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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하이웨이 대장정 ⑧ 톈안먼광장서 100일만에 쫓겨난 孔子

ngo2002 2011. 5. 19. 09:48
톈안먼광장서 100일만에 쫓겨난 孔子
만방의 선생으로 떠받든 공자동상…"사회주의 위배" 박물관내부 재이전
기사입력 2011.05.18 17:08:41 | 최종수정 2011.05.18 19:22:58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아시안하이웨이 대장정 ⑧ ◆

베이징 톈안먼광장에 위치한 중국국가박물관 정원에 놓인 공자상 모습. 우뚝 세워져 있던 공자상은 취재팀이 다녀간 직후인 4월 21일 저녁 갑자기 박물관 내부 "댜오쑤위안(雕塑園)"으로 옮겨졌다.
`아시안하이웨이 취재팀`이 톈안먼광장을 찾았을 때 공자(孔子)상이 서 있었다. 올해 1월 11일 톈안먼광장 동쪽 끝 국가박물관 옆쪽에 세워진 높이 9.5m, 무게 17t의 대형 청동 공자상 앞에서 많은 중국인과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당당하게 세워져 있던 공자상은 취재팀이 다녀간 직후인 4월 21일 저녁 갑자기 박물관 내부 `조소원(雕塑園)`으로 옮겨졌다. 동상이 세워진 지 100일 만이다. 공자는 어떤 존재이기에 대접이 달라졌을까.

공자상은 당초 톈안먼에서도 잘 보이고 베이징 중심도로인 창안제(長安街) 옆에 자리 잡아 공자가 중국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추방되었던 공자의 공식 귀환이란 해석도 잇따랐다. 중국은 해외 각지에 공자 아카데미를 세우기도 했다. 추방됐던 공자가 복권된 것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계층 갈등이 커지자 이를 무마하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잇따랐다. 공자는 당초 "부귀는 사람마다 하고 싶어하는 일이고, 빈천은 사람마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당한 도리로서 얻어낸 부귀가 아니면 그런 처지를 누려서는 안 되고, 정당한 방법과 도리에 의하지 않고 빈천에서 벗어나는 일도 해서는 안 된다"며 사람들에게 합당한 `도(道)`를 강조했다. 빈부에 대해 현실 세계에서 큰 불만을 가지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자는 여전히 중국에 부담스러운 존재인 게 분명한 듯하다. 중국 관영이론지 추스(求是)는 4월 23일 칼럼에서 "공자 및 유가사상은 줄곧 봉건통치질서 옹호자의 역할을 맡아왔다"고 공자를 비판하면서 "중국은 5ㆍ4 신문화운동으로 공자를 전복시켜 민주와 과학의 신국면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추스는 이어 "100일 전 공자상이 톈안먼광장에 섰던 것은 `소수인`이 공자를 만방의 선생으로 떠받든 것"이라며 "유가사상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을 추진할 수 없으며 봉건등급제도는 근본적으로 사회의 조화 안정을 지킬 수 없고 전통도덕적 기준은 결코 사회 도덕 위기를 구제하는 치세 영약이 아니다"고 공자상의 철거를 축하했다.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100일 만에 다시 대중의 눈앞에서 멀어진 공자상. 공자상과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을 놓고 봤을 때 중국은 여전히 정확한 해석을 하기 힘든 나라임이 분명해 보였다.

[기획취재팀 = 김상민 부장대우 / 이상훈 기자 / 서유진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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