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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찰진 갯벌이 승지가 됐다 (3)서해에서 능가산으로

ngo2002 2011. 4. 18. 09:25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44. 찰진 갯벌이 승지가 됐다 (3)서해에서 능가산으로
입력시간 : 2011. 04.04. 00:00


산세 수려하고 기기묘묘

'채석강의 꽃' 탄성 절로

내소사 빽빽한 전나무 숲길 매혹

황토길 걸으니 온몸 싸늘한 느낌

거대한 낙조 발걸음 멈추게 해

푸른 소나무 숲의 그늘이 있어서 시원한 쉼터와 함께 해수욕객들의 사랑을 받아 오는 변산 해수욕장, 고운 모래가 한없이 펼쳐지는 백사장과 유리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맑은 바닷물은 서해안 제일의 해수욕장이다.

능가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내다보는 보리밭에는 빨갛게 달구어진 황토 사이로 겨우 내미는 보리 싹이 두 눈을 시원하게 한다. 능가산(459m)은 낮고 작은 산이지만 산 속으로 들어서면 산세가 수려하고 기기묘묘하다. 봉봉이 바위산으로 보이는 곳곳 처처마다 모두가 절경이다. 깊고 물이 많은 봉래 계곡을 품고 있어서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들이 넓고 산과 바다를 안고 있어서 물산이 풍부하고 넉넉한 부안의 능가산은 채석강의 꽃이라 하겠다.

능가산의 남쪽기슭에 자리한 소래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창건되었는데 그 후 여러 차례의 증수, 중창, 중건을 거듭해 오면서 내소사로 자리 잡았다. 소래(蘇來)나 내소(來蘇)는 같은 뜻의 말이다.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소생한다."

글자배열 순서를 바꿔도 똑같은 뜻으로 죽어버린 고목에서 싹이 트고 죽었던 자도 살아난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니 묘하고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늙은 나무 2그루가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보였는데 느티나무였다. 노거수에서부터 시작한 쭉 뻗은 일자 길을 걸어가자 선계와 육계의 시작지점이었다.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의 현판이 또렷하다. 산문을 들어서자 그 초입에서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일주문에서부터 하늘을 찌를 듯 빽빽이 들어선 전나무 숲길에 매혹되지 않을 자있을까? 전국에서도 유명한 이 길은 해방 후 조성된 것으로 불과 50여 년 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한국제일의 트레킹코스로 가슴을 열어주는 황토 길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황토 길의 포근함이 등산화바닥으로 전해온다. 모처럼 밟아보는 흙길의 편안한 쿠션이 부드럽다. 오십 년의 조림이 주는 교훈으로 전나무 숲길이 주는 감격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전나무의 피톤치드가 온몸을 싸늘한 느낌으로 휘감는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넓은 도량 한가운데에 1천여 년 된 느티나무(부안군보호수 고유번호 9-15-2)가 아직도 힘차게 버티고 서 있었으며, 잘 다듬어진 주변의 정원수와 어울려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고색이 창연한 누각 ‘봉래루’를 지나자 보종각 안에는 범종(보물 277호)이 매달려 있었다. 조각의 장식이나 용두의 세련된 예술성과 위로 터진 음통의 조각장식이 매우 아름다운 고려 동종의 전형적인 특색을 갖춘 교과서적인 동종이라 하겠다.

작은 돌들을 쌓아 올린 축대 위에 자리한 대웅보전은 능가산의 바위산을 뒤로 한 체 길게 펼친 병풍처럼 두른 암벽을 친 곳의 가운데에 자리 잡아 날아갈 듯 산뜻하다. 단청을 칠하지 않은 나무들이 여인네의 속살을 드러낸 것처럼 희멀건 잿빛으로 뽀얗게 보였다. 얼굴을 씻고 물기를 닦지 않은 아가씨 볼 같은 목재가 수수하고 부드럽게 보였다.

대웅보전은 조선시대 인조 11년(1633)에 건립되었는데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넣는 형식으로 짜 맞춘 집이라고 한다. 나무를 밀가루 반죽 다루듯 잘 다듬은 옛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로 건축된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이라 하겠다. 대웅보전의 꽃 문살은 꽃잎 하나하나를 톱질하고 대패질해서 홈을 파낸 다음 끼워 맞추기 공법으로 조립한 섬세한 손놀림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빚어낸 명품으로 손꼽힌다.

