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명리

10.어머니의 산 지리산(3)

ngo2002 2011. 4. 18. 09:39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10.어머니의 산 지리산(3)


2010년 01월 04일 00시 00분 입력


보아도 보아도 볼 수 없는 지리산

아름드리 나무 도벌하다 불질러 황량해진 제석봉

통천문 통해 속된 마음 버린 후에 천왕봉 올라야

깊은 산중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산행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이럴 때 일수록 말벗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나는 나 혼자뿐이다. 연하봉(1667m)에 걸친 뭉게구름이 이동할 줄 모르고 있을 때쯤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고 귀담아 들었더니 들려오는 소리가 놀라게 한다.

“산행자 여러분 폭설로 인해서 하산하거나 대피소로 피하시오.”

에코 되어 메아리로 들려오는 스피커 소리는 장터목 대피소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몰아친 눈은 구상나무를 하얀 설화로 바꾸어 버렸다. 가지마다 수북이 쌓인 눈과 길바닥의 눈은 처음 보는 진풍경으로 이국적인 모습이다.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덩어리로 떨어질 때 피어오른 눈가루가 흩어지는 모습은 꿈속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흐르는 콧물을 훔쳐내기도 귀찮다. 콧수염 따라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송알송알 맺혀 견디기 어렵게 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능선 길로 따라 걷기를 서둘자 어느새 장터목 대피소(1650m)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폭설을 피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갑자기 대피소 안이 북적이며 소란하다. 찌든 산 사람들의 케케한 몸 냄새가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했다. 폭설을 피했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하늘을 덮으며 쏟아지는 폭설이 멈출 때까지 대피소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장터목은 천왕봉을 오르기 위한 정거장이다. 이곳은 옛날에 남원의 마천 사람들과 산청의 시천 사람들이 같은 거리 중간쯤인 이곳에 모여 장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 교환 했던 자리이기도 하다. 필요에 의해 저절로 생겨난 장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들을 눈으로 덮은 이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이 있었다. 마른 목을 적셔주는 산희 샘이다. 아직 남아 있는 물통에 샘물을 가득 채웠다. 마음까지 넉넉해졌다. 장터목 고개에서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자 제석봉(1806m)이다. 생태계복원 실험지역으로 당분간 출입을 금한다고 했다.

제석봉은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이 있던 곳으로 높고 험한 산중에 10여만 평의 너른 평지가 형성된 곳이다. 이곳은 6.25동란 직후까지도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구상나무, 전나무 등 거목들이 원시림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자유당 말기 권력을 등에 업은 사람들이 이곳의 나무들을 무참히도 도벌해 버렸다.

이것이 공론화 되자 증거를 없애게 위해 산에 불을 질러 지금과 같은 황량한 나무들의 무덤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파렴치한 인간 송충이들의 무자비한 욕심이 보여주는 자연 파괴의 썰렁한 모습이다. 비록 자연적으로 고사한 아름다운 백골은 아닐지라도 죽어버린 흔적의 나무는 지나온 세월 속에서 사람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을 다 씻어내 버린 듯 무심하게 서 있었다. 톱과 도끼로 나무를 잘라낸 사람들이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밉기만 하다.

세월이 약이라 하듯 허한 몰골의 참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나무들의 공동묘지에서 기념 촬영하는데 바쁘게 움직인다. 고색창연한 고사목의 앙상한 백색 줄기들이 암벽 기슭에 위태롭게 서서 나열하고 있는 제석봉 일대의 유별난 모습이 어른거리며 지워지지 않았다.

갑자기 급경사 길로 변하면서 거대한 기둥바위에는 ‘천주天柱’라고 쓰여 있다. 하늘을 떠받드는 기둥인 셈이다. 돌기둥 사이를 돌아서자 ‘통천문’이다. 천왕봉에 오르고자 하는 모든 이는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문으로 온갖 삿된 것들을 버리고 몸을 가볍게 해야만 문을 지나갈 수 있다.

통천문은 노고단 쪽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으로 ‘하늘을 열고 오르는 문’ 다운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통천문은 그 자체가 천연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 오지만 오늘날에는 철제 사다리를 놓아 모든 등반 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었다.

