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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늘도 울어버린 처절한 청령포(2)

ngo2002 2011. 4. 18. 09:36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7. 하늘도 울어버린 처절한 청령포(2)


2009년 11월 16일 00시 00분 입력


집안 식구와 같은 인격 부여받고 살아와

600년 넘는 세월 조선 흥망성쇠 지켜

관음송 역사·학술적 가치 중요 '명물'

단종의 미래 기약해 주는 뜨거운 땅

하늘을 덮은 솔밭을 지나자 서강의 애잔한 물소리와 함께 옛 생각이 묻어난다. 소나무 사이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단종이 뛰어나올 듯한 풍경이다. 솔밭 가운데에 이르자 한국의 모든 소나무 중에 가장 키가 크다는 관음송(천연기념물 349호)이 나지막한 울타리를 친 채 서있었다. 높이가 무려 40m나 되는 우람한 소나무다.

6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며 그 자리에 살아남아 조선의 흥망성쇠를 지켜온 소나무다. 우리들의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누며 살아온 소나무는 자연 속에서 집안 식구와 같은 인격을 부여받아 살아온 것이다. 말없이 서있는 관음송이 뿜어내는 기운이 살아있는 영물인양 청령포의 하늘을 뒤덮는다. 보면 볼수록 주변의 소나무보다 독특한 모양과 훤칠한 키에 범접할 수 없는 기상이 넘친다.

관음송은 키 높이 정도에서 두 가지로 갈라졌다. 하나는 위로 다른 곳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자리고 있었다.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줄기사이에 걸터앉아 한 많은 세월을 보낸 자리다. 껍질이 유난히 붉고 줄기 중간에 잔가지가 없이 위로만 솟아올라간 아름다운 소나무였다.

단종의 비참하고 서러운 모습을 보았고[觀] 슬픈 말소리와 한 맺힌 울음소리를 들었다고[音] 붙여진 이름이 관음송이다. 위대한 자연의 산물이라 하겠다.

이곳 사람들은 여태껏 관음송을 귀한 보물처럼 여겨오고 있다. 단종과 관련된 전설속의 소나무는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영월의 명물임에 틀림이 없다. 너무 맑아서 짙푸르다 못해 검디검은 서강의 흘러가는 물소리에 단종의 슬픈 마음까지 띄워 보내고 싶었다.

밤이 되면 뒷산에서 부엉이며 소쩍새가 울고 어디선가 사나운 산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려왔다고 한다. 그럴 때면 어린 단종의 몸에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당장에라도 산짐승이나 귀신이 뛰쳐나올 듯한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 무서웠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겹치며 단종을 떨게 하고 괴롭혔다. 한양에 홀로 버려진 젊은 아내 송비가 보고 싶었지만 그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귀양살이의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집안에 갇혀있던 단종도 청령포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구중궁궐에서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라온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왕손이었던 단종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나날이었다. 영월관아에서 하루에 한 번씩 군졸들이 나와 지키기는 했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이들이 없자 조금씩 경계가 늦춰지고 틈만 나면 강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에 올랐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지나 노산대에 오르면 멀리 강 건너 고개 너머에 있는 한양 땅이 보일 것만 같았다. 노산대는 청령포 서쪽의 높이 80m나 되는 강변의 절벽바위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즐겨 올랐던 산봉우리라고해서 노산대魯山臺라는 이름이 붙여진 암봉을 말한다. 유배 중 거의 매일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라고 한다.

(청령포는 영월 땅 육지속의 오지로 단종이 유배당했던 비극의 땅이다)

강은 인간이 함께 모여 살기 시작한 곳이며 물이 있어서 문명의 꽃을 피웠던 곳이 아니던가! 기쁜 일이나 슬플 때 강물은 우리들의 삶을 지켜온 탯자리였다. 모든 생명의 출발지가 강이며 더구나 서강은 수많은 생명을 보듬고 있는 곳이다. 아직까지 깨끗하게 유지된 채 귀한 생명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서강이 우리들의 자존심이다.

유장한 서강은 오백여년 전 단종이 살았던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흐른다. 맑은 서강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역사의 강이다. 그래서 서강은 영혼까지 개운하게 해준다.

잔잔한 서강의 잔물결이 저녁노을과 어울러 질 때쯤 붉은 빛을 띠며 황홀한 경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드넓은 백사장이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펼쳐지고 가슴속까지 아련해진다. 절벽을 휘돌아 흐르는 너무 맑은 서강물이 짙은 검정으로 까맣게 보인다. 이 땅의 강물 중 가장 맑다는 서강은 지금도 변함없이 흐르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 가엾은 내 신세! 이내몸은 언제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까….'

단종은 바위위에 서서 한양 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럴 때면 생이별을 하고 온 왕비를 그리며 주변의 돌멩이를 주워 모아 돌탑을 쌓아갔다. 일종의 시름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쌓아 올린 돌탑은 망향탑望鄕塔이라고 부른다.

두고 온 왕비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지면 그만큼 돌탑의 높이도 올라갔다. 멀리 떨어진 한양으로 한걸음씩 옮기며 그때마다 돌을 하나씩 주워서 마음을 담아 쌓아갔던 것이다. 단종의 애끓는 가슴속 혼을 절절이 담아낸 탑이라 하겠다.

때때로 수양 숙부의 얼굴이 떠오르면 그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분노와 슬픔이 차올라 속병을 앓았지만 유유히 흐르는 서강을 내려다보고 가마솥처럼 타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의 애절한 심정이 헤아려진다. 서강에 자리한 청령포는 단종과 함께 미래를 기약해주는 뜨거운 땅이라 하겠다.

아~아, 영월의 서강이여!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여!

슬픔에 겨워 하늘도 울어버린 청령포는 서강과 함께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뜨거운 감동이 폭포수처럼 흐르며 그칠 줄 모른다. 서강을 감싸 돌고 푸른 소나무를 키워오며 단종을 보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와보고 단종의 설움을 풀어헤치며 청정한 영월과 함께 영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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