 몽진을 온 후 적의 공격을 대비해 접근이 어려운 입지조건을 갖춘 청량산에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고 소금과 식량을 비축하고 군사훈련을 했다. 군졸이나 부역하는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바위에서 밀어 처형을 했다고 하는데, 이 곳을 밀성대라고 한다. 청량산에 올때 다섯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와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다섯 필의 말이 나란히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큰 길을 만들게 했는데, 후일 이 길을 오마대도라고 부르게 됐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선학정 주차장에서 내려 탐방객이 들끓는 아스팔트 길 틈바구니로 산행이 시작되는 입석으로 10여분 이동, 안내판을 따라 곧추 선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가을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작은 소로를 따라 가득 담겨 있다. 겨울이 오기전까지 잎으로 가렸던 나무줄기가 나신이 되면서 부끄러운 몸을 드러낼 준비가 한창이다. 그 벗은 옷들이 등산로 오솔길 길섶 발끝에 내 딩군다. 떡깔나무와 갈참나무 잎들이 오롯한 산길, 그것도 한쪽은 낭떠러지고 한쪽은 바위투성이인 산 비탈을 깎아만든 오솔길 곳곳에 푹신한 융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청량사와 주변 암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나온다. 수십 길 낭떠러지인 어풍대에 서면 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서부터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탁필봉 자송봉이 휘둘러 보인다. 오른편 낭떠러지에는 노란 단풍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위 아래로 걸려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검게 고인 물 나그네 목마름 해결 어풍대를 휘돌아 고운 최치원이 청량산에 들어와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함을 얻었다는총명수가 있다. 긴 세모꼴의 바위 틈 사이에 물이 고여 있다. 그늘이 져 있어서 그런지 물 색깔은 한없이 검게 보인다. 이렇게 높은 돌산인데 물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롭기도 하다. 죄많은 중생들의 부질없는 욕심을 탓해서인지 검게 고인 물이 나그네의 목마름을 해결해 준다. 눈길 부디치는 곳곳엔 암벽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태를 뽐내고 있는 푸른 소나무, 그 언저리로 울긋불긋한 단풍나무들의 오묘한 조화는 '조물주가 의도를 갖고 빚어도 이 보다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 산 자락으로 아련히 보이는 갖가지 나무들이 반겨주고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왼쪽은 청량사, 오른쪽은 응진전 방향의 갈림길 이정표다. 잠시 망서려본다. 과연 어느길이 회원들의 감탄을 자아낼 것인가. 오른쪽 통나무 계단을 15분정도 오르니 외청량사라 불리는 응진전이 높다란 벼랑끝에 그림처럼 붙어있는 모습이 건너다 보인다. 가까이서니 뒤편 기암괴석 금탑봉의 수직절벽이 발목을 잡는다. 노국공주가 16나한 모신 응진전 의상대사가 창건한 기도도량인 응진전은 공민왕을 따라 피난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 금탑봉 꼭대기에는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는 동풍석이 위태롭게 놓여 있지만 절대 떨어지진 않는단다. 10여분이면 주능선에 닿고 20분 뒤면 경일봉 정상(750m). 지금부터는 청량사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능선길 산행이 계속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두세번 반복하고, 철계단과 집채만한 기암괴석을 넘고 에돌면 50분 뒤 자소봉 정상(840m). 난간이 둘러쳐 있고 아래로는 20m 수직 절벽이다. 장쾌한 조망이 시원하다. 정상석을 바라보고 정면 동쪽에는 일월산이, 북으로는 소백산 방면 백두대간 능선이, 남으로는 축융봉이 시야를 압도한다. 자소봉에서 철계단을 내려와 오른쪽 우회길로 5, 6분정도 가면 정상에 못올리고 길섶에 세워논 탁필봉(820m)을 알리는 정상석이 서있다. 여기서 7, 8분정도 가면 연적봉에 오르지만 이 곳엔 정상석이나 표지석이 없다. 여기서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서면 뒤실고개. 여기서 청량사로 하산해야만한다. 뒤실고개에서 10분정도면 수직절벽을 왼쪽으로 크게 돌고 다시 또 암봉을 돌고, 바위와 바위 사이에 난 좁은 급경사길을 통과하고 한번 더 내리막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면 숲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청량산 최고봉인 의상봉(870.4m). 여기서 서쪽으로 100m만 걸으면 난간이 설치돼 있는 전망대, 저녁노을 아래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풍광이 환상적이지만 공사로 인해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아쉬움과 섭섭함을 간직한 채 외청량 응진전과 내청량 유리전으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청량사로 향한다. 모퉁이를 돌자 가을바람이 손님맞이를 하더니 이내 연봉에 감춰진 청량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꾼의 집이 그 뒤에 있고 퇴계가 은거하며 도산십이곡을 집필한 '오산당'이 그 옆에 있다. 절집앞에 집을 지어 놓고 '내 산에 있는 내 집'이라고 현판을 내건 것은 당시 숭유억불정책의 일면목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모습들이다. 하기사 소수서원도 절터를 허물고 지었다고 하니…. 공민왕 친필 걸린 '유리보전'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 걸린 유리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종이로 만든 부처라지만, 고개를 쑥 내미니 기대와는 달리 금칠을 해놓아 여느부처와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유리보전앞에는 원효와 의상이 처음 절을 창건할 때 주민들이 보시한 뿔이 셋난 소가 불사가 끝나자마자 죽어 묻힌 자리에 난 절벽위의 소나무 '삼각우총'이 있고, 그 앞 청량산 군의 '모든 봉우리의 기가 모이는 곳'에 5층탑이 세워진 가지런한 자리에는 불자를 계도하는 스님의 노천 강의가 한창이지만 무슨말인지 귀에 닿지 않는다. 발길을 돌려 산 문을 나서려니 범종루 아래 안심당이란 찻집도 인상적이다. 절 코 밑에 찻집이 있다니? 주지 지현스님이 바람을 피할 공간을 만들고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화두를 던져 놓고 중생을 불러 모으고 있다던가? 불교전통 등을 재현한 내부 공간이 바람에 혼을 뺏긴 영혼을 진정시킬만 하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안심당 안의 넓은 창을 통해 청량산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추스리기에 참 좋을성 싶다, 가파른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따라 내리면서 생각해본다. 한뼘 땅뙈기도 없을 만큼 가파른 협곡이 열두 봉우리 아래 펼쳐지고 기암마다 노송을 머리에 이고 있다. 퇴계는 이곳 청량의 비경을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 뿐"이라고 읊었다던가? 눈에 보이는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기록에 따르면, 청량산은 고대 이래로 '수산'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금탑봉에 자리 잡은 상청량암과 하청량암이 널리 알려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산 이름이 자연스럽게 청량산으로 바뀌게 됐다고 하는데, 그 구체적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청량산은 주세붕이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며,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낙동강이 산의 웅장한 절벽을 끼고 유유히 흘러가며 뫼뿌리마다 많은 신화와 전설을 담고 있다.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을 비롯한 20여개의 절터와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서성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 대 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 많은 유적과 선현들의 자취가 남아 있으며,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는 이 산을 휘집으면서 급경사를 터벅터벅 내려 길가 아름다운 선학정을 뒤로하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4시간 반만의 산행이 마무리된다. 글=박길만 광주토요산악회 회장·사진=김영복 광주토요산악회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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