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6.하늘도 울어버린 처절한 청령포
2009년 11월 09일 00시 00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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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유배지 삼면 강으로 둘러싸인 절해고도
쉬리 가득 수달·원앙 노닌 순수 생태계 보고
오백년을 내려오는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서럽고 슬픈 일은 어린 왕 단종을 두고 벌어진 이야기라 하겠다. 정감록에서 예언한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지목한 십승지의 한곳이기도 한 영월에는 단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우리들을 어서 오라 부른다. 곳곳마다 처처에 단종의 슬픈 유적들이 옛날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는 곳이 영월이다.
그곳의 멀고 깊은 곳엔 소나무 숲이 있고 단종의 피맺힌 통한이 녹아있다. 단종의 여린 숨결이 안개 낀 세월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울울창창한 청령포소나무가지가 죽은 듯 침묵하며 쳐다보라고 손짓한다. 수도 서울을 끼고도는 한강을 따라 오르면 남한강의 물줄기가 첩첩산중 영월 읍을 감싸고 흐른다. 서강 변에 위치한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절해고도와 같은 곳이다.
서쪽은 오를 수 없는 절벽으로 험준한 육육봉의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솟아있어서 배를 타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서강변 굽이치는 안쪽 둑에 흙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육지가 강물 속으로 밀고 들어간 퇴적층으로 섬 아닌 섬이라 하겠다.
청령포는 조선의 제6대 임금인 단종이 그의 숙부 수양대군에 의하여 왕좌를 무력으로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행위가 부당함을 지적한 집현전학사들과 문종의 고명을 받은 대신들이 단종 복위 운동에 실패하자 세조 3년(1457)에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유배되었던 곳이다. 자신을 둘러보고 삶의 여유를 찾아 마음을 담는 영월로 가는 길은 후회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떠나보자.
단종의 유배지는 너무 중요한 국사범으로 육지속의 섬인 이곳 청령포를 택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영월읍내에서 서남쪽으로 약 3㎞되는 곳에 위치한 곳으로 어디로든 도망치거나 빠져나갈 길이 전혀 없는 천혜의 감옥과 같은 곳이다.
동, 남, 북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 쌓여있고 서쪽은 육지와 맞닿았으나 육육봉이 직각으로 솟아있어서 기고 난다는 빠삐용도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라 하겠다. 죽어서 시체가 되어 나오거나 도망치기 전에는 살아나올 수 없는 곳이다.
아~아, 이런 곳이 있다니 서럽고 짜나워 하늘도 울어버릴 청령포가 아니더냐! 단종의 영혼이라도 씌었는지 보이는 것마다 애잔하고 슬프게만 보인다.
이곳의 서강은 평창강에 유입된 주천강이 만나는 영월의 서면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동강과 만나는 곳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그러니까 서강은 평창강의 하류에 속하며 동강과는 다르게 강물의 속도가 느리고 유유한 모습이 서정을 불러 일으켜주는 잔잔한 강이다. 강변의 폭이 넓고 물이 넘실거리며 제자리에 고여 있는 듯한 모습 때문에 많은 감흥을 불어들이고 시심詩心을 자극해주기도 한다. 잔잔한 감동이 오래토록 남아있는 여행길이 되기에 틀림이 없는 곳이다.
소나기재에서 내려다본 서강은 거의 환상적이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안개 낀 강변의 아름다운 모습이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는다. 강변 따라 옹기종기 흩어져있는 마을의 정경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처럼 보인다. 동강의 물길이 사납고 험악한 남성적인 수강이라면, 서강은 부드럽고 여여한 잔물결이 착한 며느리 같은 강이라 하겠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뱀 꼬리처럼 휘어진 물길이 오밀조밀한 산세와 더불어 청정한 들판을 감싸 안으며 흐른다. 서강의 깊고 잔잔한 물줄기는 병풍처럼 펼쳐진 선돌을 휘돌아 아름다운 선암마을을 지나 청령포를 감싸 돌며 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서강의 물속에는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어름치, 쉬리가 가득하고 수달이나 원앙이 노닐며 순수한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어서 영월만의 독특한 보물이라 하겠다.
지엄하신 나라님의 명령으로 단종에게 사약을 진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금부도사 왕방연은 한 숟갈만 마셔도 죽는다는 사약을 담아 말을 달렸다. 한걸음에 달려온 그는 사약을 전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말로 서글픈 일이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임금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그는 참으로 난감했다.