큰 법당 마당에서 쳐다보는 능가산은 바위산으로 가히 봉마다 빼어난 절경이다. 왼편으로 돌아서 산으로 오르는 길은 황토 길로 가파른 곳에는 어김없이 나무계단이 깔려있었다. 제법 땀이 나려하자 상의를 벗어 배낭끈에 묶었더니 한결 시원했다. 나지막한 능선에 올랐더니 쉼터가 있었다. 숨을 가다듬은 다음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서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 왔다. 바다와 맞닿은 하늘이 아련하게 보였으며 작은 섬도 점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길 따라 걷기를 계속하자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능선을 따라 가는 길에는 시야가 훤하게 트여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발아래 바닷가는 곰소 항으로 젓갈 시장이 서는 곳이다. 온갖 젓갈이 종류불문하고 모두 다 있다는 전국 제일의 젓갈시장이라고 한다.

좁은 곰소 항에서 젓갈 익어 가는 냄새가 해안까지 질펀하게 퍼지며 코끝을 쏘아댄다. 길옆으로 길게 늘어선 젓갈항아리들이 묘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신세대 젊은 주부들은 젓갈을 싫어하지만 입맛을 돋우는 데는 젓갈이 최고다. 한 여름 잃어버린 식욕을 돋우는데도 역시 젓갈이 제격이다.

조금 멀리 보이는 곳의 움푹 들어간 곳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줄포 항으로 한가한 어선 4척이 낮잠을 즐기는 듯 여유 있게 떠 있었다. 네모반듯한 염전에서는 천일염 익어 가는 통통 튀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봉실하게 쌓아 올린 소금더미가 논바닥 낟가리처럼 반듯하게 줄지어 있고 하얀 눈 덩이처럼 푸짐하게 보였다.

산행을 시작할 때는 500m도 안 되는 낮은 산이라서 쉽사리 오를 것처럼 얕잡아 보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골과 보이는 봉마다, 깊고 길어서 아기자기한 돌들의 꾸밈새가 황홀할 지경이다. 능선을 넘어 재백이 고개를 넘는 맛도 제법 쏠쏠하고 이마에 땀을 나게 해주어 고맙기만 하다.

관음봉 쪽의 등산로는 폐쇄되어 있었다. 드넓은 서해바다의 푸른 물결 따라 외롭게 떠있는 죽도가 쓸쓸하게 보였다. 작은 어선이 지나가는 길 따라 파란 물결이 한 줄로 하얗게 그어지는 모습이 정겹게만 보인다.

재백이 고개(180m)를 넘어 직소폭포까지 1.2㎞ 남은 지점에 이르자 게울 물이 불어 흐르는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등에 맨 배낭 끈 따라 흘러내리는 땀이 시원한 물소리에 맞춰 시원해진다. 등산안내 표지판에 쓰여 있는 표어가 인상적이었다.

‘쓰레기는 줄이고 즐거움은 늘리고’

어느덧 잔 등성을 넘어 내려가는 길이다. 세 차례나 굽이 길을 지나자 직소폭포였다. 이름 그대로 직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30m는 됨직 했다. 직소폭포는 폭포가 갖추어야할 산세, 절벽, 계곡 등의 제반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채석강과 함께 변산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그 길이도 장대하기만 하다. 육중한 암벽사이로 흰 거품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이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은 못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어 편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완벽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폭포 밑 둥근 분옥담에 고인 물을 돌아 조금 더 내려가자 선녀탕이 투명한 유리 어항의 물처럼 맑기만 하다. 깨끗한 물에는 자고로 선녀가 사는 법이다. 물 표면이 맑아 거울을 쳐다보는 것만 같다. 선녀가 사는 곳에 어찌 나무꾼이 없겠는가? 나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현대판 나무꾼’이 되고 싶었다.



내가 선녀탕을 보고 있다

선녀탕이 나를 보고 있다

나무꾼이 선녀를 보고 웃고 있네

잠자리날개 옷자락이 살짝 보이고

선녀가 나무꾼을 손짓하네.



내가 자네와 겹쳐 자네가 나와 포개져

타(他)인 듯 자(自)이고 자인 듯 타인데

꾼은 영원히 선녀를 안고 그네를 탄다

아(我)가 타를 보고 모두가 심(心)이라 하네

내가 나를 쳐다보았다.



거대한 부안 댐의 상류지역에 도착한 나는 댐의 고인 물 위쪽에 있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자, 나무로 만든 퐁퐁 다리가 있어서 걷기에 편했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부안 댐 지역으로 내려가자 실상사지에서는 복원불사를 준비 중에 있었다.

내변산의 능가산을 종주하는데 웅장한 산세와 수려한 모습에 반한 나머지 여태까지의 4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서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거대한 낙조의 모습은 바쁜 일정 때문에 끝까지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쉽지만, 귀가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서해 바다 속으로 숨어들 준비를 마친 태양이 가물거린다.

“풍-덩”

노을 진 해를 한 번 더 쳐다보며 하산 길을 서둘렀다. 산도 강도 그리고 바다도 태양도 모두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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