신선들도 지리산에서 만큼은 통천문을 통과해야만 하늘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신선조차 이럴 진데 하물며 우리 인간들은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숙한 마음을 갖고 맵시 있게 가다듬은 다음이라야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천왕봉에 이르는 관문은 법계사 쪽으로 오르는 길목에도 있다. 그곳에는 개선문이 있어서 부정을 털어 내고 참된 자아를 이룬 자만을 천왕봉은 받아들인다. 불끈 솟아오른 바위기둥은 좁은 길목을 지켜주는 수문장으로 천왕봉을 지켜주는 듬직한 버팀 석이다.

지리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지리산은 역사의 산이요, 신앙의 산이며, 생명의 산이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남도의 산이다. 천천히 조금씩 올라가는 봉의 마지막에는 정상 표지석이 서 있고 드디어 최정상!

더 이상 단 한 발짝도 오를 곳이 없었다. 지리산에 담겨진 수많은 사연들은 우리의 한 많은 역사로서 엄청난 수난과 질곡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돌비석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 라고 쓰여 있고 비석의 뒤쪽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

지리산은 우리 모두의 산이다. 지리산은 수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에게 삶터를 제공해준 생명의 산이다. 덕천강을 발원시키고 경호강을 더해 남강과 낙동강으로 흘러 보낸다. 섬진강에도 넉넉한 물을 보내 호남평야를 기름지게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 양쪽에 공평하게 물을 나누어준다.

인류의 문명이 강에서 비롯되었으며 강은 산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물을 간직하기 시작한 지리산은 인류문명의 모태다. 지리산을 한두 번 오른 자들은 지리산을 다 보았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지리산을 올랐던 자들은 다르게 말한다.

“지리산은 보아도 보아도 볼 수가 없는 산이다.”

처음부터 잘난 자식은 어미의 모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처럼 지리산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산이다. 산은 깊은 계곡을 몽땅 드러내서 알게 해주지는 못한다. 알 듯 알 듯 모른 것이 지리산이다. 일찍이 남명 조식 선생은 천왕봉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만고 천왕봉 천명유불명萬古 天王峰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어도 지리산은 울지 않는 높은 산이라고 하며 지리산 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지리산’이란 시에서 산을 보고 놀란 감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보라! 나는 지금 천왕봉 머리 위에 올랐노라. 구름과 안개를 모조리 다 헤치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 되어 하늘 위에 올랐노라.”

우리 민족의 아픈 기억으로, 처절했던 한국 전쟁 중에 빨치산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남긴 진중 시에서도 지리산을 장엄하게 부른다.

“지리산 풍운이 당홍동에 감싸는데 검을 품고 남부로 넘어 오길 천리로다.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조국을 떠난 적이 있었던가! 가슴에는 굳센 의지가 있고 마음에는 끓는 핏기가 있다.”

천왕봉 조금 아래에는 천왕샘이 있었다. 작은 옹달샘에 불과하지만 이물이 아래로 흘러가면서 물줄기가 커지고 진주 남강으로 가는 거대한 강물이 되는 씨앗임을 알아야 한다. 바위사이에 물이 고일 수 있는 바가지만큼 한 웅덩이를 팠는데 위아래 두 개가 있었다. 덕산 두류 산악회에서 만든 돌 사이의 우물에는 겨울철이라 물이 고여 있지는 않았지만 바다로 가는 물의 출발점이 이곳이라니 신비롭기만 하다.

오늘 내가 하산 길에 올려다 본 천왕봉은 이미 어둠 속사이로 몸을 숨긴 후여서 볼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자 이번에는 구름 속에 숨어버린다. 거의 날마다 천왕봉은 정상을 구름으로 가린 채 사람들을 맞이한다고 한다. 구름사이로 숨어버린 천왕봉은 삼대에 걸친 선업의 적선을 쌓은 후라야 전부를 볼 수 있다고 전해온다.

법계사를 지나 로터리 대피소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이틀간의 지리산 종주 대장정이 마무리되어 지는 순간이 다가온다. 하늘의 지붕, 천왕봉에 가장 가깝다는 중산리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앉았다 일어서는데 두 다리가 석고처럼 굳어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두 손을 땅바닥에 짚으며 제자리 걷기를 하고 난 한참 만에 겨우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끊는다. 푸른 저 산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나의 산 지리산아! 이보다 더한 산이 어디에 있을까?

반도를 지켜온 랜드 마크여! 지리산은 영원하리라. 이 땅이 있는 한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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