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8.어머니의 산 지리산(1)
2009년 12월 21일 00시 00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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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기암절벽 등 빼어난 자연미 자랑
철마다 아름다운 야생화 곳곳에 흐드러져
남한반도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거대한 산은 지리산(1천915m)이다. 물론 국립공원 제1호의 산이며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산이 지리산이다.
찬란한 문화재와 수려한 경관, 특히 우아한 산세와 기암절벽,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처처에 널려있다. 뿐만 아니라 그지없이 아름다운 야생화가 계절 따라 엮어내는 자연미는 필설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
십승지의 땅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힘점이라 할 수 있는 지리산에는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조망하듯 내려다보면 어디가 진정한 승지의 땅인지 구별이 될 것으로 믿는다. 승지를 찾기 전에 먼저 천왕봉을 찾아 올라가보자.
지리산에서는 실타래 같은 물줄기를 자랑하는 섬진강을 볼 수 있고 남태평양의 푸른 물을 볼 수 있어서 3박자를 고루 갖춘 산이 지리산인 것이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1천m가 넘는 고봉들이 20여개가 잇대어 있어서 산다운 맛이 나고 장대 무비한 지리산의 끝없는 능선을 따라가 보자.
흔히 우리들은 감감무소식을 말할 때 ‘지리산 포수 같다.’ 는 말을 쓴다. 그만큼 산이 길고 크며 넓어서 산속에서 길을 잘못 들면 오도 가도 못한다는 뜻이다. 지리산의 거대함을 빗대어서 오지(奧地)중의 오지라고 한 말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높아 비가 그칠 날이 없고 계곡이 깊어 물길이 끊어진 적이 없다. 거대한 스카이라인 따라 하루 중에도 눈이나 비가 걷힐 때가 없고 변화무쌍하다. 멋과 낭만이 살아있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에 도전하는 자들을 불러들인다.
지리산이야말로 조국의 뼈대요 우리들의 삶을 건강하게 하고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는 자연의 보고이다. 신비스런 지리산을 탈 없이 지키고 후손들에게 건강한 채로 물려주는 것이 작금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지리산에는 많은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 백두산의 정기가 남쪽에서 솟아올랐다고 ‘두류산’으로 신선이 살고 있다고 삼신산(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의 하나인 ‘방장산’으로도 불리며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지리산은 모든 산을 아우르는 어머니의 산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산중의 산으로 모든 산의 탯자리며 자궁이다.
드디어 오늘 나는 지리산을 찾아갔다. 십승지를 찾아 산을 오른 것은 시끄러운 현실의 도피도 아니고, 자기학대나 고행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거대한 지리산이 전달해 주는 숭고한 자연의 소리를 가슴에 담고 산속에 승지가 숨어있는 이유를 알고자 함이다.
지리산의 가운데 높은 곳에 서서 사유와 성찰의 최적 장소로 산과 자아가 하나가 되는 소중한 기회를 확인해야 할진데 무거운 발이 감당해 줄지 의문이다. 어제 오후 벽소령에 도착한 나는 이곳 대피소에서 일박을 했다. 지리산 속에서의 하룻밤이었지만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정거장이며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난 나는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했다. 무리한 산행으로 어제 밤에는 등산화를 신을 수도 없었다. 부어오른 발 때문에 두 손을 짚으며 네발로 기여 다녀야만 했다. 이른 새벽 대피소 마당에서 야생 산토끼와 부딪쳤다. 쌓인 눈 때문에 배고픈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이곳까지 온 듯하다.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너무 배고픈 토끼는 우선 먹는 것이 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밝은 보름달이 묘하게도 푸르게 보이고 선글라스를 끼고 볼 때처럼 색다른 모습이다. 벽소령에서 본 달은 너무 밝고 맑아 환한 것이 지나쳐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고 벽소이며 지리산 십경 중, 벽소 명월은 단연 독보적 존재다. 파란 잉크를 뿌린 듯 해 맑은 청색이 많은 생각들을 불러낸다.
벽소령은 빼어난 경관과 지리산 등줄기 한가운데에 위치한 입지조건에서 밀림과 고사목위에 떠있는 보름달이 냉정하게 차갑고 손이 저리도록 시리며 푸르게 염색을 했다. 쪽빛보다 더 푸른 달이 두려울 지경이다. 시퍼런 잉크를 엎지른 듯 마냥 퍼렇다. 국민 시인 고은은 벽소 명월을 이렇게 읊었다.
"어둑어둑한 숲 뒤의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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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리산의 가운데에서 하룻밤을 잤으니 따뜻한 산의 품안을 고마워하고 당당하며 우람한 지리산에 반해 소박한 시 한편을 썼다. 변함없는 산이 시를 토해낸 샘이다.
구름 따라 바위벽 통천 문을 지난 자리
군왕의 호령 끈기 있게 남았다
외친소리 아직껏 메아리로 들려온다
위대한 지리산이 준 것만을 취했으니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한 곳이다
그 소리보다도 깊고 하늘보다 높게
억겁의 세월 빛 대지로 토한다
부끄러움을 알고 정갈함을 지켰으니
산중의 산이며 어머니의 산이다
생명의 모태가 지혜라서 지리(智異)다.
지리산 종주 백 리 길에 잘록한 허리는
섣달 보름 둥근 달 희고 맑아서 푸른빛이다.
마천 화개 오가는 길 뜨겁게 포옹하고
천지간에 당당한 지리의 천왕이 유토피아고
무릉도원 찾아서 생명 꽃으로 온 누리에 퍼진다.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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