‘아~아 감히 내가 상왕을 죽인다니 이럴 수없는 노릇이다….’
젊은 상왕을 죽이면 천벌을 받을 일이지만 과연 이를 어쩌란 말인가? 사약단지를 땅바닥에 엎질러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월고을에 도착한 그는 머뭇거리며 감히 들어가지도 못하고 마을입구에서 돌처럼 굳어버릴 지경이 되었다. 왕명을 받드는 신하였지만 차마 입을 열고 사약을 가져왔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설움에 겨워 울먹이던 그가 읊었다는 시조가 바위 돌에 새겨져 있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서강건너 바라다 보이는 청령포는 배를 타야 건널 수 있다. 긴 줄이 강물위로 연결되어있었다. 도선의 안전을 위한 비상용 생명 줄인 것이다. 예전에는 줄을 잡아당기며 배를 움직였다고 한다. 관광선 나룻배가 통통거리며 쉴 새 없이 강을 건너다니고 있었다.
청령포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강변의 기다란 자갈밭을 지나 우거진 소나무사이에 있는 단종유배지였다. 비운의 왕이 살았다는 단종유배지(강원도 기념물 제5호)는 짧은 거리지만 강물로 둘러싸인 지형의 특성상 배를 타야만 나다닐 수 있는 곳이다.
아버지 문종이 병약한 몸으로 일찍 승하하자 겨우 열두 살 밖에 안 된 단종은 조선의 제6대 왕이 된다. 그러나 단종은 건국 초 왕권과 신권의 다툼 속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왕이 된지 3년 만에 물러나고 만다. 피바람을 몰고 온 조선의 역사는 절개 있는 충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렇지만 단종을 복위하려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자 18세의 나이에 머나먼 이곳 청령포에 갇히고 마는 신세가 되었으니 적막한 이곳은 창살 없는 감옥으로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울창한 소나무는 단종의 처소를 향한 체 굽어져 있었다. 시름에 겨웠을 왕을 향한 경배를 드리는 샘이다. 소나무 숲은 듬직하고 울창했다. 더구나 강물소리와 어우러진 소나무는 상큼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잔잔한 강물소리와 키 작은 소나무가지의 흔들림이 조화를 이루며 지친 몸까지 편하게 해준다.
청령포의 소나무 숲은 유독 맑은 공기를 자랑한다. 소나무들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은은한 소나무의 피톤치드는 코끝이 얼큰하도록 짙은 향기를 풍겨준다. 자잘한 바늘잎의 소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위하여 미생물의 활동을 막기 위해 내는 향으로서 우리들에게는 병을 일으키는 나쁜 균을 죽이고 억제해주며 상쾌한 기분을 맛보게 해주는 청량제인 것이다.
청령포를 거니는 것은 시원한 공기와 피톤치드를 마시면서 편안한 마음을 찾는 산림욕을 하게 되므로 스트레스에 찌든 머리까지 맑게 해주는 이중의 효과도 맛볼 수 있다. 이곳의 숲은 천연림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싱싱함이 더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숲이라 하겠다.
단종이 거처했던 곳의 처마 밑에는 직접 지으셨다는 어제시御製詩한편이 걸려있었다. 한나라를 다스렸던 최고통치자에서 죄인으로 전락한 자신의 처연한 슬픔이 곳곳에 스며든 내용이 심금을 울려준다. 두 달 동안 청령포에서의 생활은 단종에게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마실 우물도 없었고 지어먹을 식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가 쓴 시속에는 당시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속에서
만고에 외로운 혼은 홀로 헤매는데 푸른 숲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까지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아야겠다.
임은 가셨지만 어가에 남겨진 단종의 슬픈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쳐다보는 내 눈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단종의 손때가 묻었을 무쇠로 만든 문고리가 유난히 크고 둥그렇게 반짝였다. 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당시의 모습을 고증 받아 재현했다고 한다. 단종이 머물렀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었으며 밀랍인형으로 만든 모습이 서러웠던 당시의 상황을 사실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단종의 서글픈 자취들이 고스란히 남아 눈물이 나게 한다. 푸르른 서강의 물소리가 작은 가슴을 후비고 파고들면서 슬픔을 더해준다. 고즈넉한 풍경과 적막한 청령포가 괜스레 어린 단종의 피맺힌 한을 풀어 사방으로 휘날린다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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