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22.가야산 불꽃바위 아래가 십승지다(8)- 신비한 창고 장경각 |
입력시간 : 2010. 05.03.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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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법보인 대장경 머리에 인 모습
창 제조 과학적 통풍 방법 현대도 힘들어
800년 팔만대장경 '민족의 영원한 자부심'
장경각(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소재 국보 52호)은 우리 민족의 경이로운 보물 팔만대장경 판을 봉안해둔 판전건물을 말한다. 일종의 창고 건축물이라 하겠다. 각의 구성이 목조가구법으로 간결하지만 서울의 종묘와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건축물이다. 보면 볼수록 첩첩한 가야산 자락과 어울려 장엄한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 웅혼한 분위기를 풍긴다.
큰 법당 대적광전 위에 자리한 장경각은 건물의 배치 상,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는 것을 나타내므로 더욱 뜻 깊고 오묘하기만 하다. 장경각을 처음 세운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때가 1397년임을 미루어 볼 때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 1488년쯤에 세워졌을 것이다.
장경각은 모두 네 동으로 되어 있다.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 하고 남쪽은 수다라전이라 하는데 길이가 15칸과 옆으로 2칸의 동일한 건축물로 단층 우진각 지붕의 나무기와 집이다. 두 건물을 잇는 작은 두 동의 건물에는 해인사에서 만들어낸 장경이 보관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口’자 모양의 건물이다.
오직 경판의 보관을 위한 창고기능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멋을 부린 부분이 없고 단순하고 담백하다. 구조형식보다 수장기능이 우선이기에 어쩔 수없는 창고건물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구조는 대체적으로 큼직한 부재들을 단조롭게 짜 맞추었으며 복잡한 장식을 한곳은 없다.
장경각의 흙 마당에 서서보면 법보전과 수다라전이 세부 수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수다라전의 창은 아래 창이 위 창보다 세배나 컸다. 마침 준비한 줄자로 위, 아래창의 길이를 재어보니 95cm, 300cm임을 알 수 있었다. 법보전의 창은 그 반대 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아주 과학적인 통풍 방법으로써 오히려 건축방식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진 슬기를 잘 보여 준다.
통풍창문 앞에 깃털을 갖다 대었더니 수다라 장에서 법보전 쪽으로 바람이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공기의 대류현상은 원활한 통풍은 물론 장경각내의 적정 온도를 항상 유지시켜주는 비결이다. 오늘 한 차례 해 본 나의 실험으로 단정 지을 수야 없겠지만 원활한 통풍을 위해서 애썼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장경각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 초기의 건축물 가운데서 건축양식이 가장 빼어나고 건축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 절대적인 요건인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지어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장경각의 터는 본디 그 토지 자체도 좋거니와 땅에다 숯과 횟가루와 찰흙을 넣음으로써 여름철 장마의 습기가 많을 때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또 건조기에는 습기를 내보내 곤 하여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판전 창문도 격자창이어서 그 기능이 원만하다고 한다. 창문은 개방상태였다. 주먹을 쥔 채로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건물 내에 날짐승이나 벌레가 침범하지 못하다니 신비롭기만 하다.
창틈으로 내다 본 장경각 중앙으로 통행할 수 있게 편의 장치를 한 세밀하고 치밀한 계획적인 건축물에 놀랍기만 하다. 외부 통로 쪽의 경판에는 하얀 먼지가 잔뜩 끼어 있어서 볼썽사나웠다. 5단의 서가에는 단마다 두 장씩의 경판을 넣어 보관했다.
1973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장경각이 목조여서 화재의 위험이 있다하여 대장경의 영구 보존을 위해서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현대적인 기술과 건축 공법으로 신축 건물을 지었다.
새 건물로 경판을 옮겼으나 얼마 안 가서 경판에 곰팡이가 생겨 지금의 장경각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 판고야 말로 최첨단의 건축기술로도 해결하기 힘든 우리 조상의 선험적 직관에 의한 과학적 합리성에 합당한 완전무결한 걸작이라 하겠다.
만의 일!
경판의 썩어감이 진행된다면, 이는 경판 보존에 치명적인 문제이다. 목재가 썩어 감은 담자균에 속하는 목재 부후 균이 생육해야 가능한데, 이는 수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목재에 남은 함수율이 20-30% 이상일 때에만 활동한다.
현재의 경판 함수율은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16% 전후로 부후 균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며, 경판은 계절에 따른 함수율 변동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는 목재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에 붙어있는 물 분자 수가 76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안정되어 있어서라고 한다.
설령 장마철에 주변의 상대습도가 올라가더라도 목재 자체의 함수율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경판변화는 없다고 한다. 여름 한 철 경판 표면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은 닥나무 한지에 인경 할 때 사용했던 식물성 풀의 전분 때문으로 이를 닦아내고 가을철이 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부처님의 말씀을 정성스럽게 모으고 다듬어 새겨 둔 팔만대장경 판은 그 방대한 규모와 완벽한 보관까지 오늘의 우리를 다시 한 번 감탄하게 한다. 800여 년의 긴긴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너무나 많은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고스란히 우리 앞에 성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함께해 온 팔만대장경은 여태껏 고고한 모습을 지키며 숨결을 내뱉어 왔음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자부심이라 하겠다.
경판 불사 직후부터 밀어닥친 고려의 위급한 상황의 전개에서 조선초기의 계속된 왜구 침입, 조선중기 일본의 대장경 소유 욕구가 전쟁으로 번진 임진왜란, 가깝게는 한국동란에 이르기까지 위험한 순간을 넘겨온 세월이 대단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오늘날 8만1천258장에 이르는 경판이 단한 장의 분실도 없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게 된 데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슬기롭게 넘겼기 때문이다.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준 장경각은 위대한 예술품이다.
불심으로 지킨 나라! Corea여 부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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