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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황봉을 시민의 품으로

ngo2002 2011. 4. 18. 09:29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2.천황봉을 시민의 품으로


2009년 09월 28일 00시 00분 입력


천황봉 못밟는 사실에 슬픈 마음 앞서

우리네 인생도

한 점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

어디론가 가겠지

중천에 해를 두고 백마강의 낙조를 꿈꾸어 보는 것도 멋이 넘쳐나리라 믿는다. 오름 길이 아닌 평지의 산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자 계룡 8경중 제4경이라는 관음봉 앞에 도착했다. 앞뒤 쪽으로 쌀개봉과 문필봉, 연청봉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고 내가 오르기 시작했던 신원사의 깊고 깊은 계곡이 저 아래에서 기와지붕만을 내 보이고 있었다.

육각 정자에 올라 흐르는 땀을 식히고 있을 지음 서북 능선 따라 하늘에 떠 있는 한가한 구름이 신선들의 집인 양 곱게만 보였다.

‘아! 우리네 인생도 한 점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 어디론가 가겠지….’

그러나 나는 아직 할 일이 태산처럼 남아있다. 먼저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을 둘러보고 이를 기행문으로 써서 출판하고 싶은 것이다. 창작활동에 혼신을 다할 생각이다.

정자에서 쳐다본 하늘의 구름은 우리들 인생을 새로운 느낌으로 맛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계룡산의 제4경이라 했나보다. 육각정자 전망대의 뒤쪽에는 관음봉(816m)이 어찌나 뾰쪽하고 높은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추락 주의(Falling)!’

관음봉이라는 조그마한 비석의 위쪽에는 등산코스 방위표가 그려져 있었다. 화살표를 따라 쫓아가야 한다. 한반도의 남쪽 중원에 자리한 계룡산은 북쪽으로 공주와 남동쪽으로는 대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키 큰 쌍둥이건물이 대전 제3정부청사이다. 그리고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평지와 맞닿는 곳에 한국군의 삼군총사령부인 계룡대가 있으니 이곳이 바로 신도안新都安이 아니던가!

앞을 내다보는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조선을 건국한 풍운아 이성계에게 삼가 존경을 드린다. 오백여년 전 도읍지로 열 달 넘게 공사를 진행했으며 작금의 이 순간 신도안에는 한국의 모든 국방인력이 모여 자리 잡았으니 얼마나 신통한 예측력인가?

너무나도 정확한 예언을 감탄하기에 앞서 일말의 두려움마저 든다. 관음봉과 마주 보이는 곳에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845m)이 있지만 들어 갈 수 없는 등산 금지구역으로 굵은 밧줄로 입구를 막아 버렸다. 정상에는 KBS방송탑과 안테나 5개가 정상에 우뚝 서서 스카이라인Sky Line을 점령하고 있었다.

명산의 일봉에 철 구조물이 들어서다니? 시급히 철거, 이전시키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한낮의 뽀얀 시계로 인해 가렸던 하늘로 계룡 8경중 제1경인 천황봉을 다가서지 못한 채 쳐다보아야만 하는 나는 슬픈 마음이 앞섰다. 그것도 먼발치에서 정상을 쳐다보자니 답답할 뿐이다.

천황봉을 시민의 품으로!

멀리서 바라본 주봉은 기암절벽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닭 벼슬의 모양을 한 용머리 능선이 볼록하게 나온 모습은 신비하기만 하고 그래서 계룡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했던 신원사와 그 옆의 계룡 저수지 물이 하얀 대접에 가득 채운 맑은 물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손바닥에 퍼 담은 물인 양 앙증맞은 모습이다.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에 가득 쌓인 눈으로 인해 설산으로 보여 지는 계룡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해주고 능선아래에는 작은 평야가 이어져 있었다. 전망대에 걸쳐 앉아 등산화 바닥무늬 사이에 끼어 든 눈을 털어낸 다음 본격적인 산악행군이 시작되는 좁은 산길을 따라 삼불봉으로 출발했다.

