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일반적상식

아이폰 충격 벌써 잊었나

ngo2002 2010. 9. 8. 11:00

[디지털3.0] 아이폰 충격 벌써 잊었나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직장을 갖게 된 후 처음으로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살던 생각이 불현듯 난다. 당시 정원을 가꾸는 지식이 전혀 없던 필자는 무더운 여름철에 화초나 잔디가 말라죽을까봐 매일 퇴근 후 햇볕이 쨍쨍한 오후에 물을 줬다. 그런데 화초와 잔디는 계속 시들어만 갔다. 이를 지켜보던 옆집 할아버지가 "한창 더울 때 물을 주면 표면에서 물이 말라버려 뿌리까지 공급되지 않으니 해 뜨기 전 이른 새벽 일주일에 한 번씩만 넘치도록 물을 주면 된다"고 조언해줬고 그 방법은 효과가 확실했다.

아이폰 등장으로 불어온 스마트폰 열풍은 삼성ㆍLG전자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에도 큰 충격이었다. 수출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온 모바일폰 시장을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맴돌았다. 정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에 뒤지게 된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했고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낙후된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모바일폰뿐 아니라 점점 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아져가는 생활가전이나 자동차 등 제조업 전반에서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형성됐다. 그런 배경 속에 지난 2월 국가비상경제대책 회의가 청와대가 아닌 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옛 소프트웨어진흥원)에서 열렸고 이때 3년간 1조원을 지원하는 등 소프트웨어 강국 도약 전략이 발표됐다.

최근에는 삼성, LG 등이 아이폰을 공략할 제품을 잇달아 출시했고 아이폰의 하드웨어적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우리 스마트폰이 다시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 분위기가 바뀌자 "그리 걱정할 상황이 아니지 않았느냐"는 일부 의견과 함께 소프트웨어 강국 도약 정책이 용두사미로 변해가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든다는 기치 아래 "WBS(World Best Software) 사업에 3년간 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올해 실제 투자액은 그 절반도 안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정말 아이폰의 공포 또는 소프트웨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것일까. 국내 스마트폰의 속사정을 살펴보면 그리 녹록한 상황이 아니다. 삼성 스마트폰의 경쟁력은 디스플레이와 CPU 등 하드웨어에 있고, 모바일 시장의 극심한 하드웨어 경쟁 속에서 기업 마진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하드웨어 중심의 경쟁에서 우리 기업이 가져가는 마진은 10% 안팎이다.

반면 스마트폰의 본질적인 경쟁력이 갈리는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애플은 60%에 육박하는 마진율을 보이고 있다. 또 삼성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는 구글의 애플 대항마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기반하고 있으며 구글 의존적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스마트폰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스마트폰을 만들어 수출하면 할수록 구글의 시장 지배력만 확장될 뿐 국내 기업들의 마진율은 열악한 수준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삼성, LG의 스마트폰 전략이 구글에 종속돼 구글의 차세대 안드로이드 공급 정책 방향만을 바라보며 가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소프트웨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금융, 제조, 건설, 에너지 등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소프트웨어 비중이 전체 산업의 35%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산업 전반의 경쟁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나 연구개발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위기가 터지면 찔끔 미봉책으로 정책을 만들고 잠잠해지면 철수하는 대응이어선 안 된다.

소프트웨어 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소프트웨어 정책 연구소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뿌리까지 물이 공급되고 이를 기반으로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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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7:18:31 입력