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아시안하이웨이 대장정 ⑧ 중국인 옷에 담긴 쑨원의 三民주의

ngo2002 2011. 5. 19. 09:45

중국인 옷에 담긴 쑨원의 三民주의
중산복 3개단추 `삼민`의미
기사입력 2011.05.18 17:06:03 | 최종수정 2011.05.18 17:42:22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아시안하이웨이 대장정 ⑧ ◆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쑨원(孫文)을 찾으려면 중국인들의 옷을 들여다보면 된다.

그의 별명인 중산(中山)에서 이름을 딴 중산복(中山服)은 실용적이고 편안해 현재도 사랑받고 있다. 중산복 옷소매에 달린 3개의 단추에는 그의 사상이 담겨 있다. 세 개의 단추는 쑨원이 주창한 민생(民生)ㆍ민주(民主)ㆍ민족(民族)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나타낸다. 그가 혁명에 뜻을 품고 일본과 유럽에서 망명하면서 제창한 삼민주의는 중국인들의 옷자락에도 있었다. 아시안하이웨이 취재팀이 신해혁명기념관을 찾았을 때 중산복을 입은 쑨원 동상 앞에서 중산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참배객을 볼 수 있었다.

쑨원은 본디 의사로서 뜻을 품었다. 광둥성 출신으로 홍콩에서 의학교를 졸업했지만 결국 그는 한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나라 전체를 구하는 의사가 됐다. 그는 1905년 일본 도쿄에서 중국혁명동맹회를 결성해 반청 혁명운동을 했다. 1911년 신해혁명에 성공해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이 됐지만 북양군벌의 거두인 위안스카이(袁世凱)와 타협해 그에게 정권을 내줬다. 하지만 결국 1919년 중화혁명당을 개조한 중국 국민당을 결성하고 1924년 국민당대회에서 제1차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실현시켰다. 쑨원은 중국의 독립과 부강을 위해 살아오다 이듬해인 1925년 베이징에서 병사한다.

쑨원은 중화민국을 세운 아버지, 곧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쑨원은 한국의 독립운동 지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창립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2년과 1968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훈장 중장이 추서됐다.

쑨원의 동상 옆에는 아내 쑹칭링(宋慶齡) 여사가 쓴 신해혁명기념관 제호가 있다. 그녀는 쑨원이 죽은 뒤 국공합작에 노력하다가 국공이 분열하자 모스크바와 베를린 등지에서 머물렀다. 얄궂게도 쑹칭링 여사의 여동생은 쑨원과 대립관계였던 장제스의 부인인 쑹메이링(宋美齡) 여사다.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는 영화 `송가황조`로 제작되기도 했다.

[기획취재팀 = 김상민 부장대우 / 이상훈 기자 / 서유진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