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戴河…굵직한 중국 현대사는 여기 조용한 휴양지서 결정됐다 | |
| 기사입력 2011.05.02 17:21:24 | 최종수정 2011.05.17 10:45: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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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하이웨이 대장정 ③ ◆
◆ 덩샤오핑 개방ㆍ장쩌민 권력이양 이뤄져… `여름 베이징` 별명
흔히 중국의 중요한 정책은 베이다이허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지도부 개편이 소리 없이 이뤄지는 곳도 여기다. 그래서 이곳은 `여름 베이징`이란 별명이 붙었다. 주요 정책과 인사를 결정하는 치열한 권력투쟁의 공간이지만 그런 압박감 속에서도 휴식을 잊지 않는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은 말년에 자신이 건강하며, 정치적으로도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베이다이허에서 수영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거의 비밀리에 진행된다. 당과 정부, 군사 최고지도자들이 1953년부터 이곳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했다. 회의는 이변이 없는 한 거의 매년 7~8월에 열렸다. 통상 베이다이허 회의라 불리는 비공식 회의는 일반적으로 1958년 8월에 열린 회의를 지칭한다. 당시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는 베이다이허에서 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대약진운동을 전면적으로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농촌에 인민공사(人民公社)를 설립하는 것도 이 당시 결의됐다. 1990년 덩샤오핑 주석이 보수파의 저항을 이겨내고 개혁ㆍ개방 정책의 기반을 다진 곳도 베이다이허 회의였다. 1996년 대만과의 평화통일도 베이다이허에서 결정됐다. 대만을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으로 통일하며 이를 위해 양안 대화를 견지해 나가자는 중대 결정이었다. 양안 긴장 국면도 베이다이허에서는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03년 여름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을 때 베이다이허 회의는 일시 중단됐다. 인민의 고통을 배려하고 경비를 절감한다는 이유에서였지만 공산당 원로들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후진타오 주석의 속내도 깔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장쩌민 전 주석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은퇴를 결심했던 곳도 베이다이허다. 따라서 매년 7~8월만 되면 베이다이허에는 언론의 이목이 쏠린다.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권력 서열 1~9위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참여해 의견을 조율한다. 중국 권력 체제의 최대 특징은 집단지도체제다. 따라서 제아무리 주석이라 할지라도 안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대통령제 등과는 달리 국민에게 선출받지 못한 권력이므로 내부적 조율이 더더욱 무게를 갖는다. 현재 9명인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동일하게 국가지도자 대우를 받는다. 권력 서열은 1위 후진타오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부터 9위 저우융캉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까지 구분돼 있지만 정책이나 인사를 위해 토론하거나 표결할 때는 1인 1표씩 동등한 권리를 행사한다. 베이다이허 회의 결정 사항은 10월 열리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국 공산당 이념으로 굳어진다. ◆ 중국정책이 결정되는 4가지 회의 = 중국 주요 정책은 연중 네 차례의 주요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워낙 중요한 회의인 만큼 그 전후에는 주요 인사 면담도 쉽지 않다. 첫 번째는 3월 초에 열리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ㆍ정기국회 성격)다. 주요 법률 제ㆍ개정, 연도별 구체적인 경제ㆍ재정 운용 계획, 주요 부처 업무계획 승인 등이 이뤄진다. 전인대가 없을 때는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수시로 열려 주요 사안을 심의한다. 전국정치협상회의와 겹치므로 흔히 `양회(兩會)`로 불린다. 두 번째 주요 회의는 베이다이허 회의다. 법률상 공식회의는 아니며, 10월에 열리는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 의제를 사전에 조율한다. 하지만 공산당 내 권력투쟁의 결과물인 정치와 인사 등 핵심 의제가 사실상 결정된다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2012년 10월 중국공산당 18기 1중전회에서 5세대 지도부가 구성될 예정이며, 내년 베이다이허 회의는 세계 각국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5세대 지도부란 문화대혁명 이후 대학에 입학했고 개혁ㆍ개방을 경험한 지도자를 말한다. 세 번째로 10월 중순에 열리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정치ㆍ경제 방향과 지도부 인사를 결정하는 공산당 최대 연례행사다. 경제 분야는 5개년 규획, 연도별 경제 운용계획 등이 개략적으로 논의된다. 지난해에는 포용적 성장과 빈부 격차 축소 등이 논의됐고, 올해 3월 양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됐다. 네 번째로 12월 초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는 당ㆍ정ㆍ의회 지도자가 참석해 당해연도 경제 성과를 평가하고 다음해 경제를 전망하며 거시경제 정책의 대강을 결정하게 된다. ◆ 35년전 대지진이 덮친 `탕산` 에는 5만명 희생자 이름새긴 비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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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 대지진`을 생각하며 `아시안하이웨이 취재팀`은 탕산(唐山)을 찾았다. 베이징 인근의 공업도시 탕산은 35년 전 대비극의 참혹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1976년 7월 28일 수요일 오전 3시 42분 56초로 모두 잠든 상태였다. 그때 규모 7.8의 강진이 23초간 덮치면서 24만241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진앙이 탕산 시내 한복판인 지샹로(吉祥路) 일대였고 아무도 피할 수 없는 한밤중이었기에 피해는 엄청났다. 건물 손실률이 무려 94.6%에 달했던 것.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도시는 먼지와 악취로 뒤덮였다. 번성했던 탕산은 지진으로 모든 걸 잃었다. 마치 로마제국의 폼페이가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잿더미에 묻힌 것처럼. 24만여 명의 사망자 외에 중상자가 16만여 명에 달했고, 완파된 가옥도 7000여 채에 이르렀다. 당시의 비극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지진 현장 위에 세운 탕산지진기념관에 가보면 그때의 아픔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정문에 들어섰더니 1978년 7월 28일 3시 42분이 쓰인 상징물이 눈길을 끌었다. 15m가량의 대형 비석에는 2880명의 사망자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그런 비석이 12개나 줄지어 서 있었다. 이름이 잘못 표기된 비석에 사람들이 붓글씨로 정성스럽게 이름을 고친 흔적이 보였다. 아기를 잃은 부모는 앳된 얼굴을 한 아기 흑백사진을 옆에 붙여 놓았다. 아내와 5명의 자녀를 잃은 할아버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적어 국화꽃과 함께 놓았다. 비석 한편에는 골조만 남은 건물 흔적이 보였다. 길이 150m, 너비 18m, 높이 15.61m 크기의 공장이었는데 당시 지진을 잊지 않기 위해 무너진 그대로 놓아둔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탕산인들은 커다란 슬픔을 딛고 지진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지진 나흘 뒤인 8월 1일부터 차가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8월 4일엔 가게들이 문을 열었고 탕산노동일보도 복간됐다. 8월 12일에는 우편과 통신이 복구되고 9월 초부터는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게 됐다. 중국 정부는 탕산 재건을 위해 총 43억위안을 들여 1979년부터 1800만㎡에 달하는 일대의 중건 작업에 들어갔다. 1975년 탕산 지역 생산액은 21억6000위안에서 1976년 17억9700위안으로 떨어졌다. 그 뒤 10년이 지난 1986년 67억4400위안, 1996년 607억2800위안, 2006년 2362억1400위안으로 급속히 발전했다. 현재의 탕산시는 2016년 중국 전체 원예박람회를 유치할 만큼 성장했다. 둥펑기아차, 물자유한공사, 현대굴삭기가 이곳에 들어왔다. [특별취재팀=김상민 부장 / 이상훈 기자 / 서유진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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