능선 길에는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눈이 무릎 높이까지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밟힌 눈은 얼지 않은 대신 미끄럽기만 하다.

이곳에서 미끄러진다면 천길 만길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 것이다. 자연성능에서 내려다 본 산 아래는 어찌나 멀리 보이는지 발바닥이 간질거리고 오금이 저려왔다. 밧줄 길과 사다리 길을 여러 차례 오르내리며 지나갔다. 눈길위에서 넘어지기도 여러 차례 힘들고 어렵기만 하다.



가장 많은 신이 살고 있는 계룡산

전망대에서부터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한 시간 가까이 걸어왔으나 삼불봉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 줄을 누군들 알았을까?

차라리 돌아서서 은선 폭포 쪽의 편한 길로 가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려서 돌아설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며 버티고 걷기를 계속하자 드디어 삼불봉(775m)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 보이는 산의 스카이라인이 부처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산이란 조감하듯 멀리 보아야만 한다. 그것도 머릿속에 상상하며 사물을 그리면서 보면 바른 모습으로 보이고 가슴에 담아 느낄 수 있다. 즉 생각하며 산을 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산의 모습과 지명에 붙여진 이름들의 의미를 새기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 보는 산에는 쓰레기더미와 무성한 나무가 앞을 가린다. 세 봉 중 가운데에 있는 봉이 가장 낮았다.

계룡의 제2경이 삼불봉 설화인데 눈 덮인 삼불봉을 볼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삼불봉의 정상에 선 나는 먼저 심호흡을 하고 흐르는 땀을 식히면서 주변을 조망하기 시작했다. 훤히 터진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신기하기만 하다. 봉의 바로 아래는 어찌나 가파르고 험악한 절벽인지 수직 암벽 밑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리고 무섭기만 하다. 이곳에서 멀리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학사의 여러 채의 절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들이 정답기만 하다.

골 따라 내려가는 동학사 계곡이 친근하게 내려다보이며 관음봉, 문필봉, 연청봉과 쌀개봉, 천황봉이 솟아올라 위용을 자랑한다. 지도책을 펴 놓고 실제 위치를 파악 하는데 이력이 나서인지 재미있기만 하다.

처음 오르는 山이라도 지도책을 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주변의 위치파악과 지명을 확인하는 맛이 여간 쏠쏠하고 새로운 보물이라도 찾아낸 양 의기양양하며 만족한 성취감에 부푼다.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마냥 재미있다.

어떠한 지도라도 방위가 그려져 있기 때문에 진북과 지도를 일치시킨 다음 거리와 위치를 현재의 장소에서부터 살펴 가면 산에서 보이는 모든 곳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 계룡산의 삼불봉 조망은 쌓인 눈으로 인해 풍광이 황홀할 지경으로 아름답고 뛰어나 계룡의 비경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눈 쌓인 봉에 오른 나는 ‘계룡산 신도안’ 이라는 한 편의 시詩를 남기고 싶었다.



산산산 봉봉봉 처처처

닭 벼슬 제일봉은 철조망을 둘렀지만

동화사 낙숫물소리 천지를 울리고

신비한 기운이 가득한 도읍지다.



계룡산 신도안이 미래의 정토

이 땅을 지켜주는 국군의 요람

부국강병이 통일을 당겨주면

선인의 뜻으로 숲숲숲 이루리.

삼불봉에서 부터는 가파르게 내려가는 하산下山길이다. 대부분의 추락 사고나 부상은 하행 길에서 일어난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천천히 살피며 걸어야 넘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쌓인 눈으로 계단이 덮여 있어서 어디를 밟아야 할지 여간 조심스럽기만 하다.

길옆의 죽은 나무 가지에 앉아 쪼아대는 딱따구리에 정신이 팔린 나는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이 장갑을 끼었기 때문에 다친 곳은 없었지만 여러 차례 넘어지며 미끄러지는 통에 면장갑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서 더 이상 끼고 다닐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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